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7. 원명정사 법문.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34. 청원 행사선사. 남악 회향화상-마조도일
청원행사 선사가 6조께 묻기를 “마땅히 어떻게 힘을 써야만 곧 계급에 떨어지지를 아니합니까?”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일찍이 무엇을 하여 왔느냐?”하자 청원스님이 이르기를 “거룩한 진리도 또한 하지(구하지) 않습니다.”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계급(직위,법위)에 떨어졌는가(있는가?)?”하자 청원스님이 말하기를“거룩한 진리(聖諦)도 오히려 하지 않거늘 어찌 계급이 있습니까(비어공하거늘 계급이란 것이 있는가?)”하였다.
강설: 6조께서 법기임을 아시고 대중의 머리로 삼으셨다.
(남악회향과 더불어 6조의 양대 법제자로 -양신족이라 일컬었음)
남악 회양화상이 처음에 6조를 참배하니 6조께서 물으시기를 “어느 곳에서 왔는가?”하니 회양스님이 말하기를 “숭산에서 왔습니다.”하자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하니 회양스님이 말하기를“한 물건이라고 하여도 곧 맞지 않습니다.”하자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리어 닦아 증득하는가?”하니 회양 스님이 말하기를 “닦아 증득한 것은 곧 없지 않으나 물드려 더럽힐 것은 곧 없나이다.”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 오염 되지 않는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호념하시는 바이니, 그대가 이미 이와 같고 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하였다.
강설: (이 직지심체요절을 해설 강의한 스님이 “닦고 증득하는 것은 있기는 있지만 번뇌가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를 더럽히는 것은 없다(더럽힐 수 없음)는 것이다. 닦고 증득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중생-깨침) 번뇌가 남아 있어서 번뇌를 닦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했는데 바르게 알지 못한 소견이니 맑아 깨끗한 법성(자성)은 불구 부정한 것이라 물듦이 불가한 것임을 이른 것임을 모르는 소치의 오류인 것이다 - 또한 닦아 증함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오염은 없다는 것은 보임을 한다는 것이다 운운...한 것은 크게 잘못된 소견이니 체성의 청정을 이른 것을 보임 운운 한 것은 크게 그르친 발설인 것임)
6조를 모시기를 15년동안 깊고 오묘한 경지가 날로 더해갔으며 그 후에 남악에 가서 크게 선풍을 드날렸다.
회양화상이 마조가 좌선만을 많이 익히는 것으로 인하여 하루는 벽돌을 가지고 암자 앞에서 갈고 있으니 마조스님이 묻기를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만들려고 합니까?”하니 회양화상이 말씀하시기를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하자 마조가 말하기를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하니 회양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벽돌을 갈아서 이미 거울이 되지 않는다면 좌선만 한다고 어찌 성불을 하겠는가?”하자 마조스님이 말기를 “어찌 해야 곧 옳겠나이까?”하니 회양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비유컨대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만약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곧 옳은가? 수레를 때려야 곧 옳은가?”하였다.
강설: 여기서 위 스님은 “마조의 좌선이 쓸데없는 공연한 짓이라”고 강설했는데 옳게 보지를 못함이니 쓸데없는 것이 좌선이 아니라 앉음으로써 부처를 이룬다고 국집 하는 소견을 깨워 마음을 곧 깨침이 성불임을 일깨워 주신 수단(방편)임을 모르는 소치
또 “마조스님이 조동종(종조:양개선사) 못지 않는(?) 임제종과 위앙종의 종사가 된 분이라”한 설명도 잘못되었으니, 낫고 못하고는 분별이요, 임제종은 임제스님이 종조요, 위앙종은 위산과 앙산스님이 종조임.
