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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시의 역사와 유래 그리고 명소 ☆
1. 당진의 유래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이었으며 삼국시대 백제 때에는 면천에 혜군이 있어서 당진의 넓은 범위를 관장하였으며 당진읍을 중심으로 한 벌수지현은 당진과 고대면 쪽으로 그리고 정미면은 벌수지현이 아닌 여촌현에 속했으며 신평을 중심으로 한 사평현은 송악 한진 방면으로부터 넓은 해안에 산재한 영역을 관할하였다.
통일신라 제 35대 경덕왕 때는 혜성군의 영현인 당진현이었다. 고려시대 초기는 지방제도가 설치되지 않고 지방호족이 다스렸으며 성종 2년(983)에 전국을 12주로 나눌 때는 공주에 속했다. 고려 8대 현종 9년(1018)에는 운주(지금의 홍성)에 속한 당진현 이었으며, 고려 제16대 예종 원년(1105)에는 감무를 두었다. 고려 말엽 공민왕 7년(1358)에는 홍주목에 속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고려때와 같이 홍주목에 속했다가 태종 13년 (1413) 당진에 다시 현감을 두었으므로 충청도 당진현이었다. 조선시대 말엽 고종32년(1895)에는 당진군이 되어 군내, 동면, 남면, 상대, 하대, 고산, 외맹, 내맹의 8개면을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때 면천군의 22개면과 해미군 일도면 대운산의 2개리와 염솔면 삼곡리의 일부와 예산군 신종면의 옥금 흑석의 2개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당진군으로 하고 이배, 고대, 석문, 마암, 송산, 순성, 범천, 합덕, 송악, 신평의 10개면 123개리로 개편 관할하는 군이 되었다.
그 후 1917년 10월에 마암면을 면천면으로 1928년엔 이배면을 당진면으로 고치고 또한 1942년10월 1일에 범천면을 우강면으로 고쳤으며, 1957년11월 6일에 법률 제456호에 의하여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 18개리 전체를 편입 하여 12개면을 관할하는 군이 되었다. 그리고 1963년 1월 1일에 법률 제1177호에 의하여 당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73년 7월1일에 다시 합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2010년 송악면이 승악읍으로 승격되었으며 또한 정미면 여미리가 서산시 운산면에 편입되어 3읍 9면 149개리로 되었다가,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2읍 9면 3동(138개 법정리, 11개 법정동)이 되었다.
당진시는 충청남도 북부지방에 자리하여 동쪽으로는 아산시와 경기도 평택시, 서쪽으로는 서산시와, 남쪽으로는 예산군과 서산시, 북쪽으로는 경기도 화성군과 접하고 있으며 대체로 산악과 구릉이 연결된 넓은 평야지대로써 농업과 철강산업이 조화롭게 발전되어 가고 있다.
본 시는 충청남도 북부지방에 자리하여 동쪽으로는 아산시와 경기도 평택시, 서쪽으로는 서산시와, 남쪽으로는 예산군과 서산시, 북쪽으로는 경기도 화성군과 접하고 있으며 대체로 산악과 구릉이 연결된 넓은 평야지대로써 농업용군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2. 당진시의 위치
1).지리적 위치
충청남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시로 북으로는 송산, 송악, 석문면 등이 서해와 아산만을 경계로 인천시 대부면과 평택시 포승면, 화성시 우정면에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신평면, 우강면 그리고 합덕읍이 삽교천을 경계로 아산시 인주면 선장읍에 접해있고 남쪽으로 합덕읍은 예산군 신암면과 접하고 면천은 예산군의 고덕, 봉산면과 접하며 정미면은 서산시 음암면, 운산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당진시의 2/3가 바다와 접하고 있는 지리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2).수리적 위치
당진은 4극점으로 볼 때 직사각형 형태로 남북보다는 동서가 긴 모양으로 북위 36°45′ ∼ 37°04′과 동경 126°25′∼ 126°51′사이에 위치한다.
3).관계적 위치
당진시 읍내동에서 서울까지 102㎞, 수원 90㎞, 평택 50㎞, 천안 66㎞, 청주 120㎞, 대전 136㎞, 공주 93㎞, 홍성 42㎞, 서산25㎞, 강릉 329㎞, 포항 386㎞, 부산 430㎞, 목포 326㎞이다.
