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컨버전스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역시 휴대폰과 카메라의 결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디지털 카메라가 붐을 일으키면서, 인터넷을 통한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를 거침없이 발산해내는 젊은 세대들과 어울려 불황에 힘겨워 하는 업체들에게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일본에 가면 수백 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거대 전자제품 양판점의 이름엔 “카메라”가 붙는 경우가 많다. “요도바시 카메라”,”빅 카메라” 등등처럼 말이다. 물론 이곳은 카메라만 취급하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정밀하면서도 고가인 전자제품의 대명사였기에 그 상징적 의미로써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1400년대에 화가들의 사생을 위한 보조도구로서 개발되었던 카메라가 이처럼 현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장치로 발전할 것이라곤 아마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카메라와 휴대폰이 만났다. 멍텅구리처럼 기계적 기능만 덧붙여 놓은 억지스러운 결합이 아니다. 화학적으로도 거의 완벽하게 결합했다.휴대폰은 더 이상 전자제품이 아니다. 일종의 액세서리고 할 수 있다. 이 액세서리의 개념 없이는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몇 개월에 한번씩 기업이 모델체인지를 할 필요가 없으며,소비자의 이용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도 설명할 수 없다.
디지털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모포에 둘러싸여 장롱 안에 모셔져 있다가 중요한 날에만 렌즈뚜껑을 벗는 그런 카메라는 이제 더 이상 지금의 주 소비계층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작고 가볍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찍어야만 한다.
이 두 제품이 가지는 상호보완적, 필요충분적 조건은 정말로 제대로 들어 먹혔다. 게다가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나 블로그처럼 자신의 생각을 글과 이미지로 공감적으로 나타내길 좋아하는 주 소비계층과의 궁합도 좋았다. 지금까지의 여세를 몰아 메이커에서는 좀 더 이쁘고 성능 좋은 제품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초기 10만~30만 화소였던 화소수가 이젠 100만을 넘어서서 정말로 디지털카메라 부럽지 않은 화질을 자랑하고 있다. 정지화상뿐만 아니라 동영상촬영기능도 대폭 강화되면서 초기에 30초~1분정도밖에 촬영 못하던 것도 이젠 1시간 가까이 촬영 가능한 제품도 나오고 있다. 그 발전의 속도와 한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반면에 사생활 침해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사실 필자의 생각은 일반적인 우려와는 조금 다르다. 아예 악질적으로 작정하고 지나가는 여인네의 치마 속에 카메라폰을 들이대는 인간쓰레기들보다도, 무심코 무심결에 자기도 모르게 촬영버튼을 누르는 이들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신기하고, 재밌는 것, 아이러니 한 것을 보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게 그냥 그 사람의 기억속이나 아니면 자신의 컴퓨터의 하드 속에만 남는 다면 별 문제 없겠지만, 인터넷 홈페이지나 블로그, 메신저등을 통해서 퍼져나가는 것이 문제다. 당신이 지하철에서 침을 흘리면서 자는 모습이나 술에 취해 공중전화박스에 오줌을 누는 모습까지 하나의 훌륭한 컨텐트가 될 수 있다.그리고 그 컨텐트가 생산되고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데 까지는 불과 몇 초에서 몇 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강제발광장치가 경고음의 장착을 의무화하자는 이야기도 이런 시점에서 보면 충분히 설득력있고 타당성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사실 필자도 얼마 전에 이 디지털 컨버전스의 축복을 받은 적이 있다. 3차선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직진하던 필자를 2차선의 트럭이 우회전을 시도하면서 그대로 들이박았다. 사고현장과 주변사람의 증언을 모두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촬영하고 녹화했다.
경찰서에서 내가 한 것이라곤, 휴대폰화면을 담당경찰관에게 보여준 것 뿐이었다. 그리고 사고처리는 “내 입장”에선 아주 말끔하게 끝났다. 몇 장의 진술서보다 더 명확하게 일을 끝내준 것이었다. 교통사고에 밝은 주변인들을 부를 필요도 없었다.
과연 이렇게 긍정적으로만 순기능을 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역기능은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정말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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