36. 영가 현각 선사(永嘉 玄覺禪師) 영가 현각 대사가 조계에 이르러서 주장자를 떨치고 (6조선사의 주위를 세 번돌고)서있자 6조선사가 이르기를 “대저 사문은 삼천 위의와 팔만 세행(대승:8만4천 수행의 미세한 모든 것을 닦음. 소승: 구족계250세행)을 갖추어야 하거늘 대덕은 어느 곳에서 왔길래 큰 아만을 내는가?”하니 영가스님이 이르기를“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함이 신속하거늘 어느 겨를에 예의를 갖추겠습니까?”하자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무생의 도리를 체득하여 신속함이 없음을 요달하지 않는가?”하니 영가 스님이 이르기를 “체득한즉 남이 없고 밝게 깨침에 본래 빠름이 없나이다.”하자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와 같고 그와 같으니라.”하였다.
강설: 6조의 제자가 된 현책이 찾아와 만났을 때 더불어 깊은 대담을 했는데, 하는 말이 조사와 합하였다. 현책이 묻기를 “스님은 법을 주신 스승이 누구요?”하니 “내가 방등경론을 들을적에는 각각스승이 있었으나 그 뒤 유마경에서 부처님의 심종을 깨달았으나 증명해 줄 분이 아직 없소”하니 “위음왕불 이전에는 그럴수 있었으나 위음왕불 이후에는 스승없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은 모두 천연외도 입니다”했다 “그러면 원컨대 사형께서 나를 증명해 주시요”하자 “내 말은 가볍습니다. 조계에 6조대사가 계시니 사방에서 모여와 법을 받고 있으니 만일 가시겠다면 함께 가겠소이다”해서 6조를 뵙게 되었다.
영가스님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서 참례(절)하고 잠깐만에 하직을 고하니 6조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돌아가는 것이 너무 빠르지 않는가?.” 하자 영가스님이 이르기를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늘 어찌 빠름이 있겠나이까?”하자 6조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누가 움직이지 아니함을 아는가?”하자 영가스님이 말하기를 “어른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시옵니다.”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무생의 뜻을 매우 잘 얻었도다.”하자 영가스님이 말하기를 “무생에 어찌 뜻이 있사옵니까?”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이 없다면 누가 지금 분별하는가?”하자 영가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분별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하니 6조께서 탄복해서 말씀하시기를 “옳다, 옳다.” 하였다.
강설: 6조께서 탄복하시고 “선재 선재라”하시고 “하룻밤이라도 쉬어가도록 하라”하셔서 그때 깨쳐서 하룻밤을 잤다고하여 일숙각이라 하였으며 뒤에 증도가와 영가집을 지어 세상에 성행하게 했다.
영가선사가 이르기를“마음은 곧 근본이요 법은 곧 티끌(塵:俗事)이니 두가지는 거울 위의 흔적과 같도다. 마치 거울 위의 먼지의 흔적이 모두 제거되면 거울의 빛이 비로소 나타나(본래 먼지도 없고 거울 또한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마음과 법을 쌍으로 잊어버린 성품이 참(실상)이니라.”
강설: 위 스님이“본래 청정하고 맑은 마음을 心과 法이 오염시킨다”했으나 심도 법도 본래 청정심을 오염시킬 수 없는 것이며 아상이 있어 자아인 업식의 분별심이 청정심을 가리고 있음을 모르는 소치다.
한물건도 없음을 밝게 요달하여 보면 역시 사람도 없고 또한 부처도 없노라. 모래 같은 삼천대천세계가 바다 가운데 거품이요, 모든 성현이 번갯불이 번쩍임과 같노라.
강설: 위 스님은“물거품은 지극히 작고 바다는 지극히 커서 모든 삼천대천세계와 모든 시방세계가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에 비유하면 마치 큰 바다 가운데 물거품과 같다는 것이다운운... 세계도 별것이 아니고 모든 성현들도 별것이 아니라” 했는데 이 또한 모르는 소리다. 마음(바다)에 비해 일체가 보잘것없다는 것은 옳으나 영가스님이 말씀한 뜻은 일체가 환과 같음을 이르신 것이요 성현도 실상이 없으나 잠시 나투었다 사라짐을 이른 것이다.)
