먼저 은퇴하신 선배들의 은퇴에 대하여 남의 일로만 생각했더니 벌써 나 자신에게 임한 것을 생각할 때 정말 내가 은퇴했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마치 내가 은퇴했다는 현실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은회후 우여곡절을 격어오다가 마침내 우리교단 은급부에서 은퇴목사들의 생활 체험수기를 모집하는 통지를 받고 나의 은퇴 후 생활 체험을 정리해보며 수기하게 되는 것을 다행하게 생각하며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은급부에서 하는 일을 인해 감사한다.
2.먼저 내가 은퇴하기까지의 과거를 정리해보면 회고해본다.
어려서는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자라났으며 청장년 시절에는 현실에서 힘써왔으나 은퇴하고 나니 나도 벌써 늙었는가 하는 생각에서 은퇴하기까지의 과거가 자꾸만 생각나서 회고해본다.
나는 군에 복무한 일외에는 교회에서 목회생활에만 전념해 왔으며 딴 일은 거의 종사 해본일이 없다. 26세였던 1956년도 3월경부터 1972년까지 16년간은 전도사로서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교회를 시작으로 하여 청송군 안덕면 지소교회,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교회, 경북 봉화군 소천면 송내교회, 영양군 일원면 일월교회와 가천개척교회를 설립시무 안동시 노하교회, 충남 탕정면 신리교회, 경남 거창군 웅양면 웅양교회 등... 9개 교회를 총신 64회를 졸업하고 강도사로 인허받기 전까지 전도사로 시무하였다. 그리고 강도사로서는 1972년도 6월에 강도사고시에 합격후 그해의 10월 11일에 진주노회에서 인허를 받고 웅양교회에서 경북노회의 와촌교회(당시 덕촌교회)로 와서 시무하며 1년 경과후 1973년 9월 6일에 경북노회 제 93회 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그후 덕촌교회, 대구동교회, 반야월북부교회 등 3개처 교회를 옮겨가며 25년간 위임목사로 시무하다가 1998년 5월 31일에 은퇴하게 되니 일생 42년간 목회하다가 은퇴한 것이다.
3.은퇴 후에 가장 어려웠던 일들
(1)은퇴후 2-3년간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기간이었다. 물론 은퇴목사마다 같지는 않겠지만 나의 체험으로는 일생 쉬지않고 목회하다가 갑자기 은퇴라는 생활의 변화로 경험없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때문에 심신 상태는 기계가 계속 가동되다가 갑자기 먼춰지는 것 같고 정신적인 면에는 쓰이지 않는 기계가 녹슬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며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여러가지 합병증이 생기며 병원의 신세를 끼치게 되었다.
(2)은퇴 연금혜택을 못 받게 되는 처지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나와 같은 형편에서 은퇴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교단은 타 교단보다 늦게 은급제도를 실시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연령에서는 은급제도에 가입 할 수가 없었다. 처음 은급제도가 시작될때 70세 은퇴를 20년이상 남은 자라야 되며 20년이 못되면 최하로 15년 이상 남은 자라야 가입할 수 있다 하였다. 그때에 나는 14년 밖에 남지 아니한 56세였다. 그래서 총회은급부에서 할 수 없다 하므로 가입할 수 없었다. 이미 나와 같은 처지에서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지나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겠지만 아직 생존해 있는 분들은 얼마나 될까?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해결의 길은 없을까?
