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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심이명 眞心異名 (10)
有時에 呼爲自己하니 衆生本性故요
유시 호위자기 중생본성고
有時에 名爲正眼하니 鑑諸有相故요
유시 명위정안 감제유상고
有時에 號曰妙心하니 虛靈寂照故요
유시 호왈묘심 허령적조고
有時에 名曰主人翁하니 從來荷負故요
유시 명왈주인옹 종래하부고
有時에 呼爲無底鉢하니 隨處生涯故요
유시 호위무저발 수처생애고
有時에 喚作沒絃琴하니 韻出今時故요
유시 환작몰현금 운출금시고
有時에 號曰無盡燈하니 照破迷情故요
유시 호왈무진등 조파미정고
有時에 名曰無根樹하니 根제堅牢故요
유시 명왈무근수 근제견뇌고
有時에 呼爲吹毛劒하니 截斷塵根故요
유시 호위취모검 절단진근고
有時에 喚作無爲國하니 海晏河淸故요
유시 환작무위국 해안하청고
有時에 號曰牟尼珠하니 濟益貧窮故요
유시 호왈모니주 제익부궁고
有時에 名曰無유鎖하니 關閉六情故요.
유시 명왈무유쇄 관폐육정고
乃至 名泥牛. 木馬.心源 .心印 心鏡.心月.心珠라하야
내지 명누우 목마 심원 심인 심경 심월 심주
種種異名을 不可具錄이니 若達眞心하면 諸名을 盡曉요.
종종이명 불가구록 약달진심 제명 진효
昧此眞心하면 諸名에 皆滯니 故於眞心에 切宜子細니라.
매차진심 제명 개체 고어진심 절의자세
應感隨機(응감수기) 라고 하는 말은
應感(응감)
應(응)은 맞춘다 感(감)은 느낀다.
느끼는데 따라서 내가 맞추어 주는 거예요. 상대가 느끼는 데로 내가 맞추어 준다. 또 근기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근기에 또 따라 준다. 그것이 말하자 면은 사람 따라서 수준이 다르고. 근기가 다르고. 성명이 다르고 하니까 거기에 맞추어서 이런저런 이름을 달리 부를 수가 있는 거죠.
어차피 진심 하나 가지고 이름 짓는 것은 짓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이름이야 작명가 마음대로지요. 자기가 지어놓고 몇 년 뒤에 가면은 이 이름 누가 지었느냐고, 순 엉터리 이름이라고 이렇게 하듯이 이름 짓는 사람 마음대로예요. 그러니까 진심은 하나예요. 진심은 하나인데 그저 입장 따라서. 경우 따라서. 상황 따라서 이름을 여러 가지로 할 수가 있는 거죠. 뭐라고 하는가 하니,
有時에 呼爲自己라 했어요.
유시 호위자기
아주 제일 좋은 낱말이네요. 자기! 자기라고 한다 이 말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를 보고 자기가 자기가 그러지요. 자기가 남을 보고 왜 자기라고 그래요? 자기는 어디까지나 자기고 그런데, 왜 남을 보고 자기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게 왜 그래요? 누가 한번 설명해봐요.
그 뜻을 아시는 모양이네요. 상대를 보고 자기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뜻을 아는 가봐요. (ㅎㅎㅎ~) 지금 우리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것이 본래 불교의 영루고? 스스로 自(자)자. 몸 己(기). 자기 몸이라는 뜻 이예요. 그야말로 자기예요.
有時(유시)에는
어떤 때는 불러서 자기라고 하니
衆生本性故요
중생본성고
중생들의 본 성품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라고 한다. 또
有時에 名爲正眼이라 그랬어요.
유시 명위정안
正眼(정안)
바를 正(정)자. 눈 眼(안)자, 진심을 가지고 혹은 바른 눈이다. 참 바른 눈이 중요하지요. 안목이 발라야 된다. 소견이 발라야 된다. 그런 말을 조사 스님들은 참 잘 합니다.
우리가 임제록에서 우리가 수차 보았듯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正知見(정지견)! 바른 지견! 바른 소견. 바른 안목. 이것이 정안이라고 하는 것이 바른 소견 바른 안목입니다. 제일 중요하지요.
수행이 되었든 그냥 보통 평범한 인생살이가 되었든 간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바른 안목이 제일 중요해요. 정안이라고 하나니,
鑑諸有相故요
감제유상고
鑑(감)! 감은 거울 鑑자니까.
살핀다. 비춘다 하는 것입니다.
諸有相(제유상)
모든 있는 모습들을 환히 비춘다 이 말입니다.
바른 눈이 되어야 거울처럼! 거울이 검은색이 가면은 검게 비추고. 푸른색이 가면은 푸른색을 비추고. 김씨가 가면은 김씨를 비추고. 이씨가 가면은 이씨를 비추고. 남자가 가면은 남자. 여자가 가면은 여자. 남자를 여자로 비추고 여자를 남자로 비추는 일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정안이지 바른 눈이지요. 그렇게 봐야 되는데 우리가 그렇게 못 볼 때가 많아요.
