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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음식물의 정하고 부정함(레 11장, 신14:3-8)
11장은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대한 규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 하는 짐승과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과 타락한 세상과의 구별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정결한 짐승의 조건
정결한 짐승
①굽이 갈라져 쪽발이 된 것 ②새김질하는 것이어야 한다.
소, 양, 염소, 사슴, 노루, 불그스름한 사슴, 산염소, 볼기힌 노루, 뿔긴사슴, 산양들(신14:3-8)
불결한 짐승
①새김질을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않은것(약대,사반,토끼..)
②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하지 않는 것(돼지)
(굽)이란 히브리어(피라스)“찢다,나누다”에서 파생된 말로 굽이 양쪽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두개의 발톱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과 온전히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3:5-6)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엡5:8-9)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옷을 색다르게 입어야 합니까? 색다른 음식을 먹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길은 오직 성결의 삶을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굽이 갈라졌다는 우리 성도들이기 때문에 있지 말아야 할 곳엔 있지 말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지 말아야 하고 보아서 안될 것은 보지 말고 들어서 안될 것은 듣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것 다 보고,먹을 것 다 먹고,갈 때 다 가고하면서 우리가 과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시1:1-)복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고...
(2)정결한 짐승의 조건 두 번째는 새김질을 해야 한다
새김질는 이란 말은 히브리어(게라)"다시 꺼내다, 질질 끌다"로서(가라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한 번 먹은 음식을 다시 끄집어내서 되씹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백성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뜻을 되새겨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17:11-12)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
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약1:26-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성도들이 세속에 물들었다는 말은 세상과 하나님의 것이 혼합되었다는 뜻입니다. 경건과 세속이 섞이면 하나님 앞에서 둘 다 가증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세속에 물들지 않겠습니까?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경건함을 유지했던 다니엘을 보면 그 방법이 보입니다.
첫째, 기도해야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둘째, 믿음의 친구(사드락,메삭,아벳느고)들과 교제할 때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셋째, 세상일도 경건하게 할 때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과 메대 파사에서 총리의 일을 했습니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 때로부터 다리오 왕 때까지 총리로서 쓰임 받았습니다. 그가 국가의 일을 할 때도 그의 경건함이 나타났으며 왕과 왕비에게 그리고 그의 정적들에게 까지 신앙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만큼 경건하게 세상일도 경건하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직장생활을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주부로서 가정 일을 하든지,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기도하며 일하고, 성령을 따라서 일할 때 우리의 신앙의 순전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정결한 짐승가운데 대표로 소,양,염소가 나옵니다.
이 동물들은 정결한 우리 성도들이 특별히 힘쓸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소-희생과 순종심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레1:3)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랍하시도록 드리라고 했습니다. 뭘 말하고 있나? 희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삼상6:12)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뭘 보여주고 있습니까? 순종입니다.
이처럼 정결한 우리 성도는 여기 소처럼 순종도 잘하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삼상15:22-)
②양과 염소-겸손과 온유의 상집입니다.(출12:5)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일년된 양과 염소는 그 성격이 똑같다고 합니다).이것은 흠 없고, 겸손함을 말하고 있고 (요10:4), 그리고(렘11:19)나는 끌려서 잡히러 가는 순한 어린양과 같았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온유를 말하는 것입니다(사53:7)
우리 성도들은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하고 온유하고 겸손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갈5:23-)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중"온유"의 열매가 있습니다.
잠언의 구구절절"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했습니다.
(마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누구든지 내게 와서 내 멍에를 메고 배우라.
③사슴-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합3: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사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창49:21)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성도들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딤후4:2-막16:15)"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
④노루-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아8:14)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아2:9)/(잠5:19)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같고 아름다운 암노루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고전12:31)믿음,소망,사랑중에 제일은 사랑이고 각종 은사가운데 더 큰 은사(사랑)를 사모하라.
