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에서의 ‘행(行)’과 오온에서의 ‘행온(行蘊)’은 약간 다르다고 봅니다.
12연기에서의 ‘행(行)’은 그 내용이 ‘삼행(三行, 신행 ․ 어행 ․ 심행)’이고요, 오온에서의 ‘행온(行蘊)’은 그 내용이 ‘육사신(六思身, 색사 ․ 성사 ․ 향사 ․ 미사 ․ 촉사 ․ 법사)’이므로 약간 다릅니다. 말하자면 오온에서의 ‘행온(行蘊)’은 ‘육육법 계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니까야에는 ‘12연기와 육육법의 관계’가 ‘식지분과 촉, 수, 애’만 ‘육식신, 육촉신, 육수신, 육애신’으로 설해진다고만 아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오온의 고집멸도에 무지하면 그것이 무명’이므로 ‘무명도 오온과 관련’하여 설해지고요, 12연기의 여덟 번째 지분인 취(取)도 오취온과 관련하여 설해집니다. 명색은 오온과 무관한가요? 또한 생(jāti)지분은 그 내용이 ‘諸蘊의 나타남(khandhānam pātubhāva) ․ 處의 성취(ayatanānam paṭilābha) 등’으로 설해지지 않나요?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는 두 종류의 연기설입니다.
그리고 12연기에서의 ‘행(行)’은 ‘무명을 전법으로’ 연기된 것이고, 오온에서의 ‘행온(行蘊)’은 ‘애(愛, 땅하)를 전법으로’ 연기된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혹자는 오온에서의 ‘행온(行蘊)’을 설명하기를 ‘정신적 운운’하는데, 니까야에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이고 나아가 ‘물질과 정신의 구분’도 극단론 아닌가요? 사대소조취색인 안이비설신이 물질적인 것이라고 보면 극단이고 그것을 정신적인 것이라고 보면 코미디고 그러한 것이 아닌가요? 안이비설신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유물론이지요. ‘행온(行蘊)’이 정신적인 것이라면 12연기에서의 ‘행(行)’에 의하여 색온(色蘊)이 쌓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신행(身行)이 정신작용인가요? 색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심(心)이 성립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