名爲正眼이니 鑑諸有相故이라
명위정안 감제유상
모든 있는 모양들을 전부 거울처럼 환히 비추며 또
有時에는 號曰妙心이라 그래요
유시 호왈묘심
妙心(묘심)
미묘할 妙자. 마음 心자
미묘한 마음이다. 아주 미묘하다.
미묘하다 라고 하는 말은 불가사의 하다.
妙(묘)자가 불가사의 하다 라는 뜻입니다. 묘심이니,
虛靈寂照故요
허령적조고
허령적조! 妙자 이것을 풀면은 소녀예요.
소녀! 소녀는 역시 불가사의 한 모양입니다.
불교에서 묘자는 불가사의 하다 그래요.
虛靈寂照故야
허령적조고
우리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절대 분명히 있어요.
세 살 먹은 아이도 마음 하면은 다 있다 그래요.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잡아내려면 누구도 잡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능력이 없어서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석가 달마도 이것이 마음이다 라고 잡아 낸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 분들이 잡아낼 수 있었을 것 같으면은요. 이렇게 잡아 내어 가지고 다 보여 주었을 거예요. 다 보여 주었을 텐데 그런 역사는 없습니다.
왜냐? 허령하기 때문에 텅 빌 虛(허)자. 그리고 신령스러울 靈(령)자. 비고 신령스러운 거예요. 어떤 형체를 갖추고 있으면 이것은 허영 한 것이 아닙니다. 못하는 것도 아니 예요. 그것은 분석하면 분석이 가능해요.
형체를 갖추고 있으면 이것은 분석이 가능하다고요. 그런데 형체가 없으면 그것은 분석이 안 되는 거예요. 허령해요. 허하고 아주 텅 비었고 그리고 신령스럽고. 적조라고 하는 말은, 고요하면서 항상 비춰. 적이라는 말은 안에 텅텅 비었기 때문에 조용해요. 아주 공적하고 조용한데 그러나 또 그 작용은 부단히 일분 일초도 쉬지 않고 비추고 있어요. 감지하고 있다. 뭐라고 할까? 센서라고 할까? 다 감지하고 있는 거예요. 이 照(조)자가 그런 뜻이 예요. 비출 조자 아닙니까? 전부 감시하고 있는 거예요.
칭찬하면 칭찬하는데 즉각 반응하고. 욕하면 욕하는데 즉각 반응하고. 더우면 더운데 반응하고 어느새 감지를 해 가지고 그냥 그대로 반응을 한다고요. 이것이 우리의 그야말로 묘심입니다. 미묘한 마음이죠. 미묘! 미묘한 작용이다.
우리 진심을 조사 스님들이 묘심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지요. 묘심이라! 虛靈寂照(허령적조)! 참 표현을 잘 했어요. 아주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사실은 설명이 거의 완벽합니다. 허령적조! 또
有時에는 名曰 主人翁그랬어요
유시 명왈 주인옹
主人翁(주인옹)
늙은이 翁(옹)자인데 주인공이라고 하는 말도 불교에서는 써요. 주인공아, 주인공아 그런 말도 쓰고 하는데 여기서는 주인옹! 주인 늙은이 그 말입니다. 주인옹이라고 이름을 하는데
從來荷負故요
종래하부고
荷負(하부)
하부는 짊어졌다 이 말입니다.
종래는 본래부터. 처음부터 이런 뜻인데,
하부라고 하는 말은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지고 있다.
왜냐? 한 집안의 주인 늙은이 같으면은 그 집안의 모든 역사. 노력. 주인옹이 그 집안의 대 소사. 결정권. 이것을 전부 다 짊어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은 어른 있는데 가서 물어 보라고 그래요. 집안의 어른 있는데 물어보면 되거든요. 어른이 결정하는 데로 따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어른이 다 짊어지고 있어요. 종래로 본래로부터 그 분이 하부하고 있다. 다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진심이요,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지고 있습니다. 온갖 결정권이 다 내 마음에 달렸어요. 그 말입니다. 그렇게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결정은 자기 마음이 하는 거예요. 남이 뭐라고 해서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듣지도 않지요. 요즈음 사람들 누가 듣나요? 자기 마음대로 하지요. 자기마음대로 하게끔 되어 있어요. 본래 생긴 것이 자기 마음대로 하게끔 되어 있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그러나 시대적으로 관습에 의해서 어른들의 말을 듣던 그런 시절에는, 어른들의 말을 어느 정도 참고하고 또 성격 따라서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또 잘 어른들의 말을 듣고 살고, 본래 안 듣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아예 자기 멋대로 하고, 본래는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왜냐? 주인옹이니까요. 자기가 주인이니까. 자기면서 주인이니까. 진심이라는 것이 그렇게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고 해서 만만히 볼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린아이도 진심이 없으면 몰라도 진심이 있는 한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 예요. 어린아이들 여러분들이 낳았다고 여러분들 뜻대로 됩디까? 안돼요. 안 된다고요.
