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두들기는 거센 빗줄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따금 번개가 칠 때면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게 빗소리를 듣다가 새벽녘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잠시 눈을 붙인 뒤 일어 났을 때 빗줄기가 약해져 마음이 놓였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등짐을 짊어졌다.
7시25분 등교하는 차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나갔다.신기하게도 비가 그쳤다.
학교에 가는 차 안에서 하늘에 새겨진 무지개를 보았다.MT를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학교에 도착하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모두들 손에는 짐보따리가 들려 있었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걷는 것에 겁을 집어먹은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이윽고 교감 선생님의 주의 말씀을 들은 뒤 합덕행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향했다. 도보 여행은 합덕부터 시작된다. 당진과 합덕 사이는 20킬로쯤 된다.
우리가 입은 단체 티셔츠는 MT에 참가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었다. '하나가 되어'라는 글귀가 그냥 새겨진 글씨가 아니었다. 직접 도안을 하셨다는 선생님의 뜻을 알 것 같았다.
합덕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활짝 갰다.
첫 목적지는 솔뫼성지였다.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란 의미의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 일곱살 때까지 살던 곳이다.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이 곳은 김대건 신부의 동상, 순교 1백주년 기념비, 피정의 집 등으로 가꾸어져 있어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안식처 역할을 한다.
몇번 간 적이 있지만 도보 순례여서 그런지 느낌이 색달랐다. 솔뫼성지 이름 그대로 소나무가 무척 많았다.
늘 푸른 소나무 숲을 지나치며 갈대처럼 휘둘리는 우리들 인간의 마음이 부끄러웠다.
신부님의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솔뫼성지에서 나와 필경사(筆耕舍)로 발걸음을 옮겼다.
필경사는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 있는 소설가 심훈(沈熏)의 문학 산실이다. 한국 농촌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상록수'(1935)도 이 집에서 집필했다고 한다. 대지 200평에 건평 18.7평인 아담한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충남기념물 제107호다.
심훈은 1932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아버지가 살던 당진으로 내려왔다.그리고 독립해 살려고 이 집을 직접 설계해 필경사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필경사라는 옥호는 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필경사 잡기'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장조카인 심재영이 다시 사들여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희사하였다.
처음 출발할 땐 모두 자신감에 넘친 발걸음이었다. 그림 같은 하늘도 여유롭게 볼 수 있었고, 들판에 곡식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고 온몸이 땀에 젖어갔다. 지치기 시작했다.
힘이 들 때면 서로 '힘 내'라고 위로하는 한마디에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나는 말 한마디의 힘이 그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다.
평소 많이 걸을 기회가 없었던 터라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팠다. 너무 편하게 살았던 것 같다.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쳤던 작은 것들, 시원한 물 한 모금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모른다.
중간에 쉬었던 '공포리'는 지명 그대로 새를 쫓는 총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포스러운 마을이었다.
잠시 휴식한 뒤 기운을 되찾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지칠수록 엄마 생각이 간절했다.힘든 순간에 왜 투정만 부린 생각이 그렇게도 나던지 눈물이 나왔다.
신평 휴게소에 도착해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었다. 때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달아올랐던 몸을 식혀줬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힘을 북돋으며 낙오하지 않았다.
처음 도보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섰지만 선생님들께서 예비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힘이 솟았다. 도전할 것이 있다는 것, 꿈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어쩌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발뒤꿈치가 벗겨졌다. 밴드를 붙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평소 차를 타고 쉽게 지나쳤던 곳을 고통스럽게 걸으니 문명의 이기에 대한 경외심도 들었다.
1차 숙영지인 상록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지쳤지만 낙오자가 없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거기서 짐만 풀고 필경사로 향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다.
철재로 만들어진 구조물과 심훈 선생님이 글을 쓰신 곳이 낯익었다. 심훈 선생님의 일대기를 담은 비디오를 보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각 조마다 저녁 준비에 분주했다. 배가 무척 고파 라면 하나로도 황송할 정도였다.
저녁을 마친 뒤 바로 문학강연이 있었다. 지친 몸이지만 눈을 반짝였다.
강연이 끝나고 동아리별로 모임을 가졌다. 엽서 쓰기와 롤링 페이퍼 쓰기가 이어졌다.엽서 쓰기는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장씩 쓰는 것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손으로 직접 쓰는 편지는 찾아 보기가 힘들다. 이런 기회에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엽서를 쓰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오랜만에 써보는 롤링 페이퍼. 우리 동아리는 인원이 많아 한 사람씩 다 쓰느라 고생스러웠지만 평소에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하며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 써준 롤링 페이퍼를 품에 간직했다.
그리고 둥그렇게 모여 게임을 했다.힘든 뒤 하나 되어 갖는 휴식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새벽 한시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금새 잠에 빠졌다.그러나 다리가 아파 뒤척이는 친구도,모기와 싸우느라 잠을 설친 친구도 있었다. 곳곳에서 코를 고는 화음은 오케스트라의 선율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아침 여섯시가 되지 않아 깨우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스스로 일어났다. 피곤해 늦잠을 잘 줄 알았는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대견했다.
첫댓글 마미언니도,// 편나눠서, 쓰시네요// 욜욜,/
구자경샘 따라해봤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