4).기후적 위치
한반도의 기후형인 온대계절풍 및 대륙성 기후권에 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진지역은 온순 기후에 해당되어 4계절이 뚜렷한 기후형으로 겨울철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여름에는 남동계절풍의 영향을 받는 기후적 위치에 속하고 있다.
3. 당진시의 명소
1). 왜목마을
우리나라는 아주 오랜 삼국시대 이전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하였다고 하며, 조선해운의 왕래가 빈번하던 아산만의 입구에 위치한 왜목마을 앞바다는 많은 배들이 왕래하였다고 한다.
배를 타고 왜목마을 쪽을 바라보면 얕으막한 산과 산사이가 움푹 들어가 가늘게 이어진 땅 모양이 마치 누워있는 사람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옛 문헌에는 "와목(臥木)" 이라 기록되어 있다.
臥(엎드릴 와) = 사람이 누워있다는 뜻의 글자
木(나무 목) = 이두문자의 영향으로 項(목덜미 항)자를 쓰지 않고 음만따서 글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목이라 쓰여졌다.
따라서 누워있는 사람의 목이라는 의미로 "와목"이다. 우리지방 방언발음이 음성모음과 중성모음이 많이 쓰이는 관계로 "와"에 중성모음 "이"가 붙여져 와목(臥木)"에서 "왜목"으로 변천.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위치한 왜목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한 어촌이었는데 서해안에서 바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곳이다.
이곳에서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당진시가 서해에서 반도처럼 북쪽으로 불쑥 솟아 나와 있는데 왜목마을이 이 솟아나온 부분의 해안이 동쪽으로 향해 툭 튀어 나와 있어 동해안과 같은 방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동해안에서와 같은 일출을 볼 수 있다.
왜목마을의 일출은 동해에서 해가 뜬 뒤 5분 만에 일어나는 일출이다.
좀 더 웅장한 일출을 보려면 마을 뒷산 격인 석문산(79.4m)에 올라가면 된다.
작은 동산처럼 생긴 석문산은 일출은 물론 일몰 포인트이기도 하다.
일몰은 이곳에 올라가야만 감상이 가능하다.
동해의 일출은 장엄하고 화려하다면 서해 왜목마을 일출은 한순간 바다가 짙은 황토 빛으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물기둥을 만들며 작으면서도 예뻐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일출과 함께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왜목마을 석문산(해발79m)의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일출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충남의 장고항 용무치~경기도 화성군 국화도를 사이에 두고 시기별로 위치가 바뀌면서 일출과 월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몰은 충남 당진시 석문면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의 비경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왜목마을의 일출은 동해의 일출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동해안은 장엄, 화려한 반면 서해의 일출은 소박하면서 서정적인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12월 31일부터 1월 1일에는 해맞이행사를 개최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평선위로 뜨고 지는 해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곳 “해가 뜨고 지는 마을” 왜목마을에서는 서해바다 위로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서해대교를 지나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이곳에서 한해를 보내기 전에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아도 좋을 것 같다.
2). 서해대교
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복운리 ∼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내기리
* 교량형식 교량형식은 주탑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사장교(斜張橋)와 미리 만들어진 콘크리트 상판을 차례로 얹어있는 PSM교(연속 콘크리트 상자형교), FCM교(장경간 콘크리트상자형 다리의 총길이 중 사장교는 990m이고, PSM교 5,820m, FCM교 500m이다.
3). 난지도 해수욕장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1리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에 위치한 난지도 해수욕장은 "섬"속의 해수욕장으로 서해에서 보기 드물게 깨끗한 물과 곱고 하얀 모래 등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곳으로 서해안 최고의 가족단위 피서지다.
특히 "섬"안에 해수욕장이 있어 여객선을 이용해 해수욕장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오가면서 주변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섬과 절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며, 갯바위 낚시도 가능하여 일석 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전천후 자연 휴양지다.
펜션과 원룸, 방갈로 등의 시설이 많이 있어 숙박이 편리하다.