왜냐? 완전한 독립된 인격체기 때문에. 완전한 인격체기 때문에 어떻게 안 된다고요. 억지로 해도 겉으로는 폭력이 무서워서 따를지 모르지마는, 마음은 절대 승복 안 해요. 마음이 승복 안 하는데 그것 뭐 소용 있나요. 나중에 누적이 돼 가지고 오히려 이자까지 갚을 때가 있다고요. 그런 이치를 잘 알고 해야 돼요. 그런 이치를 잘 알고 애들 교육 시켜야 돼요.
그것이 자꾸 누적이 되고 쌓인다고요. 쌓여 가지고 언젠가는 그것이 나중에 다 몇 배로 갚는 그런 수가 생기기도 하고 그럽니다. 참 그러니까 인격체도 완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우리가 알고 존중 해줘야 되고, 또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主人翁(주인옹)이니 본래부터 荷負(하부) 하고 있다. 다 자기가 자기 일을 책임지고 있다 이 말입니다. 한 집안에 일을 어떤 노인이, 주인 늙은이가 다 책임지고 있듯이 자기 인생 사 자기 모든 진로! 전부 자기가 전부 책임지고 있다. 그것은 뭔고 하니 진심!
有時에 呼爲無底鉢이라
유시 호위무저발
참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어떤 때는 불러서 무저발이라고 한다. 무저발을 삼는다. 무저발이라고 부른다. 밑 없는 바리때 무저! 밑 없는 독이라는 것도 있지요. 무저! 밑 없는 독에 물 붓기라 듯이, 여기 진짜 밑 없는 바리때! 밑이 없는 바리때라는 뜻입니다. 밑이 펑 뚫린 바리때라 이 말입니다. 무저발! 그런데 설명이 뭔고 하니
隨處生涯故라
수처생애고
수처생애라고 하는 것은 곳을 따라서 살아 간다 이 말입니다. 사람이요, 상황 따라서 어떤 상황이든 살아갈 수가 있어요. 수처생애라는 말이 그 말이 예요. 어떤 상황이든 살 수 있다. 옷이 없으면 옷 없이도 살 수가 있어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문화 생활이라고 하지요. 한 5~ 60년 전 생활하고 상상도 못할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지금 사람들을 5~60년 전으로 돌아가 살라고 하면은 살기가 어려울지 몰라요. 그러나 그런 상황이 딱 닥치면은 또 살게 되어 있어요. 살게 되어 있다고요.
수처생애예요. 곳을 따라서 살아간다. 생애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보통 생애!생애 하는데 사는 일이예요. 다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 어떠한 경우라도 다 살게 되어 있어요. 왜인 고하니 살아있는 사람은 살 길을 찾게 되어 있어요.
저기 산에 이렇게 다니다 보면은 그 벼랑에 매달려서 살고있는 나무! 참 신기하잖아요. 어떻게 저렇게 물도 없는데 서 저렇게 사는 가. 땅에 있는 나무는 가물면 가뭄을 타 가지고 죽기도 하고 하는데, 바위에 매달려 있는 나무가 어떻게 사는지 참 알 수가 없어요. 너무나 신기해요. 그런데 또 살게 되어 있어요. 상황 따라서 살게 돼 있어요. 모든 구조가 거기에 맞게 살아가는 거죠.
여러분들 동물 뭐 기린인가 참 신기한 일 많잖아요. 그 오십도 육십도 펄펄 끓는 사막에 살아 움직이는 그런 생물들 동물들 보십시오. 정말 신기하잖아요. 뭐 하나 먹을 것 하나 없는 그런 동네인데도 거기서 다 산다고요. 어쩌다 잘못 떨어져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 예요. 거기 그냥 그렇게 살아요. 그런데 거기에 살던 다른 어떤 것은 습지에나 같다 놓으면은 오히려 죽지요. 살게 되어 있어요.
누가 죽었을 때는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들이 부모가 갑자기 죽어버리면은 부모를 잃고 저 어린 것이 어떻게 사는가? 정말 앞이 캄캄하고 곧 따라서 죽을 것 같죠. 또 그렇지만 또 산 사람은 살게 돼 있고 그래서 살더라고요.
그 순간은 죽느니 사느니 해도 내가 안 죽고는 못 배긴다 해도, 결국은 또 살게 돼 있어요. 거기에 적응하게 돼 있으니까. 그래서 수처생애! 때에 맞추어서. 곳에 따라서 살아간다 이 말입니다.
무저발이라고 하는 말은 꼭 바룻대가 밑이 없다는 의미보다는 스님들의 발우를 혹은 무저발이라고 그래요. 무저발! 스님들은 바리때 하나로서 그저 어디를 가도 살 수 있잖아요. 바리때 하나만 들면 사는 거예요. 언제든지 바리때 내 밀면 밥 주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든 바리때 하나만 가지면 산다. 그래서 그것을 그냥 발우라고 하지 않고 스님들 바리때라고 하는 뜻에서 또 그리고 더 묘미를 불어 넣으려고 무저발! 밑 없는 발우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바리때 하나만 가지면 어디든지 가면 살거든요.
