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스님 / 논설위원ㆍ고양 원각사 주지
불교에서는 수행의 궁극 목표를 해탈 내지 깨달음에 두고 있다. 즉 끝없는 윤회(輪廻, saṃsāra)의 고(苦, duḥkha)로 인한 가아(假我, aham)에서 벗어나, 진아(眞我, Ātman)의 탐구 가운데 해탈(解脫, mokṣa)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범아일여(梵我一如, Brahma Ātma aikyam)의 경지에 나아감은 인도 사상의 궁극 목표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해탈 즉 mokṣa란 번뇌로 인한 미혹의 고통에서 풀려난(vi) 경지인 vimokṣa를 말하며, 별해탈(別解脫)이라 번역되기도 한다. <별해탈경>에 의하면 ‘별해탈이란 미세한 의혹을 점차 제거해,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함’을 말하고 있다. 이는 해탈의 점차성을 뜻하는 표현으로, 이에 수순해탈(隨順解脫) 내지 처처해탈(處處解脫)이란 표현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한편 해탈은 계(戒, śīla)와 율(律, vinaya)을 통해 얻게 되는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는 범어 prāṭimokṣa의 음역(音譯)으로, mokṣa에 접근해 나아감(prāṭi)을 뜻하는 바, 단어적 표현에서 볼 때 해탈은 끝없는 진행의 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탈의 동적(動的) 성격은 우리말 깨달음이란 표현에서 보이기도 한다. 깨달음이란 ‘깨침’과 ‘달음’을 말한다. 달음은 깨침에 머묾이 아닌, 또다른 깨침의 정황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불교 수행의 궁극은 끝없는 달음박질 가운데 존재하며, 이는 불교인의 영원한 실천자적 성격을 규명하는 표현이 된다. 하나의 순간 속에 해탈을 성취하고, 또다른 사건과 만남 속에 해탈을 성취코자 담박질쳐 가는 모습에 불교 해탈과 깨달음의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이는 불교 실천도(實踐道)의 궁극적 경지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산녘에서 하나의 풀잎과 만나고, 도심 페이브먼트 길녘에서 돌맹이와 마주선 가운데 무수한 깨달음의 언어 발설한 채, 또다른 존재와의 만남에로 담박질하는 속에 불교 수행의 궁극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만큼 불교는 규범 윤리를 넘어선 초월적 입법 원리를 제시하는 가르침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불교신문 2529호/ 6월3일자] |
첫댓글 불교의 수행... 규범! 그 달음박질에 숨이 차, 멈춰 서기를 반복하며 보낸 많은 세월... 이제서야 공부의 자락이 아주 조금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과가 무엇이 되었던... 그냥 이 상태의 삶에 더 없이 행복해 합니다. 마음이 순간순간 수없이 변하지만, 이 이상 더 최선일 수 없다! 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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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행의 궁극은 끝없는 달음박질 가운데 존재하며...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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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