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도야 우지 마라
최병은
장대비가 내리고 있는 2003년7월11일 아침 6시.
이비는 어제 낮부터 잠시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다.
어제 저녁에는 아파트가 무너져 내릴 것 만 같은 무서운 천둥번개가 1시간이상 계속되었다.
어제 하루 중부지방에 내린 강우량만도 300mm가 넘었다.
오늘은 ‘우리의 거시기들’이 홍도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홍도 여행을 계획한 것은 지난 3월 모임에서 결정되었다.
장마철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이때가 본격적인 학생들 여름 휴가철을 피할 수 있는 시기라고 박창식 회원이 주장해서 그렇게 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장맛비가 집중적으로 많이 올 줄은 몰랐다.
‘그냥 조금 오고 말겠지’ 하고 모두가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거시기들은 기(氣)가 쎈 친구들의 모임이라서 한번 결정한 여행계획을 바꾸기는 힘들 것 같아 남구 회장이나 총무인 나는 여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어제 밤에 경연욱 박창식 두 동문이 뻔질나게 전화로 여행취소를 강요 했지만 묵살해 버렸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다 시피 했다.
아침7시에 용산 역에서 거시기 회원 7쌍(경연욱부부 경융호부부 남구부부 박제건부부 박창식부부 이은수부부 최병은부부) 14명이 모였다.
여행사에서도 직원이 나왔다. 그 직원은 “여행을 예정대로 무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고 어디론가 살아져 버렸다.
비가 계속 오고 있고, 목포행 새마을 열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열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일기예보를 계속 확인했지만 비가 그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호남지방에는 계속 호우경보가 발령중이란다.
앞으로도 200mm 이상 비가 더 올 예정이라는 불길한 소식만 전한다.
2시에 홍도 행 여객선을 타는 것으로 예정 되어 있으나 이처럼 비가 계속 오면 배가 뜨지 못할 것이 뻔하다.
열차가 대전을 지나고 시간은 10시가 넘어도 비는 좀처럼 약해질 줄 모른다.
서해 먼 바다에는 강풍까지 동반하여 5-6m의 파도가 예상된다는 기상대 예보다.
우리의 거시기들은 그래도 한가롭다. 눈을 감고 자는 척 하기도 하고 차창을 내다보며 비 오는 농촌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12시30분 우리일행을 태운 새마을 열차는 빗속을 5시간이나 달려 목포 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여행사 직원의 안내를 받아 역에서 가까운 한 낙지전문식당으로 들어갔다.
비는 계속오고 여객선은 발이 묶여 있는 상태이니 오늘 홍도여행이 틀린 것은 기정사실이다.
여행사 직원을 시켜 오늘저녁 묵을 여관을 예약했다. 점심식사로 목포의 명물 낙지 음식이 나 실컷 먹자고 남구 회장이 주장한다.
세발낙지 낙지볶음 연포탕 등 낙지로만 만든 음식을 잔뜩 시켜 먹었다. 여행사직원의 말에 의하면 오늘은 호남지방과 서해해상에 호우경보가 계속 발효 중이고 강풍까지 동반하고 있어 서해지방 모든 여객선 출항이 금지된 상태이며 내일도 장담할 수 없다는 뻔한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는 남아 있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궁리했다.
결론은 목포의 자랑 유달산과 신안앞바다에서 끌어올린 고려시대 해저유물 전시관 그리고 해양박물관과 남농 미술관을 차례로 구경하자는 것.
우리는 2천 원짜리 비닐 우의를 한 개씩사서 뒤집어쓰고 유달산 가는 방향을 몰라 비 오는 거리를 헤매다가 행인에게 물어 겨우 유달산 행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기사가 유달산 앞이라고 해서 내리니 타고 온 거리가 불과 3정거장.
청승맞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리의 거시기들이 유달산 돌계단을 오르니 중턱쯤에 이난영의 노래비가 있어 함께 목포의 눈물을 불러본다.
산 정상에는 주인 잃은 정자가 홀로 비를 맞고 있다. 목포시내 쪽을 바라보나 안개가 자욱하여 시가지는커녕 방향조차 찾기 어렵다.
“그래도 예 까지 왔는데 기념촬영은 해야지” 하면서 남구 회장이 단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다시 젖은 돌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자니 오르기보다 힘들다.
다음은 해저유물 전시관.
70-80년대 신안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물은 주로 고려청자가 대부분. 그 가치는 알 수 없으나 수량은 꽤 많다. 당시에 유물을 실어 나르다 바다 속에 가라 앉아 수백 년을 잠자다 깨어난 목선, 뼈대만 엉성하다.
다음은 해양박물관.
조개껍질 하나가 내 키보다 더 큰 것도 있다.
세계각처에서 수집한 조개껍질은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다양하다.