남방에도 가면 바리때만 가지고 나가면 주더라 구요. 얼마든지 먹고 살 수가 있어요. 얻어 먹겠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얻어먹겠다는 데 뭐라고 할 수가 없지요. 얻어먹겠다고 나서면은 못살 사람 없어요. 다 살아요. 구걸하며 살면은 못살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구걸을 못하니까 못살죠. 구걸만 할 수 있으면 다 살아요. 수처생애. 어디 가든지 살 수 있다 이렇게 번역 했으면 좋겠네요.
有時에는 喚作沒絃琴이라
유시 환작몰현금
환! 부를 喚자 불러서 몰현금이라고 한다. 몰현! 없을 沒(몰)자 빠질絃(현)자. 줄이 없는 거문고! 거문고는 줄이 있어야 되는데 줄이 없는 거문고! 앞서 무저발이라고 하는 말과 맛이 같습니다. 같은 뜻이다. 몰 현금이니,
韻出今時故라 그랬습니다
운출금시고
韻出今時(운출금시)라
韻(운)은 소리지요. 소리를 낸다.
韻出(운출)! 금시를 소리 낸다 했는데, 여기
今時(금시)라고 하는 말은
분별각지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분별각지!
금시를 그렇게 표현해요. 금시라고 하는 것은 지금이지요. 지금이라고 하는 그 말속에는 우리가 모든 것을 사량 분별하고. 이해하고. 또 감지하고. 또 온갖 것을 지금 때는 어느 때고. 기후는 어떻고. 무엇을 하는 때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이런 것을 다 분별하잖아요.
그리고 각지! 깨달을 覺입니다. 깨달아 아는 거예요. 다 감각하고 지각하는 그런 능력이 있지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을 분별하고 지각하는 것들을 계속 소리 낸다. 말하자 면은 소리로서 표현하고 있다. 소리 내는 것이 거문고이고 그러면 그 소리가 여기서 아주 멋지게 조사 스님들이 표현한 것이 바로 우리 진심을 “몰현금이라.” 참 좋지요.
어떻게 보면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 같지. “거문고다.” 또는 “바룻대다.” “무저발이다.” “몰현금이다.” 참 조사 스님들 답지요. 경전에서 하는 것은 어지간히 좀 이해가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마는, 여기서는 무저발이니 몰 현금이니 참 아주 멋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有時에는 號曰無盡燈이라 그랬어요
유시 호왈무진등
다함이 없는 등불! 무진등!
이제 등불 키는 때가 왔지요. 다 함이 없는 등불! 이것은 등불이 아무리 큰 초를 켜놓아도 그것은 하루면 다 닳아 버리지 않습니까? 기름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 등불은 아니예요. 꺼질 때가 없어요. 꺼지지 않는 등불이지요. 아무리 수천 년 수만 년이 흘러도 이 등불은 꺼지지 아니해요. 전생에도 켜있고. 금 생에도 켜있고. 내 생에도 또 켜있는 것이 이 등불이예요. 무진등!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참 마음의 등불! 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금년 초파일에는 무진 등을 켜야 되겠네요. 무진 등! 다함이 없는 등불에 불을 밝히자. 아주 좋은 뜻이네요. 우리진심! 진심에 불을 밝힌다. 무진등! 그 등불이 어떤 일을 하느냐?
照破迷情故이라 그랬습니다
조파미정고
照破(조파)
조파는 비춰서 깨뜨린다. 무엇을? 미혹한 생각을. 미혹한 마음을. 정자는 미혹할 情이라고 하는데 미혹한 마음입니다. 미혹한 생각. 아주 캄캄한 생각. 우리 중생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전부 캄캄하거든요. 그지없이 캄캄하다고요.
그래서 캄캄한 마음들을 이 무진등! 참마음의 진심의 등불! 꺼지지않는 이 등불로서 환히 좀 비추자 이거예요. 그러니까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밝아요. 그래서 마음 밝으려고 마음공부하고 미혹하지 않는 거죠. 참 좋은 표현입니다. 무진 등이라고 하는데 照破迷情(조파미정)이라. 참 시시한 설명가지 고는 제대로 설명이 안됩니다. 그냥 가만히 음미를 하세요.
다함이 없는 등불이고 그것은 우리들의 미혹한 마음을 밝힌다. 밝혀서 그 미혹한 마음들을 다 없애준다. 조파! 없애준다 이 말입니다. 미혹한 생각들을 다 밝혀서 없애준다. 참 등불 키는 의미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말이네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뭔가 안 풀리고 답답하고 뭐 도대체 실마리를 못 찾겠고 그럴 때, 정말 다함이 없는 등불! 진심의 등불이 환히 이렇게 비추면은 얼마나 좋겠어요. 대개 우리는 그 상황을 따라가니까. 사물을 좇아가니까 어두워요.
