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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이곳에 여씨 노부부가 살았는데 어부 생활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여 오던 중 슬하에 어린 딸 효순(孝順)이 하나를 남기고 부인이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여씨 노인은 그 날부터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조개도 줍고 고기도 잡고 하여 하루하루 살아 갔다.
세월이 흘러 효순이는 밥이며 빨래며 잦은 일손이며, 아버지를 잘 보살필 만큼 자랐습니다. 동네에서도 하늘에서 보낸 보기 드문 효녀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효순이가 몸이 아파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여씨 노인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다 효순이의 약을 구한다며 길을 떠났습니다.
효순이의 열은 차차 내려갔고 기운을 찾았을 때.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평소에 잘 다니는 주막집에 찾아가 주모에게 아버지를 보지 않았냐고 물어 보았지만. 주모는 여씨 노인이 효순이의 약을 구하러 길을 떠났다고 전해주었다.
효순이는 가슴이 벌컥 내려 앉았다. 벌떡 일어서서 아버지가 나가셨다는 개울
가를찾아다녔다. 그러다 아버지가 즐겨 사용하시던 대바구니와 짚신 한 짝이 뻘 밭에 뒹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효순이는 아버지의 신발과 바구니를 안고 통곡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수가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불쌍한 효순이의 생명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난데 없이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학들에게 효순이의 구출을 명하였고, 그러자 학들은 날아와서 까무러친 효순이를 끼고 언덕위에 옮겨놓으니 백발 노인이 구름에 쌓여서 하는말' 학들아 너희들의 살곳은 여기서 십리쯤 떨어진 곳과 이십리쯤 떨어진 곳에
있으니 그곳에 가서 서식하라' 라고 낭랑한 목소리와 은은한 옥소(玉簫)소리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학이 다리모양으로 늘어서서 효순이를 구하여서
'학다리'라고하며 두줄로 들어섰다고 하여 '쌍다리'라고도 한다고 한다.
여기서 십리쯤 떨어진 곳은 향교이고, 이십리쯤 떨어진곳은 무안 상동이라고한다.
향교와 상동에는 지금도 수백쌍의 학이 서식하고 있어, 천연 기념물로 지정하였고, 신선이 내려온 곳을 신선동이라 이름하였다한다.
이외에도 이곳은 고려 태조왕건이 활약하며 웅지를 키웠던 곳으로 태조께서 후백제가 왜구 일본고 국교를 맺음을 막기 위하여 애쓰던 곳이요, 그 후예들이 고려를 세움에 필요한 역량과 포부를 다졌던 곳이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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