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에서 나타나 험한 파도를 해치며 단숨에 쏜살처럼 달려오는 범선. 바람을 잔뜩 안은 팽팽한 돛 위로 섬뜩한 흰 해골이 그려진 검은 깃발이 펄럭이고, 목표가 된 상선은 여지없이 약탈당하고 승리한 해적선 위에서는 거친 바다 사나이들의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18세기 대영제국의 비호아래 지금의 자메-<보기만 해도 시원한 럼 베이스의 트로피칼 칵테일들>-이카를 위시한 카리브해를 근거지로 활약한 해적들. 숱한 전설속에 항상 모험과 사랑, 낭만을 그리는 시와 소설의 모델이 되어온 사람들입니다. 어릴적 읽은 보물선과 피터팬에 나오는 해적들을 기억하시나요? 버트랭카스터가 주연한 명화 "진홍의 도적"이래 헐리우드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였지요.
영화 속 해적들이 커다란 나무통에서 잔에 넘치게 따라 호쾌하게 마시던 술이 바로 럼(Rum)입니다. 해적들 만큼이나 많은 시인들을매혹시키고 찬미의 대상이 되어온 술이죠. 그럼 럼이란 어떤 술일까요?
럼(Rum)의 정의, 역사
럼은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의 액을 사용하여 발효, 증류, 숙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증류주를 통칭합니다. 럼의 역사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대게 카리브해서인도 제도의 식민의 역사와 괘를 같이합니다.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인들이 처음 서인도 제도를 발견한 이후 이를 식민지화하고 대규모로 사탕수수를 경작하여 사탕의 공급지로 삼았습니다.
바로 이 서인도 제도가 사탕수수를 주원료로한 럼의 원산지인 것은 확실합니다만 언제부터 누가 만들기 시작한 것인지는 불명확합니다. 다만 17세기 초 발바도스 섬에 이주해온 증류 기술을 갖고 있는 영국인들이 최초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는 정도입니다. 18세기들어 이 일대에서의 해적들의 활약과 함께 럼은 널리 알려지게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신대륙을 지배하던 서구 열강들은 식민 정책을 수행하기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많은 노예들을 데려왔는데 그들을 매매하던 기착지가 바로 서인도 제도의 섬들입니다. 노예를 부린 빈 배들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만들고난 찌꺼기인 당밀을 싣고미국으로 가서 이를 증류하여 럼으로 만들고 다시 럼을 싣고 유럽과 아프리카로 가 이를 팔아 노예를 사 왔던 것입니다. 초기 럼은 이같은 삼각 무역을 통해 성장해 왔습니다. 독립 이전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선호되던 술도 위스키가 아니라 럼이었습니다.
럼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영국령 발바도스 섬에 대한 옛 문서에 나오는 것으로 "1651년 증류주가 생산되었다. 이것을 원주민들은 럼블리온(Rumbullion)이라 부르는데 현지어로 흥분 또는 소동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럼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아닐까 여겨지는 기록입니다.
또한 1743년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해 에드워드 바논이라는 영국 제독이 럼에 물을 탄 음료를 배에 싣고 부하들에게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해군을 괴멸시킨 저 유명한 영국의 넬슨 제독.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나 결국 전사한 넬슨 제독의 유해는 부패를 막기 위해 럼이 든 술통에 넣어 본국으로 이송해 왔고 이후 영국인들은 다크럼(Dark Rum)을 넬슨의 피(Nelson's Blood)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1898년 미국의 도움으로 쿠바가 독립하고 기술자, 군인 등많은 미국인들이 쿠바에서 살게 되는데 데큐리(Daiquiri), 큐바 리브레(Cuba Libre) 등의 럼 베이스 칵테일이 이들에 의해 창안되어 미국에 소개되었고 20세기 초 금주령 시대에 칵테일의 발전과 함께 럼도 시원한 트로피칼 칵테일의 기주로 크게 각광받아 오늘에 이르게됩니다.
럼의 종류
럼은 그 맛의 스타일에 따라 라이트 럼(Light Rum)과 헤비 럼(Heavy Rum)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드라이하고 가벼운 풍미의 라이트 럼은 주로 스페인 통치를 받았던 쿠바, 버진 아일랜드, 푸에르토리코에서 생산되고 롱드링크 스타일칵테일 기주로 미국에서 선호되죠. 진한 향의 무거운 헤비 럼은 주로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쟈마이카, 하이티, 바베이도스 등에서 생산되는데 유럽에서 인기입니다.
럼은 또한 그 색에따라 실버 럼(Silver Rum), 골드 럼(Gold Rum), 다크 럼(Dark Rum)으로 나뉘는데제조 방법과 그 맛의 특징이 각기 다릅니다. 럼의 종류 별 특징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럼의 제조 방법
럼의 일반적 제조 방법은 다른 증류주(Spirits)의 제조 방법과 유사합니다. 사탕수수를 롤러에 넣어 으깨면 사탕즙이생기는데 이 즙을 그대로 발효시키기도 하고 즙에서 설탕을 채취하고 남는 찌꺼기인 당밀(Molasses)을 이용하여 발효, 증류시키기도 합니다. 대게의 경우 당밀을 원료로 사용하지요.
사탕즙을 끓여 시럽으로 농축시켜 설탕을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약5%의 당분이 당밀로 남게됩니다. 당밀 자체가 당분이므로 당화과정은 불필요합니다. 사탕수수의 당액은 연한 산성으로 풍미가 독특하고 달콤한 맛이 있습니다. 럼의 독특한 풍미도 이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 당액에 물을 더하여 당분이 12~16%쯤 되게 만든 후 이스트를 첨가하여 발효시킵니다. 발효기간이나 방법은 럼의 종류에따라 다릅니다만 이 발효 공정에따라 헤비 타잎이 되었다가 미디엄 타잎이 되기도 하므로 현재는 기계로 발효 과정의 온도를 세심하게 조절하고 있습니다.
발효과 끝난 후 이를 증류시키고 다시 셰리 와인을 저장했던 빈통이나 화이트 오크 통의 안을 불로 그을린 통에서 숙성시키는데 그 자세한 공정은 럼의 종류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맛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