자기 마음으로 돌이키면은 자기 진심자라로 돌아오면은 밝은데, 자꾸 사물을 좇아가다 보면은 그만 길을 잃어버리거든요. 길 잃어버리면 그것이 뭐예요? 그게 迷精(미정)이라. 그럴 때 마음으로 돌아가서 환하게 밝혀야 할 그런 가르침입니다. 그 다음에
有時에는 名曰無根樹라
유시 명왈무근수
뿌리 없는 나무다. 참 멋지지요.
무진 등! 무근 수! 무저발! 몰 현금!
무근 수! 뿌리 없는 나무인데
根제堅牢故라
근제견뇌고
根제(근제)
뿌리 근(根)자 꼭지 제.
뿌리와 꼭지가 줄기라고 할까요?
뿌리에서 많이 난 그런 줄기,
뿌리에서 난 꼭지가 견고하다.
堅牢(견뇌)라
굳을 堅견자 견고할 牢(뇌)자.
아주 굳고 견고하다. 무근수니까
그런데 이 우리의 마음은 굳기로 하면은 아주 한없이 굳다. 그래서 도저히 삭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그게 꽉 맺혀있다. 꽉 맺혀있는 것 같이 그런 역할도 하고 그런 속성도 있다. 우리 진심이 그 뜻으로 보면 됩니다. 그 다음
有時에는 呼爲吹毛劒이다
유시 호위취모검
吹毛劒(취모검)
이것은 검객들이 아주 가지고 싶어하는 칼이 취모검인데. 낙야검?이라고 하는 것도 있고 무협지를 읽어보면은 별별 중국의 유명한 칼이 있고, 그 칼을 서로 빼앗으려고 중국에서는 아주 그냥 혈투가 벌어지고 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고 하는데,
취모검이라고 하는 것은 칼을 이렇게 세워놓고 칼날에다가 머리를 삭 뽑아 가지고 얹어 놓으면은요. 그대로 머리카락이 잘라져요. 그 정도로 칼이 날카로운 칼이다. 아무리 칼날을 제대로 세워도 머리카락은 안잘라 지거든요. 머리카락이 아주 안 잘라지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칼은 놓고 삭 불기만 하면 그냥 다 잘라진다. 취모검이야. 취모! 불 吹(취)자. 터럭 毛(모)자. 머리카락을 다 자르는 그런 칼입니다. 우리 진심을 그렇게도 표현합니다. 섬 짓 하지요. 우리 참마음이 그런 역할도 하고. 그런 속성도. 그런 능력도 가지고 있다. 왜 그러냐?
截斷塵根故라
절단진근고
塵根(진근)
진은 뭐지요? 육진(六塵). 근은 육근(六根). 육진 육근을 전부 잘라버린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육근 육진을 십이 처(十二 處)라고 그럽니다. 십이 처! 육근 육진을 합하면 십이가 되지요. 십이 처라. 곳 處자를 쓰거든요. 육근은 ‘안 이 비 설 신 의’, ‘색 성 향 미 촉 법’. 그렇게 해서 이것은 불교의 A B C 지요. 기본이니까 다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눈 귀 코 혀 입’ 이렇게 하고 그 대상. 또 사물. 냄새 소리 이런 것, 그런 것을 전부 합하면 열 두 곳인데 우리는 이 십이 처를 떠나서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아무것도 없어요.
‘안 이 비 설 신 의’와 ‘색 성 향 미 촉 법’에 전부 다 소속이 됩니다. 이 處(처)라는 말은 소속이다. 소속된다 이 말입니다. 십이 처에 다 소속이 돼요.
기상천외한 그 어떤 것도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십이 처에 소속되지 않는 것이 있는가? 전부 이 십이 처에, 열 두 가지 곳에 다 소속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처(處)예요. 그렇게 열 두 곳만 나누어 놓고 모든 생명이 전부 다 소속이 돼 버려요. 전부 열 두 곳에 소속이 된다고 해서 그래서 處(처)자를 씁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요. 우리가 그냥 십이 처 속에서 그냥 들락날락하고 거기서 그냥 온갖 치다꺼리 다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세계인데, 우리 진심이 그것을 다 자르는 거예요.
截斷塵根
절단진근
십이 처를 다 잘라버린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은 자르겠어요? 우리는 지금 열 두 곳으로 마음을 이렇게 주~욱 펼쳐놓고 있습니다. 경계를 좇아가면은 열 두 곳을 펼쳐놓고 있어요.
지금 눈은 앞에 있는 것을 보고. 귀는 내 말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온갖 것 다 그렇게 하는데, 그것이 결국은 우리 진심이 밖에다 전부 펼쳐 놓은 거예요. 펼쳐놓았는데 그 펼쳐놓은 마음을 안으로 향해 버리면은 이 십이 처라고 하는 것은 없어져 버려요. 순식간에 없어집니다.
여러분들 기도할 때 제대로 일념이 되거나, 참선 할 때에 제대로 화두 일념이 되거나 하면요. 십이 처는 순식간에 없어집니다. 내가 여기 앉아 있다고 하는 것도 없고, 내가 화두 들고 있다는 것도 없어요.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 까지도 의식하지 못합니다. 의식하지 못하면은 없어지는 거예요.
