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8일 야간일을 마치고 9일 새벽 1시경에 우리 부부와 앞집부부 이렇게 두집의 네명이
강원도로 출발을 하였다.
명목은 생일 기념여행인데,
정작 본인의 생일날 일하고 와서 또 동해안 까지 운행을 하는 고행의 날이 되었다.
그래도 이럴 때 충성을 안하면 언제 하랴 하고 두말없이 밤길을 모아 헤집으며
동해로 동해로 내 달렸다.
일단은 오랬 만에 일출을 보고 이리 저리 돌아보자는 뜻에서 , , , ,
집사람과의 여행도 무척이나 오랬 만이다.
몇 년 전에 충주호로 낚시를 다녀온 후로 처음이었다.
일찍 출발을 한 덕에 여명이 오기도전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한곳은 “정동진“
(동해안의 새벽)
(30분후)
정동진 백사장 옆으로 난 인도로 몇십 미터를 들어 가다가, 막다른 길이라
차를 돌리려고 백사장 쪽으로 돌렸는데 그만 앞바퀴가 모래 속으로 사정없이
빠져 들기 시작을 했다.
내려서 보니 바퀴가 반은 빠져 들어가 버렸다.
예전에 붕애 하고도 논에 들어 갔다가 빠졌었는데 , , , ,
바퀴 아래 모래를 파내고 널빤지를 주워다가 앞에 고이고 나서야 겨우 빠져 나올수 있었다.
한찬을 기다란 후에야 구름 사이로 해가 떠 오르기 시작을 했다.
구름 한점없이 크고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만족할만 한 일출이었다.
(일출)
(일출에 빠진 아내)
동해항으로 길을 돌려 식사를 해결 하려 하였으나,
지니년이(네비게이션) 온동네 한바퀴 다 돌아서 도착을 한곳은 볼 것도 없고,
먹을 곳도 없는 곳 이었다.
동해에서 정선으로 가기로 했다.
산길을 구비 구비 돌고 돌아 뒷좌석의 여자들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아침의 짙은 산의 푸르름을 눈에 가득 담으며 차는 계속 위로위로 올라갔다.
하여 다시 돌아 백봉령을 넘어(해발800미터)첼리스트가 한다는 메주농원과
백봉령 약초나라를 지나 임계면을 지나 정선땅으로 들어 섯다.
정선군 북면 아우라지역을 지나면서 “레일 바이크”로 가보고 싶었으나
능력의 한계를 느껴 골지천과 조양강을 옆으로 끼고 정선역을 향했다.
조양강은 오랜 가뭄에 강으로서의 이미지를 잊은채 작은 또랑이 되어 있었다.
아담하고 나름 예쁘게 꾸며놓은 정선역에 도착을 했다.
(정선역)
다들 배도 고프고 나는 이제 발에 감각이 없을 정도 이다.
일하면서 이백키로, 정동진까지 삼백키로, 또 여기까지 산길을 돌아 이백오십키로,
정선역앞의 할머니가 하는 조그만 들어가 아침을 먹기로 하고 식사를 주문을 했다.
그래도 강원도 정선에 왔으니 이곳의 음식을 맛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내 의사는 무시되고
세 사람은 김치찌개 삼인분을 시켰고 나는 “메밀콧등배기”를 시켰다.
쉽게 이야기해서 안먹어 본 것이라 시켰는데 메밀 칼국수 인 것이다.
그래도 맛은 새삼스러웠다.
김치찌개는 더 가관이었다.
돼지기름이 냄비의 반 이었고 그나마 김치는 보이지도 않았다.
반찬도 이곳이나 그곳이나 별반 다름이 없었고,
도회지의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그런지 간도 이 도시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옥수수막걸리”와 감자전을 주문하여 한잔을 한 후 우리는 역 앞의 모텔에 들어가 한숨
눈을 붙이기로 했다.
오후에 일어난 일행은 인터넷에서 찾았다는 맛 집을 찾아 가기로 하였으나 이 지니년이
온 동네를 뱅글 뱅글돌아 어느 집 뒤로 안내를 했는데,
상호가 그 상호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배가고픈 관계로 일단은 그 집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는데,
원래는 그 집이었는데 주인이 바뀌어 상호도 바뀌었단다.
