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근현대사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단체 가운데 하나인 흥사단은 본래 무슨 목적에서 조직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어떻한 길을 걸어 왔는가? 또 장차 의 모습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흥사단의 이념과 역사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를 묻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 설립자였던 도산의 생각으로 돌아가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도산의 사상은 여러 각도에서 말해 질 수 있지만 여기서는 우선 그의 민족운동이론에 주목하여 이를 <한국 민족의 자주 독립과 번영발전을 위한 단계론적 프로그램>으로 규정하고 그 속에서 흥사단의 창단 목적을 말하려고 한다.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도산의 유품 가운데는 그가 지녔던 작은 수첩이 하나있는데 그 속에 두 페이지에 걸쳐 도산이 자신의 민족운동 구상을 도표형식으로 잘 요약해 놓은 간략한 친필 메모가 있다. 이를 토대로 그의 민족운동론을 이해하면 그 속에서 흥사단의 위상은 매우 분명히 드러나리라 보는데 그 도표의 골자만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도산의 단계적 민족운동구상>
단결훈련
실업단
재정
신체적건설
조국증진
기초수립
진행준비
완전준비
진행결과
완전결과
정신훈련
학업단
인 재
독립 전쟁
국권광복
이같은 구상이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생애 전체에 걸쳐 거의 일관된 생각이었다고 보아진다. 즉 한말 일제하의 식민지 상항에서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던 도산은 (1)기초수립 (2)진행 준비 (3)완전준비 (4)진행결과 (5)완전결과라는 다섯 단계를 설정해 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메모의 세부적인 기록에 따라 단계별로 좀 더 상세히 내용을 다음과 같다.
(1)기초 수립단계: 기초의 수립은 정신 훈련과 단결 훈련의 두 가지 훈련으로 이루어 지는데, 정신 훈련은 신애 용감 인내 등의 덕성의 함양을 뜻하며 단결훈련은 주의의 통일과 직무의 분담 그리고 행동의 일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2)진행 준비단계: 진행 준비는 실업단과 학업단의 조직 및 활동을 뜻한다. 실업단은 농업. 상업. 공업에 종사할 회사 .개인기업. 금융기관. 교통 기관등의 경제활동 주체들의 조직과 그 활동을 말하며, 학업단은 덕육 체육 지육을 통신 혹은 서적을 통해 공동으로 수학하거나 학교에서 정식으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각종 학업 활동을 위한 조직체을 만드는 일과 그 학업활동을 말한다.
(3)완전 준비 단계:완전한 주비란 앞서의 실업단과 학업단의 조직과 활동에 의해 재정과 인재가 축적되는 것을 뜻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군사비 외교비 건설비등의 재정비축과 군인 기술자 의사 실업가 학자 등 각분야 전문인재양성을 말한다.
(4)진행결과단계: 진행의 결과란 일제를 구축하기위한 독립전쟁의 수행과 그과정에서의 민족정권수립을 뜻한다.
(5)완전결과 단계: 완전한 결과란 일제를 완전히 구축하여 마침내 조국의 광복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독립이후 민족국가의 번영발전을 위한 건설까지를 말한다. 위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지지배하라는 유래없는 극악한 상항속에서 도 도산이 한국 민족의 자주 독립과 번영 발전이라는 민족의 앞날에 대한 원대한 이상을 확고히 세워놓고 그에 도달하는 과정을 매우 정밀하게 모색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여기서는 이해의 편의를 휘해 위의 도산의 다섯단계 구상을 다음의 세단계로 정리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기초단계: 위의(1)의 단계로서 인격훈련, 단결훈련을 통한 지도적 인물양성의 단계이다.
둘째, 준비단계: 위의(2)와(3)의 단계로서 기초단계를 통해 배출된 지도적 인물들이 조직적인 교육 및경제 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다음 단계의 독립운동과 국가건설을 휘해 필요한 재정 및 인재를 확보해 가는 단계다.
셋째, 운동단계: 위의(4)와(5)의 단계로서 준비단계를 통해 축적된 재정과 인재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전쟁)을 전개하여 민족의 독립을 쟁취해 내고 독립한 조국을 번영된 국가로 건설해 가는 단계이다.
이와 같은 구상에 비추어 민족운동가로서의 도산의 일생에 걸친 사업과 활동을 일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도산은 무엇보다도 ‘민족운동에 헌신할 지도적 인물양성’을 민족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일로 보았으니 이를 휘해 조직한 것이 바로 <청년학우회>,<흥사단>이었다.
다음으로 그는 장차의 본격적인 민족운동(=독립전쟁과 국가건설) 전개에 필요한 재정마\lc 인재의 준비와 그것을 위한 조직사업에 헌신하였는데 공립협회, 신민회, 대한인국 국민회, 임시정부 대독립당등 의 조직체 설립과 대성학교, 태극서관, 자기회사, 북미 실업회사, 동명학원, 동광잡지 등의 각종 부문 사업들이 그것이 였다.
