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세계글쓰기를 통한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hwp
시공세계글쓰기
이학주
이 글은 글쓰기를 하는 또 하나의 이론을 정착시킨 것이다. 글쓰기 이론의 명칭은 ‘시공시계글쓰기’이다. 이 방법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동아시아의 중국 당나라와 우리나라 신라와 월남과 일본 등에서 유행했던 전기소설(傳奇小說)에서 볼 수 있다. 인간이 차원이 다른 귀신을 만나 사랑을 하고, 역시 차원이 다른 하늘, 용궁, 지옥 등 모든 세계를 왕래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인간이 귀신이나 별세계의 인물을 만났을 때 반드시 그 증거물이 손에 들려 있는 설정을 했다. 전기소설은 치유(治癒)라는 현재적 가치를 언제나 보여주었다. 요즘 한창 언급되고 있는 4차산업도 마찬가지다. 이미 있었던 이론을 과학이라는 인간의 발명품과 융복합하여 탄생시킨 것이다. 4차산업이 나올 수 있는 배경도 현실과 차원이 다른 이론이 모여 실제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이론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을 판타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시공세계글쓰기’라는 말로 이론을 정착하고자 이 글을 썼다. 여기 소개하는 글은 필자의 논문에서 시공세계글쓰기 이론만 축출한 것이다.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1세기 지구촌의 문화코드는 시공을 초월한 시공세계(時空世界)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로 다가와 실현되는 세계가 되었다.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을 더하여 4차원으로 만든 세계가 시공세계이다. 영화 <아바타>(Avatar, 2010년 1월 21일 개봉)가 인기를 끈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4차원의 세계를 끌어들여 시공적 연속체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시공세계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인간의 생각이 그곳까지 미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바타>를 보면서 열광했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현재의 공간에 다가와 횡행한 영화였다. 일찍이, 인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는 꿈을 꿨다. 타임머신이란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신비의 시공을 왕래할 수 있는 상상의 기구이다. H. G. 웰스가 소설 <타임머신>을 썼던 것도 같은 개념이다. 요즘 AR(augmented reality, 增强現實),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이라 하여 가상세계를 현현하는 새로운 장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AR과 VR도 시공세계라는 기본 착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 AR과 VR을 합친 MR(Mixed reality, 융합현실 혹은 혼합현실)이 등장했다. 매직리프(Magic Leap, 2011년 설립)라는 회사가 실제로 체육관에서 고래가 나타나 움직이게 하는 MR장면을 연출하였다. 아울러 이런 시공세계의 이론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를 문학글쓰기나 콘텐츠 및 스토리텔링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기초를 새롭게 제공하여야 한다.
인제에는 마의태자(인제에서는 金富大王이라고도 칭함)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그 이야기는 바로 천 년이라는 시간을 끌고 와서 인제의 현재공간에 투사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죽은 마의태자가 살아서 인제에 다니고 있는 현실이다. 설화의 문화콘텐츠현장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시공세계의 현상이다.
마치 일본의 옛날 귀신이 포켓몬으로 둔갑하고 그것이 ‘포켓몬고’라는 게임(2016년 출시)으로 탄생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현상과 같은 입장이다. 또 1990년에 출간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공원>에 등장하는 공룡의 부활과 이를 바탕으로 영화 <쥬라기공원>이 1993년부터 시리즈로 나온 사례도 다름 아니다. 모두 재미를 위해서 가상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것을 사실인양 현실세계로 끌어들여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어 마케팅에 성공한 콘텐츠들이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게임과 영화에 광적으로 매달렸다. 우리나라의 경우 포켓몬이 잡히는 곳을 찾아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속초까지 가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쥬라기공원도 공룡이라는 콘텐츠가 가지는 매력에 역시 사람들은 열광했다. 게임과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탄 것이다. 헛것인 줄 알면서도 열광할 수 있는 상상의 진실이었다. 그것을 잡는 쾌감과 그것을 상상하는 쾌감이 삶의 힘든 상황을 잠시나마 벗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인제에서 마의태자는 게임이나 영화로 만들어져서 유명세를 탄 것이 아니라, 지명과 설화와 유적과 소설 및 인제 사람들의 인식으로 현현되었다. 이는 사실의 계승이랄 수 있다. 그 사실이 환상처럼 느껴질 뿐이다. 어찌 되었든 천여 년 전에 죽은 마의태자(김부대왕)는 현재 인제사람들의 의식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처음부터 소설과 영화와 게임처럼 가공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콘텐츠와는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자원이다. 이순신이나 류인석처럼 역사적 인물이 주축이 됨으로, 특정 지역과 연계를 이룰 수 있는 자원이 된다. 하여튼 천 년 전의 인물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환상적(幻想的)이다. 쥬라기공원처럼 원래부터 가공한 것이든 마의태자처럼 실재 인물이 새롭게 설화로 가공된 것이든 모두 환상적인 것이다.
그림 시공세계글쓰기 개념도
그러나 그 환상은 현재 우리 앞에 실재(實在)하고 있다. 환상의 실재화이다. 이를 일러 필자는 환실(幻實)이란 용어를 만들어서 썼다. 환실은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세계이면서 전기소설 글쓰기의 기법이라고 했다. 전기소설에서는 환실을 활용하여 작품을 환실세계(幻實世界)로 만들어서 작가의 이상(理想)을 담았다. 과거 전기소설의 작가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환실기법을 빌려 진실을 말하고자 한 방법이다. 직접 사실을 언급하면 여러 제약이 따르므로 그 저촉됨을 벗어나고자 택한 방법이 전기소설이고, 전기소설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그 때문에 전기소설의 작중 인물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 인간과 귀신이 만나 사랑도 하고, 지옥이며 용궁이며 천상의 세계도 왕래할 수 있다. 주인공이 별세계를 넘나들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인간으로서 인지할 수 있는 시공의 개념이 전기소설에서는 확대되어 나타났다.