또 이르시되 진을 구하지도 아니하고 망도 끊지를 않나니(본래 청정, 원성이라), 두가지법이 공하여 상이 없음을 깨달아 알면, 상도 없고(일체공) 빈것도 없고(공이니까) , 빈것아님도 없는 것(상이 없어)이 곧 이 여래의 참다운 실상이니라. 모든 행(만행)이 무상(제행무상)하여 일체 공한 것이 곧 이 여래의 원각(원만각성- 깨달은 성품) 이니라 헐뜯을 수도 없고 칭찬할 수도 없으(공)니 바탕(體)은 허공과 같아서 한계가 없노라. 당처(바탕:그 자리-일체처-응무소주)를 여의지 아니하고 항상 담연하니 찾아보려고 한즉 그대가 볼 수 없음(공)을 알게 되리라. 실상인 사람과 법이 없음을 증득하면, 찰나에 아비업장(지옥에 떨어질 죄업)이 모두 멸하리니, 만약 거짓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티끌같은 모래수(塵沙劫)의 기간 발설지옥에 스스로 떨어지게(自招:스스로부름) 될 것이니라.
또 이르기를“두 비구가 있어서 음행과 살생을 범함에 우바리 존자는 반딧불빛(작은 법문)은 죄의 결박만을 더하였으며(지계제자 우바리 존자가 참회로써 멸하지 않는다 하여 참회를 거절한 것을 비유해 지계에 얽매인 작은(소승)소견을 비유〈≠ 持犯開遮〉), 유마대사는 단번에 의심을 제거‘그 죄를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내가 참회시켜 주겠다’하여 구제한 것을 비유)하여 마치 빛나는 태양이 서리와 눈을 녹이는 것과(일체번뇌, 망상인 착심) 같도다. (마치 이르기를“다만 뒤바뀐 것을 쫓아 생김이 머무른 곳이 있음이 없다.”하고 또 “생각의 자체가 본래 공했거늘 변하는 바가 무엇이 실다우리요?” 라고 함과 같다.)
강설: 이 말씀은 출가승인 두 비구가 각자 토굴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느날 날이 저문때에 어떤 여인이 비구처소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자 이 비구가 거절하자 다른 비구를 찾아가 간청하니 허락하여 자게 되었는데 이튿날 첫 번째 비구가 그 비구처소에 가보니 그 여인이 도반의 처소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여인을 죽여 버렸다. 한 비구는 간음죄를 범했고 한 비구는 살생을 범하게 되어 부처님 십대제자 가운데 지계제일 우바리존자를 찾아갔다가 거절되어 슬픔과 비통에 빠진 것을 본 유마거사가“그대는 그렇게 설법해서는 안되오”하고 이들을 구발한 경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 음해의 죄가 무거운가? 살생의 죄가 무거운가? (음행죄와 살생죄를 다는 저울을 갖고 오너라)
영가 선사가 이르기를 “육신이 허환 하여 자성이 있음이 없음을 알면 색이 곧 이 공이거늘 무엇이 나인가? 일체 모든 법이 다만 거짓 이름만 있을 뿐이어서 하나도 고정된 실체가 없노라. 이 나라고 한 몸이 4대와 5음(5온-진여 가운데 쌓여있음)이 낱낱이 내가 아니요, 화합도 역시 없으니 안과 밖으로 추리하여 구함(推求)에 물에 모인 거품과 같으며, 뜬 거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아서 필경에 사람이 없거늘, 지혜가 밝지 못(無明)하여 알지 못하여서 망령되이 나로 집착하여 실다움이 아닌 가운데서 그릇되게 탐착심을 내어 살생하고 도적질 하고 음행하고 더러운 짓을 하여 거칠어지고 미혹하여 밤새(竟夜終朝) 부지런히 많은 업을 지으니 비록 참다운 실상(眞實)은 아니나 선과 악(善惡)의 과보를 받는 것(報應)이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응당 스스로 몸의 실상을 관찰하며, 부처를 관찰함도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니 그러므로 이르기를“도가 목전(일체처)에 있다.”고 하며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세가지 모두가 차별이 없다(본성공, 필경공-색즉시공)’고 하느니라.”
강설: 인연 또한 속제인 차별문으로는 있으나 진제인 평등본성으로 관해보면 인연의 성품도 본래 공한 것이다. |
출처: 무애대비심 원문보기 글쓴이: 무애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