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교의 아류, 하나님의 교회(안상홍 증인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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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몇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은 안상홍 증인회라고도 불린다는 것, 안식교에서 분리되어 나왔든지 혹은 안식교의 교리와 아주 유사하다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제가 좀 알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데 컴퓨터 통신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나서였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곳이 있는줄도 몰랐었는데 그 사람과 몇번을 토론해 가면서 사상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통하여 그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교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매에게는 이때 있었던 몇 번의 토론에서 그 분이 말한 내용을 가지고 성경적인 고찰을 해 볼까 합니다. 그분이 말한 것이 아마도 하나님의 교회의 교리일 것이며, 그교회에 나가신지 오래 되지 않으셨다면 교리적인 부분도 아는 게 적으실 것 같아 그래도 어느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의 글이 성경과 얼마나 같지 않은지를 좀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살펴본 후에 만약에 그 교리가 성경과 같지 않다면 그 교리를 주장하는 교회는 문제가 있는 이단교회라고 해도 되겠지요
자매에게도 교파에 관한 관심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어느 교파에 또는 어느 교회에 속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가, 교파가 과연 성경을 올바로 믿고 하나님을 올바로 가르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일단은 하나님의 교회가 이단이라는 생각을 일체 버리기로 하고 글을 쓰기로 생각하였습니다. 철저하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과연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과연 성경에 안식교와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고 있고(안식교는 안식일만 지키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절기까지도 지켜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외에 다른 여러 절기들(유월절, 무교절, 칠칠절 등등 - 아마 유월절을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을 지키라고 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인 시각의 성경해석을 통하여 때로는 논리적 도출에 의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성경이 기존교회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말하고 있고 하나님의 교회가 맞다면 저도 기존의 교회를 버릴 전제를 하고 말입니다.
자료는 김선교라는 형제가 쓴 글들에 대한 저의 반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데다, 지금이 시험기간이라 미흡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가 안식의 개념에 대해서 정리한 내용과 안식교에서 토론회를 요청했던 내용에 대한 글을 하나 첨가했습니다.
부디 자매가 이글을 다 읽어보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을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게 풀이해야 하며 만약에 하나님의 교회의 교리가 성경과 부합되지 않는 곡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과감하게 그곳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되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석준 씀
먼저 주일예배와 안식일 예배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겠습니다. 김선교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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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주일)예배가 성경에는 한 구절도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일요일 예배가 성경에 있다고 억지 변명하는 주장에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 부활하신 날도 일요일이고 성령강림하신 오순절도 일요일이니 예수님 이후부터는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 고 하는데 이런 억지 변명은 마치 내가 태어난 날이 일요일이니까 아버지의 생일도 일요일로 바꾸어야 된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날을 기념하는 안식일은, 근본적으로 기념하는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도 오순절을 지켜 성령강림을 기념했는데 정작 오순절은 기념하지도 않으면서 오순절을 핑계삼는 행위가 가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외에도 유월절, 무교절, 부활절(초실절), 오순절(칠칠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등 일곱가지 절기를 정해 주셨는데 각 절기마다 기념하는 의미가 각기 다릅니다 (레 23:1-44, 마 26:17, 행 2:1, 요 7:2)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오셨다고 하시며,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마 5:17) 그래서 율법 가운데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빼버리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빼버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계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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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교님은 안식교적인 개념으로 기존교회를 보고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켜야할 절기적인 날로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고 성령강림하신 오순절도 일요일이니 예수님 이후부터는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를 보겠습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기존교회가 이렇다는 말이지요.
이 말은 틀렸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라서 안식일이 주일로 대치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개신교회의 말이 아닙니다. 김선교님 말처럼 개념이 다르지 않습니까?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날을 주일로 정해서 기념키로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날짜적인 의미로서의 대치가 아닙니다. 주일은 편의에 의해서 정해진 날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날이 안식일이 되어야 한다. 구약의 백성들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안식에 참예하고 그리고 들어갔듯이 그리스도 이후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모형적 안식일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참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날마다가 안식일이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적으로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는 날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중 어떤 날을 모이는 날로 정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그런데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그리스도가 참안식이라는 개념에 잘 부합될 것이므로 일요일을 잡은 것 뿐이다. .
그렇습니다. 사실 일요일이 주일이 되었든 금요일이 주일이 되었든 그리스도 이후의 백성들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매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참 안식일의 주인되심이 성경에 나오는 것이며, 그렇다면 안식일이라는 절기는 더 이상 지키지 말아도 되는 것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 것입니까? 당연히 나옵니다. 본문을 써 보겠습니다.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눅 6:5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 또 히브리서 4장의 안식의 주체가 결국 누구로 말씀되어지고 있는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안식일의 폐기에 관한 본문입니다.
갈 4:9-11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는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이 초등학문이며, 그리스도가 온 이상 그것이 쓸데 없는 종노릇일 뿐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골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이 본문은 형식과 절기를 지키느라 실체인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바울사도가 쓴 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성경에 안식일을 다루고 사도들이나 예수님이 그 안식일에 습관을 좇아 내지는 관습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는 본문을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도들이나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아무날이든지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회당에 모이는 때인 안식일 또는 관습에 따라 행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지 안식일을 애써 지킨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가 되지 않을 때에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고 하였지만 그 문제가 문젯거리가 되었을 때는 단호하게 절기나 형식을 지키는 것이 틀렸다고 말을 합니다. 할례에 대한 예를 들자면 사도바울은 행 16:3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잘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제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지만(할례를 안하면 선입견으로 그들을 배척할 수도 있으므로) 정작 할례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롬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롬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 로마서 4장에서는 할례의 쓸모없음에 대한 바울의 장황한 설명이 나옵니다.
바울이 왜 그랬을까요 할례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례속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살갗에 할례를 하고 안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날짜를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 그 안식의 의미를 기억하라는 것이지 날을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라고 되어있는 구절이 세군데 나오는데 과연 날을 지키라고 한 것인지 그 의미를 기억하라고 한 것인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 안식의 의미는 이 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중략 - 다 읽어보십시오)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안식일이 복된 날이 된 것이 그 날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쉬셨음을 기념하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날을 지키는 이유는 그 하나님의 쉬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신 5:13-15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중략)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 똑같습니다. '그러므로'를 주의하여 보십시오. 안식일에 쉬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므로 그들은 그 하나님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그 날을 지키고, 그 날짜를 지키고, 그 날 무슨 일을 행하지 말고를 말씀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날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 하나님이 완전히 계시된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한 자에게는 날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그것을 증명하고자 얼마나 애쓰셨습니까?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지금 하나님의 교회에서 절기나 안식일을 지키자는 것이나 똑같았습니다. 그 속에 담겨진 의미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섬기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껍데기인 날짜만 절기만 행사만, 그들의 행위만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안식일이 폐하여진듯한 행동을 많이 하시자 않았습니까
2: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12: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을뿐더러 오히려 안식일을 파괴하는 듯한 행동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하신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뒤에 김선교님의 글에 나오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이루신 분입니다. 왜 율법을 지키지 않으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율법을 폐한 것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은 형식을 지키느라 무시되어버린 율법의 본질을 지키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범한 것은 안식일의 본 의미를 버리고 날짜만을 지킨 바리새인들이며,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지키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식일의 본의미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섬기는 것에 관심을 쏟아야지 그 날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만일 안식에 대한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왜 제사를 지내지 않지요. 왜 동물의 각을 뜨고 분향을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왜 할례를 행치 않습니까? 성경에 할례를 행치 않는 자는 쫓아내라고 명령되어 있지 않은가요 (창 17:10,14)
이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고 안식일이나 다른 절기만 남아 있다고 우긴다면 그것은 성경의 통일성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위의 글에서 김선교님의 말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오셨다고 하시며,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마 5:17)'
라고 쓰셨습니다. 이것이 율법행위자체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예수님 시절에 와서 폐지된 율법은 뭡니까?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왜 할례를 행치 않지요? 왜 제사를 지내지 않지요? 왜 안식일에 예수님은 일을 하셨습니까? (일하지 않는게 옳다면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유대인들처럼 일의 목록을 만들지요) 왜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에게 부정하다고 명해진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레위기에 나오는 정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개념을 왜 똑같이 적용시키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문둥병 걸린 사람이 나타나면 교회에서 쫓아냅니까? 왜 시간을 정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지 않지요? 왜 예루살렘 성전에 일년애 한번씩 성지순례 가지 않습니까?