우리 성도는 언제나 敬天愛人(경천애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를 거룩한 사람(聖徒)이라 합니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때문에"성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보여주므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부정한 짐승의 조건 ①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않은것(약대,사반,토끼)
①약대는 낙타(Camel)를 가리킵니다.그런데 이 낙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완전히 다 갈라지지 않은 짐승입니다. 정결한 짐승은 새김질을 하는 것 외에도 굽이 완전히 갈라져 있어야 하는데 약대는 발굽이 갈라지다 말았습니다. 여기 낙타의 발굽이 갈라지다 말았다 하는 것은 뭘 말할까? 처음에 말했듯이 발굽은-신령한 의미에서 성도의 행동,행함을 의미한다 했습니다.
따라서 여기 굽이 갈라지다 말았다는 것은,행동에 대한 실천력,결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뭘 의미하느냐? 성도는 분명한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도도 아니고, 모도 아니고 해서는 안됩니다.
(막10:17-22)예수님께 나왔던 부자청년은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키었다고 하였습니다.새김질하는 신앙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바대로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가서 네 이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하셨습니다. 그때 그 부자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부자청년은 결단력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나중에 이 청년이 예수님께로 다시 왔다 하는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뜨듯 미지근하면 안됩니다.
②사반이란 떼를 지어 사는 짐승입니다. 시리아에서는 하릭스, 그리스 남부 아라비아에서는 와불이라고 불리는 토끼와 유사한 짐승입니다. 또한 사반은 초식동물로 시내반도, 북팔레스틴,사해부근의 자연동굴이나 바위틈에 살며 땅을 잘 파는 짐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③토끼는 조그만 소리에도 두려워하고,겁많고,공포심이 많은 짐승입니다. 특히 이 토끼는 곤궁에 처한 날에는 어느 길로 가야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무지하고 소심한 짐승입니다.그런데 사반이나 토끼라는 짐승은 굽도 갈라지지 않았지만 새김질하는 짐승도 아닙니다. 입을 오물거리므로 새김질하는 것 같이 보일지는 몰라도,실제로는 새김질하는 짐승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방인과도 비슷해서도 안되고,성도와 비슷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새김질을 온전히 하는 짐승이 정결한 짐승인 것처럼 성도역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가 참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생활을 바로 해야 합니다. 비슷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주일성수도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들랑날랑,기분 좋으면 오고 나쁘면 안오고..
◉십일조도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새벽기도도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항상 깨어 기도하라,쉬지 말고 기도하라.
예수님도 새벽기도 하셨습니다.그런데 주의 일을 하는 우리가 기도 안하고 뭘 할 수 있나?
어떤 교회는 일꾼들을 뽑을 때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은 아예 제외시켜버린다고 합니다.
(4)부정한 짐승 두 번째 굽은 갈라져 있으나 새김질은 못하는 짐승(돼지)
이 돼지라는 짐승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게으르고 더러운 곳에 기거하는 불결한 짐승가운데
하나입니다.그런데 이 돼지라는 짐승은 굽은 있으나 새김질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 돼지는 뭐든지 주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습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분간도 못한 채 아무거나 탐욕이 가득하고 막 먹습니다. 그래서 나중엔 살이 쪄서 잘 다니지도 못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자리에 누워서 지냅니다.
마찬가지로 굽은 있으나 새김질이 없는 성도는 말씀의 새김질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오해를 잘합니다. 체하기도 잘합니다.잘 넘어집니다.먹기만 하고 헌금을 내어 놓지를 않습니다.그러므로 굽이 갈라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의 새김질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굽도 갈라지고 새김질도 잘하는 온전한 성도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5)먹을 수 있는 수중생물(레11:9-10)
1)지느러미가 있는 고기는 먹을 수 있습니다.
①지느러미는 물고기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물고기의 어느 한 지느러미를 잘라서 물에 놓아주면 물고기는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 없어서 앞으로 진행을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합니다. 고기의 지느러미는 배의 키와 마찬가집니다.그만큼 종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느냐? 바로 신앙의 지느러미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이 신앙의 지느러미는 무엇일까요? 이 지느러미는 바로 성경을 의미합니다.
(시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내 길의 빛이니이다.
(딤후3:16)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하게 책이다.
