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창작동요제에 나가서 상을 탈까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이런 생각이 있어서인지 예선에 떨어지면 그 고통이 1주일은 갔습니다.
오로지 창작동요에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도 기다렸던 MBC창작동요제에 4수를 해서 출연을 했답니다.
4번만에 되었으니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참으로 전국방송에 출연을 하니까 좋긴 좋습디다.
음반도 나오고 책으로도 출판을 해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예선을 합격하고도 충격도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각종 창작동요대회는 상이 따르기 때문인데 98년 동화속의 꿈나라로 대회를 참여 했습니다.
노래를 참으로 잘했는데 상을 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출연을 한 6명의 아이들이 다 울었습니다.
오직 상을 타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것도 5월 5일 어린이날에 말입니다.
작곡자인 저도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이런 전국 창작동요대회에 10군데 이상은 다닌 것 같습니다.
2001년 여름방학때 화랑초등학교에서 학급경영연수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놀랐만한 것을 발견을 했습니다.
예전에 창작동요대회에만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러한 관심을 학급경영쪽으로 돌려야 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즐거운 생활시간에 활용을 하면 기막히겠구나
아이들이 좋아 하겠구나.
동요보급도 시키겠구나
멋진 발상을 했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줄넘기, 술래가 된 봄, 서당개 3년이면, 동화속의 꿈나라는 아이들의 입에서 노래로 불려졌습니다.
학급시간에도 즐생시간을 이용해 교과서 노래와 병행을 하면서 미술실에서 율동과 함께 노래를 가르치니 아이들은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은 동시를 쓰면 그곳에다가 곡을 붙여서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헤어지는 날에는 그 곡들을 모아서 선물로 책자를 주었습니다. 너무도 멋진 선물이 아닙니까?
동요를 학급경영에 활용을 하니 나의 소명이 무엇인가도 발견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와같은 마음이 생기니까 더욱 더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또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나를 잘 따랐고 헤어지는 날 어찌 그리도 마음이 허전한지 헤어지기가 싫었습니다.
창작동요제의 관심이 이제는 학급경영으로 갔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되었고 나 또한 왜 그렇게도 마음 이 평안한지
그 이유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런 믿소사3기가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