전기소설에서 나타나는 이런 시공의 개념은 설화에서도 그대로 주어진다. 설화의 주인공이 사다리나 콩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이라든가, 물에 빠졌는데 용궁에 떨어졌다가 강아지를 따라 지상으로 나오는 장면 등이나, 꿈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설정, 일시적 죽음을 통해 죽은 조상을 만나고 오는 등의 설화적 설정은 전기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필자는 새로운 개념으로 ‘시공세계글쓰기’방법이라 명명한다.
전기소설과 설화의 환실세계가 시공세계글쓰기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적 가치를 보다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기소설이나 설화에서도 현재적 가치가 따른다. 그러나 그 가치가 마케팅(Marketing) 차원에서 비롯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체계적인 경영활동이 들어간 환실세계글쓰기가 시공세계글쓰기(world of space time writing)이다. 시공세계글쓰기는 마케팅이 들어가서 현재적 가치 창출이 분명하게 도출된다.
시공세계글쓰기방법을 활용하면 차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작중 인물이 활동할 수 있다. 작중 인물의 능력도 작가가 정하기 나름이다. 염력(念力)도 쓸 수 있고, 장풍(掌風)을 날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전기소설이나 설화에서 보듯 천 년의 시공을 초월해서 남녀가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전생을 현생과 내생으로 바로 연계시킬 수도 있다. 변신을 할 수도 있고, 시간과 공간이동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전기소설이나 무협지나 차원을 달리하는 만화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작가는 그런 글쓰기를 통해서 원하는 무엇을 분명하게 가치로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시공세계글쓰기의 현재적 가치 창출이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실제로 21세기의 인간 문화와 인간의 삶은 시공세계의 현장에 놓여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언제든지 시공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AR, VR, MR이나 4D기법을 활용한 가상영상기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기법은 게임이나 영화의 장치로서 현대인들에게는 익숙한 표현법이다. 만화와 같이 영상매체에서는 언제든지 원하는 시공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
그곳에는 시공세계의 질서(秩序)만 깨뜨리지 않으면 된다. 시공세계의 질서는 시공세계를 있게 하는 그들만의 규칙을 일컫는다. 곧 시공세계에 따른 인과관계(因果關係)와 합리적(合理的)인 인식만 있으면 규칙은 이뤄진다. 이런 질서는 인간의 보편적 인식으로 주어지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서 설정할 수도 있다. 마치 전기소설에서 현실세계에 있는 주인공이 귀신이 있는 구천이나 저승세계를 넘나드는 방식을 ‘꿈’과 같은 장치로 설정하는 것과 같다. 타임머신을 타야 과거와 미래세계로 갈 수 있다는 현대적 상상력도 그에 다름 아니다. <쥬라기공원>에서 모기의 피에서 유전자를 찾아 공룡을 부활시키는 착상도 시공세계를 넘나드는 질서의식으로 볼 수 있다. 이 질서는 게임에서는 점수를 따고 궁극적인 목적지까지 도달할 때 넘어야 하는 규칙으로 보면 된다. 시공세계의 질서는 차원을 넘나드는 작품을 쓸 때 꼭 필요한 규칙이다.
또한 그 규칙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해야 한다. 가령, 주인공이 시공세계를 활용해서 가야의 김수로왕과 아유타국의 허황옥이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갔다면 그 당시의 시공을 연출해야 한다. 당시 상황이 현재적 시공의 배경으로 연출된다면 작품은 질서가 파괴되고 독자나 시청자는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는 사실상 의상이나 의식주 등의 고증을 떠나 그럴 듯하게 당시 상황을 연출하면 된다. 고증이 가능하다면 해야겠지만, 실상 단군시대나 수로왕시대의 고증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원래부터 가공(加工)의 세계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런 가공의 세계는 글쓰기를 하기 전에 배경 설정을 해주면 된다. 향유자들은 그런 설정에 익숙해 있다. 이 설정방법은 만화와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쓰는 방식이다. <아바타>의 경우도 이와 같은 설정이 도입된 것이다. 이런 가공의 세계를 설정한 시공세계글쓰기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시공과 가공의 세계를 연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물, 배경, 사건을 보다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창의적인 영역이 그만큼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이제 시공세계글쓰기의 방법론은 충분히 설명되었다. 쉽게 말해서 시공세계글쓰기는 인물, 배경, 사건이 시차를 달리해서 현재적 시공으로 살아나서 마케팅으로 창출될 수 있는 글쓰기방법이다. 이 시점에서 시공세계글쓰기는 스토리텔링으로 탄생할 수 있는 공유점을 가진다. 곧,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여 움직이게 하는 마케팅이라는 명제가 실행된다. 따라서 시공세계글쓰기방법은 지역자원을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임을 증명하는 근거이다. 더하여, 문학적 글쓰기에서 현재적 가치창출을 위해 판타지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해 줄 수 있다.(출처: 이학주, 「인제 마의태자설화의 문화적 의미와 관광문화콘텐츠 방안: 시공세계(時空世界)글쓰기와 고전의 현대적 활용」, 동방학36,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