(계1: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시1:1)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
성도는 모든 정기적인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 험한 세상풍조에 흔들리지 아니하고,좌우로 치우지지 아니하고 신앙의 정로로 바로 걸어가도록 길잡이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②지느러미는 물을 가르고 앞으로 힘차게 나가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지느러미가 있는 물고기는 물살이 거세면 거셀수록 그 물의 흐름을 이용해서 앞으로 박차고 전진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지느러미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사는 정결한 성도는 어떤 환란과 풍파가 닥쳐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환란풍파를 이용하여 더 높은 신앙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환난의 물결이 제 아무리 거세도 밀려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2)비늘이 있는 고기는 먹을 수 있습니다.
①비늘은 물고기 내부에 있는 모든 더러운 찌꺼기를 외부로 방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비늘이 있는 고기는 그 내,외부가 항상 깨끗합니다.청결합니다. 병이 없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죄 많은 이 세상에 살아갈 때 때로는 죄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가서는 안될 때를 가고/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고/해서는 안될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 역시 내 몸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죄의 찌꺼기를 밖으로 방출해 내는 신령한 비늘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이 비늘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비늘은 바로 성도의 신앙과 삶을 정화시키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요일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②비늘은 여러 가지 병균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물속에 있는 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
호하여 줍니다. 그래서 비늘이 있는 고기는 비늘이 없는 고기보다는 더 안전합니다.그런 의미에서 여기 이 비늘은 그 고기에 있어서 하나의 뭡니까? 병기요 무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령한 의미에서 비늘은 우리 성도의 신앙의 병기요 무기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신령한 무기입니다. 그 신령한 무기가 과연 뭐냐?(엡6:10-20)"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의 신령한 무기는"하나님의 전신 갑주"입니다. 옛날 군이들의 갑옷을 보세요.고기비늘 같이 생겼습니다.
여러분,하나님의 진신갑주를 입으시기 바랍니다.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6)먹을 수 없는 수중생물
1)부정한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①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들은 대개가 뱀처럼 미글미끌하며 더러운 곳에 살고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는 더러운 진 흙속에 살면서 진흙을 헤집고 다녀서 물을 다 흐려놓습니다. 이건 미꾸리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미꾸라지 같은 고기들은 거의 그렇습니다. 이건 영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느냐?
하나님은 공동체나 모임을 더럽히고, 말을 퍼나르고 흐트려 놓는 사람을 싫어하신다는 말입니다.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고라일당이 가나안 땅 탐지 후 10명과 그들을 따랐던 백성들을 부추겨서 원망하게 만들었고 모세를 대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에게 진노를 받고 땅속에 매장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이런짓을 하다가는 땅속에 아니라 사람들에게 매장당하는 불행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②부정한 고기들은 대부분 성격이 난폭하기 때문입니다.
상어,고래와 같은 고기들은 포악해서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물고기들입니다.이것은 뭘 보여 주느냐? 바로 죄악의 관영함과 창궐함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성격이 포악하고 난폭함을 싫어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우리에게 교훈하시기를"온유하라,겸손하라,사랑하라“말씀하고 있습니다.
③부정한 고기들은 대부분 그 모습이 또한 험상궂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기들은 하나님과 성도들을 대적하는 사단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왜 부정한 음식이나,짐승이나,고기들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했어요? 종합적으로 보면 부정한 짐승들은 한결같이 그 모습이 사단을 연상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늘 없는 물고기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본문에 네 번씩이나(가증하다)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죄악을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어떻게 하라? 죄를 멀리 하라,부정한 것을 가까이 하지 마라, 성도는 성도답게 깨끗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엡4:22,5:11시1:1)악인의 꾀를 쫓지 말며,죄인의 길에 서지 말며,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마라
(7)먹지 못하는 날짐승(새)
(레11:13)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매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노자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니라.
1)부정한 날짐승 20종류의 새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①이 부정한 새들은 거의 다 그 습성이 거칠고 공격적인 새들입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약한 새들을 발로 채어 피를 보는 새들입니다.그래서 이런 새들을 가르켜 하늘의 압제자,하늘의 탐욕자라고 합니다.
2)부정한 새 가운데는 고독하고 슬픈 새들도 있습니다.
가령,까마귀,올빼미,다호마스,부엉이,당아 같은 새들은 대체로 이기적이고 그리고 어둡고 한적한 곳에서 외롭고,고독을 느끼며 사는 새들입니다.