이 모든 문제는 다 헛된 것입니다. 성경이 이에 대해서 일일이 다 대답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대답하고 있는 내용은 그렇게 안하고 대답하지 않거나 불분명한 내용은(예를 들어서 안식일이 폐하여졌다!!라고 기록된 내용은 없지요)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은 바보같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이루셨다는 뜻은 그 율법 조항을 다 지키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바로 어기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앞에도 말했지만 안식일의 참 의미를 지키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후로 그리스도를 통해 의식적 율법(지켜야 하는 규례로서의 율법)이 폐하여 졌음을 봅니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히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히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다음번 내용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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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국 복음의 씨를 뿌려놓은 다음에 원수 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리겠다고 예언하신 그대로(참고 마 13:24-30) 생명에 이르는 참 진리가 사도시대 이후로부터 흐려지기 시작하여 주후 167년에는 유월절 성만찬 예식이 다른 날로 변경되고 말았다. 사도 시대로부터 지켜 내려오던 유월절 성만찬 예식이 교회 주권을 잡고 있던 Kidd(키드)박사나 교황청에서 성력 정월 14일인 닛산 14일에 성만찬 예식을 행하는 자들에게 이단으로 죄명을 내린 것이다.(참고 교회사 초대편 121페이지) 그 후 부터는 사단이 맹렬히 활동하여 결국에는 안식일까지 변개시키고 말았다. 유월절을 변개시킨 연대는 주후 167년이고 안식을 변개시킨 연대는 주후 321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진리가 영원히 사단에게 밝힌대로 있을리가 만무하다. 예언대로 각 시대를 따라 진리의 빛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루터는 믿음의 자유를 드러 내고, 침례교회는 침례를 , 제칠일 안식일 교회는 안식일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유월절 성만찬 예식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 진리인 유월절을 완전히 드러내어서 생명의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다 전하여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씻음을 받고 영생에 들어가야 하겠다. 지금 전하는 이 기별은 새로운 기별이 아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다. 기록된 바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전 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시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언약이니 이것을 행아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눅 22:7-20 비교) 하였다. 새언약의 중대 문제가 유월절 성만찬 예식이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 대하여 새언약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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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 역시 문제가 많은 본문입니다. 절기나 행사를 지키라 하기 위해서 성경에 있는 구절들을 끌어 억지 해석을 한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단의 특징은 성경의 부분을 전체로 확대한다는 것입니다. 안식교나 하나님의 교회는 절기나 행사나 형식을 지켜야 한다는 본문만을 크게 강조하지만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되어진 절기나 월삭이 폐지되었다는 본문이나 안식일등으로 폄론치 못하게 하라는 본문은 언급하지 않으며,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자라는 사실은 크게 강조하지만 그리스도가 율법을 폐하신 분이시라는 사도바울의 말은 전혀 인용치 않습니다. 바른 성경해석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전체로 해석을 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한 부분만을 본다면 성경에서 도출되지 못할 이론은 하나도 없습니다(이것이 이단이 많이 생기게 되는 이유입니다.) 성경에서 공산주의가 나올 수 있습니다. 간디는 성경의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라(마 5:39) 는 말씀을 읽고 무저항주의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 한분은 이웃과 싸웠을 때 화해하라고 하자 거룩한 것을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마 15:26)고 말했다고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마 9:23)는 말씀을 듣고 2층 옥상에서 뛰어내린 분도 있습니다. 성경에 그 말이 나온다고 해서 성경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성경전체를 통하여 볼 때 그것이 그 속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매님께 묻고 싶습니다. 모든 성경을 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석해 낼 수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아는 것입니까? 성경의 대치되는 본문에 대하여 한쪽은 입닫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아는 것입니까? 후자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논리에 끼워넣는 것입니다. 엄연히 율법은 폐지되었습니다.
안식교에서(하나님의 교회는 안식교랑 다르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요) 기존 교단에 토론을 제의해 왔었던 이야기가 뒤에 첨부될 것입니다. 기존 교단에서는 그들과의 토론내용을 책으로도 출판하고 잡지에도 연재하였지만(이는 떳떳하고 성경해석이 옳다는 자신입니다.) 안식교에서는 여러 사정을 핑계하여 약속된 잡지 연재도 하지 않았고 토론도 취소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위 본문을 계속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 부터는 사단이 맹렬히 활동하여 결국에는 안식일까지 변개시키고 말았다. 유월절을 변개시킨 연대는 주후 167년이고 안식을 변개시킨 연대는 주후 321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진리가 영원히 사단에게 밝힌대로 있을리가 만무하다. 예언대로 각 시대를 따라 진리의 빛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루터는 믿음의 자유를 드러 내고, 침례교회는 침례를 , 제칠일 안식일 교회는 안식일을 드러냈다.'
교회사 초기에 유월절 예식이 어떻게 변개되었는지 안식일 제정이 어떻게 제정되었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제가 한가지 알고 있는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은 안식일을 지키거나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마찬가지로 제사나 다른 의식법적인 내용도 역시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성도들은 수시로 모였지만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안식일에 특별히 무슨 모임을 가졌다는 기록을 볼 수 없습니다. 안식일을 날의 개념으로 지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들은 왜 그날은 특별한 날로 지키지 않았습니까
2. 사도들이 안식일에 강론하거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하신 것을 안식일을 지킨 근거로 삼지만 그들은 평일에도 성전에나 회당에 매일 올라갔고(행 3:1), 안식일에 특별히 강론한 기록이 많은 것은 그들의 전도대상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유대인들은 성전에 다 모이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사도들은 그들이 거기 모이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면 지키는 행동들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나 사도의 목적은 강론이나 전도에 있었습니다. 만약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면 유대인들을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한 그 사람들을?...
두 번째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위 글 자체의 문제입니다. 좀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시대를 따라 진리의 빛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루터와 침례교회를 이야기하고 안식일 교회를 동일선상에 두었습니다. 안식일 교회가 종교개혁사의 어디에 위치하는지 전혀 알수 없지만, 최소한 그때 안식일 교회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김선교님이 말한 것처럼 루터, 침례교회, 안식일교회가 다 진리의 빛이라고 한다면 루터나 침례교회가 안식일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뭘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루터파 교회는 주일을 지키고 역시 침례파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진리의 빛이라 했는데 이들이 진리의 빛이라면 주일을 거부하는 안식교는 뭡니까? 둘 중 하나는 진리의 빛이 아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루터는 믿음의 자유라는 진리를 드러내고, 침례교는 침례라는 진리를 드러내고 안식교는 안식일이라는 진리를 각각 드러냈다고 말하시는 거라 하겠지요
그런데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어느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부분적으로 요만큼의 진리를 주고 나머지는 다 틀리고, 다른 어느 부류에게는 또 다른 요만큼의 진리를 주고 나머지는 다 틀린다고 말합니까?
어느 한 교파에서 하나의 핵심교리가 성경적으로 맞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진리라면, 최소한 (자잘한 성경해석의 문제에서는 다를 수 있다손 치더라도) 뼈대되고 중심되는 복음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으로 참된 것인 것입니다. 루터파에서 믿음의 자유라는 것이 옳았다면, 루터파에서 말하는 주일의 성수개념도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단과 다양한 교파와의 구분은 그런 것입니다. 최소한 이단이 아닌 여러 교파들은 중심되는 복음에 있어서는 일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교회가 침례교를 향하여 '너네들 이단이야' 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엽적인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다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죽으심, 부활, 하나님의 구원사역 등과 같은 핵심적인 복음이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하기 때문에 서로를 향하여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단은 핵심적인 교리가 다른 것입니다. 세례를 주든 침례를 주든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오는 절차나 형식으로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안식일을 주장하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되시며 모든 율법을 폐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무시하는, 핵심되는 가장 핵심되는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 본문을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유월절 성만찬 예식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 진리인 유월절을 완전히 드러내어서 생명의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다 전하여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씻음을 받고 영생에 들어가야 하겠다. 지금 전하는 이 기별은 새로운 기별이 아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다. 기록된 바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전 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시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언약이니 이것을 행아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눅 22:7-20 비교) 하였다. 새언약의 중대 문제가 유월절 성만찬 예식이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 대하여 새언약이라고 하셨다.'
여기서도 성경을 곡해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인용한 고린도전서 11장 본문에 유월절을 지키라는 내용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성경 어디에서도 어느 절기를 지키라, 어느 날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예수님이 지금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과 피를 기념하라' 이 얘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에 유월절을 지키라는 언급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신약성경 어디에도 이런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은 구약성경에 나올 뿐입니다. 신약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꼐서 죽으심으로 유월절 예식은 완성되었습니다. 실체가 오셨기 때문에 그림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골2: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히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옛 형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이 되셨으므로 이제 우리에게는 유월절이 더 이상 필요없는 것입니다. 이를 지키자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대신 다른 것으로(다른 유월절 양으로) 구원을 받자는 말일 뿐입니다.
그러면 고전 11장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을 기념하여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절기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죽으심을 기념하고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이것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찬식이 그것입니다. 어느쪽이 더 성경을 본질적으로 잘 따르고 있습니까 유월절을 지키자면 그리스도는 왜 죽으셨습니까? 아니 도데체 신약성경 말씀에 유월절을 지키라는 말이 나오기나 합니까? 새언약은 새 제물되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셨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도 안식일을 계명으로 지켰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장 15절)
누가복음 4장 16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누가복음 23장 55-56절 "갈리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계명을 쫓아 안식일에 쉬더라"
사도행전 17장 2절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사도행전 18장 4절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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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씀 드린 바 있지요
이제 예수님과 사도들이 과연 안식일을 지키셨나 하는 것을 김선교님 자신이 직접 인용하신 본문을 보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 본문들에 예수님이나 사도들이나 제자들이 안식일 규례를 지켰다는 이야기가 나옵니까? 아마 나오지 않을겁니다. 위 본문들은 마치 안식일이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다 끌어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결코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안식일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고 그날을 특별한 날로서 중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강론을 위해서 성경풀이를 위해서 청중이 있던 곳으로 가신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안식일을 지킨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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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안식일을 변개 시켰는가?