(3)신뢰했던 동역자 후배들에게 배신감이 있을때 견디기 어려웠다. 나느 선생님들과 선배 목사님들로부터 의리를 저버리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깡패의 세계에서도 의리는 지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목사의 세계에서는 더욱 의리를 지키며 서로 믿고 협력하며 아무리 입장이 어려워도 최소한의 배신감은 주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성이 많은자들 중에는 간혹 오늘의 우정을 내일 가서 그 우의를 헌신짝 같이 저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비록 보잘 것 없는 무익한 목사이지만 동역자들 특히 어려움에 처해있는 동역자라면 내게 어떤 신변의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협력하려고 노력해왔다. 나의 그 같은 정신이 상대로 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에는 그 배신감을 견디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내가 당했던 일은 1998년도에 은퇴를 하고나서 친구되는 모사의 소개로 대전에 있는(유성구 송정동) 양로원(사랑의 집 : 원장 정은조 장로)으로부터 양로원 원목 청빙을 받았었다. 그 원장 장로는 보수적인 신앙의 장로로서 대외적인 관계를 의식하여 대교단인 노회의 소속 목사를 원목으로 모시고저 나의 친구되는 목사의 소개로 나를 청빙코저 내가 노회로 청빙청원서를 냈었다. 생활 대책은 양로원 자체에서 주택과 식생활을 마련하는 이외에 정부로 부터 매월 30만원씩 생활 보조를 받게되는 안정된 생활보장과 여생에 종신토록 원목으로 모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노회장은 헌법 제4장 제4조 8의 목사 칭호 중 기관목사 칭호를 교단기관 목사라고 되어 있으나 본 교단에 속해 있지 아니한 초교파 양로원의 원목은 허락할 수 없다하며 노회 본회에 내놓지도 않고 임원회에서 기각하고 말았다. 만약 그 노회장의 주장대로라면 일반 사회학교 교목이나 타교단 교회나 기관에는 청해도 설교하러 가지도 말아야 한다. 본 교단 기관외에는 어떤 기관에도 원목을 파송할 수 없다는 조문도 없는데 왜곡되게 해석하며 불우한 이웃인 양로원의 청원을 기각하는 것은 주의 복음의 문을 가로막는 행위이다.
나는 그 청빙 청원서를 본 노회에 기접 제시했다. 설명을 들은 회원들은 기각을 반대하며 은퇴목사가 적당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노회가 찾아 알선해 주어야 겠는데 특히 불우한 자들을 모신 복지기관에서 자원하여 청원하는 은퇴목사를 파송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하며 기각을 반대 했지만 결국은 권력에 아첨하는 몇 사람들의 동조로 그 회기에서는 기각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나는 크게 실망했으나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해(1999년도)에 그 내용을 총회에 문의하기 위해 노회에 경유하려고 서류를 내놓았을 때에는 노회 자체에서 그 청원을 허락하며 나에게 원목으로 파송하기로 가결했다. 그러나 노회의 허락과 파송을 받아 그 양로원에 찾아갔을때에 이미 청원한 지 1년이 지났기 때문에 들어갈수 있는 자리가 없어졌다. 노회장까지 하는 분이 법의 근본 정신을 바로 이해 못하며 애매 모호하게 주장한 것이 나의 은퇴 후 생활이 안정되고 알맞은 자리가 주어지는 것을 잃어버리게 된것이다.
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 명예와 인격적 모독과 경제적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들이 다른 분들에게도 재발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법적 배상문제를 제기하려고 추진했지만 당사자는 이미 중경노회장이 된 처지에서 사과하는 뜻으로 화해시킬 몇 분 동역자들과 함께 많은 위로금을 준비하여 직접 찾아와 위로해주며 이미 사랑하며 믿어 주었던 자로부터 입은 마음의 상처인 때문에온전히 메워 지지 않은 상태다. 이제와서 원하는 바는 동역자들 선후배간의 예의를 지키며 그리고 후배들끼리 서로 협력하며 의리를 지키며, 설교하는 목사로서 자신들이 먼저 실천하는 따뜻한 목회자들이 되기 바란다.
4)은퇴하면서 내가 어느 교회로 나가야 되나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일생동안 강단에서 설교만 하다가 막상 은퇴를 하고 나니 시내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어느 곳이 내가 나가 예배를 드릴곳인가? 생각하니 막연해졌다. 기도하며 생각하는 가운데 평소에 개척교회 목사님들에게 많은 협력이 못되어 염려해 왔기 때문에 몸으로라도 보탬이 되겠다는 마음에서 김성은 목사님이 개척하는 등대교회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김목사님은 오히려 나에게 목사님이 은퇴 후 갑자기 계속 설교 못하면 병이 납니다. 하며 한달에 두번 이상씩 설교를 맡겨 주며 물심 양면에 많은 힘이 되어 주셨다.
내가 일평생 강단에서 설교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은퇴후에 교인들과 같이 앉아서 설교를 듣게 되니 일반 교인들보다 내가 은혜를 제일 못 받는 것 같고 나는 청각 장애가 있기 때문에 온전히 듣지 못하므로 한시간의 예배가 지루하기만 하다. 교회마다 노인(청각 장애)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청각 장애자들을 위한 음햐 시설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내가 교인들과 함께 앉아서 말씀을 듣기만 해보니 듣는 것이 설교하는 것보다 정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가 말씀의 은혜를 못 끼졌을때 교인들이 얼마나 듣기에 힘들었을까? 이해가 된다.