산호의 종류도 많다. 내가 빨간 산호를 신기한 듯 구경하니까 20대의 젊은 말더듬 안내원이 가까이 와서 무어라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삼분의 이는 못 알아들었다.
마지막 남농 미술관.
동양화의 대가들이 한 가문에서 4명씩이나 배출되었고 지금도 그대를 이어가고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우리의 거시기들은 문화생활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4곳의 관광지를 다 돌아보는데 불과 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남은 시간 일단 숙소로 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피곤해서인지 다들 저녁도 안 먹고 계속 휴식에 들어가 버린다.
나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몇몇 친구들은 노래방에 가서 노래자랑을 했단다.
* *
다음날 아침 8시.
비는 많이 잦아들었다.
바람도 거의 없다.
하늘에는 아직도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아침 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여행사직원이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하면서 식당 문을 들어선다.
“홍도 행 여객선 10시에 출항이랍니다.”
우리는 일제히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거시기들 신이 나서 서두른다.
나는 배 멀미 약을 미리 사먹고 키미테도 붙였다.
우리 일행 중 몇몇은 배 멀미에 자신 있는 지 전혀 준비를 안 한다.
배가 흑산도를 거쳐 가는데 5시간이상 걸린단다.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소리와 함께 배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큰 배가 전후좌우로 많이 흔들린다.
객석 여기저기서 토 하는 소리가 난다.
우리 일행 중에도 몇몇은 얼굴이 하얘지고 식은땀을 흘린다.
2시간정도 지나 배가 흑산도에 도착했다.
흑산도에서 배를 갈아타야한다고 하선하란다.
홍도 행 배는 오후3시경에 뜬단다.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소형버스를 타고 흑산도 일주를 했다.
우리일행과 함께 열 살 쯤 되는 예쁘장한 미영이란 소녀하나가 타고 있었다.
미영이는 몸이 아파 학교도 안가고 그냥 집에서 쉰다고 한다.
심심해서 뭍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이렇게 딸아 다닌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열심히 흑산도 자랑을 하면서 안내를 한다.
운전기사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앞에서 차를 세워준다.
사진을 찍으란다. 우리는 미영이와 함께 이미자의 노래비 앞에서 사진을 찌었다.
다시 부두로 돌아 와서 건어물을 파는 공판장 옆 식당에 들어갔다.
흑산도에는 홍어가 많이 있다고 해서 식당주인에게 홍어회를 주문하니 홍어가 없단다.
흑산도에는 홍어가 지천이란 말은 틀린 말 같다.
나는 이은수박사와 함께 어선이 있는 부두에 갔다.
작은 어선 하나가 막 도착한다.
이박사가 고기 있으면 팔라고 하니까 월척 쯤 되는 농어 두 마리를 2만원에 사란다.
우리는 만 오천 주고 사서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매운탕을 끓여 달라고 부탁했다.
식당아주머니에게 다시 홍어회를 부탁하니 옆집에서 깍두기 같이 거칠게 썰은 홍어 두 접시를 들고 온다.
아까 우리와 함께 미니버스를 타고 갔던 미영이가 식당주인을 돕는다.
알고 보니 식당 집 딸이란다.
홍어 두 접시라야 열네 명이 제대로 맛도 보지 못했다.
입맛만 버렸다.
매운탕 맛은 기가 차다.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고 나니 홍도 행 여개선이 도착했다.
우리를 실은 여객선은 나르는 듯 홍도로 질주 한다.
오전보다 파도가 덜하다.
배가 흑산도를 출발한지 2시간정도 지나자 아름답기 그지없는 붉은 바위섬 홍도가 보인다.
바위의 생김새가 가지가지다.
귀한 보물은 언제나 감추어져 있는 법 .
그래서 홍도가 서해 그것도 멀리 숨어 있는 걸까?
크기가 여의도 삼분의 일 정도 될라나.
섬에 내리자마자 짐은 주변 식당에 놓아두고 작은 관광 배에 다시 오르란다.
작은 관광 배가 천천히 섬 주위를 돈다.
보이는 것 마다 감탄을 금 할 수 없다.
수 억년 비바람과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진 붉은 바위. 그 모양이 무엇으로 비교해서 말 할 수가 없다. 모양은 수만 가지나 색깔은 오직 하나 붉은 색뿐이다. 짓 푸른 쪽빛 바다와 아주 잘 어울린다.
갑판위에서 해설자가 열심히 설명한다.
‘해설자가 미사여구로 설명을 잘 한다 해도 어찌 저 신기한 모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거시기들은 배가 섬 주위를 도는 1시간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서투른 솜씨로는 흠이 될 것 같아 사진 찍기도 아깝다.
다음날 아침 햇살에 비쳐지는 붉은 섬이 어제보다 더 찬란하다. 예서 영원히 살고 싶어진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목포행 여객선에 실어야했다.
‘언젠가 다시 오리라’ 다짐을 하고.(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