불교는요.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또 있지도 안 해요.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다. 내가 의식하는 것만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절단근진이라고 하는 말이 이 한 마음이 참마음이 일념으로 돌아가 버리면은, 일심으로 돌아가 버리면은 십이 처는 전부 사라져버립니다. 그 어떤 소중한 것도 다 사라져 버려요. 그러다가 어떻게 한 생각 깨어나 가지고 우리 의식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온갖 것 다 감지해요.
그 때는 온 우주가 내 눈 안에 들어오고 내 마음 안에 다 감지되어 오고 내 마음속에 그냥 그대로 다 살아 있어요. 그런 것을 따지면 또 십이 처거든요. 그래서 이 취모검이라고 하는 말이 바로 그런 우리의 마음이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有時에 喚作無爲國이라
유시 환작무위국
환이 없는 나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다.
“좋은 일도 안 하는 것만 못하다” 그런 말이 있듯이
여기 보면은
海晏河淸故이라 그랬어요
해안하청
바다는 편안하고 강도 맑다. 해안하청이라는 말은 나라가 아주 태평성대! 태평성대를 해안하청이라 이렇게 표현 합니다. 그것이 뭐가 하는 것이 있고 일거리가 있고 뭐 사건이 벌어지고 하면 그것은 무위가 아니거든요. 유위지. 무위국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임금이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그 사람이 임금인지 누군지 백성이 몰라야 되는 거예요. 왜냐? 백성이 그 사람이 임금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으면 이미 정치는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옛날에 그랬습니다. 그것이 원칙 이예요. 임금을 알아보고 누가 임금인지 이것을 알면 벌써 정치가 시원찮다는 거죠. 서로 자기 일에 충실하고 그러다 보면 알 필요도 없고. 알려질 일도 없고. 그것이 無爲國(무위국)이고 海晏河淸故(해안하청)이예요.
정말 제대로 된 평화로운 세계! 평화로운 세계를 옛날에는 이렇게 불렀어요. 해안하청이다. 바다는 편안하고 물은 맑다 이거예요. 비가 와도 물이 안 맑지요. 강물이 안 맑지요. 흙탕물이지요.
국가가 지금 우리나라 얼마나 흙탕물이 지금 용솟음치고 있습니까? 그야말로 지금 여름에 폭우가 갑자기 쏟아져 가지고 막 흙탕물에 산사태까지 일어나 가지고 그냥 뒤범벅이 돼 가지고 그냥 흘러가는 마치 그런 상황 아닙니까? 딱 그런 상황 이예요.
여기 해안하청 하고는 정 반대지요. 해안하청은요. 편안하고 물도 깨끗하고 아무 할 일도 없고 하늘도 맑고 그런 상황을, 그렇게 자연에 빗대어서 옛날 사람들이 생각을 했는데 참 멋진 표현이지요. 그냥 폭우가 쏟아져서 산사태가 나서 사람도 집도 그냥 사정없이 휘감고 떠내려 가는 그런 상황! 그 다음에,
有時에는 號曰牟尼珠라 그랬어요
유시 호왈모니주
모니주는 마니주라고 할 때도 있고 머니주라고 할 때도 있고 역시 보배인데, 발음이 조금 달라서 그렇지 같습니다. 마니주. 머니주! 여의주라고 그러지요. 마음대로 되는 구슬! 내 뜻대로 되는 구슬! 그 여의주! 여의주가 있으면 어떻게 된다?
濟益貧窮故야
제익빈궁고
빈궁한 것을 전부 건져서 이익 하는 연고로 마니주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진심을 가지고 이 마음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가 될 수 있어요. 누구든지 잘 먹고 잘살 수가 있게 되어있다고요. 보십시오. 모니주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제익빈궁이라 했잖아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끼니를 굶고 말이지 못산다고 하는 것, 그것은 자기 마니주! 마음의 진심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서 그래요. 우리 마음이 사실은 정말 마니주 보다도 더 좋지요. 빈궁한 것은 건져서 전부 이익 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이름을 혹은 머니주! 혹은 여의주, 혹은 마니주라고도 그렇게 부른다. 참 좋은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여의주가 다 있어요. 진심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진심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이제 여기서는 여의주라고 하니까, 다 여의주를 다 가지고 있다 이렇게 알면 됩니다. 그 다음에,
有時에는 名曰無유鎖라 그랬어요
유시 명왈무유쇄
無유鎖(무유쇄)
이것은 자물쇄 없는 말하자 면은 알맹이 없는, 열 곳이 없는 자물쇄 이 말이 예요. 알맹이란 뜻인데, 유자는 열 곳이 없는 자물쇄! 꽉 막힌 자물쇄라. 그래서
關閉六情故요
관폐육정고
육정을 꽉 막아버린다.
