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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감상 |
청포도(靑葡萄)
이육사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절정(絶頂)
이육사
매운 계절(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릅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교목(喬木)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내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湖水)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광야(曠野)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약력
호 육사(陸史). 본명 원록(源祿), 활(活). 경북 안동(安東) 출생.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 1926년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3년 귀국, 육사란 이름으로 시 《황혼(黃昏)》을 《신조선(新朝鮮)》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 신문사·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시나리오까지 손을 댔고, 루쉰의 소설 《고향(故鄕)》을 번역하였다. 1937년 윤곤강(尹崑崗) ·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 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안동시에 육사시비(陸史詩碑)가 세워졌고, 1946년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