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속 참외-
부자에 대한 부러움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어린 시절 부자에 대한 그녀의 기준은 감나무가 많은 집이나 논밭이 많아서 여기저기 땅콩이나 참외 또는 수박을 마음대로 심은 집이였다. 아마도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 아침 슈퍼 주인인 그녀의 남편은 계란만한 참외 세 개를 맛보라며 주었다. 먹기도 아까우리만큼 예쁘고 고운 속살은 세 개만으로는 입맛 다시기에도 턱 없이 부족한 꿀맛 이였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녀는 한 소쿠리를 들고 왔다. 배짱 좋은 마누라의 행동에 남편은 원금을 생각하는지 슬쩍 째려보는 듯해도 코끝은 이미 웃고 있었다. 결국 점심까지 마다하고 열개가 넘는 노란 참외의 몸매를 탐닉하던 당신 마누라 모습에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이 사람아, 배앓이 할라고 그래…?"
하기야 걱정 할만도 했다. 체질적으로 수박과 참외는 그녀와 궁합이 잘 맞지 않음을 남편은 이미 알고 있다. 조금씩만 먹으면 괜찮아도 입맛에 맞으면 질릴 때까지 먹는 그녀의 습관은 늘 문제였다.
그녀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느 여름날 이였다. 집 근처에 두어 마지기 정도 된 보리밭 가운데 쯤에 듬성듬성 보리가 잘 자라지 않는 곳이 있었다. 그곳엔 누구 것인지 모르는 응가가 턱하니 몰골 사납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바로 그 속에서 참외 씨가 싹이 트고 보리밭 고랑을 유유히 타며 자라는가 말이다. 어린 그녀의 눈에는 신기하게도 며칠 뒤 가서 보면 두 뼘쯤 자라있고 꽃까지 피워냈다.
찜찜했지만 매일매일 지켜보는 그녀에게는 어느새 큰 흥미거리였다. 앙증스럽게 생긴 노란 꽃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새끼손톱보다 작은 참외가 달렸다. 남의 집 참외를 키우는 거를 눈여겨 보았기에 지푸라기도 가져다 깔아 주었다. 그녀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자고나면 스멀스멀 기어가듯 몇 뼘씩 싱싱하게 자랐다. 자란만큼 참외도 주렁주렁 열렸다. 토종 거름도 듬뿍듬뿍 뿌리 쪽에 뿌려 주었다. 그러다보니 보리밭에는 그녀가 드나드는 개구멍 같은 길까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 하기전과 하교 후에도 열심히 살펴 보았다. 참외 근처에서 얼씬거리는 덜 익은 보리는 죄다 뽑아서 흑돼지 우리 속에 던져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중한 비밀을 그녀는 언니한테 들켜 버렸다. 노상 보리밭에서 노는 그녀를 눈여겨보던 언니가 몰래 따라 들어왔던 거 였다. 맥이 쭉 빠져버렸다. 그래도 이상한 건 참외가 익는다 해도 언니는 당연히 못 따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어떤 사람이 참외를 먹고 보리밭에서 응가를 해 놓은 자리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언니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작은 주먹만 하게 자란 참외들이 노랗게 익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녀는 따 먹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보는 것만도 흡족하고 배가 불렀다. 며칠 뒤에도 참외들이 궁금해서 보리밭으로 신나게 달려 찾아 갔지만 아뿔싸 노랗게 익은 참외 두 개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거였다. 범인은 그녀의 언니 밖에 없었다. 자기가 먹기는 싫고 그렇다고 남 주기에는 매우 아까운 간식거리였는데….
그래서 눈으로만 아끼고 아끼던 거였는데 언니한테 그만 통째로 도둑맞고보니 어린 그녀는 억울하고 분했다. 언니를 이겨 먹을 재간은 없고 오히려 짐짓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놀려댔다.
"얼래~꼴래~ 그 참외는~ 누가 똥~ 눈~ 거에서 자랐는데~자랐는데~"
그래도, 예쁜 참외가 아까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급기야 그녀의 언니는 확인을 요구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 주변 자국을 보고 있던 그녀의 언니는 씩씩 거리며 단번에 아직 덜 익은 참외 넝쿨을 휙 걷어내더니 곧장 흑돼지 우리 속으로 던져 버렸다.
"앙~ 내 껀데 왜 버려...! "
울어 대면서도 그녀의 느낌은 시원섭섭한 바로 그거였다. 그리고 궁금했다.
"근데, 언니야, 그 참외 무지 달아?"
" 몰라, 이년아..!"
첫댓글 줄외라고도 했는데 꼭 탱자만했던것 같네요.
유년의 추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맞아요. 굵은 탱자만했던거 같아요. 그 보리밭이 눈에 선합니다
노랑참외,
첨 나왔을 땐 참외가 아니라 했죠. 늘 푸른 껍질에 약간 줄무늬가 있던 것만 참외로 봐 왔던 터라
노랑참외가 나오니 모두 참외가 아니다 하더니 먹어보고는 아, 거참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역시 이게 참외로구나 했죠.
고운 작품에 추억이 가득합니다.
이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들 하지요. 추억을 많이 먹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노라니 옛날 시골의 참외밭이 생각나는군요.
귀엽게 생긴 작고 노란 참외 한 입에 넣으면 달콤함이 가득하지요.
선생님 글이 감칠 맛나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