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율 이야기
<모든 도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형은 원과 구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이상이나 오랜 옛날의 그리스 학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였다. "원과 구는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모양이 똑같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도형은 달리 찾아볼 수 없다. " 또 그리스 최대의 학자로 일컬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감탄하였다. "원과 구, 이것들만큼 신성한 것에 어울리는 형태는 없다. 그러기에 신은 태양이나 달, 그밖의 별들, 그리고 우주 전체를 구 모양으로 만들었고, 태양과 달 그리고 모든 별들, 그리고 우주 전체를 구 모양으로 만들었고, 태양과 달 그리고 모든 별들이 원을 그리면서 지구 둘레를 돌도록 하였던 것이다. "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아름다운 원과 구의 모습에 감격한 나머지, 그 아름다움을 우주의 창조주인 신과 결부시켜 생각할 정도였으나, 이 학자들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원이나 구도, 원둘레의 길이라든지 넓이 등을 셈하려고 해 보면 간단한 숫자로는 나타낼 수 없었던 것이다. "원둘레의 길이는 지름의 약 3배이다."라는 것쯤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알려진 사실이며 기독교의 「성경」(구약성서)에도 소개되어 있다. 이 지식은 거목의 둘레의 길이를 잼으로써 그 나무의 지름을 알아낸다는 실제 생활의 필요에서 얻어진 산물이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나무가 둥글다 하여도 정확한 원은 아니기 때문에, 원 둘레의 길이는 지름의 3배쯤 된다는 정도의 지식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치를 따져 설명하기를 좋아하였던 그리스의 학자들로서는 이러한 대강의 수치에는 만족할 수 없었다. 원둘레의 길이가 원의 지름의 3배보다 길다는 것은 아래의 그림처럼 원과 그 안에 꼭 들어가는(=내접하는) 정육각형을 그려 보면 알 수 있다. 이
원의 지름을 1이라고 할 때, 정육각형의 1변의 길이는 0.5이기 때문에 변 전체의 길이는 원의 지름의 꼭 3배가 된다. 그런데 이 정육각형의 1변의 길이보다 원둘레의 6분의 1의 길이가 더 긴 것은 명백하다.
원둘레의 길이가 원의 지름의 3배 보다 큰 것이 확실하다면, 4배일까? 아니다. 물론 그렇게 크지는 않다. 3보다 크고 4보다 작은 수, 아름다운 원도 간단한 수로는 나타낼 수 없는 까다로운(?) 일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원둘레의 길이를 구하는 문제도 어렵지만 원의 넓이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렵다. 원의 넓이에 관한 문제는 그리스 시대 훨씬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아 왔다. 기원전 2천년 경 고대 이집트의 수학책에는 원의 넓이는 다음과 같이 구한다고 되어있다. "지름으로부터 그 9분의 1을 빼면 지름의 9분의 8이 남는다. 이것을 제곱하여라." 즉, 원의 넓이 = (
× 지름)2 =
× (지름)2 그런데, (지름)2 = (2 × 반지름)2 = 4 × (반지름)2 이므로, 앞의 식은
× 4 × (반지름)2 이다. 따라서 원주율은
× 4 = (
)2 = 3.16049…
가 된다. 지금으로부터 4천년 이전의 이집트인들은 어떻게 이 공식을 생각해 냈을까? 아마 다음 그림처럼 원과 정사각형을 겹쳐서 그려보고 원 밖으로 나와 있는 원의 부분이 거의 같아진 것은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가 원의 지름의 9분의 8일 때라는 것을 발견하였던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원의 넓이는 한 변이 지름의 9분이 8인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는 것은 정말일까? 아니다. 실제로는 약간의 차이
가 생긴다. 그리스 수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원넓이를 정확히 구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4백년 쯤의 그리스 수학자 안티폰은 그림처럼 원의 넓이를 셈하는 방법을 생각하였다. 먼저 원에 내접하는 정사각형을 그려서 그 면 적을 셈하고, 그 다음에 정사각형 밖으로 나와 있는 원의 내부에 그림처럼 이등변삼각형을 그려서 정팔각형을 만들어 그 면적을 셈하고, 또 그 다음에는 정팔각형 밖으로 나와 있는 부분에 이등변삼각형을 그려서 정십육각형을 만들어 그 면적을 계산하고… . 이런 식으로 이등변삼각형의 면적을 한없이 더해 가면 마침내는 원의 면적과 같아진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그럴 듯 했지만, 정삼십이각형, 정육십사각형 … 과 같이 변수가 늘어나게 되면 계산이 터무니없이 복잡해질 뿐더러 정확한 셈을 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안티폰 자신도 세밀한 계산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원전 3세기의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이 안티폰의 방법을 조금 개량하여 실제로 원넓이를 계산하였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이 고안했던 "착출법(우유를 짜듯이 내용물을 몽땅 짜내는 방법)"을 이용하여 원주율을 정밀하게 계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방법이란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먼저 원을 둘러싼 정사각형을 네 변이 각각 중점에서만 원에 외접하도록 그린다. 이 정사각형의 면적은 물론 원의 면적보다 크다. 이 면적이 ( = 4r2 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원의 내부에 그려진 정사각형(네 모서리만 원에 접하는)은 확실히 원의 면적보다 작다. 이 면적은 2r2이다. 원의 면적은 이 두 값 사이에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육각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외접하는 정육각형은 앞의 외접정사각형보다 면적이 작다. 그만큼 육각형이 사각형보다 원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된다. 역으로 내접하는 정육각형은 내접하는 정사각형 보다 크다. 그 면적은 역 방향에서 원의 면적에 접근한다.… 이런 식으로 내접 및 외접 정다각형의 변수가 많아질수록 그 변은 더욱 더 원주에 접근하게 되고, 원의 면적은 그럴수록 자꾸만 좁혀진 울안으로 갇히게 된다. 아르키메데스는 이 절차를 96각형까지 계속해 간 끝에 근사방법을 써서 결국 원의 면적은
r2 과
r2 의 사이에 있다는 것, 그러니까 구하는 원주율은 3.1408과 3.1429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원주율은 약 3.14159)
n |
내접n각형 |
외접n각형 |
3 |
2.59808 |
3.19615 |
6 |
3.00000 |
3.46410 |
12 |
3.10583 |
3.21539 |
24 |
3.13263 |
3.15966 |
48 |
3.13935 |
3.14609 |
96 |
3.14084 |
3.14285 |
192 |
3.14145 |
3.14187 | <다양한 내외접 다각형을 이용한 π의 근사값, n은 변수>
아르키메데스보다 더 정확한 원주율을 처음 계산한 사람은 5세기의 중국의 수학자 조충지(祖沖之)라는 사람이었다.