초락도리 일대 15만9178㎡(4만8151평)에 만들어질 관광휴양단지 충남도로부터 결정
※ 조망가능한 유.무인도 : 대조도, 소조도, 비경도, 우무고, 소난지도, 대난지도 (도비도와 대난지도간의 교량가설 추진중)
4). 삽교호방조제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와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를 3,360m의 방조제로 막아 만든 인공호수로 8,400만톤의 농·공업용수를 저장할 수 있다. 삽교호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삽교천 방조제의 홍수 조절능력과 방조제 도로의 교통이 탁월하여 관광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길이 3,360m. 최대너비 168m. 높이 12∼18m.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인공담수호는 충남 당진 ·아산 ·예산 ·홍성의 4개 시군 22개면 지역을 전천후 농토(2만 4,700ha)로 개발하기 위하여 삽교천지구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1975∼1983)의 중추적 사업으로 계획된 것이다. 이 지역은 넓은 평야와 간석지 등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한수해를 자주 겪어왔으며 또 하구에서 흘러드는 바닷물로 유역 일대가 염해와 해식에 시달려왔다. 이와 같은 재해의 악순환을 근본적으로 해결 ·개선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저수량 8,400만t의 삽교호가 건설된 것인데, 1976년 12월 착공, 1978년 3월 최종 물막이작업에 성공하고 1979년 10월 완공하였다. 이 담수호의 조성으로 4개 시군 농토의 관개용수가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조제에 부설된 배수갑문(6련 12문)의 용수조절 능력(초당 5,300t)도 기대할 만하며, 그 밖에 공업 ·생활용수의 하루 4만 8000t 공급도 가능하게 되었고, 방조제 도로의 이용으로 서울∼당진 간 육로 거리가 40km나 단축되는 간접 효과도 거두게 되었다.
5). 솔뫼성지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산' 이라는 뜻으로, 당진시 우강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났는데, 그의 가문은 증조부 김진후, 조부 김한현, 부친 김제준, 그리고 김대건 신부까지 4대가 모두 순교한 집안이다.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산' 이라는 뜻으로, 당진시 우강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는 면천군수로 있을 때, 내포의 사도 이존창으로부터 전교를 받은 후 벼슬도 버린 채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로 인하여 솔뫼 마을은 교우촌이 되었고, 그는 홍주, 전주, 공주 등의 감옥에 갇혔다가 1814년 해미에서 76세로 일생을 마감하였다.
1821년 김제준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김대건은 7세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로 이주를 했다.
그리고 1836년 16세 때 신학생으로 뽑혀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1845년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그 해 10월 귀국하여 '은이' 마을에 공소를 차려 용인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불과 1년이 지나기도 전 1846년 6월에 체포되었고, 그 해 9월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솔뫼 성지에는 순교 100주년을 맞은 1946년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어 기념비와 동상 등이 건립되었다. 1983년에는 솔뫼피정의 집이 완공되어 순례자들에게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6). 도비도 농어촌 휴양단지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
도비도 농어촌 휴양단지는 원래 섬이었으나, 대호방조제를 축조하면서 육지로 변한 곳으로 도시민과 농어민의 교류센터로 환경 농업의 산 교육장이다.
주변 갯벌에서는 조개, 게, 고동, 낚지잡이를 위해 주말이면 갯벌에 온통 사람들로 가득차며 겨울철에는 주변 농경지가 환경농업 시범지구로 지정되어 먹이가 풍부해 많은 철새들이 몰려와 장관을 이룬다.
단지내에는 숙박시설(95개실)과 세미나실, 전망대, 유람선 선착장, 암반해수탕, 조각공원 등의 편의시설이 있으며 주변에는 섬들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어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7). 삽교호 함상공원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
ㆍ 삽교호함상공원의 거대한 군함(상륙함, 구축함)속에는 바다의 신사해군과 귀신잡는 해병대의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ㆍ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바다에 대한 동경과 해군ㆍ해병대 체험을 통한 친밀감을 느끼게 합니다.
