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텃밭 담장에 핀 부용>
아침부터 아내가 강냉이와 생선회가 먹고 싶다고 투정이다.
간식을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지 못하는 형편이라 때로는 딱하다. 나는 커피, 빵, 사탕, 초콜릿 등 눈에 띠는 대로, 손닿는 대로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하니 마음이 아프다. 땅콩, 아몬드, 호두 등 견과류를 사다놓고 먹지만 요사이 며칠 그것도 동이 났는지... 야채, 과일을 될 수 있는 한 무농약, 저농약, 유기농으로 먹어야 하고, 양식, 가공되지 않은 자연산 음식류를 주로 먹어야 하니 곤란할 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올봄에 남의 밭에다 강냉이를 하나 가득 심었다.
며칠 전부터 길가에 강냉이를 삶아 파는 노점상들이 눈에 띠면서 그 사이 참고 지나왔던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나 보다. 집 앞 남의 밭에 심겨진 아직 채 영글지도 않은 수염이 뻣뻣한 강냉이를 보고 빨리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아침을 먹고 옷을 아래위로 더위를 상관하지 않고 몇 겹을 껴입고 완전무장을 했다. 모기에게 물리는 것을 막고 짧은 시간에 땀을 많이 흘리기 위해서였다.
손수레를 밀고 가서 강냉이 밭 입구에 섰다. 그리고는 키가 큰 강냉이의 허리춤에 한두 개씩 달려 있는 강냉이의 수염과 껍질을 살폈다. 우선 덩치가 굵고, 수염이 마르고, 껍질이 누렇게 바래어져 가는 것을 골라 몇 개를 꺾어 껍질을 벗겼다. 제법 단단해 보이는 알맹이들이 수줍은 듯 가지런한 잇빨을 드러내었다. 그래, 이 정도면 먹을 수 있겠다. 이 고랑 저 고랑을 누비며 수염이 마르고 통통한 강냉이를 손수레에 반쯤 꺾어 밀고 집으로 왔다. 온몸이 땀에 젖었고 이마에서도 연신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둘이서 대문 앞에 자리를 잡고 퍼질러 앉아 강냉이의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마지막 강냉이의 껍질을 까서 가마솥에 넣으니 가마솥 하나 가득이다. 그저께 깎아 햇빛에 말려둔 잔디를 끌어당겨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밭에서 뽑아낸 풀들을 올렸다. 순간 파란 연기가 모깃불처럼 퍼져 나갔다. 건초들을 태워 주변을 말끔히 한 다음 마른 대나무들을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딱-, 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궁이는 금새 화염에 휩싸였고 얼마지 않아 가마솥도 하얀 숨을 몰아쉬며 익어가는 강냉이 냄새를 뿜어댔다.
아내가 전화기를 들고 나왔다. 멸치잡이 정치망 그물을 하는 초딩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여보세요!”
“야! 친구야! 빨리 우리 집으로 와! 멸치 그물에 제법 큰 삼치란 놈이 들었어! 삼치만 그물에 들면 친구 네 생각이 나거든...”
“그래, 알았어, 곧 가마!”

나는 후다닥 샤워를 하고는 차를 몰고 20여분을 달려 갯내음이 풍기는 동암마을 친구네 집으로 갔다. 친구 내외는 어둠 속에서 멸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물 곁에 누운 삼치의 꼬리를 잡고 들어 올리니 가슴팍까지 올라왔다. 제법 큰 놈이었다. 친구 내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곧장 집으로 왔다. 더운 날씨에 시간을 끌면 생선의 선도가 떨어지고 맛이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엔 주방으로 가서 삼치를 곧장 해체했다. 양 옆쪽 살과 뼈와 내장을 나누고, 살은 냉동실에, 뼈와 내장은 장만해서 매운탕 그릇에 넣고 아내와 함께 저녁 준비를 했다.

강냉이 한 그릇, 삼치 회 한 접시, 매운탕 한 냄비, 각종 양념과 밑반찬을 차려 놓고 이웃에 사는 퇴직한 선배교사를 초대, 소주 한 잔 붓고 이어 맥주 가득 채운 잔을 들고 잔을 부딪쳐 본다.
고딩시절 공부할 때 배운 시 한 구절이 머리 속에 떠올라 온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망향, 문장사, 1939>

<my house>
아내는 말없이 강냉이를 뱅글뱅글 돌려가며 벌써 여러 자루의 알갱이를 즐기고 있다.
아니, 오늘 밤 몇 자루나 남을까?
첫댓글 강냉이와 참치라 정말 운치있군요.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느껴집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여기는 폭염, 폭우가 계속이오. 그러나 염려 덕분에 잘 있소. 멀리 있는 친구네 가정도 내내 평안하시길...
강냉이야 무농약 농사가 가능하지요. 참치에 막걸리도 좋구요.
가지랑 오이 농사도 재미가 있으리다.
무이파 영향인지 비를 머금은 바람이 구름을 몰고오네요.
오, 연암! 오랜만이오. 태풍 무이파 덕분인가? 건강 꼭꼭꼭 챙기시기오. 운동 적당하게 하시고. 연암 화이팅!!!
눈으로 먹으도 입으로 먹는 만큼이나 진배 없다. 삼치인지 참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지런하게 마련된 회를 보니
침이 꼴깍....어제 저녁에는 바람이 얼마나 불었는 지 아파트 앞 마당이 쓰레기 천지다. 어제 적녁 바람에 옥수수밭이
안전한지 궁금하다. 사과농사 짖는 거창친구들 농작물은 이상이 없는 지 ?
지난밤 10시 부터 4시간동안 시우량 25mm 씩 모두 110mm가 퍼 붛었는데 사과밭 내에 도랑물이 넘어 사과밭을 공격했다.
오늘 오전 흙을 걷어 내느라 땀좀 흘렸네. 사과피해 없는 것은 큰 다행이지만...
안곡 맘처럼 걱정했수다. 정말 다행이오. 천재도 인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막을 수 있는 것을 잘 보여준 셈이오. 연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