關閉(관폐)
관폐라는 말은 막아서 닫아버린다. 꽉 막아서 닫아 버린다. 이 뜻입니다. 열쇠에 구멍이 있어야 열 텐데 구멍 없는 자물통이니까. 무유쇄라고 하는 말은 구멍 없는 자물통 그 말입니다. 그래서 육정을 막아버린다.
六情(육정)
육정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안 이 비 설 신 의’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의식작용 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이 결국 진심이 들어가지고 하는 일이지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전부 이 진심이 들어가지고 보고 듣고 맛보고 뭐 희로애락. 애 오욕. 전부 이 한마음이 들어서 그런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 거죠.
그런데 이 마음 한번 걷어 들이면은 이 한마음 잠 구어 버리고 여는 구멍마저 막아 버리면은, 무유쇄가 되어 버리면은 희로애락 애오욕(喜怒哀樂 愛惡慾)이 도대체 활동 칠 그런 칠정(七情)이나. 육정(六情)이나 전부 올 스톱 돼 버리는 거죠.
그래서 관폐육정이라 그랬습니다. 온갖 여섯 가지 감정이 전부 탁 막힌다. 지금 우리는 한 순간도 감정이 스톱 되지 않습니다. 전부 감정 따라서 흘러가고 감정 따라서 요동하고 움직이고 나부끼고 그러는데,
사실 마음을 다 걷어들여 가지고요. 뭐 화두에나 경전에나 아니면 자기가 전공하고 있는 데나, 아니면 정상적으로 정진을 제대로 해서 화두 일념이 되거나, 기도 일념이 되어버리면은요 일체 올 스톱이지요. 육정 뿐만이 아니라 온갖 정(情)이 다 올 스톱이 된다. 그래서 그것도 우리 진심! 한 마음에 달렸다 이런 뜻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또 속도가 빨라져 가지고,
乃至名泥牛라고도 한다
내지명누우
누우는 뭐예요? 泥牛(진흙소).
木馬(목마).心源(심원) .心印(심인)
心鏡(심경) 마음 거울
心月(심월) 마음 달
心珠(심주) 마음 구슬
이렇게 여러 가지를 조사 스님들은 많이 부르죠. 누우. 목마. 심원. 심인. 심경. 심월. 심주 골라 잡으세요. 마음대로 가져도 좋습니다. 한 두 개씩 가져도 되고. 세 개씩 가져도 되고 참 이름들 다 좋습니다.
자꾸 이런 옛날에 아주 뛰어난 이런 철인들이라 고나 할까? 명인들의 훌륭한 명저들을 우리가 자꾸 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은 이런 말씀을 어디서 보겠어요? 이런 말씀을 어느 소설에서 읽겠어요? 이 불조의 가르침이 아니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種種異名(종종이명)을
다른 가지가지의 이름들을
不可具錄(불가구록)이다
가히 갖춰서 기록을 하지를 못한다.
조사스님들! 어찌 그 많은 도인들이 당신들의 일생, 피나는 노력을 해서 한 세월을 몽땅 바쳐서 깨닫고 그 깨달음에 의해서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하나씩 지어보기도 하고, 또한 수 없이 많은 그것들을 다 기록할 길이 없지요. 목마라는 말이 좋네요. 나무 말이라. 그러니
若達眞心(약달진심)하면
만약에 진심! 초점은 진심에 있습니다.
초점이 흐려지면 안되지요.
진심을 통달하기만 하면은.
諸名을 盡曉요
제명 진효
모든 이름을 진효(盡曉)라
밝을 효(曉)자. 모두 다 환하게 밝다 이 말입니다.
무슨 이름이든지 하면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거죠.무슨 이름을 대었든 간에 ‘아~ 그것도 우리 진심이야. 진심을 그렇게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런 어떤 속성이 있고 꼭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면을 부각 시키려고 그렇게 부르는 거야.’ 라고 이렇게 환히 알 수가 있는 거죠.
諸名을 盡曉요
제명 진효
모든 이름들을 다 밝게 알고
昧此眞心하면은
매차진심
이 진심을 昧(매) 어두워 버리면.
미혹해 버리면은 어둡다 이 말입니다.
達眞心(달진심)! 昧眞心(매진심)!
달은 통달한 것이고.
여기서 매는 진심에 대해서 캄캄하다 이것입니다.
진심에 대해서 캄캄할 것 같으면
諸名에 皆滯니라
매차 개체
모든 이름에 다 막힌다. 체해버린다 이 말입니다.
다 막혀버린다.
그러니까 뭐라고 이름 불러도 막힌다 . 원각이라 해도 무슨 소린지. 불성이라 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열반이라 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여래장이라 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그냥 이름 좇아가다 볼 일 다 보는 거죠. 진심에 도리만 환히 알면은 뭐라고 이름하더라도 거기에 환히 꿰뚫어 안다.
故於眞心에 切宜子細니라
고어진심 절의자세
그러므로 진심에 대해서,우리 참 마음에 대해서,
切宜子細니라
절의자세
간절히 그리고 마땅히
간절하고도 그리고 마땅히 자세하게 하라.