ㆍ 함포조정, 수륙양용장갑차 및 항공기 탑승, 해군ㆍ해병대 복장 착용후 모형 총기 들고 사진촬영 등
ㆍ 어른들에게는 평소 일반인의 신분으로는 접근하기도 힘들고 승선은 더구나 어려웠던 군함에 들어가 장비, 무기, 침실 등을 직접보고 지나간 추억을(군대생활) 회상하면서 바다에 대한 낭만과 향수에 젖을 수 있습니다.
8). 아미산
소재지 : 충남 당진시 면천면 죽동리
당진시내 최고봉(349.5m)을 거느린 산으로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답게 보인다면 아미산이라 불리며 아미정 정상에 오르면 멀리 서해바다와 합덕 · 우강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등산로 입구의 약수터를 비롯하여 각종 체육시설, 쉼터, 산림욕장 등이 잘 조성되어 있어 가족과 함게 산행을 즐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산이다. 특히 등산로 입구에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 쌓인 아미원(청소년 수련장)의 운동장에는 주말이면 각종 단체들의 체육활동을 겸한 야유회 장소로 인기가 높다.
ㅁ 등산코스
아미산 입구인 아미원에서 등산로를 따라 1봉에서 3봉까지 2,427m를 일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불과 2시간이면 족하다. 정상에 바로 오르는 최단 코스는 1시간이면 가능하다.
9). 대호방조제(철새도래지)
소 재 지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 ~ 서산시 대산읍 삼길포리
1984년 11월 16일 준공된 방조제로 길이는 7.8km이다. 주변 바다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의 풍경이 아름다워 해안 드라이브코스로도 좋고 바다낚시터로도 인기가 높다. 제방 중심에 위치한 도비도에는 농산물직판장, 숙박시설, 체육 휴양시설을 갖춘 농어촌휴양지가 조성돼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방조제 안쪽에는 갈대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겨울철에는 고니, 가창오리, 청둥오리 등 수많은 철새가 날아든다.
10). 영탑사
소재지 :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상왕산(210m) 동쪽 기슭에 있으며 신라 말엽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후 고려 충렬왕 때 보조국사가 중건했다고 전한다. 본전에는 보물 제 409호인 비로자나금동삼존불상이 있고 절 주위에는 거대한 괴목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7층석탑은 자연 암석 위에 쌓아 올린 독특한 것이다.
영탑사 범종에는 1760년 2월 가야사 법당 금종을 백근의 금을 녹여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덕산ㆍ홍주ㆍ면천의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이 있다. 가야사는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 이구 (1788-1836)의 묘를 쓰기 위해 불태운 절이다. 어떻게 해서 그 절의 금종이 이 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 주요문화재
보물 제 409호 비로자나 금동 삼존 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석조 약사유리광여래불(마애불),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 7층석탑 (고려 중엽),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9호 범종 (조선시대)
11). 차브민 관광농원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 145
21세기 마지막 남은 비포장된 산길을 따라 차에서 내리면 100만평이 넘는 전선줄도 전봇대도 없는 넓은 평야와 하늘이 한꺼번에 가슴에 와닿는다. 거의가 노지에 심겨진 허브향기를 하나 둘씩 느끼며 차브민 내부에 들어온 순간 또 한번의 감동을 맛 볼 수 있다. 기차 전체를 목재로 인테리어 하여 아늑한 분위기와, 북쪽 창 너머로는 바다와 호수가 지평선처럼 펼쳐져 있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허브동산은 3,306m²(1,000평)중 1,653m²(500여평)만이 허브가 자라고 있는 공간이다. 보기에는 작고 소박해 보일 수 있지만 4년전, 5년 계획으로 몇 종류의 포토를 사서 계속 늘리고 또 종자를 사서 파종하면서 가꿔온 땀과 정성의 결실이기에 더 가치가 있다. 그래서 허브를 가꾸는 기쁨과 보람을 차브민을 찾아주는 모두와 나누면서 또 늘려가고자 한다. 차브민 이란 이름은 조카 지혜가 6학년 이었을때 기차에서 차, 허브에서 브, 민박에서 민을 떠서 만든 이쁜 어린아이의 마음의 이름이기도 하다.
12). 필경사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
지정일 : 1997.12.23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송악면 부곡리 251-12
시대 : 일제강점기
일제시대 문인인 심훈이 1934년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다.