(단 7:25 그가(사단 마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높으신 자의(하나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왜 안식일에 예배드리지 않고 첫째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역사적인 고증에 의하면 일요일 예배는 이교도들의 태양 숭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이전부터 로마에서는 첫째 날(일요일)을 태양의 날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고 기독교가 로마를 비롯한 서방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때 교회는 태양 숭배자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결국 4세기 초에는 태양 숭배자의 수장 격인 로마의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수많은 태양 숭배자들이 교회로 밀려들어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독교의 정신은 퇴색 되었고, 태양 숭배자들의 의식을 많이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에 일요일 휴업렬을 반포하여 첫째날(일요일)에 쉬도록 명령하였고 교회도 이에 복종하여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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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성경에 무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경이 아무곳에나 인용만 하면 다 성경이 됩니까? 성경에는 엄연히 시대적 상황이 있고 그것이 기록될 때의 배경이 있습니다. 그 배경하고 아무 관계없이 갖다가 쓴다고 다 성경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사람의 원수가 가족이리라 (마10:36)는 본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을 원수처럼 생각해야 합니까? 본문의 내용안에서 보지 않고 끌어내오는 것은 멍청한 일인 것입니다. 국어교과서에 '철수야 놀자' 가 있다고 해서 국어는 노는 것을 가르치는 책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까? 성경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본문이 다루고 있는 배경은 다니엘이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바벨론 왕의 꿈 풀이를 하는 내용입니다. 이 본문에서 나오는 있는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것이며 는 '사탄이 안식일이나 다른 절기들을 지켜야 할 것들을 변하게 할 것이다' 라는 내용이 아닙니다. 본문의 꿈에 나오는 네 짐승들은 세계를 통치할 네 나라(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를 가리킨다는 것은 벌써 다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이 본문은 그 뒤에 나오는 본문으로서 그 후에 일어날 열뿔로 상징되는 왕이 성도들을 괴롭게 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때와 법을 변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를 훼방코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어째서 안식일을 지키고 지키지 않고와 연관이 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입니다. 이후에 기록된 사실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꾸 성경이 아닌 다른 고증으로 증명을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설령 주일을 지키는 것이 로마 황제에게서 기원했든, 태양숭배에서 기원했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본문만 더 인용토록 하겠습니다. (이 본문들은 제가 추려 올린 것이 아니라 거의 내용 전부들을 올린 것입니다. 제가 제 의도에 맞게 편의로 각색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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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은 세상 끝날까지 지킬 예수님의 계명
마태복음 24장 20절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이런 환난의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세상 끝에 임할 환난을 말씀하심이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환난의 때에 우리의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 끝에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면, 예수님께서 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겠습니까? 안식일을 세상 끝까지 지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다시 한 번 생각하
고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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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데체가 어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본문이 그 주장의 뒷받침이 될 수 있는지 말입니다. 마 24:20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재림의 날이 올때에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날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말기를 기도하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도망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큰 환난으로부터 도망하기 힘들 것이다' 라는 환난의 강도를 강조하기 위해 쓰여진 표현입니다. 청중들이 누구였습니까? 청중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하시는 내용중에 안식일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만 하면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입니까? 이스라엘에게 환난이 안오길 바라는 가장 좋은 날의 비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안식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경겁간에 오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지방에밖에 없는 어떤 물건을 비유를 들어 사용하셨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그물건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되는 것입니까? 아마 예수님께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비유하셨다면 안식일이라는 말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을 것입니다. 학생에게 하셨다면 '수업이 많은 날이나 버스가 막히는 날' 이라고 하셨겠지요. 청중이 잘 알아들으라고 한 말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마지막날까지 안식일을 잘 지키라고 말씀한 것이라고 한다면.... 참새가 웃습니다.
이렇게 해서 좀 길긴 하지만 교리적인 부분들을 다루었습니다. 아마 자매가 읽기에는 너무 어렵거나 때로는 너무 지루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하지만 한 영혼이 이단사상에 물들어 버리는 것을 막아보기 위한 제 나름대로의 최선의 몸부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단들을 향하여 무서운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살후2:11-12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벧후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계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한지 오래지 않았을때에 바른 그리스도를 가르치며 바른 교리를 전파하는 교회를 찾아 출석하셔서 그리스도의 풍성함 가운데 자라가기를 소원합니다.
이 글은 '하나님의 교회'에 있는 목회자들이나 교사들에게 보여주셔도 좋습니다. 성경적 반박을 하시거나 제글중에 성경적으로 틀린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살아계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참고자료 1
이글은 제가 김선교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인줄 모르고 쓴 글입니다.
이 글을 쓰기전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 가르쳐 주기 위해서 썼던 글입니다.
앞의 글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명이 좀 더 자세하게 되어 있으니 읽어보십시오.
제목 : [김선교형제에게]10551을 읽고
우연히 주제토론방에 들어갔다가 형제의 글을 보았습니다. 사실 주제토론방이나 묻고 답하기에 오르는 글들이 대개가 유치한데다 기독교 모임인 kcm에 이단이 너무 극성을 부려 잘 참여하기를 싫어해왔는데 글을 보고 나니까 무어라 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SFC man입니다. 저희가 고백하기로는 교리의 순결성을 이단 사상이나 틀린 생각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 생각하기 때문에(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펜을 듭니다.
안식일을 지키자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몇 가지를 지적하고 설명하겠습니다. 선교형제님께서 끝까지 다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형제가 이단교파에 속한 분이 아니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반대의견이나 궁금증이 있으시면 저한테 메일을 주시거나 그을 올리 십시오. 며칠후에 주제토론 방에 한번 더 들르겠습니다.
1. 먼저 안식의 의미에 관해서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 안식이란 단지 일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형제의 글 '참고' 부분을 읽고) 안식이란 하나님의 거룩에 참예하여 하나님을 누림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근거구절을 찾자면 먼저 기본구절인 하나님의 창조후 안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창 2:2에 보면 일곱째 날에서야 창조사역을 마칩니다 여섯째 날에 마친게 아니란 겁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은 창조사역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단지 '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에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 안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쉬라고 할때,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구속자를 기억하라는 의미로 쉬라고 하고 있습니다. (신 5:15, 출20:11) 쉼이 목적이 아니라 쉼은 하나님의 안식에 참예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에 '노아'라는 단어입니다(창 5:29) '노아'는 히브리어로 안식하다 라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노아의 이름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뜻은 '안위하다'라는 의미이죠.
여호수아에서도 역시 안식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21:43-44에 보면 지파별로 땅을 분배한 후에 사방에 '안식'이 있었습니다. 땅분배 후에 놀고 먹기만 했다는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안식에 참예함이 온땅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후에 다시 사방에 안식이 있는 때가 있습니다. 솔로몬시대에 왕상 4:25에 보면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아래서 안연히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안식을 의미합니다. 안식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 참예하여 그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상태 그것이 안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안식에의 참예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안식일을 제정케하고, 그것의 확장된 개념으로 안식년과 희년을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레26장) 안식년과 희년에는 안식의 기본수단인 땅을 거저 돌려받으며 종으로 팔려간 자들이 종에서 놓임받는 일들이 일어남을 성경은 말합니다. 안식년과 희년 - 1년내내 놀라는 말일까요.
2.하나님 나라와 안식
: 그럼 안식의 의미와 그리스도와의 사역을 위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을 이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안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나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그곳에는 하나님께 참예할때 있어지는 특징인 안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시에 당신의 나라를 만드셨고(천당개념 아님) 그것을 에덴에 게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은 안식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창세기 2장15절의 '두사'라는 단어는 '노아'입니다. '노아'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안식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 나라는 파괴되었고 안식은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안식이 상실되어고 하나님은 다시금 이나라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시편에서도 소망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23편에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거하리로다'는 원어로는'안식하리로다'라는 의미입니다. 에덴의 궁극적 회복이 마지막에 임할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나라의 모형을 역사속에서 여러번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나라가 모형적 으로 이루어질때 모형적 안식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정복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며, 솔로몬의 치세기는 왕국의 완성기즉 하나님 나라의 모형적 완성기였습니다. 이 때 안식이 임했습니다.(앞에서 언급했음) 이 나라는 처음에 깨어지게 된 원인인 죄가 소멸될 때 비로소 임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의 가나안 족속의 진멸은 죄의 진멸의 모형이며, 솔로몬 치세기에는 열방이 평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형일 뿐이었습니다.
참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참 안식이 임할 것입니다. (히 4:8-9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 안식할 때가 남아있도다) 이 안식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사건이 그리스도가 오신 사건입니다.
3. 그리스도의 사역
: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의 이루어짐)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드러나는 특징인 죄의 쫓겨남이 그로 인하여 보여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사건은 하나님 나라가 임함으로 죄악의 세력이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일차적으로 완성되었으며 그의 안에서 죄악은 소멸됩니다.(교회외에 구원이 없는 이유 -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죄악이 소멸될 수 없다.)
죄악이 소멸되고 그의 나라가 임할 때에야 하나님의 안식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자이며, 안식의 완성자이며(히4:8-9,궁극적 안식), 성전의 실체이시며,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되며(신약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임) 그러므로 그속에는 하나님의 안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그 안식의 주체이며, 완성자이며, 그분이 참 안식이므로 그 안에는 늘 안식
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이 다른 책임을 거부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한맥락안에서 읽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형이었던 옛것의 안식일은 이제 필요없으며(히8:13,10:9), 그를 믿는 모든 성도는 매일이 안식일이 되는 것입니다.
4. 그러면 왜 우리는 주일을 지키는가(매일이 안식일인데)
: 궁극적으로는 매일이 안식일이므로 우리는 매일 그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특정한 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안식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아직 육신에 속해 있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그것을 기억하게 하고 기념하게 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유익하다"
일주일중 어느날이 정해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날을 정할 때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이 유익하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원고를 쓰고 있을 때에는 없었는데 누가 먼저 대답을 하셨더군요.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주일을 지키는데에는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5. 예수님과 사도는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닌가?
: 이제 형제가 말씀하신 구절들에 대한 해석을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켰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안식의 참된 의미를 모른채 행위적 규제만을 답습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 본질을 언급하셨습니다. 안식의 참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먹는 것을 용납하셨으며 안식일에 대한 교훈들을 말씀하십니다.(너희중에 누가 소가 구덩이에 빠지면 - ) 그리고 직접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십니다. 분명 그분은 행위적 규례들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안식의 본질은 행위를 이루어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형제가 언급한 본문의 문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안식일에 설교하셨습니다.(눅4:16 - 형제가 예수님의 안식일 지킴의 근거구절로 사용한 구절)
먼저 이에 대해서 생각할 때 첫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루에 두번씩 규칙적으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예 - 행 3:1이하 : 베드로와 요한이 평일에 성전에 올라감) 거기서 그들은 말씀을 읽고 강론하였습니다. 매일 올라가는 사건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될 수는 없겠지요. 둘째 그러나 여기서는 약간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 고의로 안식일에 그곳에 가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중요시한 것은 거듭 말하지만 본질이었습니다. 그는 안식의 주체시며 완성자이시므로 언제 올라가든 상관없으신 분이었지만 가장 용이한 시간을 택하셨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사람이 가장 많았을 테니까요
이 사실은 사도들의 행동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울입니다. 할례를 예로 들어봅시다. 바울은 전도에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도 할례를 행하였지만(고전 9:19-23) 이방인이었던 헬라인 디도는 할례를 받지 못하게 하였습니다.(갈 2:3) 할례는 그리스도 이후로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렇게 할 때 유대인의 고정관념에 걸림이 될까 유대인들에게는 할례를 행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이방인에게는 그 본질을 그대로 가르쳤습니다. (사실상 바울은 할례를 필요없다고 말합니다.고전7:18-19) 여기서도 보게 되는 것은 겉모양으로 보이는 할례는 행하든 안 행하든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단지 본질을 오해할 여지가 있을 우려 때문에 가능하면 할례를 금했고, 대신 복음의 전파에 사소한 것이 걸림이 될지도 모를 유대인에게는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이제 형제가 예로 든 본문은 명백해졌을 것입니다. 행 18:4, 17:2-3의 사도바울의 행동은 그것이 복음전파에 더 용이하기 때문이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바울이 안식일 규례를 준수하라고 한 본문을 제시하십시오. 저는 안식일 규례를 지키지 말라고 한 본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과 및 사도들은 안식일이라는 형식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6. 형제가 쓴 글에서의 몇가지 자체적 모순
1) 형제글에서는 앞부분에서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신 일을 쓰면서 예수님게서 안식일을 지켰다고 얘기하고 뒷부분에서는 '참고'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시지 않았다고 얘기하였습니다. 이는 행위를 중시하지 않고 본질을 중요시하면 설명이 가능하지만 형제말처럼 안식일 자체를 지키고 말고를 논의하자면 둘중의 하나는 틀려야 합니다.