3)부정한 새들은 한결같이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새들입니다.
창세기에 노아의 홍수때 노아 방주 안에서 땅의 물이 말랐나? 안 말랐나?를 알아보기 위해서 까마귀를 내어보냈더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먹는데 정신이 없어서, 세상에 빠져서 안돌아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런 새들을 부정하다고 하시면서 먹지 말라고 하신 영적인 의미는 뭐냐? 하나님께서는 성격이 거칠고,난폭한 사람들을 싫어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목이 곧고 패역한 백성들"이라고 계속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광야 40년 동안 다 죽었습니다.
(8)먹지 못하는 곤충(레11:20-23)
곤충 중에서 기어 다니는 것은 일단 부정한 곤충으로 가증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뛰어 다니는 곤충과 다리가 있어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곤충은 정한 것으로 취급되어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똑같은 곤충인데 기는 것은 부정하고 뛰는 것은 정한가? 그 이유가 뭔가?
①뛴다는 것은 뭘 의미합니까?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성장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고,예수님이 계시고,성령님이 계시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있고,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저 천국, 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소망을 두며 살아야지 세상에다 정을 두거나,미련을 두고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히12:2).
(창19:26)우리가 아는 대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딤후4:14)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떠나갔느니라.
(요일2:15)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눅9:62)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느니라.
(롬8: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요6:27)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②날개도 있고 다리도 있지만 기어 다니는 곤충은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가령, 파리,풍뎅이,말벌 등등...왜 이런 곤충을 부정하다고 했을까? 날개도 있고 다리가 있어 날기도 하고 기어 다니는 곤충은 항상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날개를 이용하여 하늘을 중심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다리를 이용하여 땅을 중심으로 살아 갈 수도 있습니다.말하자면 이중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중적인 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계3:14)라오디게아 교회를 보라(차갑든지, 뜨겁든지)
(수24:14)여호수아가 말합니다“...그러나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분명히 말씀하십니다“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나를 쫓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을 것이요, 아비나 어미를 더 사랑하는 내게 합당치 아니 하니라”
(9)먹지 못하는 짐승(레11:29-30)
우선 땅에 기는 모든 동물은 그 동물이 어떤 동물이든 간에 모두 다 부정한 것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이미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가 생각해 왔습니다만 땅에 있는 짐승이나 곤충가운데 기는 것의 대표적인 짐승은 어떤 짐승입니까? 뱀
①뱀은 성경에 항상 무엇으로 상징되어 있습니까? 사단, 마귀(창3:1-,계12:9)
따라서 땅에 기는 동물들을 왜 부정한 짐승으로 구분했느냐? 신령한 의미에서 이 동물들이 바로 뱀과 연루되어 있는 동물로 사단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고기 가운데도 기어 다니는 뱀장어, 미꾸라지, 그리고 곤충가운데도 파리나 말벌 같은 곤충들은 다 부정한 짐승으로 취급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보시는 온전한 성도, 곧 정결한 성도는 어떤 성도냐?
똑 같이 예수를 믿는데 누구는 온전한 성도고,누구는 불온전한 성도고,누구는 거룩한 성도고,
누구는 부정한 성도냐? 그 기준이 뭐냐?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으냐? 지식이 있느냐? 권세, 물질, 잘 생겼느냐? 도시에 사느냐? 몇 년 믿었나? 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형상과 모습이, 생활이 사단을 닮았느냐 아니면 예수님을 닮았느냐 하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비록 예수를 믿고 있지만, 오래 믿었지만 아직까지 내 모습과 내 생활과 형상에 사단적인 요소가 있다면 아직까지 나는 하나님이 보실 때 거룩하고 온전한 성도라고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온전한 성도가 되고, 정결한 성도가 되려면 악한 사단 마귀의 형상과 삶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삶을 닮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엡5:8)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빛이라 빛의 자녀답게 살아라.
②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동물들을 왜 부정하다고 했느냐?
기는 동물들을 가만히 보면 한결같이 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이라는 것입니다.이 동물들은 땅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세도 없을 뿐만 아니라,하늘을 향한 어떤 노력도 하지를 않습니다. 메뚜기 같은 곤충은 땅에서 살기는 살지만,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면서 어떻게 하든지 땅을 극복하려고,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여기 땅에 기는 모든 동물들은 어느 동물 예외없이 땅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동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정결한 짐승측에 들 수 있겠습니까?