여기 자세히 하라고 할 때도 이렇게 써요. 子자 앞에다가 인(人)변에 아들 (子)자 하기도 하고, 또 이것을 아들 자자만 써 가지고 통용으로 써도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간절히 그리고 마땅히 자세히 좀 알고 있어야 된다. 왜냐? 이 진심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을 살아 가는 사람도 결국은 그 삶을 운용해 가는 그 주체가 뭐겠어요? 결국은 진심이거든요. 진심이 들어서 자기의 삶을 운용해 가는 거예요.
어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미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소련 사람도 북한 사람도 한국 사람도 흑인도 백인도 남자도 여자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자기 인생을 이끌어가는 그 주체는 이 진심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불교적으로 신앙적으로 관계없습니다. 불교하고는 관계없어요. 사실 이런 가르침은요. 불교는 한참 이렇게 제대로 공부하다 보면은요. 막연하게 믿고 의지하고 달라고 매달리고 하던 그런 입장하고 영 다른 그런 어떤 길들이 많이 나타나지요.
사실 보면 이것은 “나는 절대자니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다.” 그런 것은 전혀 없잖아요. 알고 보면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해당되고, 정말 당연한 말씀만 이렇게 해 놓은 거죠. 그래서 이야기 했듯이 이 진심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왜냐? 우리 삶의 주체니까. 우리 삶의 그 열쇠가 여기에 진심에 있기 때문에 우리 삶을 제대로 이끌어 갈 것인가? 못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은 진심에 달려 있지. 뭐 부처님께 달려 있는 것도 아니 요, 뭐 어떤 특정인에게 달려 있는 것도 아니 예요.
그것은 하나의 작은 인연은 되지요. 내 아내다. 내 남편이다. 내 가족이다. 내 부모다. 뭐 우리나라 누구다. 우리나라 어떤 환경이다. 이런 것은 어떤 작은 어떤 인연은 될 수 있고. 어떤 계기는 될 수 있지 만은, 결정적인 그런 열쇄는 못 된다. 결정적인 열쇄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 내 진심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切宜子細하라 그래요
절의자세
간절히, 마땅히 자세히 하라. 진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어야 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늘 진심직설 공부 여기 까지 하겠습니다.
첫댓글 자기 인생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진심이다. 감사 합니다.
'妙心하니 虛靈寂照故'요.....無影樹님 감사드립니다.._()()()_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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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號曰無盡燈하니 照破迷情故요...다함이 없는 등불...고맙습니다. _()()()_
진심은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주체!....... 감사합니다... _()()()_
虛靈해서 아무도 나타내 보일 수 없지만, 세살짜리 어린아이도 있다고 하는 것! 마음입니다 _()()()_
결정적인 열쇠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감사 합니다. _()()()_
有時에 號曰無盡燈하니 照破迷情故요...다함이 없는 등불이고 그것은 우리들의 미혹한 마음을 밝힌다... 감사합니다..._()()()_
참마음의 진심의 등불! 꺼지지않는 이 등불로서 환히 좀 비추자.....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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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靈寂照! 妙心!.... 照破迷情(조파미정): 다함이 없는 등불 우리들의 미혹한 마음을 다 밝혀서 없애준다_()()()_
有時에 名曰無유鎖하니 關閉六情故요... 이 한마음 잠 구어 버리고 여는 구멍마저 막아 버리면(무유쇄가 되어 버리면)은 희로애락 애오욕(喜怒哀樂惡慾)이 도대체 활동 칠 그런 칠정(七情)이나. 육정(六情)이나 전부 올 스톱 돼 버린다... 이 한마음이 쉬면... 큰 스님 감사드립니다... _()()()_
결정적인 열쇠는 내마음,내진심..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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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하나인데 그저 입장 따라서. 경우 따라서. 상황 따라서 이름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는것이다....감사합니다_()()()_
마하 반야 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마하 반야 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마하 반야 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진심에 대해서 切宜子細니라'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조사스님들! 어찌 그 많은 도인들이 당신들의 일생, 피나는 노력을 해서 한 세월을 몽땅 바쳐서 깨닫고 그 깨달음에 의해서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하나씩 지어보기도 하고, 또한 수 없이 많은 그것들을 다 기록할 길이 없지요.' _()_()_()_
저의 삶을 이끌어갈 주체를 깨닫기 위해서~ 자견본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주체는 바로 진심이라는 좋은 가르침 오늘도 새기고 갑니다. 진심에 대해 생각하며 더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
결정적인 열쇠는 내마음 ,,,,,요즈음 집중이 잘되는것은 無影樹님 덕분에.. 열심히 공부 잘하고 있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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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하신 법우님께 감사드립니다..._()_()_()_
虛靈寂照! 妙心!.... 照破迷情(조파미정): 다함이 없는 등불 ...._()()()_
감사합니다. _()()()_
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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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열쇠는 내마음, 진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어야 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眞心 ... _()_
眞心直說 - 無比스님 眞心直說 法門 錄取 第10講 (眞心異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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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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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心異名이 많기도 해요. 일념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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