2) 박스안에 요 13:15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예수님이 본을 보이셨다는 것)
은 최후의 만찬때 발을 씻으면서 쓰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에 관한 이 본문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몇가지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형제의 나름대로의 날카로운 시각과 많이 공부하신 흔적에는 경탄을 드립니다. 한국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 형제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민이 없어서 죽어가는 많은 교회를 봅니다. 하지만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범하는 오루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에서 벗어나 왜곡된 진리로 향할때 그리고 그것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할 때 거기에 있어질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많은 전통이 수많은 이단 세력과의 싸움에서 얻어진 진리임도 나름대로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교파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성경외에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만을 인정하고자 하는 개혁주의 교단의 신앙고백과 전통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형제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형제가 앞으로도 더 많은 공부와 기도로 하나님 앞에 훌륭하게 쓰임받는 형제가 되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참고 : 제가 올린 글 몇개가 kcm 자료실에 있습니다. 제의견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3번 성경공부항에 구속사 성경공부란 이름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4개중에 창세기 부분에 제가 말씀드린 하나님 나라와 안식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참조하십시오. 샬롬.
참고자료 2
안식교 대토론에 대한 글이 통신에 올라 있길래 드립니다. 읽어 보시고 기존교회가 성경적인 것 같은지 하나님의 교회가 성경적인 것 같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최근 안식교측이 본 교단을 향하여 공개토론을 하자고 목청을 돋우고 있는 것이 <여운사>의 김경선 장로 같은 몇몇 사람의 활동과 일부 교계 언론의 우호적 논조에 힘입어 적지 않게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현혹되어 일각에서는 이단규정을 잘못했다느니, 그러니까 공개토론을 못하는 게 아니냐느니, 아니 한국교회의 이단연구가 근본적으로 틀려먹었다느니 하며 별 소리를 다 해대고 있다. 물론 말없는 절대 다수가 있기는 하지만, 진리의 분계선마저 쉽게 넘나들고 있는 일부 인사들의 주장으로 다소나마 소란한 감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안식교측의 교단간 공개토론 제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에 앞서 안식교에서 공개적으로 본 교단을 향해 토론을 제의해 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소위 <기독저널>과 <나라일보>의 발행인이라고 하는 이흥선씨로부터 이 문제는 시작된다. 이흥선씨는 자신의 <기독저널> 신문에서 귀신파 김기동씨마저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소위 이단연구 재검증 시리즈를 통해 이단들을 옹호함으로 소속교단인 예장 합동측으로부터 제명된 바 있는 사람이다. 본 교단에서는 95년 가을 총회시 이씨의 <기독저널>을 이단옹호언론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런 자가 소위 재검증이라 하여 안식교 삼육대 교수인 신계훈씨의 책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을 축약·발췌하여 <기독저널> 96년 2월 12일자부터 4월 15일자까지 10회에 걸쳐 연재함으로 안식교를 기교적으로 변호하는 일이 발생했다. 진리수호 차원에서 이단과 지면 등으로 얼마든지 변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씨처럼 하는 것은 진리변증이 아니라 이단옹호다.
그런데 이씨측에서 곧바로 공개토론회까지 개최한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이씨 같은 사람이 한다는 공개토론회의 목적과 내용이 뻔하다 싶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갑자기 안식교 한국본부의 선교부장 김대성 목사로부터 내용증명 우편이 날아왔다. 본인더러 이흥선씨가 개최한다는 공개토론회에 연사로 나오라는 것이다. 나서지 않는다면 그 동안 안식교를 이단으로 취급한 모든 내용이 허위인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논리였다.
그래서 본인은 한국교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흥선씨가 개최한다는 공개토론회에는 참여할 수 없고, 공개토론회의 효율성을 감안하여 지상논쟁부터 한다면 고려해보겠다고 답하자 안식교측에서 지상논쟁을 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양측이 만나 구체적인 방법까지 합의한 바, 본인과 진용식 목사가 한 팀이 된 기성교회측과 김대성 목사가 나선 안식교측과의 지상논쟁이 시작되었다. 양측은 주제별로 정한 날 동시에 같은 분량의 원고를 마감해가며 <교회와신앙> 지면으로 10개월 동안 10회에 걸쳐 논쟁을 하였다.
그리고 양측의 지상논쟁에는 공개토론이 전제됐던 것이기에 기성교회측에서는 지상논쟁 마지막회에 공개토론을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이제 본 논쟁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제의한다. 공개토론회로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본 논쟁을 시작한 이유가 그것이었던 것으로 안다. 처음부터 공개토론회를 하면 객관적이고 효율적인 논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상논쟁을 먼저 하고 다음에 공개토론회를 하자고 했던 점을 김목사는 기억하리라고 본다.… 공개토론회 장소는 두 곳에서 각각 두 번 하는 것이 좋겠다. 한 번은 삼육대학에서 하고, 한 번은 장로회 신학교나 총신 중에서 허락을 받는 대로 했으면 한다. 방법은, 먼저 일정 시간 동안 주제 강의를 하고, 그리고 미리 질문한 질의를 20개 내외로 정하여 서면으로 묻고 거기에 대하여 각각 지정된 시간만큼 대답을 하고, 그 다음에 합의된 사회자를 두고 일정 시간 동안 직접 묻고 대답하는 식으로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공개토론회는 끝내 열리지 못했다. 안식교측이 못하겠다고 입장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안식교측에서 이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말하였지만 공개토론회의 장소로 안식교의 삼육대도 포함하자고 제의한 것이 내적으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 마디로 기성교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안식교인들이 두려워서 공개토론을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안식교가 이제는 자신들과 교단의 이름을 걸고 공개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문제도 있다. 기성교회측과 안식교측이 지상논쟁을 할 때 양측은 합의서에 다음의 내용을 넣었다. "이 논쟁에 필요한 언론은 <교회와신앙>과 <교회지남>으로 선
정하되, <교회지남> 게재가 불가할 경우 <교회지남>에 이 논쟁을 소개하는 광고를 매월 게재한다. 양측은 추후 이 논쟁 내용을 단행본으로 제작, 배포할 수 있다."
합의서 6번, 7번 항이다. 기성교인뿐 아니라 안식교인들도 이 논쟁을 지켜보게 하자는 취지로 기성교회측이 요구해 합의됐던 내용이다. <교회지남>은 대부분의 안식교인들이 보고 있는 월간지로서 안식교 유지재단에서 발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측은 끝내 논쟁을 그들의 잡지에 게재하지도 못하더니, 논쟁을 소개하는 광고조차 10회중 처음 두차례만 조그만하게 게재하는 선에 그치고 말았다. 이유야 뻔하지 않겠는가. 논쟁 내용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기성교회측에서는 <안식일교회大논쟁>이라는 제목으로 논쟁완료 직후 발간하였으나 안식교측은 출판하지 못했다. 사실 이정도가 어찌 보면 진리 문제와 관련한 안식교측의 적나라한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약속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앞마당에서 공개토론도 못하는 안식교측이 왠일인지 교단적으로 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안식교의 이단성을 본 교단이 80회 총회에서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교단 소속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드러난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하여, 총회의 까다롭고 세심한 공식 절차로써 결의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교단간 공개토론이라는 제의를 안식교가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데, 그 필요성도 실현가능성도 없는 실정을 그들이 몰라서 이런다고 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해도 그 사상이요 교단적으로 해도 그 사람일 터인데, 왜 굳이 실현 가능성 없는 제의만 하고 있을까. 참으로 희한하고도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45] 제목 : [안상홍증인회]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비판
※ 국제종교문제연구소(02-439-4391)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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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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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춘근목사·하나의 신학 연구소장
월간「현대종교」97.6월호
안상홍은 1964년 4월 28일에 부산에서 '하나님의 교회 예수 증인회'를 창
설하고 예수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얻는 것이며, 성령 시대인
이 시대의 보혜사는 안상홍 자신이며, 자칭 하나님인 자신의 이름으로 구원
을 얻고, 새신약은 유월절이며,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야 하다고 하여
자신을 하나님, 성령, 예수로 만들었던 인물이다. 또한 콘스탄틴이후 성령
은 떠났으므로 기성 교회는 악령으로 가득차 있고 재림은 구름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가 육신을 입고 내려온 재림주이고, 유월절을 회복시킨
하나님이라고도 하였다.
그는 초대 교회의 진리가 자신을 통해 회복된다고 하는 계시를 받았다면
서 1988년에 재림주는 강림한다고 하였는데 재림주는 오지 아니하였다. 한
번은 자기가 야생마의 꿈을 꾸었는데 깨어 보니 그 자리에 장길자 여인이
있었다며 장 여인을 후계자로 내세웠다. 1985년에 사망한 안상홍은 88년에
는 재림한다더니 10년이 되는 97년 오늘까지도 부활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서는 안상홍의 주장이 어떻게 비성경적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유월절 문제
안상홍은 유월절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유월절은 출
애굽기12장에서 시작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
와 인방에 발라 멸하는 자의 형벌을 면하였다"(출12:23-).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하였다(출12:11-). 이 양의 피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에도 나타났다. 그들은 먼저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
을 지켰다(수5:10-15).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유윌절을 대대로 거
행하여 나갔다. 그러나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요, 상징이요, 예표이다.
