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수원백씨(水原白氏)
【시조】백우경(白宇經)
【인구】316,535명 (2000년 현재)
【주요파】▲선정공파 ▲인주공파 ▲장단공파 ▲염암공파 ▲양곡공파 ▲태사공파 ▲정신재공파 ▲좌랑공파 ▲훈정공파
▲도승지공파 ▲참봉공파 ▲별좌공파 ▲문경공파 ▲청산공파 ▲산음공파 ▲임피공파 ▲봉익대부공파 ▲보공장군공파
▲부사공파 ▲금릉부원군파 ▲함판공파 ▲절제공파 ▲수의부위공파 ▲동림공파 ▲시랑공파 ▲사부공파
▲부여군파 ▲문간공파
시조 백우경은 당나라 때 중국 소주 사람이다.
신라 선덕여영 때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신라에 망명하였다. 그러나 1세조는 신라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이다.
그 뒤 고려 목종 때 백휘가 수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수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백길은 신라 경순왕 때 교위를 지냈으며 고려 태조 때에는 광평시랑을 역임했다.
그의 동생 백탁은 고려 태조 때 병부시랑에 이르렀으며 궁예 말년에 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후삼국을 통일할 것이라는 고경문(古鏡文)을 해석한 문인이다.
백사유는 백길의 큰 아들로 고려 성종 때 한림학사로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문인의 한 사람이다.
백휘는 16세에 등과하여 국자진사가 되고 후에 수원군에 봉해졌다.
정민공 백간미는 성종 때 등과하여 대장군보국사에 이르렀고 6대왕을 섬겼다.
백천징은 고려에서 뿐만 아니라 원나라에서도 벼슬이 높았다.
백문보는 고려 말기의 명신이다. 정당문학과 세자사부를 역임하고 직산부원군에 봉해졌다.
문장에 능하였으며 척불론을 주장했다. 송나라 사마광의 10과 취사제를 도입하여 인재를 등용할 것을 상소하였다.
밀직제학으로 있을 당시 농상 등 민생에 관해서 광범위한 개혁안을 제시했다.
고려 말기 신진사대부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당시의 사회모순을 개혁하고자 한 인물이다.
백원정은 무신 출신으로 감수국사를 역임한 최초의 인물이다.
백이정은 충선왕 때 유학자로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보급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충선왕을 따라 원에 가서 10년간 머물면서 정주성리학을 전공, 귀국 후 보급하였다.
문하에서 이제현 등 고려말의 대표적인 유학자를 길러냈다. 동방부자라 불린다.
한말의 백남규는 대한제국군관학교 제1기 졸업생으로 군대해산에 반대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망명의 길로 접어들었다.
백홍인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과 함께 의거를 결의, "포고8도사민서"를 유포하고 제주도로 가다 붙잡혀 수감되었다.
백정기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북경으로 망명하여 일본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데 앞장섰다.
1925년 상해에서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 농민활동에 투신했다.
1933년 상해 홍구에서 주중일본대사 암살모의를 하다가 잡혀 옥사했다.
백형철은 승려로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이다.
불교의 대중화, 일본의 종교정책에 반대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