동양에서의 원주율의 역사
동양 특히 중국에서의 원주율에 관한 연구는 유럽에서만큼 꾸준하지는 못하였지만, 고대에는 그런대로 활발하였으며 유럽보다 무려 천여년 앞선 업적을 남기기까지 하였다. 약 B.C. 1000년 경에 엮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수학책 「주비산경」에서는 "지름이 1일 때, 원의 둘레는 3" 곧 원주율을 3으로 잡고 있다. 이 책 다음으로 오래된 "중국의 유클레이데스"로 일컬어지는 「구장산술」(B.C. 100년쯤?)에서도 π = 3 으로 쓰이고 있다. 이후, π의 값은 중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셈하여졌다. - 서기 9년 경 : 3.154 (유흠) - 서기 9년 경 :
(왕망) - 서기 100년 경 :
(장행) - 서기 216년 : 3.141 (유휘) - 서기 370∼447년 : 3.1428 또는
(하승천) 그 후 송나라 효무제 때의 천문대 관리 조충지(430 ∼ 501)는 원주율의 값을 36 < π < 3.1415927 과 같이 셈하였고, 대강의 값으로 π =
, 정밀한 값으로 π =
= 3.1415929… 를 구하였다. 이 정밀값은 소수점 아래 6자리까지가 정확하다. 메타우스(Adriaan Metius, 1527 ∼ 1607) 가 이 근사값을 얻게 된 것은 조충지보다 실로 천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남송의 사람 양휘가 지어낸 「양휘산법」(1275)이라는수학책은 세종대왕 때에 우리나라에 전해졌으며, 그후 줄곧 조선 수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양휘산법」속에는 원형의 농토 넓이를 구하는 문제의 답으로써 "지름을 제곱하여, 이것을 3번 더하여 4로 나눈다." 곧, 원의 넓이 =
d2 (d는 지름) 과 같이 되어 있다. 즉 양휘는 π = 3을 써서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1624년에 중국에 온 선교사 재크 로우(Jacques Rho, 중국명은 나아곡)는 아르키메데스가 구하였던 값
< π <
, 이외에 루돌프(Van C. Ludolf, 1540 ∼ 1610)의 계산으로 짐작되는 3.14159265358979323846 < π < 3.14159265358979323847 을 소개하였다. 그 후, 100년이 지난 1723년(청, 응정 1년)에 「수리정온」이라는 수학책이 왕명에 의해 엮어졌는데, 이 안에는 원주율의 계산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곧 원에 내접·외접하는 정육각형과 정사각형으로 시작하여, 그 변수를 차례로 2배씩 하였을 때의 한 변의 길이를 자세히 셈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적어놓고 있다. 내접 6×223 각형의 둘레 = 3.1415926535897932382900674110177544384 내접 235 각형의 둘레 = 3.141592653589793238431541553377501511680 외접 6×223 각형의 둘레 = 3.141592653589793238466027300889141980416 외접 235 각형의 둘레 = 3.14159265358979323865658930929470668800 (정확한 π의 값은 파란색 부분인 소수점 아래 18자리, 19자리, 20자리, 18자리까지이다.)
조선 말엽 형조판서를 지낸 정치가이자, 당시의 대표적인 수학자이기도 하였던 남병길(1892 ∼ 1867)의 「산학정의」(1867년)이라는 수학책에는 원넓이를 셈하면서 π = 3.1415926535 로 어림잡고 있다. 이 값은 아마도 위의 「수리정온」에서 얻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보다 앞서 실학자 홍대용(1731 ∼ 1783)도 「수리정온」을 참고로 한 수학책 「주해수용」을 지었는데, 여기서는 π = 3 으로 하여 셈하고 있다. 조선 천문학의 금자탑이라 일컬어지는 세종 24년(1442년)에 완성된 「칠정산」에서도 소수점 이하 5자리까지 자세히 계산하는가 하면 π 의 값을 그냥 3으로 두는 엉성한 일면도 보여주고 있다. π 의 값을 소수점 아래 10자리, 20자리, … 까지 구해 나간다는 것은 이미 실용의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현대의 정밀 공업에도 π 값으로는 3.1416 정도면 충분하며, 그 이상 셈하는 것은 실용상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다. 이러한 계산을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의 보잘 것 없는 시간보내기로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수학의 발전은 오직 알기 위해서 따져드는 호기심의 결과일 때가 아주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