■ 히8:-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
구약의 유월절은 도래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그리
하여 신약의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
라(요1:29-)고 하였다. 구약의 유월절은 신약의 십자가의 상징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직전에 마가의 다락방
에서 유월절을 거행한다(요14.1-). 그래서 예수는 구약의 유월절과 자
기의 십자가 처형을 일치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 눅22:15-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윌절을 먹기를 원하였노라"
이와 같이 구약의 유월절을 당신의 십자가와 적중시키려고 노력하였
다. 구약의 시대에는 유월절이라고 하는 모형으로 예표하였다가 신약
의 결정적인 시점에 와서 십자가의 처형으로 이를 합일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다 이루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눅22:16에서 "
이 유윌절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는 다시 먹지 아니하겠다"
고 선언한다. 구약의 유월절은 신약의 십자가로써 종결되었다고 하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유월절은 신약의 예수 이후에는 지구상에
서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다시 할 필요가 소멸되고 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제자들은 이 유월절은 거행한 일이 한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구약의 상징적 유월절이 신약의 역사적 사실로 완성되었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초대 교회, 중세, 근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유윌절은 영원
히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발생 이후 2000년이 경과한
금일에 와서 이를 다시 거행한다고 하는 것은 역사의 역행이요, 기독교 십
자가 근본 교리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므로 안상홍의 주장은 구약만 믿고
신약은 불신하는 반기독교적 주장이다.
2. 안식일 문제
구약의 안식일은 십계명에서부터 시작이 된다(출20:8-). 그래서 구약 수
천년 동안 이 안식일을 지켜왔다. 그러나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가 금요일에
사형을 당하고 토요일은 매장되어 있다가 일요일에 부활하므로 구약의 안식
일은 신약의 일요일로 교체되었다. 왜냐하면 본래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
리스도이기 때문이다.
■ 마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공이었으므로 신약의 메시아 부활로 구
약의 토요일 안식일이 신약의 일요일 안식일로 바뀌었다.
■ 막16:9-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나니라"
구약 안식일의 주인공이 예수였는데 그 주인공이 부활하므로 안식일의
날짜가 변경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 와서도 구약의 안식일을 지킨
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신약의 그림자인 구약의 안식일이(히
9:24-), 더 좋은 신약의 주일이 올 때에(히9:23-), 참것으로 정립이
되었던 것이다(히9:24-).
■ 고전13: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 때에는 부분적으로 말하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폐하나니"
신약에 비하여 불완전하던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완전한 주의 날이
올 때에 구약의 불완전하던 안식일은 소멸되고, 완전한 신약의 주의
날이 구약의 안식일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구약의 안식일이 불완전하
다고 하는 것은 구약의 안식일은 피가 없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 히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유함이 없나니라"
구약 율법의 안식일은 인간의 실천을 요구하는 구속적 규범이었다. 그
러므로 불완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신약의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
의 피 값으로 제정된 안식일이므로 거기에는 완전히 있었다. 구약의
안식일은 구원이 없었으나 신약의 안식일은 구원이 함유되어 있었다.
■ 히9:18- "전 옛 계명이 연약하여 무익하므로 폐하고(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하지 못하나니)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겨 하나님께 가까이 나
가게 되었나니라"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은 폐하고 신약의 주일로 교체하였던 것이다.
■ 히9:22-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었나니라"
그 후의 사도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고 주의 날을 안식일로 지
켰다.
■ 행20:7- "안식일 첫 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고 모였더니"
■ 고전16:2- "매주 첫날에 이를 얻는 대로 저축하였다가 연보를 할 것이
요"라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 사도가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은 것도
주의 날이었다.
■ 계1:10- "주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를 주시니"
그러면 구약의 성도들은 안식일을 지켰으니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그
렇지 않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요, 상징이요, 예표이므로 구약의 성
도들은 안식일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았을 것이로되 신약의 성도는 주
의 날이 신약의 안식이었으므로 주의 날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
동시에 신약의 성도들이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
것은 십자가에 대한 도전이요, 반역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반드시 예수 그
리스도의 피로써 가능하다. 구원은 구약 지성소의 속죄소에 있었기 때문이
다. 속죄소에는 일년에 한번씩 대제사장이 들어가 피를 뿌림으로써 하나님
이 나타나 인간을 상봉하였다(출25:22-). 메시아의 피를 중간에 놓고 신과
인간이 만났던 것이다. 신과 인간과의 상봉은 곧 천국을 의미한다. 이는 장
차 예수 그리스도가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인류를 구원할 것
을 상징한 것이다. 그런데 구약의 안식일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었
다.
출20:8에 "안식일에는 안식하라"고 하였으나 피를 뿌리라고 하지는 아니
하였다. 피가 없는 구약 안식일은 구원이 없다. 그러나 신약의 안식일은 십
자가의 피로써 제정한 날이므로 거기에는 중보자의 피가 있었다. 피가 있었
으므로 구원이 있었다. 그러므로 신약의 안식일에는 구원이 있다. 구원이
없는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구원이 있는 신약의 주일
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
3. 십자가 문제
안상홍씨는 십자가는 우상이라고 하였다. 왜 보이는 물상을 신봉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안 보이는 신이 사랑으로 나타났고, 사랑은 독생자로 나타
났다. 독생자는 유형적 실물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
를 주셨고 말씀이 보이는 육신이 되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보이는 물질이
다. 보이는 물질은 우상이 아니다. 또한 성도들이 보이는 물질인 십자가 나
무를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의의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로마교
는 마리아 상을 우상시하고 신교는 보이는 물상은 일절 부정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보이는 신이므로 우상이 아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한다.
■ 합2:4에 "의인은 아멘으로 산다"고 하였는데 이 히브리어의 '아멘'은
신앙과 진리의 두 가지의 뜻이 함유되어 있는 단어다. 즉 신앙은 진리
요, 진리는 가시적인 것을 의미하고 가시적인 것은 십자가를 의미한
다. 안 보이는 신앙은 보이는 십자가로 나타난다.
빛은 히브리어로 '오르'라고 하는데 이는 보이는 것이 아니고 빛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안 보이는 빛이 보이는 빛이 되려고 하면 태양이라
고 하는 매개들이 있어야 한다. 히브리어로 '마오르' 영어로는'bearer' 곧
보존자라는 뜻이다. 안 보이는 빛이라고 하는 '오르'가 보이는 '마오르',
즉 태양으로 나타났다. 구속 언약의 안 보이는 구원이 은혜언약의 보이는
십자가로 계시되었다. 기독교는 환상적 철학이 아니고 역사적 사건이다. 말
씀이 육신이 되어, 즉 이념이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구속적 십자가를 신봉하는 것이지 십자형의 나뭇가지를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안상홍은 구약과 신약의 의의를 알지 못하는 반신불수 신앙이다.
구약은 신약을 해석하고 신약은 구약을 해석하여 상호 불가분 연계적 관계
에 있는 성경을 알지 못하는 성경 무지의 이단이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
요, 예수는 그리스도, 즉 십자가로 표현되었고, 십자가는 피로써 나타났다.
구원의 십자가는 가죽옷, 붉은 줄, 문설주의 피, 모세의 지팡이, 마라의 나
뭇가지,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예표되었다. 신구약은 오로지 십자가만을 전
하고 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중심이요, 진수요, 그 핵이다.
펠라기아, 반-펠라기아, 알미니안, 웨스리안-알마니안, 칼빈 등의 신학이
허다하지만 그들 각종의 신학은 십자가 구속의 도리를 뜻하는 하나의 가지
에 불과하다. 그 나무의 잎과 꽃에 지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십자
가를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천국을 지옥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의
진수인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를 완전히 전도시킨 사탄의
작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주는 지구를 위하여 있고 지구는 동식물을 위하여, 동식물은 인간을 위
하여, 인간은 선민을 위하여, 선민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 우주와 지구와 신구약 성경
의 중심은 십자가뿐이다. 모세가 보이는 지팡이를 우상시하다가 실패하였으
나 금일의 성도들이 십자가 그 자체를 우상화하지는 않는다. 십자가의 구세
주를 신봉하는 것이지 십자가 그 나무를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며 구속적 십
자가를 믿는 것이지 십자형의 나뭇가지를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 사34:16- "성경은 짝이 없는 것이 없다"
구약과 신약은 상호 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이 없는 신약은 존재
할 수 없으며 신약이 없는 구약은 성경이라 할 수 없다,
구약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상징과 예표이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
에 대한 증거다. 그러므로 양자가 함께 있어 완벽한 구속적 진리를 표현하
였다. 유대교와 회교도가 구약은 있으나 신약이 없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안상홍은 구약은 있으나 신약이 없어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 세
상만물은 다 짝으로 되어 있고 신구약 성경도 악으로 되어 있다. 이 짝을
맞추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성경 해석이다.
칼 바르트도 철학에 의한 귀납적 집결신학을 만들었다가 그 다음 2단계로
자기의 신학, 즉 말씀의 신학, 위기신학, 차원신학을 만드나 은퇴 후 빈 방
에서 오로지 성경만을 놓고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하였다. 그는
말년에야 무엇이 진리인가를 깨달았던 것이다.
신구약 성경을 종횡으로 해석하여 유기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른 성경
해석법이다. 그리고 진리에는 시간적 의의가 있다. 사울은 히브리왕국의 창
건자요, 다윗은 그 전성기요, 솔로몬은 그 황금시대요, 르호보암은 그 마지
막 멸망기에 속한다.