신령한 의미에서 볼 때 땅에 기어 다니는 세상 사람들을 보면 하늘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늘에 뭐가 있는지,하늘을 바라보 살면 어떤 축복이 있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땅에 것에만 관심이 있고,거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언제나 땅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비록 땅에 살고 있지만 위에 것을 바라보면 살아야 하겠습니다( ).
(골3:5-14,롬8:13)땅에 것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 했습니다.
(요일2:15)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히말라야 고산지대는 좋은 풀들이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위로 올라는 양들은 튼튼하고 좋은 풀을 먹기 때문에 살도 쪄서 값이 나가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양들은 풀을 먹지 못해서 비실비실하고 값이 나가지 않는답니다.
(10)부정한 짐승시체 접촉시 정결법(레11:24-40)
①부정한 동물은 먹는 것은 고사하고 그 시체를 만지기만 하여도 부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떤 경우든지 부정한 짐승은 물론이려니와 비록 정한 짐승일지라도 그것이 죽은 시체일 경우에는 절대로 만지거나 먹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부정한 동물들이 부정하니까 먹을 수는 없다 하여도 죽은 동물의 시체를 만지는 것 까지 금할 필요가 있겠느냐? 할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죽음은 바로 죄의 결과요, 죽은 시체는 바로 죄의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죄를 철저히 미워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교훈하느냐? 죄는 그 죄가 큰 죄든, 작은 죄든 반드시 죽음을 가져 오니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만지지도 말고,가까이 하지 말고, 접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시1:1)
②죽은 동물의 사체에 접촉한 자는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을 뿐 아니라,그 어느 성물도 만질
수가 없었고,이웃과의 교제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레7:19-21레22:3).뭘 말하느냐? 죄는 결국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과도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왜 하나님의 동산에서 떠났나요? 죄 때문입니다.
가인도 유리하는 신세가 된 이유가 뭡니까? 죄 때문에..
아간도 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왜 처참한 최후를 마쳤나요? 죄 때문에..
그러기에 죄는 만지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③이렇게 부정한 자는 언제까지 부정하느냐?
본문에 기록한 대로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했는데,여기 저녁은 우리나라로 보면 하루가 끝나는 시간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성도들은 매일 밤 그 날 그 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그 죄에 접촉된 우리 자신의 오염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죄로 인한 부정함 속에 계속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엡4: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④부정한 옷을 빨아 입어야 합니다(25절-28, 40절)
어떤 동물이 죽었습니다.그런데 그 자리에 그냥 놔둘 수가 없어서 다른 데로 옮기는 데, 그때 그 동물의 시체가 내 옷에 닿았습니다. 그러면 그 옷이 부정한 짐승의 시체로 인하여 더려워 졌으니까 그 옷을 깨끗이 빨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지금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사는 성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죄에 오염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 항상 죄에 대하여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죄에 오염이 된 사람은 지체하지 말고 그 옷을 빨아야 합니다. 곧 주님 십자가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아 항상 정결함을 유지하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말하자면 몸을 씻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手足(수족)을 씻어야 합니다(요13:8).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고후13:5,고전9:27).
⑤부정한 동물들의 시체들이 우리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그릇이나 다른 것 위에 떨어지면 그것도 부정하니 그런 것들은 물로 씻으라 했습니다(32-33절).
여기에 두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죄는 내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 속 깊이 까지 침투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가정을 병들게 하고, 가정을 파괴시키기도 합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늘날 죄로 인해 파탄되고 무너지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늘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어떻게 하든지 자기 가정을 잘 지키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아무리 더러워진 그릇이라도 물로 씻기만 하면 정결한 그릇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추악한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기만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사울을 바울로 쓰셨고 집나갔다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도 받아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시51:17)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⑥흡수성 강한 질그릇 같은 것(화덕,질탕관)들이 부정하여 졌을 때는 깨뜨려 버리라(33-35절).
