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입구 벽돌을 들어내는 모습
무덤 발굴 직전 고유제(무덤 주인의 넋을 위로)
첫 발굴 모습
무령왕릉 축조 발굴 모형
무령왕릉 지석(국보 제163호)
왕릉 안으로 들어가는 널길 오른쪽에 있던 왕의 지석 표면에는 "무령왕이 62세 되던 523년 5월 7일 붕어(崩御)하여 525년 8월 12일에 대묘大墓·王陵에 모시고 지상과 같이 기록하여 둔다." 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방위표(方位表) 또는 능(陵)의 위치를 표시하는 묘역도(墓域圖)를 나타내 10간(干) 12지(支)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영동 대장군은 무령왕 21년(510년)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냈을 때 양 고조(高祖)로부터 받은 작호인데, 당시 양나라의 제2품에 해당하는 벼슬이었다. 사마는 삼국사기의 사마(斯摩)·륭(隆), 일본 서기의 사마와 같은 무령왕의 이름이다. 그런데 무령왕의 죽음에 대해서는 천자(天子)나 황제의 죽음에만 사용하는 가장 격이 높은 붕(崩)자를 사용하고 있어 백제 왕으로서의 주체성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한편 무령왕이 붕어한 때(523년 5월)에서부터 장례(525년 8월)를 치르기까지의 27개월 5일 동안 은 빈(殯)의 상태로 있다가 12일을 택해서 왕릉에 장사 지낸 것으로 되어 있어 백제의 장례 풍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http://mahan.wonkwang.ac.kr/culture/2003-3/report/barkjongpo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