구약과 신약은 그 역사적 사명과 의의가 있다. 구약 시대가 지나가고 신
약시대를 거쳐 지금은 21세기 종말 시대가 도래하였는데, 그 4000년 전 구
약을 운운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비정상적 비이성적 정신착란증 환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안상홍이 사망하자 장길자 여인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있으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은 공허하고 혼돈한 시대가 되
었다(창1:2). 그러나 "여호와 가라사대"로서 질서의 창조 사역이 시작된다
(창3:-). 질서의 하나님은 종말 세상을 질서의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44] 제목 : [안상홍증인회] 안상홍교회여 깨진 가정 책임져라
※ 국제종교문제연구소(02-439-4391)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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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홍교회여 깨진 가정 책임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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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빼앗긴 남편들의 절규와 묵묵부답인 안상홍증인회 -
정리 오정숙기자
월간「현대종교」97.6월호
30,40대 가장들의 고민은 심각하다. "그 수상한 종교단체의 정체는 무엇
인가!", "아내가 그곳에 심취하고 있어 불안하다", "그 교회 때문에 부부간
에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문제없던 가정에 평화가 깨졌다", "아내를 그
곳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은 없는가."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 교회(이하 안상홍증인회)에 다니는 아내를 둔 남
편들은 언젠가부터 찾아온 가정내 부정적인 변화들에 대해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대개 결혼 생활 10년 안팎의 젊은 주부들로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이 자리잡힐 무렵인 이들은 단란한 부부 사이를 벌어지게 한 원인 제공
자로서 안상홍증인회에 대한 반감과 배우자에 대한 실망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들 남편들은 무엇보다도 안상홍증인회가 주장하는 상식 이하의
교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공통적인 입장을 보였다. 어떻게 안상홍이라는 정
체불명의 사람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으며, 또 자신들만이 말세에 구원받
는 '14만 4천명에 속해 들림받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
만 더 기가 막힌 것은 배울만큼 배우고 정신병자도 아닌 내 아내가 바로 그
곳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K씨의 말처럼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드라마
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바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
해 적잖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있었다. 먼저 구체적인 피해 사례들을 소
개한다.
■ 사례1. 무조건 밀어붙이기 식으로 남편의 이해만을 요구한다.
K씨는 삼십대 후반으로 접어든 대기업 간부. 세살 연하의 부인과의 사이
에 두자녀를 두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1년전부터 그들 가정에 안상홍증
인회가 끼어들면서 행복했던 가정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부부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상식적인 대화가 안 통한다는 것. 현재 성남쪽에 있
는 안상홍증인회에 다니고 있는 그의 아내는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장길자
를 하나님 어머니로 굳게 믿으면서 안 믿는 남편이 이에 대해 비판이나 지
적을 하려 하면 무조건 '마귀의 음모'라며 몰아붙이려 한다. K씨는 고민 끝
에 전문기관의 도움을 얻어 비판 자료까지 구해 설득하려 했지만 그의 아내
는 처음부터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안상홍 쪽에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세뇌교육을 시켰
는지 상식이 안 통하고 대화하려 해도 말이 안돼요. 반대편 이야기는 안듣
고 무조건 자기 교회가 옳다니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요. 최근에는 아이들까
지 교회에 데리고 가서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까 우려됩니다".
그는 아내에게서 부부간에 서로 인격적인 의사소통으로 해결하려는 의지
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며 실망감을 표출했다. 무조건 남편이 자기 신앙을
이해하고 따라와주기를 바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고.
하지만 K씨는 보편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
겠냐며 강하게 반발한다. 한때 불교신앙을 가졌었던 그는 부인도 신앙이 전
혀 없는 상태에서 무비판적으로 안상홍에 심취하는 과정에 있어 달리 손쓸
방법이 없는 상태이다. 때문에 K씨는 교회 출석을 막을 수도 없고 허락할
수도 없어 두고만 보고 있다고 한다.
"부모님께 이 사실이 알려질까 봐 가급적 찾아뵙는 회수를 줄이고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기에 바쁩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허탈하고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와 절망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별거나 이혼
이요? 물론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백년해로하기로 약속한 부부 사이인데,
하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해야지요 잘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
■ 사례2. 천년에 종말 온다며 맹신하는 아내와 별거중, 이혼 직면.
삼십대 초반의 L씨는 국영 사업체에 근무하는 안정된 직장인이다. 부인과
는 열애 끝에 결혼했고 사이에 예쁜 딸까지 두었다. 그러나 남부러울 것 없
던 결혼 생활은 지금 파경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업 주부였던 부인이 안
상홍증인회로 나가기 시작한 지 2년째. 현재 안상홍증인회 전도사나 다름
없다.
그녀는 집집마다 방문하는 전도인의 인도로 안상홍증인회에 다니기 시작
했고 처음에는 토요일과 화요일 등 정기모임에만 나가더니 점차로 가가호호
전도와 교회 활동에 몰두하면서 L씨가 직장에 간 사이에는 교회에서 살다시
피 하는 등 급변해 버렸다.
"가사를 등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게 안상홍을 믿으라며 신앙을 강요
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안상홍 교회 안 다니면 구원 못 받는다나요. 내키
지 않아 거부하자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더군요. 믿지 않는 남편은 '짐승'이
라고 표현했고 부부관계도 일방적으로 거부하면서 심지어는 몇 달간 가출까
지 하더군요. 돌아와서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어요. 교회와 관련해서 상습적
인 거짓말은 예사이고 정말 아이만 없으면 당장이라도 이혼하고 싶다는 생
각이 수없이 들더군요."
그래도 L씨는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기
도 했다고 한다. 한번 믿어 보려고 교회에도 가보고 책도 읽어보고 권하는
설교 테이프도 들어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피라미드식으로 주입하는 교육 방식에서 위기감이 느껴졌습니다. 또 기
성 교회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에서 건전한 종교단체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고요. 그보다도 도대체가 보편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 정
신을 의지하는 종교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L씨는 특히 안상홍이 하나님이라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더욱 거부감을 표
현했다. 그는 아내와 대화 중에 안상홍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하는 때가 있
었는데 그러면 아내는 자기의 아버지를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L씨의 아
버지, 즉 그녀에게는 시아버지가 되는 어른을 거침없이 헐뜯는 등 상식 이
하의 행동을 보이기도 했었다며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대로는 못살겠더라고요. 그렇다고 아내가 나아질 기미도 안보이고 그
래서 결국 먼저 별거와 이혼을 제의했지요. 아내는 처음에는 반대하더니 점
차 동의하는 기색을 보이더군요. 단 2천년 안에 분명히 종말이 올테니 그때
까지 별거하면서 이혼을 고려하자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내년까지 서로 떨어져 있기로 한 겁니다."
L씨는 이 때문에 직장도 지방으로 옮겨 1년째 자취 생활을 하고 있다. 현
재 매달 아이 양육비와 아내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는데 그의 아내는 이러
한 그의 지원으로 홀가분하게 안상홍증인회 전도 활동에 더욱 몰두하고 있
는 중이라고 한다.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는데 아이도 교회에 맡기고 전도만
하러 돌아다니는 눈치라고 그러면서 남편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
가 오는데 2천년이 되면 북한이 핵전쟁을 일으켜 불바다가 되어 세상의 종
말이 온다. 하지만 하나님 교회로 피하면 살 수 있다" 며 설득하기를 잊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가 예전처럼 돌아만 온다면 얼마든지 받아 줄 용의가 있습니다. 하
지만 그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사실 집사람은 돌아올 의지도 없습니다.
갈수록 더 깊이 빠지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제 더이상 기대도 안
하고 다시 새 출발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자기 같은 피해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씁쓸할 웃음을 남
기는 L씨는 그러나 다시 시작하게 될 새로운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극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 사례3. 남편에게 거짓말시키는 안상홍회 때문에 부부간의 신뢰깨질
뻔.
30대 중반의 H씨는 현직 교사인 부인이 휴직기간 동안 안상홍증인회에 나
가면서 곤혹을 치른 경험이 생생하다. 다행히도 그가 초기에 이를 알아 적
극 조치를 취해서 현재 부인은 그곳에 나가지 않는 상태이지만 그들의 교리
가 잘못되었음을 이해시키는 데 참으로 큰 고생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기
독교 정통교리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던 H씨와 그들의 교리에 솔깃해
있는 부인의 의견 충돌은 잦은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가정 방문으로 접근해 온 그들이 인간적으로 잘해주자 호감을 갖게 된
모양입니다. 조금씩 주입시키는 그들의 교리 교육에 세뇌돼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던 당시에는 이미 안상홍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습
니다. 그리고 기존 교회의 맹점을 비판하는 내용에 더욱 공감하고 있더군요
"
H씨 부인은 마침 기독교 신앙을 가지려고 마음먹고 있는 터였고 교리적인
분별력도 없어 하나님을 들먹이는 그들의 설득에 아무런 의심 없이 넘어갔
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부간의 신뢰에 흠집을 내는 일이 필연적으로 등
장했다.
"처음에는 그곳에 다니는 것을 몰랐지요. 아내가 의도적으로 숨긴 거예
요.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남편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교회에서 시켰다는 겁
니다. '처음부터 안상홍증인회라고 얘기하면 거부할테니 본인이 공부 많이
해서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나요. 그러면서 두달동안
을 몰래 다닌 거예요."
아내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서 상당히 불쾌했다는 H씨. 그리고 또 한
가지 H씨가 발견한 이 단체의 허구성은 그 교리에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
곳에 잠깐 다니는 동안 정통 교회 교리에서 크게 빗나간 성경관에 물들어
있는 중이었다. 그녀에게 하나님은 심판하는 하나님,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더라고. H씨
는 해결 방법으로 아내와 2주간 유예기간을 갖고 아내는 교회에 나가지 않
는 대신 H씨는 이들의 잘못을 이해시킬 수 있는 자료와 대화의 시간을 가지
면서 노력한 결과 그 교회와의 왕래를 끊을 수 있었다.
위에 소개된 사례들 이외에도 피해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안상홍증인회
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와 갈등을 호소하는 외침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인 셈인 안상홍증인회측은 그다지 책임 의식을 느끼지 않는 기
색이다. 이들은 이러한 피해 사례에 대한 본부측의 공식적인 답변을 계속
회피하고 있고, 그렇다고 자신들의 단체를 떳떳하게 공개하는 법도 없어 그
폐쇄성으로 도리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적인 피해
의 원인이 한두 사람의 착오에서 발생된 것이라며 피해자에게로 책임을 떠
넘기려는 의도를 짙게 보이고 있다.
일반 장로교회를 9년 다니다가 작년 12윌부터 구로지역의 안상홍증인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한 여신도에게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 당신이 다니는 안상홍증인회로 인해 가정내 불화가 생겼다는 호소가 이
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 우리 교회는 그런 일이 전혀 없어서 잘 모르겠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는 모양인데 그건 한 두사람이 처신을 잘못해서
생기는 일일거다. 아니면 부부간의 문제이던가. 부부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왜 우리 교회와 연관짓는가. 우리 교회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교회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 그러면 교회에서는 가정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는가.