이것은 뭘 말하느냐? 죄가 성장하여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은 그 죄로 인하여 결국온 몸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약 상습자와 같은 경우를 보면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가 온몸에 퍼져 그 죄로 인해 온몸이 망가지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전7:17)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전에 죽으려느냐.
죄는 그 죄가 어떤 죄이든지 간에 부정한 질그릇을 깨드려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 역시조금의 양보나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그렇지 아니하면 죄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약1:15살전5:22).
(창39:10)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리 유혹해도 옷을 뿌리치고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⑦부정한 동물의 시체가 샘물이나 웅덩이의 물에 닿았을 경우(36절)
다른 것은 닿기만 하여도 부정하다 했는데 여기 샘이나 방축물은 그렇지 않다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샘이나 저수지의 물은 대개가 식수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정한 시체와의 접촉으로 인해 그 물들이 모두 부정케 되면 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물을 중심으로 부락이 형상되었는데 물 전체가 다 부정할 것 같으면 부락 전체가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샘이나 방축물의 웅덩이에 부정한 짐승의 시체가 닿았다한다 할지라도 부정한 것으로 취급하지 아니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와 사랑과 자비와 긍휼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샘이나 저수지의 물은 양도 많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흘러갈 뿐 아니라, 밑에서부터 계속 솟아 나오기 때문에 스스로 부정을 제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샘이나 저수지의 물은 자정능력이 있습니다.그러기에 부정한 것이 닿았다 한다 할찌라도 그 자신의 자정능력으로 인하여 금방 정결해 질 수 있습니다.그래서 샘이나 저수지의 물은 부정한 것이 닿았다 한다할지라도 부정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자정능력을 주셨습니다.
그게 뭘까요?(딤전4: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⑧부정한 동물이 씨앗에 묻었을 경우(37-38절)
어떤 씨앗을 땅에 심을려고 준비해 두었는데 실수로 그 씨앗이 부정한 동물의 시체에 닿았습니다.그럴 경우 그 씨앗은 부정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냐, 그 종자(種子)는 곧 땅에 심겨져 썩음으로써 부정이 땅에 흡수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단,이때의 씨앗은 물에 불려지지 않은'마른 종자'(dry seed)라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물에 젖거나 불려진 씨앗에 부정한 동물의 시체가 닿았을 경우에는 어떠하냐? 그 씨앗은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왜냐, 부정한 동물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케 된 물이 그 씨앗 속으로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느냐? 죄는 그 죄가 어떤 죄든지 간에 우리 몸에 한 번 침투해 들어오기만 하면 우리 자신을 부정한 사람으로,더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살전5:22)"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⑨정한 짐승시체 접촉시 정결법(레11:39-40)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정한 동물가운데서도 결코 먹어서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정한 짐승일지라도 사고로 인해 죽었든지,아니면 자연사하여 죽었든지 좌우간 죽은 동물의 시체는 먹을 수 없었습니다.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경우든 부정한 짐승은 물론이지마는 비록 정한 짐승이라도 그것이 죽은 시체일 경우에는 예외 없이 만지거나 먹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죽음은 곧 죄의 결과요, 죄의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한 동물이라 한다할지라도 죽은 동물의 시체를 먹는다는 것은 곧 뭘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로 죄를 짓는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정한 동물이라 하여도 죽은 동물의 시체는 먹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우리가 지금 계속해서 정결의식에 대해서 생각해 오고 있습니다만.부정한 동물에는 언급이 없는데,정한 짐승의 정결 법에는 그것을 먹었을 경우에 대한 규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40절).다시 말씀드리면, 부정한 동물의 시체를 먹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 정결함을 받으라 하는 규레가 없는데 왜 없느냐? 부정한 동물은 죽었는 것은 고사하고 살았는 것도 못 먹었으니까 거기에 대한 규례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정한 짐승의 시체를 먹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 정결함을 받으라 하는 규례가 언급되어 있다는 말입니다.왜 있을까? 부정한 짐승은 처음부터 안 먹었으니까 괜찮는데 정한동물은 늘 먹는 고기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죽은 시체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아무리 먹고 싶은 욕심이 충일하고, 버리기 아까운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신의 욕심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땅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약1:15)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느니라.