4.은현역 목사님들로부터 특별집회나 헌신예배 강사로 청함을 받을 때가 가장 기쁘고 즐거웠다. 예수님께서는 식사 때가 퇴후에 가장 기쁘고 즐거워 했던일
(1)지나게 됐는데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 하시는 일에 여념이 없을때 제자들이 식사하실 것을 말씀드릴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것이니라(오4:32, 34)" 하신 말씀이 새롭게 생각난다.
목사가 일평생 설교하는 일을 "밥"먹는 일보다 더 열중해오다가 은퇴 후 설교를 못하게 되니 음식의 굶주림보다 더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은퇴전에도 은퇴하신 목사님들에 대하여 어느정도 이해하는 마음에서 외국에 몇 주간씩 다녀올 일이 있었을 때에는 본 교회에 부교역자들이 있었지만 올 때까지 은퇴목사님들에게만 설교를 부탁했었고 헌신예배 강사도 될 수 있는 한 은퇴목사님들을 청했었지마는 내 자신이 은퇴하고 나니 음식의 굶주림보다 더한 것 같은 마음에서 과거 은퇴하신 목사님들을 더욱 이해하며, 감사로 청함 받을때가 가장 기쁘다.
(2)지난해(2002년 7월말) 부터는 경북 성주에서 네 가정이 개척한 강변교회에 청함을 받아 매주일 나가서 설교하고 있다. 처음에 장애자이신 목사님이 시무하시다가 생활유지가 안되어 떠나신후 후임목사님을 모실 때까지 2주간만 수고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가서 설교하게 된 것이 교인들의 간청으로 계속일하는 중인데 처음에는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고속도로를 경유해 가도 50분 정도 걸리며 매월 사례 30만원 정도이며 교인들은 10명 미만되는 연세많은 교인들만 모이는 가운데 설교 하게되닌 내 자신이 힘이나지 않았으나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2.3인이 모이더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중에 내 자신이 심신의 건강도 많이 좋아지는것 같다.
(3)동역자들과 특히 믿음의 자녀된 형제자매들이 방문해 주며 전화로라도 문안해 주었을때 반가웠다. 일평생 사람 숲에서 일하며 살다가 은퇴하니 사람들이 제일 그립다. 기다려지든가 전화라도 없을 때는 괘씸하기도 하다.
(4)총회 은급부에서 매년 베푸는 은퇴목사 위로회와 뜻있는 교회에서 은퇴목사위로회로 초대할 때에 고맙고 기쁘다. 그리웠던 옛 사람들을 함께 만날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애들이 자기 생일을 기다림보다 이제는 그 위로회가 더 기다려 지는 것 같다.
5.보다 더 바라는 마음
은퇴하게 되니 이상하게도 베풀고저 하는 마음보다 바라는 마음이 더해지는 것 가탇. 그래서 나이 많아지면 다시 어린 애같이 된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염치를 무릎쓰고 바라는 마음은!
(1)불가피하게 은급혜택을 받지 못하며 어렵게 생존해 있는 목사님들을 조사하여 최소한의 특별 혜택이라도 해 주었으면 여생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된다.
(2)총회 기관지인 기독신보를 공급해 주었으면 더욱 감사하게 생각된다. 일선 목회에서 물러나니 교계 뉴스 면에 자연적으로 어두어지니 소이감을 당하게 되므로 교단 기관지를 선물로 주게 된다면 은퇴 목사들에게 계속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심이 된다고 생각된다.
(3)노인 의료복지 기관이 설립되기를 갈망한다.
오늘의 현실은 어린이 증가율은 감ㄴ소디가고 노인증가율은 급상승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 복지시설이 시급한 중에 우리기독교가 복음 운동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한번은 내가 살고 있는 대구 반야월 의료 복지기관에 가서 치료를 받고 2층에 무료 급식식당 올라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료고 기도하려 할때 먼저 내가 앉는 의자앞쪽 식탁 위에 글귀가 보여 졌다. "이 식사를 받기까지 많은 분들의 정성된 손길을 거쳐 받게 되는 것이니 부처님께 감사하고 드세요." 라고 하였다. 그때에 나는 우리 교단에서는 복음을 위한 복지시설을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복지 시설들이 대개 불교 것이 아니면 천주교재단이다. 그리고 내가 알기에도 우리 개신교회에 다니다가 천주교나 불교에 다니는 자들이 여럿이 있다. 그들이 가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알아보면 모두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때에 그 복지기관의 혜택을 입고 가게된 것을 알수있다.