- 어머니(장길자)도 식구(신도)들에게 남편을 하늘 같이 여기라고 하고
가정을 잘 지키라고 가르치신다.
- 그래도 많은 남편들이 안상홍증인회에 나간 다음부터 아내가 이상해졌
다고 한다. 책임이 전혀 없을 수는 없을텐데 교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 너무 진리가 확실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 어차피 구원받으려고 믿는 것
아닌가. 진리에 대해서 확실히 모르면 그까짓거 남편이랑 행복하게 사
는게 낫지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진리를 알게 되면... (말끝을
흐리다가 끊는다). 물론 가정일 팽개치는 것은 좋지 않은 거지만 너무
핍박이 심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결정을 하는 것 같다.
- 본인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 없다. 우리는 부부가 함께 다니기 때문에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
- 피해 당한 당사자의 심정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글쎄... 답변하기가 어렵다.
가정불화와 같은 현상적인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그
들 교리에 내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아예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철저히 잘못
된 신관임에도 불구하고 비유와 암시의 성경 구절들을 교묘히 배열함으로써
교리적인 오류를 포장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석에 있
어 고도의 신중함을 요하는 예언서나 계시록 등 비유와 암시의 성경 구절을
문맥이나 신학적인 배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안상홍씨를 신격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어 신앙이 확고히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은 덫에 걸리는 것이
다. 신도들이 안상홍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았다.
"다니엘서에 보면 로마때 부터 하나님의 때와 법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
리고 성경에 보면 다윗의 뿌리가 와서 봉한 말씀을 떼어 준다고 되어 있다.
그 봉한 말씀을 떼어준 하나님이 바로 보혜사 안상홍이다. 바로 비유와 암
시로 된 비밀스러운 말씀을 다 열어서 해석해 주신 참 하나님이다. 이것은
우리 식구(신도) 이 외에는 모르는 사실이다. 안상홍 하나님은 구원받는 백
성수 14만 4천이 채워지면 다시 재림하신다. 우리는 그 수를 채우기 위해
전도하는 거다"(구로동 안상홍증인회 L씨).
"안상홍증인회에 가니까 성경 구절을 짝으로 맞추어 구절 구절을 해석하
는 게 너무 신기하고, 기성 교회에 다니면서 느끼지 못한 시원함을 느꼈다.
어차피 성경책 예언대로 세상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안상
홍 만큼 성경을 기가 막히게 잘 해석해 놓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목사들은
'안상홍은 하나님이고, 장길자도 안상홍과 한몸이므로 하나님'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반은 믿고 반은 안 믿는다"(광명시안상홍증인회 P씨).
답변한 신도 중 P씨는 현재 남편과의 충돌 때문에 올 한해까지만 다니기
로 약속하고 각서까지 쓴 상태였다. 본인이 안상홍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
는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입수된 각서에는 "안상홍 하나님을 믿으면 산
채로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는 문구가 분명히 적혀 있었다.
이들은 작년으로 6천년 구속사업이 끝났고 이제 종말이 가까워 온다고 이
야기한다. 그리고 혹자는 2천년으로, 어떤 이는 올해 6월에 안상홍씨가 다
시 하늘로부터 재림한다고 믿고 있다. 지난 88년, 말세 재림이 온다며 그들
이 피난처로 부르는 충남 연기군 소정면 서정리 야산인 전의산에서 대대적
인 종말맞이 행사까지 벌였다가 종말이 연기되었다는 말로 허구성을 합리화
시켰던 전적을 가지고 있는 안상홍증인회.
앞서 소개한 피해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아직도 상식 이하의 교리에
미혹되어 소중한 가정을 희생시키고 있다.
"내 가족이 수렁에 빠진 것은 어쨌든 가장인 저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어
떻게든 이해하는 입장에 서서 아내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싶습니다. 이
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그저 감정적으로 대립하지 않게 노력을 많
이 해야 할 것입니다." K씨는 담담히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 안상홍
증인회 측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며 마지막 항변을 남겼다.
"만약 정말로 죽은 안상홍씨가 객관적으로 보아도 모범적인 행위의 종교
가라면, 최소한 4대 성자처럼 절대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위치로서의 신
앙의 대상이라면 왜 떳떳하게 공개하지 않습니까. 켕기는 것이 있고 베일에
가려 놓을 만한 구석이 있으니까 나서지 않는 것 아닙니까? 이런 피해 사례
가 정말 교회의 책임이 아니라면 공식석상에 나와 밝혀야지요. 그걸 못하면
안상홍증인회는 정말 사교 집단입니다."
[43] 제목 :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활개
※ 국제종교문제연구소(02-439-4391)제공
┏━━━━━━━━━━━━━━━━━┓
┃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활개 ┃
┗━━━━━━━━━━━━━━━━━┛
취재,글 박경복기자
월간「현대종교」97.6월호
안식일, 유월절, 성탄절을 사탄이 변개시켰다며 포교에 광분
"저, 혹시 하나님의 교회라고 아십니까?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하고,
또 크리스마스도 12월 25일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집에 자꾸 찾아와서 성경
공부를 하자고 하면서 요즘 교회들이 잘못됐다고 그러는데 도대체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곳이지요?"
"우리 집사람이 어떤 교회를 다니는데요,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뭐, 하
나님의 교회라고 하던데, 토요일날 교회를 가더라구요 그리고 행동하는 것
도 좀 다르게 느껴지고. 도대체 그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저는 OO교회 목사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 하나님의 교회라는 데에 나가
시는 분이 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잘못된 점이 많습니다. 혹시 거기에
대한 자료 좀 없습니까?"
최근 들어 하루에도 최소 3건에서 많은 날은 6,7건씩 위와 같은 전화 상
담이나 자료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전화로 문의 해오는 분들이 말하는 하
나님의 교회는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 교회'가 본래 명칭이다. 그러나 최
근에는 줄여서 그냥 '하나님의 교회'라고만 밝히고 있어 기성 교단인 하나
님의 교회(한영철 감독)로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않다(이 기사에서는
안상홍증인회로 쓰기로 한다). 우선 주일 성수를 부인하며 안식일(토요일)
성수를 주장하는 정도로 알려져 있는 안상홍증인회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
자.
안상홍증인회는 1962년 3월 24일 안상홍씨외 23명이 안식일 교회를 탈퇴
하여 2년후인 1964년 4월 28일 부산 해운대에 '하나님의 교회 예수증인회'
를 설립하면서 시작된 종파이다. 그후 포항(65년), 풍기(69년), 서울(72
년), 진도(75년), 울산교회설립 및 출판사 등록(해운대구 1호, 80년), 마산
(81년), 대구(83년) 등 전국에 지교회를 설립하고, 85년 3월 22일 서울 교
회로 총회본부를 옮겼으며 동년 6월 22일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안상홍씨가 성령 하나님이라는 교리를 주장하며 계속해서 신도들
을 모았는데 1985년 2월 25일 사망한 안상홍씨가 3년뒤 재림할 것을 예언했
다 해서1988년에는 절정에 달했다. 당시 충남 연기군 전의면(현 소정면)의
전의산 (일명 삐룡재, 삐룡산)에 수천 명의 안상홍증인회 전 신도들이 모여
안씨의 재림을 준비한 바 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희한한 광경을 지켜본
전의산 인근 주민들은 "그때는 뭔지 몰라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애, 어른
할 것 없이 잔뜩 모였어요. 이 근방이 온통 그 사람들로 가득했지요. 텐트
를 치고.... 그때 식구들 찾으러 온 사람도 꽤 있었지요"라고 증언하고 있
다.
당시의 이러한 소동에도 불구하고 재림이 불발에 그치자 이에 실망한 상
당수 신도들이 안상홍증인회를 이탈했다. 그후 안씨가 전에 '하늘 어머니'
로 지목한 장길자 여인을 중심으로 안상홍증인회는 이탈 신도의 규합에 온
힘을 쏟았다(장 여인의 등장 배경은 안씨가 어느 날 야생마 꿈을 꾸었는데
깨어 보니 장 여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안씨는 하나님 아버
지가 있듯 영의 어머니 즉, 하늘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장여인을
'하늘 어머니'로 지목했다).
그 과정에서 안상흥증인회측에서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라는 소책자를 발행, 이미 안씨는 강림했던 것이고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는 성경의 예언(비유)을 성취하기 위해 재림이 늦춰진 것뿐
이라며 이탈하는 신도들을 설득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그러한 안상홍씨의
재림 불발로 인한 내부의 커다란 혼란에도 불구하고 안상홍증인회가 최근
다시 세력을 떨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도대체 어떻게 전도(?)
했길래 이런 일이 가능한가.
"안상홍이요? 처음에는 거부 반응을 보일까 봐 그러는지 안상홍에 대해서
는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냥 무슨 설문 조사를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러면서 안식일 문제라든가 유윌절, 성탄절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하더
군요. 우리가 지키는 주일 성수는 사실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했어
요. 그 뒤에 한참 교리 공부를 하면서 안상홍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
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하나님이 있겠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안상홍이라
는 이름이 실제로 사람 이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요. 그때는 좀 거부
감이 들기도 했는데, 워낙 교리적으로 설명을 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
습니다"
한 이탈 신도의 증언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안상홍증인회' 임을 밝히지는
않는다. 대신에 설문 조사를 핑계로 성도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거나, 이
웃들, 혹은 면식자들을 상대로 접근하여 안식일이라든가 성탄절 등에 대해
서 장황한 설명을 한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굳이 안식일과 주일 성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기 마련이므로 그들이 성경을 들이대며 "평생토록
기억하라 영원한 규례니라"라는 성경 구절로 안식일과 유월절이 폐하지 않
았음을 주장하면 새로운 지식인가 싶어 귀가 솔깃해진다. 더욱이 성탄절이
12월 25일이 아니라는 둥, 성령은 교회가 부패하여 태양신을 섬기게 되자
(주일 성수) 거두신 바 되었다(교리서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p.22)는 주장을 들으면 제법 그럴 듯하게 느껴지는 것이 보통이다.
