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571호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 : 1기
지정일 : 1973.05.04
소재지 : 전남 여수시 고소동 620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여수시
충무공 이순신의 공훈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첩비이다.
전라남도 해남의 명량대첩비와 함께 일제의 박해로 1942년 서울로 운반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광복 이후 해남지역 유지들의 수소문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뜰 땅속에서 찾아내어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비는 한 돌로 이루어진 바닥돌 위에 거북받침돌을 두고, 비몸을 세운 후 구름과 용, 연꽃 등이 조각된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의 글은 당시 이름을 날렸던 이항복이 짓고, 글씨는 명필 김현성이 썼으며, 비몸 윗면의 ‘통제이공수군대첩비(統制李公水軍大捷碑)’라는 비 명칭은 김상용의 글씨이다.
조선 광해군 7년(1615)에 세워진 비로, 비의 왼편에 숙종 24년(1698) 남구만이 지은 비의 건립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기록에는 이순신의 막료로 활약하였던 수군통제사 유형과 좌수영지역의 유지 및 후손들의 노력으로 1620년에서야 건립하게 된 경위를 비롯하여, 이 때 타루비(보물 제1288호)도 대첩비 옆으로 옮겨 세우고, 비각을 세워 보존하였다는 비건립 전후의 기록이 밝혀져 있다.
20. 여수고소대 - 좌수영대첩비
이곳 고소대는 이순신 장군이 탈영한 황옥천의 목을베 곳이기도 합니다.

진남관

임진년 5월 초 3일
가랑비가 아침 내내 왔다. 새벽에 경상 우수사의 답장이 왔다. ...........
.. 여도 수군 황옥천이 적의 소식을 득고는 집으로 도망갔으므로 이를 잡아다가 목을 베어 내다 걸었다.

1845년에 절도사 이연희가 비상시에 대비하여 묻어둔 소금과 숯이 채토공사때 많이 발굴 되었다고 합니다.
1947년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비각 안에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 타루비(墮淚碑), 동령소갈비(東嶺小碣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