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언어 61
나이가 드니 예식장에 갈 일이 많아집니다
친구의 자녀들이 결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서 봉투를 건네자마자 얼른 식당으로 달려가서 밥만 먹고 오는 지노 형님 같은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식을 지켜보다 보면 어색한 말이 쓰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주례사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주례사 선생님이라니? <주례>는 주례자의 준말로 예식을 주재하여 이끌어 가는 사람입니다
<사>는 말씀이라는 뜻이고요
위 예문처럼 저렇게 말하면 사람은 없고 말이 말을 하는 꼴이 됩니다
"주례 선생님께서 새 삶을 시작하는 신랑 신부에게 교훈이 되는 말씀을 해주시겠습니다"
이런 정도로 말하는 게 좋습니다
@또 하나 잘못된 것은 "말씀이 계시겠습니다"입니다 주례자를 높인 것이 아니라 말씀을 높였습니다
생활언어 62
설레임이라는 아이스크림 이름 때문에,
또 오뚜기라는 라면 회사 상호 때문에 표준어가 헷갈린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노래 가사 이야기입니다
"잔치 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
봉봉사중창단이 부른 '즐거운 잔칫날'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잔치는 '벌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벌리다>는 "두 팔을 벌리다" "간격을 벌리다"처럼
'둘 사이를 넓히거나 멀게 하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일을 계획하여 시작하다'
혹은 '펼쳐놓다'는 뜻으로 말을 할 때는 <벌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잔치를 벌이다"
"장기판을 벌이다" 벌이다는 이럴 때 쓰는 말입니다
@벌리다는 어떤 사물이나 신체에 사용하고,
벌이다는 어떤 일이나 행동에 사용합니다
이 말을 외워두었다가 활용하세요
ㅡ"입은 벌리고 일은 벌인다"
생활언어 63
수성동 황 씨랑 지노 형님이 오랜만에 만나서 라면을 끓였습니다 지노 형님이 말합니다
ㅡ야, 얼른 먹어라. 라면 붇겠다
황 씨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꾸합니다 ㅡ행님도 참 말 같은 소리 좀 허쇼. 라면이 붇다니요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지노 형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올바르게 말을 한 겁니다
그러면 왜 지노 형님의 말이 맞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라면이 불어서 못 먹겠다" 이 말에서 '불어서'의 기본형은 '불다'가 아니라 '붇다'입니다
붇다는 '물에 젖어서 부피가 커지다'는 뜻입니다
저번에 활용에 대해서 알아본 적이 있죠?
붇다를 활용시켜 보겠습니다
「붇다 붇고 불어서 불으니 붇기 붇겠다 불었다」
활용된 단어들을 잘 살펴보세요
'붇' 뒤에 자음이 오면 ㄷ이 변하지 않는데,
모음이 오면 ㄷ이 ㄹ로 변합니다
이런 경우를 불규칙 활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노 형님의 말이 맞는 거예요
앞으로는 이렇게 구분하여 쓰세요
"라면이 붇기 전에 먹어라"
"어느새 라면이 불어버렸네"
@국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수뿐만이 아니라
면으로 된 음식은 전부 다 이 원칙대로 써야 맞습니다
생활언어 64
우선 제가 아는 욕부터 써보겠습니다
나쁜놈, 썩을 놈, 미친 놈, 못된 놈, 쓸개 빠진 놈, 속창아리 없는 놈, 호랭이가 물어갈 놈,
넋 떨어진 놈, 싸가지 없는 놈, 개 같은 놈, 오살헐 놈.
이게 다 수성동 황 씨가 어렸을 적에 즐겨 듣던 말들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위에 있는 욕, '놈' 앞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세요
전부 다 'ㄴ' 혹은 'ㄹ'이죠? 용언(동사,형용사)이 활용할 때 저런 형태로 변하면 그것을 '관형형 어미'라고 합니다
관형형은 체언(명사,대명사,수사)을 꾸미는 형태라는 뜻입니다
어미는 활용할 때 모양이 바뀌는 부분을 말하고요
그러니까 저렇게 바뀐 이유는 순전히 뒤에 오는 낱말을 꾸미기 위해서입니다
미친은 놈을 꾸몄고 썩을도 놈을 꾸몄습니다 이때는 반드시 뒤에 오는 말을 띄어서 씁니다
이것을 알아야 띄어쓰기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도록 하려고 욕을 쓴 것입니다
여자라는 단어를 가지고 한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예쁜 여자, 착한 여자, 외로운 여자, 쓸쓸한 여자, 도망갈 여자, 가다가 자빠질 여자.
이번에도 여자라는 단어 앞 글자를 잘 살펴보세요 ㄴ이나 ㄹ로 끝났지요?
그리고 뒤에는 꾸밈을 받는 여자라는 명사가 놓여있습니다
물론 두 단어 사이는 한 칸 띄었고요
학창시절에 급훈이 "할 수 있다"일 때가 여러 번이었을 겁니다
그때 왜 '할수 있다'라고 붙여쓰지 않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띄어서 썼는지 궁금했을 겁니다
거기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공부하는 관형형 어미입니다
'할'을 보세요 받침이 ㄹ이잖아요 기본형인 하다가 뒷말을 꾸미려고 저렇게 모양을 할로 바꾼 겁니다
다른 예문 몇 개 더 보면서 관형형 어미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마치겠습니다
"나는 지금 할 일이 없다"
"집에 와보니 먹을 밥이 없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떠났다"
"그건 내가 알 바가 이니다"
"그 일은 다시 생각할 것도 없다"
수, 바, 것 이런 단어들도 전부 명사(의존명사)입니다
이제 관형형 어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관형사 의존명사 등과 함께 띄어쓰기를 헷갈리게 하는 주범이라서 오늘 맘먹고 다루어 보았습니다
*지노 형님한테서 전화 왔습니다
"내가 크면서 밥먹듯이 듣던 말이 개새낀디
그것은 욕도 아니냐고, 저 많은 욕 사이에 왜 안 끼워주었냐고,
나도 황 씨처럼 즐겨듣기를 했는데 왜 인정을 안 해주냐고,
서운하다"고 울고불고 지랄^^을 하면서 따집니다
생활언어 65
우리는 가끔 <빌리다>와 <빌다>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런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는데, 말을 하는 사람도,
또 그것을 듣는 사람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이럴 땐 "이 자리를 빌려"라고 해야 합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즉 이 자리에 선 김에' 이런 뜻이므로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한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또 남이 써놓은 글을 인용할 때에도 '빌리다'를 씁니다
"이 구절은 김선우의 시 '얼레지'에서 빌려왔음을 밝힙니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표절이 됩니다
▷<빌다>는 주로 마음속으로 바란다는 뜻일 때 씁니다
1. "그 소녀는 하나님께 시집가게 해달라고 빌었다"처럼 자기가 믿는 신에게,
혹은 인간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에 소원을 청할 때 씁니다
이때는 '기도하다'는 뜻이 됩니다
2."그는 아들의 합격을 마음속으로 빌었다"처럼
소원을 청하는 대상이 없이 그냥 자기의 간절한 마음을 나타낼 때 씁니다
이때는 '기원하다'는 뜻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문병을 가서 쾌유를 빌 때에는 "얼른 낫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