(11)정결례를 시행치 않은 자의 속죄제
말씀드린대로 정한 짐승의 시체이든 부정한 짐승의 시체이든 죽은 짐승의 시체에 접촉된 사람은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반듯이 맑은 물에 그 몸과 옷을 씻어야 한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씻은 후라도 언제까지 부정하다 했습니까? 그날 저녁까지 우리나라는 보통 아침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보는데, 유대나라는 저녁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여기 저녁까지 부정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유대 시간으로 말하면-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그때까지 부정한 죄를 가지고 있지 말고 회개하여 정결함을 받으라는 말이고, 우리나라 시간으로 말하면 하루가 끝나고 이제 조용히 잠을 청할 그때에 하루를 돌아보면서 그 날의 죄와 잘못을 회개하여 정결함을 받은 후 그다음 날 아침을 새롭게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은 짐승의 시체를 만지거나 먹거나 해서 부정한 자는 당연히 정결의식을 행하므로 정결함을 받아야 하는데, 만약 부정한데도 불구하고 정결의식을 행치 아니한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그 사람은 정결례를 행치 않은 범죄자로 취급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정결의식 대신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레위기 4-5장에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레5:2-6).
이때 속죄제사는 어떻게 드리느냐? 레위기 4장에 보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레4:17)속죄제를 드리고자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은 제물을 잡아 그 피를 우선 먼저 회막 안 여호와 앞장에 일곱번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앞장은 무엇을 가리키느냐면? 바로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피를 뿌리라고 했느냐?
첫째,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제일 먼저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집니다.
(사59: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따라서 여기 휘장에 피를 일곱 번 뿌리라는 것은 곧 뭘 말하느냐?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떡하라는 말입니까? 바로 여기 휘장에 피를 뿌려 속죄 제사를 드리므로 죄로 말미암아 멀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일먼저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둘째, 죄를 범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기도의 능력이 사라지고 힘을 잃게 됩니다. 역사가 없습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싸운 후 교회 와서 기도하려고 해보세요. 기도가 안됩니다. 이웃간에 서로 미워하고 말다툼하고 기도하려고 해보세요. 기도가 안됩니다(삼상28:6-7). 그래서 레위기4:18에 보면 그 다음 피를 어디다 뿌리고 했느냐? 분향단에 뿌리라고 했습니다. 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예배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기쁨이 없습니다. 교회오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제단을 멀리하게 되고, 교회를 멀리하게 됩니다.그러니 분향단에 피를 뿌려 속죄제를 드리므로 기도의 능력을 다시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죄로 인하여 예배생활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향기를 사라지게 하고,환난과 곤고를 당하게 합니다.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과 복을 차단해 버리고 끊어버립니다(롬2:9-10).
(고전10:31)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부정한 짐승을 금하신 목적
1)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생과 건강을 위해서
가령, 식용이 금지된 부정한 짐승(돼지, 뱀, 지네, 솔개...등)보면 대부분 병을 옮기거나 불결한 곳에 사는 짐승들입니다.반면에 식용이 허락된 짐승(사슴, 소, 양, 노루...등)대부분 깨끗하고 정결한곳에 살 뿐 아니라, 영양가가 풍부한 짐승들입니다.
2)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시기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고,하나님의 뜻을 이룩하시기 위해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그런데,이스라엘 백성들 가까이 살고 있던 이방인들은 어떠냐? 우상을 섬기고, 그런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서 우상의 제물로 드리고우상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음식을 먹으면서 음란을 행하고, 죄도 범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택한 백성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령,우리 믿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먹는다. 이건 세상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구별이 안되는 것입니다. 누가 이스라엘 백성이고, 누가 이방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이스라엘백성들의 신앙을 위해서 못 먹게 하셨습니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 백성으로써 이방인들과 친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그들이 먹는 그런 부정한 짐승들을 먹는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자연히 이방인들과 가까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죄도 범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술,담배 먹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지만 신앙에 해가 되면 됐지 덕이 되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못 먹게 하는 것이다.이방인들과 결혼을 금하신 것도 그렇습니다.신앙에 유익이 안되기 때문이다. 옛말에“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고 했습니다. 시편1편에도 복있는 자는 그런 자들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