마지막으로 도산은 본격적인 운동의 단계을 전망하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과 의 독립전쟁 수행과 민족정권의 수립 및 완전한 광복 실현, 나아가 번영 발전된 조국 건설이라는 일련의 연속적 과업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도산자신은 이 단계의 활동에는 착수해 보지 못한체 다만 민족운동의 최고 위급지도자로서 동료 후배들과 함께 대공주의등 장차의 민족국가상에 대한 모색에 그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도산의 민족운동 구상속에서 흥사단의 창단은 문자 그대로 민족전도대업(민족의 자주독립과 번영발전)의“기초를 수립‘하기 위해서 였는바, 보다 구체적으로는 민족운동에 헌신할 지도적 인물의 양성을 위해서 였다.
2.독립 운동기 흥사단 운동의 반성
1913년 창단이래 77년에 이르는 흥사단의 역정을 여기서 세세히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식민지 시대와 분단 시대로 각각 특징지어지는 20세기 전후반의 우리나라의 민족운동과 관련되는 부분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도산의 단계적 민족운동구상 속에서 민족전도대업의기초를 수립한다는 나름대로의 중요한 목적을 갖고 조직된 흥사단이 식민지시대에 실제로 보여준 미미한 독립운동사적 성과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깊이 따져 볼 필요가 있으며 더욱 이일부 지도적 단우들의 친일적 행태에 대해서는 반성적 고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 시대의 독립운동기에 흥사단은 도산이라는 비중있는 지도자와 세 개의 지역조직을 가진 잠재력이 큰 단체였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국내에 각기 조직이 있었다.
미국의 흥사단본부는 미미하나마 지속적으로 도산과 임정에 대한 재원지원의 기여를 한 바 있었다. 또 1920년에 조직된 중국에서의 원동위원부는 도산의 영향역에 힘입어 민족주의 독립 운동계의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가 1932년 도산 피체 후에는 점차 약화되어 김구가 주도하게 된 임정 세력의 일원으로 편입 되었다.
이들 국외 조직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 성과의 부족함에 아쉬움을 가질지언정 특별히 비판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문제되는 것은 국내의 흥사단이였다.
흥사단의 국내 조직은 처음 두 갈래로 형성 되었는데 이광수를 중심으로 한 수양동우회(1992년)와 김동원을 중심으로 한 동우구락부(1923년)로서 이들은 1926년 수양동우회로 통합되고 1929년에는 동우회로 개칭하였다가 동우회사건으로 1937년 해체되었다. 국내의 흥사단이 갖고 있었던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설립 목적과 과정 자체의 불투명성이 지적되고 있다.
국내 조직건설의 직접 계기가 된 춘원의 귀국부터가 일제에의 투항 혹은 귀순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일제와의 투쟁이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대두 되어 있던 민족해방운동의 시기에 <민족개조론>등에 보이는 지나칠 정도의 자기 비하적인 반성과 인격 수양만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저의와 그 조직과정에서 식민지 통치 당국과의 사전 교섭과 양해가 있었던 점은 당시 이른바 문화 정치를 표방한 일제의 지배정책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말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는 도산의 동의와 승인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둘째, 그 지도층 및 구성인물들의 계급적 성격과 이로부터 예기되었던 노골적인 친일행적의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도산과흥사단이 기반으로 삼았던 세력은 자산적 부르조아 계급 및
이들과 성향을 같이하는 부르조아적 지식인이었던 바 이는 도산과 흥사단의 근원적 한계로서, 평양의 대자산가 김동원과 당대의 문장가였던 춘원 이광수는 그 전형적인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 국내 단우들도 거의 같은 범주에 속하였는데 이들은 당시의
취약한 부르조아 계급의 역량상의 한계 때문에 강력한 힘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던 식민통치 세력과 대다수 민중 세력(농민*노동자*소상공인*진보적 지식인)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식민지 지배통치하라는 국내 조건속에서는 상황에 따라 일제와 일정하게 타협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늘 안고 있었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지도적 단우들이 이후 친일 예속의 길로 함몰해 들어갔었다.
특히 춘원은 그의 개인적 명성으로도 사회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는데 도산과의 각별한 관계 및 흥사단 내에서의 위치 때문에 일제 시대 그의 친일논리와 행적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속에서 도산과 흥사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 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셋째,3.1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0년대에는 부르조아 세력의 일부에서 자치론을 제기하고 자치 운동를 전개하였는데 국내 흥사단은 그 일각을 이루고 있었다. 춘원이 1924년 초 호남재벌의 동아일보 지상을 통해 피력한<민족의 경륜>은 자치운동의 본격적 전개를 알리는 공식선언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어 이때의 자치운동은 일단 무산되어 버렸다. 자치운동은 그 후에도 두 차례 정도 더 추친되었는데 동아일보계와 천도교 신파 그리고 흥사단계가 그 주축이었으며 자치운동의 최고 배후 인물혹은 그것이 성공하는 경우의 지도자로는 항상 도산이 지목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식민지 하에서의 타협적 자치운동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일제시대에 한국인에의해 제기되었던 자치론이 모두 같은 것은 또 아니었다.
