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하느님을 높이 찬양하여 노래하며 이르기를.......
그 옛날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 자연이치와 천하만물들이여! 그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높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그 형태를 갖추었도다.
하느님 하신 일은 모두 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되 어 있고 그렇게 된 것이요, 그 일들의 시작은 아득한 먼 옛날부터이었으며 매우 심오한 것이었으니 사람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로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를 낳아 주신 그 부모가 바로 여기에 존재하였음이요, 나의 아들이 그 아들을 생각해 본다면, 미래의 자손들은 미래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니, 지금의 현상을 돌이켜 미래를 생각하여 보면, 하느님의 무한한 그 뜻을 알 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존재할 수 있었는가하는 바로 그 나를 생각하여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지나간 세월 속에서 이와 같은 하느님의 이치를 더 먼 옛날과 비교하여 찾으려고 한다면, 의심되는 마음이 생기고 사람이 어떻게 하여 사람으로 되었는지를 분간하기 심히 어려울 것이니라.
②아! 하느님의 그 높으신 뜻을 헤아림이여!
세상의 모든 일을 하느님의 높으신 뜻에 따라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보면 그 역시 전부 그렇게 되어있고, 그 자체를 부정하여 그렇지 않다고 보면 그 역시 전부 그렇지 아니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할까?
그 옛날 천황씨는 어떻게 해서 사람으로 날 수 있었으며, 더욱이 왕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천황씨의 근본 조상이 없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에 다르지 않았다는 이치로 세상일을 살펴본다면, 세상에 부모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리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조상을 살펴보면, 그 조상도 부모가 있었으며, 부모의 부모도 또한 부모가 있었음이니 그렇게 된 것이요, 이것은 아득히 먼 그 옛날에 하느님이 그 하느님의 높으신 뜻에 따라 나의 옛 조상을 창조하신 일이 있었음이니라.
③그렇기에 하느님은 세상을 위하여 임금을 내시어 사람을 바로 다스리게 하시었고, 스승을 내시어 사람을 바로 가르치도록 하셨으니, 임금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법강을 만들었고 스승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예절을 지어내어 이를 가르쳤느니라.
이런 이치로 이를 부정한다면, 임금은 법강을 전하여 준 임금이 없었건만 어떻게 하여 법강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으며, 스승은 가르침을 전하여준 스승이 없었건만 어떻게 예의를 본받도록 가르칠 수 있었다는 말이겠는가?
사람의 좁은 생각으로는 하느님의 그 높으신 큰 뜻을 알 수 없고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라.
태어나면서 저절로 알아서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런 도움 없이 스스로 배워 익혀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면서 알았다는 것으로 말할지라도, 하느님의 높으신 뜻과 무한한 베푸심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 가운데 사람에게 내려 주시는 것이고, 하느님의 조화로써 이것을 말할 지라도 하느님 가르침의 무궁한 이치는, 사람의 좁은 생각으로는 알기 매우 어려운
심오한 것이니라.
④ 대체로 이와 같이 설명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앞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불연으로 알지 않을 것이요, 불연으로 말하지도 않을 것이니라.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높은 뜻에 따라 자연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까닭으로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믿을 것이니라.
하느님의 올바른 이치를 깨닫게 될 때, 모든 사물과 자연현상의 그 바탕을 들춰내고 그 근본을 상세히 캐어보면, 모든 만물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모든 만물을 서로 돕고 있으며, 모든 이치가 모든 이치들을 서로 돕고 있는 큰 일들이 끝없이 중지하지 아니하고 계속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느니라.
하물며 자연현상이나 모든 이치까지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데, 하느님의 바른 기운을 간직한 세상의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하느님의 높으신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있는가!
⑤우리 도의 운수가 정해진지 몇 년이나 지났는가?
우리 도의 운이 스스로 와서 회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도를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의 우리 도가 변하지 않았고 바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바르지 못한 도를 행하며 운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어찌 바르지 못한 도를 갖고 하느님의 운수가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하느님의 높으신 뜻과 맞지 아니하니 이것을 깊이 헤아려서 바로 밝히고 이것을 일일이 거울하여 기록하노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 차례를 잊지 않고 질서 있게 어김없이 운행함이여. 그렇게 하느님을 도와 운행하는 것이 오래도록 변함 없이 존재할 수 있고, 하느님과 더불어 공존 할 수 있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미천한 자연현상마저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 차례를 잊지 않고 어김없이 바르게 행하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바른 기운을 행할 수 있는 오늘날의 세상사람들은, 산의 그 높은 뜻보다는 산 아래 물의 낮은 뜻을 받들고 있으니, 어찌 그럴 수가 있고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갓난아이의 어리고 어림이여!
비록 말은 못하여도 자기 부모를 알아보니 어찌 앎이 없으며 어찌 앎이 없다 할 수 있겠는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여! 비록 갓난아이도 하느님의 베푸심의 은혜로 제 부모를 알아보는데 어찌하여 하느님의 베푸심과 가르침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
성인이 세상에 나신 까닭을 아는가?
황하수가 천년에 한번 맑아진다는 것이, 운이 스스로 돌아와서 저절로 맑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이 스스로 알아서 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밭가는 소가 농부의 말을 알아들음을 보라!
비록 미천한 짐승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만물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는 그런 하느님의 마음이 있고 아는 것이로다. 힘으로 하면 농부에게서 넉넉히 벗어날 수 있는데도, 미천한 짐승일지라도 만물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죽도록 평생토록 밭을 갈겠으며 마지막엔 자기의 몸을 고기로 먹게 죽음을 왜 당하겠는가?
까마귀 자식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것을 보라. 까마귀마저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부모에게 공경과 효도를 몸소 실행하고있지 아니하는가?
제비조차 하느님을 아는 것이여!
제비들은 자기 살던 곳이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다시 때가 되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반드시 살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이치를 아느니라.
⑥이렇기에 살피기 어려운 것은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불연이요, 판단하기 쉬운 것은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연적으로 되었다는 기연이로다.
그 심오한 이치를 여기에 견주어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의하지 않았다는 불연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연이요 전부 불연이고, 모든 일과 이치나 자연현상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연히 이루어지는 기연이기에, 하느님 하신 모든 일에 비추어 보면 모든 일이 하느님 뜻에 꼭 맞는 기연이며,
또한 그 모든 일이 그러한 올바른 이치를 갖고 있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