안식일과 유월절에 대한 안상홍증인회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들
은 교회사를 다룬 여러 가지 문헌들을 통해 진실을 밝힌다며, 안식일이 로
마시대를 거쳐 천주교에 의해 태양신을 섬기는 일요일로 변질되었으며 오늘
날의 교회는 천주교에 의해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된 것이라고 강변한다.
▲ 「상해천주교요리」중권, 윤형중 저, 1958.10.20발행.
"천주교에서도 처음에는 유대인 '필로'의 분류를 그대로 따랐다. 그러다
가 제5세기에 이르러 성 아우스딩의 분류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더 합리적이
므로 차차 이것이 우세하여 그 후 천주교회에는 이 성 아우스딩의 분류가
일반화되었다. 필로의 분류 :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말라... 4.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나님의 십계의 분류)/성 아우스딩의 분류 :
1.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위에 공경하여 높이고.... 3. 주일을 지키고(천주
교회십계. 아우스딩의 분류).
▲ 「교부들의 신앙」 p. 93, 1957.7.1. 발행.
"천국에 사람을 인도하는 중책을 진 교도자는 반드시 그 구령하기에 필요
한 모든 진리를 빠짐없이 가르치고 진리에 관한 모든 의문을 충분히 해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실상 성경에는 신조 전부가 다 들어 있지도 않고 또 거기
에서 신자의 준수 세목 전부를 찾아 낼 수도 없다. 주일 성수 의무의 일례
를 두고 보자. 그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마는 성경에
는 일요일 성수에 대한 명백한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요 일요일은 아니다."
"성(빅톨)교황때 로마에서는 동월 14일 다음에 드는 주일에 지냈다...
(중략)교황(빅톨)은 카톨릭 의식의 일치와 유대인 절일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소아시아 모든 주교에게 로마의 지키는 절일에 따르기를 요구하매
모두 이에 복종하였다"(같은 책 PP.125-126).
"신약시대로 넘어와서도 안식일의 계명은 폐지되지 않았다. 예수께서도
친히 안식일을 지키셨다. 주일(일요일)의 제도는 기원 4세기에 천주교 교황
이 콘스탄틴 황제의 도움을 받아 제정한 것이다"(같은 책 p. 470).
「교회력」p.64, 김동주 저, 1962.12. 발행.
「요약 기독교회사」p.39, 박광성 저, 1970.3. 발행.
「기독교회사」 pp.144-145, 송낙원 저, 1965.6.1. 발행.
<중앙일보> 1970. 12. 8, 12. 25 자.
「교회사」초대편 pp. 121-123, 1972.5.15. 발행.
이상 예로 든 문헌들을 이용하여 안상홍증인회 신도들이 논리적으로 주일
성수의 역사를 설명하면 성도들은 이들의 집요하고도 적극적인 설득(?)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개신교의 일부 부정적인 현장들을 양념으로
곁들이면 "교회가 부패하여 성령이 떠나셨다"라는 그들의 주장은 '진리'처
럼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안상홍증인회에서 제시하는 문헌들은 단지 학문적으로 천주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들이 대부분으로 이같은 주장을 충분히 반박하는 학계의
주장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기독교대백과사전」(기독교
서회 刊)에서는 주일 성수 대해 복음적인 측면에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 보혈로 더 이상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복음을 깨달은 초대 교
회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
던 것으로 보인다.... (중략).... 안식일과 주일 성수 모습이 함께 나타났
다.... (중략).... 로마로 복음이 전해지면서 324년 '일요일 휴업령'에 의
한 공식적인 휴일에 성도들이 모여서 교제하고 예배드리게 되었던 것은 문
화적으로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는 내용으로 언급하고 있다.
즉 복음으로 더 이상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어지게 되자 안식일도 차츰
의미를 잃게 되었는데, 이는 로마와 유대 지역의 문화적인 차이로 서로 다
르게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로마에서는 태양신(이방신) 사상으로
'일요일 휴업령'이 반포되었던 것이 주일 성수가 정착된 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복음과 율법을 이해한다면 태양신 숭배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억지 주장임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서 안상홍증
인회측의 주장처럼 결코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 안식일(토요일)이 주일(일요
일)로 변개된 것이 아니라, 단지 모든 이방 민족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고
(특히 로마를 중심으로) 복음으로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일 의미가 없게 되자
이방 민족의 문화(로마의 태양신 숭배로 인해서 일요일에 일을 하지 않으려
는 경향이 휴일 선포령으로 된 것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휴일(일요일)을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와 친교에 이용하게 된 것이 역사적 측면에서의 주일
성수 유래라는 것이다.
안상홍증인회측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사실 학문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
타나고 있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복음, 즉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
다는 진리 앞에 안식일 논쟁 자체가 큰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이는 주변적인 논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주일 성수 문제는 보다 복음적으로 정착되어 주일예배를 통해서 이미 2천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역사해 오셨다는 사실이(그 동안 수많은 성
도들이 주일 예배를 드렸으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지만 신앙을 위해 기쁘
게 순교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분명히 구원받았을 것으로 우리는 믿
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에도 합당하며 율법에서 해방되어 진리 안에
자유를 얻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축복임을 우리는 은혜로 여기며 감사드리고
있으므로)이러한 안식일 주장의 덧없음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안상홍증인회는 이상과 같은 안식일 주장을 통해, 특히 로마 천주
교의 역사를 지극히 단편적으로 해석하여 이를 교회의 부패로 보도록 하는
'억지 논리'로 성도들에게 접근하고 있고 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만
은 사실이다.
안상홍증인회의 설립 초기부터 이어져 온 이같은 주장이 특별히 최근 들
어 득세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전도에 열을 올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4만 4천명만이 구원을 받는대요. 지금 아마 12만명 정도가 생명책에 올
랐다는 것 같아요. 침례를 받고 어느 정도 지나면 번호를 줍니다. 생명책에
기록됐다는 의미이지요,"
"전도를 정말 열심히 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전도하고는 달라요. 아
주 적극적이고 뭐, 필사적으로 해요.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끈질기게 전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 공부를 보통 시키는 게 아녜요. 아예 신학교가 있어서
거길 졸업해야 되고 평신도들은 단계별로 교육이 또 있어요. 그걸 다 배워
야 침례도 줘요."
"교회가 전국에 약 1백개에서 1백 2십여곳 이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보통
20-30명 규모인데 사람이 많아지면 뚝 떼어서 다른 곳에 교회를 또 세웁니
다. 거기서 또 전도를 해서 늘리고 그러는 것 같아요."
이상의 이탈 신도들의 증언은 이들이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전도전략
과 전도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
면 그들은 첫째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교리교육(전도훈련)으로 전도능력을
키운다. 안상홍증인회의 단계별 교육은 초급 3단계, 중급 2단계, 고급 2단
계의 총 7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끝까지 완수하여 복음 사역에 활용
하도록 하라"는 격려문이 교재 표지에 쓰여 있다. 특히 초급 3단계 과정부
터는 "침례 인도의 열매가 맺혀져야만 다음 단계로의 교육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어 모든 성경 공부의 핵심적 목표가 '전도'를 배제하고는 이루
어질 수 없도록 하는 조직적인 전략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로 교회의 확산을 통해 전도의 동기를 부여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마
치 기업체에서 특정 지역 내에 영업의 거점을 마련하고 그 일대의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것처럼 자체 신학교를 통해 집중적으로 목회자를 양성하여
지역에 교회를 설립 파견하며 전국을 네트워크로 조직화하면서 전도망을 구
축하는 것이다. 이같은 확산을 통한 전도 전략은 안상홍증인회의 '하늘 어
머니' 장길자가 한 교회 설립 축하 메시지에서 "열심히 기도했더니 몇 개월
만에 계획대로 1백교회를 넘게 해 주셨다. 지금도 20여개의 교회가 준비중
이다"라고 말한 데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물론 평신도 교육과 교회 확산 전략은 정통 개신교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총회적 차원의 집중적이고 조직적인 지원과 관리, 또 이들이 개교회
주의가 아닌 공동교회주의의 입장에서 단결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으로 차이가 있다. 실제로 이들의 활동을 종합해 보면 모든 전도용 교재의
편집이나 기획이 총회에서 이루어지고 관리, 운영되고 있으며, 장길자씨와
총회장 김주철씨는 모든 산하 교회에 있어 우선적인 지위를 인정받고 있고,
전국교회연합수련회 등 전교인 차원의 행사를 매년 열고 있다. 즉 형식은
기성교단의 조직과 형태를 띠고 있으나 내용상으로는 본 교회와 지교회의
관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밖에 테이프, 비디오, 서적 등을 이용한 교육 프로그램과 운영 방안 등
도 이들의 맹활약에 힘을 실어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8년의 재림 불발 이후에도 안상홍증인회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는 사실은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는 소책자를 발행한 데
서 알 수 있다. 더욱이 최근 안상홍증인회 주변에 떠도는 소문은 위기감마
저 불러일으킨다. 본지에 제보된 것만해도 "올해 6월 종말설"로부터 "1999
년 종말설", "14만4천명 육박설" 등 이들이 종말의 임박을 언급하고 있다는
내용이 크게 늘었고, 차츰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들 또한 접수되고 있다.
아직 안상홍증인회측에서 '종말'이나 '재림'에 관해 이렇다 할 공식적인 발
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14만 4천명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 14만 4천이 채워지
면 종말이 온다는 주장은 그들의 교리나 교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맹렬한 세력 확장의 기세를 몰아 곧 14만 4천이 채워지면 또 한 번
의 재림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하는 것이다.
안상홍증인회와 관련해 본지 상담실에는 부녀자와 학생들의 가출, 학교부
적응, 가정이탈 등의 사례가 다수 접수되고 있고 그 수도 늘어나고 있는 추
세이다. 이들은 '예정된 불행'을 향해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지켜만 보고 있는 셈이다. 분명 안상홍증인회는 용
암을 쏟아내기 일보직전의 화산처럼 긴장감과 열기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
다. 그들의 활화산의 열기 속에 교회와 세상이 휩쓸려 불행한 사태가 일어
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행
동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