주관적의도 면에서볼때 두 갈래 성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궁극적인 목표을 어디까지나 완전독립에 두고 거기에 도달하는 한 과정으로서 자치 공간의 획득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일시 고려해본 경우인데 도산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은 독립의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 아예 포기해 버렸거나 또 민중과의 관계 때문에 일본제국주의 체재 내에서 자치를 얻을 때만 자신의 지도적 위치 유지가 가능하리라 보아 독립을 바라지도 않은 경우인데 춘원, 최린등 당시 대부분의 자치론자들의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국내 흥사단 단우들은 이시기 대다수 민중의 뜻과 유리된 체 민족개량주의 노선에서서 일제에 타협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동우회 해체와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도산의서거를 고비로 개인적으로 분해된 체 노골적인 친일의 길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여 한국 민족은 일단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일본의 패망이 곧 한국 민족의 온전한 해방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일제의 퇴거에 따른 해방공간에는 남과북에 각각 자본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소련이라는 새로운 외세가 밀고 들어와 자기 이익의 실현을 극대화하려 하였고, 민족 내에서도 여러 갈래의 세력이 릴어나 독립국가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이합집산을 거듭 하였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해방이라는 제약아래 조성된 새로운 정세속에서 한국 민족은 결국 자주적 통일국가의 건설에 실패하고 또다시 분단과 예속이라는 불행한 현실을 맞게 되었다.
그러면 해방이 분단으로 귀결되어가던 해방 공간속에서 흥사단은 어떤 면모를 보여 주였는가??
해방 무렵 흥사단은 이미 하나의 독자적인 사회세력으로 존재해 있지 못하였다. 그가장 큰 이유는 도산에 뒤이어 사회적 권위를 가진 구심점이 될만한 지도자를 갖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우 개인들의 차원에서는 미군정기에 매우 활발한 정치 사회활동을 보이고 있었다. 관점에 따라서는 흥사단으로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고도 말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군정에 의해 등용된 그들 단우들 각개인의 인품이나 능력과는 별개의 문제로서, 이 시기 미군정의 민족사적 성격이 반민족 분단구조를 만들어 낸 점에서 주로 찾아지고 있음을 감안하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봉사한 흥사단우의 역할 역시 알제 식민지 시대의 행적에 이어 또다시 비판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3.민주 8통일운동기 흥사단의 방향
1948년 남북한에는 각기 단독 정부가 세워졌고 6*25를 거치면서 분단체제는 고착되었다. 대다수 민중의 뜻에 배치된 이같은 현실이 구조화되고 지속되는 과정에서는 물론 외세와 그에 영합한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독재 권력의 야합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20세기 후반의 한국 민족은 이로부터 또다시 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분단시대의 당위적 민족운동인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과정에서 흥사단은 어떻한 기여를 하여 왔는가?총체적으로 흥사단은 분단시대 민족운동의 방관자였다. 무해무익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일제 시대나 미군정기보다는 낫다고도 보겠으나 이는 물론 크게 반성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써 든다면 <새벽>잡지의 발간이나 <금요강좌>등을 통해 대중에게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고취한 역할 등이 없지 않게지만 비중있는 사회 단체 혹은 민족운동단체로서는 시대적요구인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지극히 소극적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예외적으로 1963년에 시작한 학생아카데미 회원들 일부가 학생운동울 통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점은 흥사단으로서는 그래도 특기할 사실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기성단우들의많은 우려와 반대를 무릅쓴 것이었으며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던 많은 학생 회원들은 흥사단의 보수적 성향에 실망한 채다른 곳에 활동의 장을 찾아 끝내 등을 돌린 경우가 많았다.많은 단우들은 이를‘단의 정치적 초월’이라는 논리로 합리화하여 왔다. 사회참여여부는 전적으로 단우 개인차원의 선택과 과제에 속한다는 것이 었다.
그결과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몇몇 단우들의 참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수는 극히 적으며 그것도 사회적으로 흥사단에 뿌리를 두고 흥사단인으로서 활동한다고 인식되지는 않는다. 도산이 목적했던“민족운동에 헌신할 인물의양성‘에 적합한 풍토가 결코 아닌 것이다. ”민족 전도대업의 기초를 수립’하기위한 단체로서는 이의 극복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오늘의 민족운동에로 시선을 돌리는 데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20세기를 10년 남겨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민족운동의 당위적 과제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실현과 자주적 통일 국가의 건설이다. 자유와 평등의 조화로운 실현을 핵심과제로 하는 민주 사회 건설은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이상이며 도산이 ‘모범적 공화국’ ‘신민주국’ ‘복스러운 새나라’ ‘대공주의’ 등으로써 그리던 독립이후 민족국가의 바람직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