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짬터연구실입니다.
이번 여름방학때 떠날 해외 독서.문화체험캠프는 [대련.단동(압록강).고구려유적지.백두산 서파 6일 체험]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우리역사’와의 만남입니다.
'과거를 알고 미래를 여는 역사기행'으로 보다 뜻 깊은 여행에 소중한 체험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떠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 고구려 역사탐방 미리 엿보기 자료 입니다.
우리 캠프단이 가게 될 곳의 좋은 자료가 있어 미리 엿보기로 올려놓습니다.
<역대 왕조중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던 고구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영토가 넓었고, 가장 강력했던 국가인 고구려의 유적을 북한에 가서 찾아볼 수는 없어도
중국에 들어가서 찾아 볼 수는 있습니다.
지금 중국이 역사를 조작하여 자기네 들의 변방국가라고 주장하는 고구려의 유적들을 찾아보았습니다.
B.C. 37년: 고주몽 졸본성에서 고구려 건국 (졸본은 지금의 중국 요령성의 환인현 )
A.D. 03년: 수도를 국내성 으로 옮김 (국내성은 지금 길림성 집안시)
A.D. 427년: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 으로 옮김
A.D. 645년: 당나라 태종 신라와 제휴 고구려 침입 --- 20년 전쟁 시작
A.D. 668년: 고구려 멸망
<졸본성 시절의 유적>
졸본성은 현재 중국의 요령성과 길림성 경계에 있는 환인(중국발음: 환런)이라는 작은 현입니다. (우리나라 읍에 해당)
정확한 중국 행정구역은 中國 遙寧省 桓人 滿族 自治縣 입니다.
고구려는 이곳을 40 여년간 수도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곳을 방문 하면, 당시의 왕성으로 사용하였던, "하고성자성" 과 전쟁시 방어성인 "오녀산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고성자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기에 전문가가 아니면 토성의 자취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내에 있었던 고분(무덤) 들은 지금도 뚜렷하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전투용 성인 "오골산성"은 산 꼭대기에 돌로 쌓은 성입니다. 인근에 민가가 없고 돌이
튼튼하므로 현재도 잘 보존 되어 있습니다.
<고당 전쟁 유적>
고구려 말기 고구려는 당나라와 20년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 때 당나라 군대는 조양시(朝陽) 에서 군대를 편성하여
심양~ 본계~ 단둥(상기 고대 지도의 서안평)~ 신의주~ 평양 의 노건을 이용하여 고구려를 침공하였습니다.
이 "본계" 주변이 만주평원으로 사방 지평선이 보이는 곳 입니다. (지금은 주로 옥수수 밭이다).
이 만주 벌판에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당나라 군사들을 막은 곳이 요동성, 안시성, 백암성 입니다.
이들 요동 방어 3대 성은 각각 100 여Km 정도의 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이 중 보존이 비교적 잘 된 것은 백암산성 입니다.
백암산성은 요령성 성도 심양에서 단둥(신의주 맞은편 도시)으로 가는 304번 국도로 85 Km 를 가면 본계(本溪)시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부터 작은 길로 차를 몰고 20분 들어 가면 백암산성이 나타납니다.
만주 벌판에 우뚝 솟은 백암산성 성벽
성벽 위에 올라가보면 성벽의 돌을 쌓은 구조가 지그재그로 아주 튼튼하게 쌓았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니 하면서 성의 이름도 자기들 멋대로 "연주성 산성" 이라고 바꾸었다.
< 국내성 유적 >
국내성은 고구려가 평야으로 천도하기 까지 420여년간 수도로 사용한 곳이다.
위치는 압록강 가에 있으며, 현재 중구의 행정구역으로 吉林省 集安市(중국명, 지안) 입니다. 이곳에는 국내성 성곽과 황실 왕족들의 무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광개토대왕 무덤과 광개토대왕비 입니다.
처음 발견 당시의 광개토 대왕릉 비 (일본군 장교가 최초 발견 함)
현재 중국이 비각을 세워서 보존하고 있는 모습
※ 출처 : 문화유적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