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마이 뉴스 개인 블로그 <로꾸루 톰이 전하는 캄보디아 이야기>
운영자 김성길 목사의 글로 보이는데, 좋은 내용이라 생각되어 게시합니다.
최초게시일: 2007-2-2 |
크마에 배우는 즐거움
캄보디아의 문맹률은 대략 30~50%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추측된다는 말은 믿을만한 통계를 산출하는 기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한 국가에서 통계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캄보디아는 아직 통계를 산출할 정부 조직이나 행정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U.N 이나 NGO에서 나온 통계들이 자주 사용되지만 이것도 조사 기관에 따라 상이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자료는 거의 없는 편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무튼 캄보디아 국민들 중 많게는 50%, 적게는 30%가 문자 해독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좀 적은 편이고 시골로 가면 높은 편입니다. 이렇게 문맹률이 높은 이유는 가난이 가장 큰 원인이며 다음으로 교육 기반의 부재입니다. 하루하루 먹거리 구하기가 힘겨운 사람들이 학교에서 책을 펴고 공부한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며, 설령 학교를 간다하더라도 학교의 교육 수준이 형편없습니다. 캄보디아의 문맹률이 높은 것이 불가사의가 아니라, 크마에처럼 어려운 문자를 너무 쉽게 사용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불가사의입니다.
저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여러 가지 언어를 배워 보았습니다. 대학 때 신학을 전공하면서 헬라어, 히브리어 그리고 라틴어를 배웠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제 2외국어로 독일어도 좀 배워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영어와 캄보디아 크마에까지 포함하면 모두 6개 국어를 배워본 셈입니다. 그 중에 가장 힘들었던 언어가 독일어였습니다.
흔히 영어는 웃고 들어가서 울고 나오고, 독일어는 울고 들어가서 웃고 나온다는 말을 합니다. 처음 독일어를 대하였을 때 외울 것은 어찌 그리 많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외어야만 하는 문법들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라틴어와 헬라어도 독일어 못지않게 어려운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어려운 독일어를 맛보았고, 뿐만 아니라 언어 구조가 상당히 유사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쉽게 적응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배울 때는 성경 언어를 배운다는 기쁨으로 공부가 특별히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특히 헬라어는 어느 정도 배운 후에는 점점 쉬워지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신학대학원 3학년 2학기 때 고급 헬라어와 헬라어 강독을 할 때는 졸업 학기여서 학점 부담이 상당히 많은 때였지만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쉬웠고 점수도 좋았습니다.
제가 캄보디아에서 크마에를 배운 지 이제 만 3년이 되어갑니다. 크마에를 배우면서 느낀 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가 있다면 바로 크마에라는 생각입니다. 어떤 분이 기네스북에 크마에가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고 등재되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인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배워본 언어와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을 가진 언어는 분명합니다.
크마에의 어려움은 첫째 문자가 지닌 어려움입니다. 자음 32자, 모음 23자, 모두 합쳐야 55개의 알파벳입니다. 영어나 기타 라틴계열의 언어보다야 많지만 중국어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입니다. 그러나 오산입니다. 자음의 32자는 모두 "쯩"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꼬"라는 문자에는 "쯩 꼬"라는 글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발음은 똑같지만 글자의 외형과 사용되는 위치가 전혀 다른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자음이 64자로 늘어납니다. 그래도 여기 정도라면 도전해 볼만합니다. 문제는 자음입니다. 23자의 모음이 어떤 자음에 붙는가에 따라 발음이 달라집니다. 가령 예를 들면 "아"라는 모음이 "꼬"라는 자음과 결합하면 "까"라고 발음되지만 "코"라는 자음과 결합되면 "키어"라는 전혀 다른 "이어"라는 발음이 되어 버립니다. 그나마 발음의 법칙이 규칙적인 변형이라면 힘들어도 외우면 되겠지만 불규칙 변화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쓰기는 "까"라고 쓰고 읽기는 "크"라고 읽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발라이라는 언어입니다.(발라이어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 기원을 둔 언어입니다.) 우리말로 치면 외래어 정도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쓰는 것과 읽는 것은 전혀 다른 글들입니다. 그러니까 한문처럼 한자 한자를 외우지 않으면 발음만 듣고서는 전혀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써 놓은 글을 보고 읽을 수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심지어는 고등학교까지 12년의 국어 교육을 받아도 받아쓰기 제대로 할 수 있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문자의 어려움이 문맹률이 높은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두 번째 발음의 어려움입니다. 우리말도 모음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만, 23자의 크마에 모음은 외국인이 따라 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모음 문자 중에 독립모음은 제외하고도 23 글자입니다만, 결합하는 자음에 따라 발음이 두 종류이기 때문에 실제로 발음은 40여개로 나옵니다. 인간의 성대가 표현할 수 있는 모음이 이렇게 많은지는 크마에를 배우면서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따라 해도 똑같은 발음을 만들기가 힘듭니다. 약간의 차이만 있어도 상대방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가 "뚤뜸붕"이라는 동네인데, 아직도 한 번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힘듭니다. 두어 번 반복해서 말하면 그제야 알아듣고 "뚤뜸붕"이라고 따라하는데 제가 하는 발음이나 현지인이 하는 발음이나 제가 듣기에는 똑같은데 실제로는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나 봅니다. 그래서 못 알아듣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 절망합니다. 과연 크마에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의 어려움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언어와 시장에서 사용하는 일상어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실컷 배워도 말짱 도루묵입니다. 크마에를 배운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교과서에서 "이것은 얼마입니까?"라고 배워서 시장에 가서 배운 척 하고 멋지게 물었습니다. 시장 상인들은 마치 외국어를 듣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내가 틀린 말을 했다 싶어서 다시 확인했는데 분명히 맞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책은 책이고 말은 말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피어사 닛지어이(대화용 언어)"라는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말이 따로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크마에를 배우는 것은 여간한 도전이 아닙니다. 동네 골목에서 크마에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 정말 불가사의입니다. 심지어 우리 앞집에 개도 주인이 크마에로 말하니까 그 말을 알아듣더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강아지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개도 알아듣는 말인데....' 이렇게 어려운 크마에를 꼬맹이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저에게는 불가사의이고, 심지어 길거리의 개도 크마에를 알아듣는다는 사실이 정말 불가사의입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는 것은 하루에 10시간씩 머리 싸매고 공부한 사람이나 쉬엄쉬엄 공부한 사람이나 시간이 지나니까 똑같더군요. 언어는 시간임을 다시 배웁니다. 어렵고 힘든 크마에지만 그래도 일년 정도 배우니까 점점 친근해지는 느낌입니다. T.V 크마에 드라마의 대화중에 아는 표현들이 지나갈 때면 가슴 속에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크마에... 그래도 배울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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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젠가 김성길목사님이 설교 통역을 하시는 걸 봤는데 정말로 잘하시더라구요..처음에는 캄보디아사람이 한국어 배워서 하는 줄 알았어요...무척 잘하셔서요...
오, 그렇군요.. 이분이 그런 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