일단은 그곳의 대표 식사인 “곤드레비빔밥”을 먹고 정선장에 들러 구경을 하고,
곤드레 문드레가 되어서 우리는 “화암 관광단지”로 향했다.
(화암계곡)
화암약수터를 지나 오르니 작은 “소”가 있어서 발을 벗고 여울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었다.
작은 소에는 산올챙이들이 새까맣게 오글오글 모여 있었는데,
사람이 들어가도 도망을 가지 않고 오히려 물에 담근 발등에 붙어서 무언가를 뜯는 듯 했다.
마치 “닥터피쉬”같이,
(산 올챙이)
몰운대를 지나 지억산의 꼬불한 길을 도 돌고 돌아 민둥산의 한 “펜센”에 들어갔다.
“통나무펜션”? 개울옆에 자리한 이층짜리 펜션.
한낮의 더위는 사정이 없어서 실내는 무쟈게 더웠다.(에어컨도 없다)
우리는 너무 방안이 더워서 발코니에서 식사와 함께 그제 서야 생일 축하주를
돌릴 수 있었다.
밤이 이슥해서야 앞집부부는 방에서 자고 우리는 덥다고 모기향을 펴고 발코니에
자리를 폈다.
밖에서의 잠자리가 더없이 시원하기는 하였으나 내심 모기의 밤샘 공습이 적잖이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작은 계곡이 흐르는 바로 옆의 발코니는 나름대로 낭만적 이었다.
계곡의 바위와 물은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그 밤부터 아침까지 잘잘잘 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발코니에 누워 하늘을 보니 별도 없다.
“이론 된장” 이젠 강원도 에서도 별이 안보이나????
하며 잠든 새벽녘 이슬의 촉촉함에 눈을 뜨니 하늘가득 별이 총총하다.
잠이 가득 들은 눈에 씨 익~~ 미소가 띄워지며 그러면 그렇지,
하늘가득 한 별이 너무도 예쁘다.
맑고 초롱한 눈빛 , , , ,
그렇게 민둥산의 하룻밤을 지내고 사북으로 가서 슬롯머신을 한번 땡겨 보고 싶었으나
시간관계상 영월을 거처 단양 제천 쪽으로 향 하였다.
드디어 강원도를 벗어나 충청북도로 들어서니 고목이 앞을 가로 막아 선다.
그 아름드리나무 아래는 충효탑이 세워져 있었다.
효자를 기리고 미래의 본보기로 삼는 임금이 하사한 작은 효도비,
요즘에도 효행상과 효부들을 추천받아 나랏님이 상장을 주기는 하는거 같기는 하나
그 명예가 예전과 같지 않음은 왜일까 , , , ,
단양에 이르러 도담삼봉을 들어갔다.
(도담삼봉)
또 지니를 시켜 “사인암“을 찾아가라 하니 옆으로 보이는 사인암을 지나쳐
국도 한가운데에서 “ 목적지에 도착 하였습니다” 한다.
“ 미쳐부러,
사인암계곡에서 노미는 목욕을 하고 제천으로 향 했다.
(사인암1)
(사인암2)
충주호의 최상류로 가서 충주호를 굽이굽이 돌면서 제천에 이르럿다.
낚시꾼이라 관심은 충주호의 수위였다.
상류쪽은 골자기 바닦이 다 드러나 있었고 수위는 무척많이 내려가 있었다.
sbs 일지매 셋트장을 구경을 하고 두어군데 더 돌아보려 “솟대마을” 이라고 하는
곳을 찾아가 봤으나 마을이 아니고 한집에 솟대만 많이 세워져있는, , , ,
야생화 마을 이라는 곳을 가 보았으나 그곳도 썰렁~~ 사기당한 기분.
충주호가 보이는 식당에 들러 쏘가리 매운탕을 먹고 집으로 돌아 왔다.
한번 해 보고는 싶었으나 한번도 제대로 못해 보았던 쏘가리 낚시, , ,
언제 인가는 할 있는 날이 있겠지 , , , ,
떠난 곳도 집이었고 돌아온 곳도 집이다.
아무리 멀리가도 결국은 돌아오는 곳은 내 집 이다.
나는 이곳에서 또 떠날 준비를 한다.
돌아오는 여름 떠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