심훈은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그의 작품은 민족주의와 저항의식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1935년 농촌계몽소설로 유명한 대표작인 ‘상록수’를 썼다.
필경사는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장조카인 고 심재영 옹이 다시 사서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기증하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13). 당진향교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40호
지정일 : 1997.12.23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읍내동 215-1
시대 :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당진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이나 태종 7년(1407)에 지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공간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삼문, 제기고 등이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14). 면천읍성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
지정일 : 1993.12.31
소재지 : 충남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821-6외 9필
시대 : 조선시대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소재지의 거의 전역을 둘러싸고 있는 읍성으로 조선 초기에 쌓은 것이다.
성의 둘레는 약 1,200m이고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어 축조하였는데, 저수지 공사 등의 사업에서 이곳의 돌을 빼다 써서 현재는 유실된 부분이 많다. 서쪽 성벽과 남쪽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서벽의 경우 높이가 3.6m정도이다. 서벽의 안쪽 부분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비탈지게 쌓았으며 바닥의 폭이 6.8m, 윗면의 너비가 2.4m이다.
성문은 4곳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동문만 남아있고 폭은 8.8m이다. 성벽을 쌓는데 사용되었던 돌에 ‘기미년’이라고 새긴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성을 세종 21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이 해가 기미년으로 돌에 새긴 기미년은 성을 쌓은 연대를 새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면천읍성은 조선 초기에 쌓은 전형적인 평지성으로 조선시대의 관방 시설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5). 기지시줄다리기
종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지정일 : 1982.06.01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송악면 기지시리
예능보유자 :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
줄다리기는 길쌈이라고도 하며 농경의식의 하나인 일종의 편싸움 놀이이다. 마을을 육지와 바닷가쪽 두 편으로 나누는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바닷가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줄다리기는 윤년 음력 3월초에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 다음 행해졌다. 전설에 의하면 당진의 기지시리는 풍수적으로 옥녀가 베짜는 형국이어서 베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시늉을 한데서 줄다리기가 생겼다고도 하고, 지형이 지네형이라서 지네모양의 큰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기지시리의 줄다리기의 유래 중 한가지는 지형에 따른 풍수지리설에 유래한다. 조선 선조 초에 당진 지방은 한나루(아산만)가 터져 하룻밤 사이에 17개 면 가운데 5개 면이 바다에 매몰되고, 남은 지역에는 전염병이 퍼지는 등 재난이 겹쳐 민심이 흉흉하였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풍수지리학자가 이곳의 지형은 옥녀가 베틀을 놓고 베를 짜는 형상이기 때문에 윤년마다 지역 주민들이 극진한 정성으로 줄을 당겨야 모든 재난이 물러가고 또 예방되며, 안정된다고 하였다.
즉, 베를 짜서 마전(피륙을 바래는 일)을 하는 데는, 짠 베를 양쪽에서 마주잡고 잡아당겨서 하므로, 줄을 당기는 것은 그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 처음에는 부녀자들이 줄을 당겼다가 남자들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줄의 길이는 50∼60m이며 지름이 1m가 넘는 경우도 있어 사람이 줄을 타고 앉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줄이 커서 손으로 잡아당길 수가 없기 때문에 원줄의 중간 중간에 가늘게 만든 곁줄을 여러 개 매달아 잡아당기기 좋도록 만든다. 줄 위에 올라선 대장이 지휘를 하면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각 마을의 농악대는 빠른 장단으로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은 이긴 쪽 차지가 되는데, 승부가 결정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칼로 줄을 끊어 간다. 끊어간 줄을 달여서 먹으면 요통이나 불임증에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줄에 양잿물이나 바늘을 떨어뜨리거나 꽂으면 줄이 끊어지고 여자가 줄을 넘으면 넘어선 곳이 끊어진다는 금기가 있어 주술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며, 줄다리기를 통한 농촌사회의 협동의식과 민족생활의 변화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당진에 투자할 생각이 있거나 거주지를 당진으로 옮기고 싶으신 동문은 원주민과 직접 연결을 해 줄 것이니 연락바랍니다. (011-323-3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