노인 의료복지 기관을 설립하는 것과 운영하는 것이 제일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재단법인만 구성하면 정부로 부터 10억원을 지원 받을 수 있고 운영하는 데도 의료비는 65세 이상된 노인에게 생활보호 대상자는 100% 정부 부담하며 그 외에는 5-60%를 정부가 부담하게 된다한다.
나는 불교재단인 복지기관에서 치료를 받으며 식사대접을 받고 부끄러운 마음에서 돌아오며, 우리 교단에서 각 노회와 힘있는 교회들이 이 복지시설을 계속 많이 설립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이일에 힘쓴다면 하나님께서 교회에 크게 부흥운동이 일어 나게 하실줄 믿는다.
6.끝으로 은퇴 후에 새롭게 깨달은 말씀
깨닫게 된 성경은 창세기 17장 1절과 데모데후서 4장 6-8절 말씀이다.
(1)창17:1절은 아브라함이 99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셨다.
*하나님은 왜 99세된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셨을까? 이에 대하여 깨닫게 된것은!
첫째: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어도 아직 완전해지지는 못했으며 그러나 완전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며,
둘째: 장차 가게 될 천국에는 완전한 곳이며 완전자만이 완전히 누릴수 있는 세계이므로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하셨다.
세째: 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으로 완전하게 해주시지 않고 너는(네가) 내 앞에서 행하며 완전하라 하신것은 하나님의 전능과 사라이 우리를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나게 하신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입어 중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영원한 천국에 가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단독 주권에서만 이루워 주시지만(요5:24 엡2:89), 완전한 천국에 온전히 누릴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의 능력대로 누리게 하신느 것이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학생에게 공부를 시키며 시험문제를 주어서 풀게하는것은 학생의 실력을 키워주기 위함과 같다. 천국에는 무한하고 완전한 세계이지마는 다만 실력대로만 누리는 세계다.
(2)elagn 4:6-8의 말씀은 바울이 노년에 자기의 회고담을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인데 이 말씀에서,
첫째:그는 "나의 달려갈 길은 마치고"라고 했다. 이 말씀은 그가 자기 맡은 사명을 위해 쉬지않고 힘써 달리는 것 같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도들보다 뒤늦게 출발했지만 결국은 제일 선두로 달려간 사도가 되었다.(마19:30)
둘째:"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했으니 지상교회는 전투적인 교회이며 바울의 말하는 싸움에는 선과 악의 대결의 싸움을 의미하는데 그는 일평생 불의의 편 싸우지 않고 선한 편에서만 싸운것을 의미한다.
셋째: "믿음을 지켰다." 하였는데 이는 선한 싸움을 ㅁ싸웠으되 자기 믿음을 잃어버리지 아니했다 함이다. 그는 고전 9:26, 27에서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 하기를 방향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움하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라"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진리와 부수를 위해 앞장서서 싸우다가 결국은 자기 믿음 다 팔아먹고 비참하게 버림받는 자들도 많았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일을 못해서 우리를 불러 일하게 하심이 아니라 일을 통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사명과 명예를 싸워 주신것이다.
넷째: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였다. 이는 바울이 이 목적의식이 분명했던 것을 말해준다. 그가 주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세상에서 자랑할만 것들이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믿고 예수님을 알게된 후부터는 그 모든것을 영원한 것을 취하는 데 해가 되는 때문에 배설물로 여기며 살아갔다. (빌3:4-9)
그러나 오늘날 소위 주님을 따르며 복음 사역을 한다는 자들 중에 오히려 주님과 사도바울이 배설물로 여기 돈과 재물 명예 등 세상 것들을 취하기 위해 영원히 가져야 할 신앙의 양심과 의리도 헌신짝같이 저버리는 자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세상 것을 취하기 위해서의 것을 스스로 포기한 자들이니 그날(심판날)에 의로우신 주님 앞에 무엇을 받을까?
결론:인새은 가도 그 역사와 행위의 결과는 영원할 것이니 짧은 여생을 살아가는 우리 은퇴 목사들은 다함께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영원히 후회함이 없는 자기완성을 이루워가는 남은 생애가 되기를 축원한다.
첫댓글 목사님 충고 감사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목회자 누구나 꿈꾸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후배들에게 많은 충고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지금부터 세로운 목회의 길로 달려가십시요 주님이 항상 함께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