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기사
사전투표 결과 통계적으로 이해안돼… 선관위, 의혹 풀어줄 책임있어
오피니언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20.05.04 03:12수정 2020.05.04 07:10
[최보식이 만난 사람]
[왜 사전투표 조작설이 나왔을까… 박성현 前 통계학회 회장·서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17개 선거구 사전투표 득표율 똑같이 63:36 나올 확률 통계적으로는 거의 희박해
전체 유권자는 하나의 모집단… 사전투표·당일투표 그룹 票心 현격하게 차이날 수 없어
사전 투표 조작설이 제기됐을 때 진지하게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부 보수 인사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보수는 선거 패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칫 '선거 불복' 오명까지 뒤집어쓸 수 있다. 과거 선거에서도 진 쪽은 그럴듯한 '음모론'을 만들어냈지만, 얼마 못 가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판명 나곤 했다.
하지만 통계학회 회장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을 지낸 박성현(75) 서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사전 투표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아 전국 지역구 253곳의 선거 데이터를 자세히 봤다. 통계적 관점에서는 확실히 일어나기 어려운 투표 결과였다. 어떤 형태로든 인위적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본다."
박성현 명예교수는 "의혹을 풀려면 박빙 선거구 3곳을 재검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먹구름이 하늘 덮었다 해도
―이는 몹시 예민한 사안이다. 통계학자로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선생의 권위와 명망을 잃을 수 있다.
"조작 증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통계학자의 눈으로는 몹시 의아하게 비친다. 아주 우연히 그렇게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통계적으로 이런 우연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굳이 말하면 '신(神)이 미리 그렇게 해주려고 작정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납득이 안 돼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는 있다. 현실이 통계 이론에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 투표 결과가 실제 그걸 말해주고 있지 않나?
"현실을 반영해온 결과가 통계다. 가령 서울은 강남·강북 등 지역 특성이 있고 후보 경쟁력이 달라 지지도가 다양하게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이번에는 서울 선거구 49곳에서 모두 민주당의 사전 투표 득표율이 당일 득표율보다 평균 12%p 높았다. 선거구별 표준편차도 2.4%로 거의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코로나 대응을 위해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바람이 불었으면 이렇게 나올 수 있지 않은가?
"더 세부적으로 서울의 424개 동(洞) 단위에서도 한 곳 예외 없이 민주당의 사전 투표 득표율이 당일 득표율보다 높았다. 동별로 특색이 있는데도 일률적인 결과가 도출됐다. 통계적으로 도저히 발생하기 어려운 것이다."
―먹구름이 한반도 하늘을 덮을 때 전국적으로 비가 동시에 올 확률은 100%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먹구름은 '민심(民心)'을 비유하는 것인데?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당일 투표에서 민주당 45.6%, 통합당 46.0%였다. 당일 투표 결과로는 민주당 123명, 통합당 124명, 무소속 5명, 정의당 1명이 이겼다. 그런 '민심'이 사전 투표함을 열자 민주당 163석, 통합당은 84석으로 바뀌었다. 사전 투표에서 현 정권을 지지하는 민심이 먹구름처럼 뒤덮였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4~5일 뒤 당일 투표에서는 갑자기 왜 이런 민심이 바뀌었는가.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투표함을 바꿔치기하거나 조작할 수 있으니 사전 투표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 퍼졌다. 가령 대구는 사전 투표 비율이 가장 낮고 당일 투표에서 높았다. 역대 선거에서도 현 여권을 지지하는 젊은 층이 사전 투표에 많이 참여했는데?
"이번 사전 투표에는 60대 이상이 30.8%로 가장 많이 참여했다. 다음으로 50대가 21.9%였다. 50대 이상을 합치면 52.7%로 젊은 층보다 사전 투표에 더 많이 나왔다. 50대 이상의 전반적인 표심이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해석은 가능하다. 50대 이상은 현실적으로 경제문제에 가장 민감하다. 사전 투표에 참가한 50대 이상은 문재인 정부의 재난 극복에 힘을 실어준 유권자로 추정해볼 수 있지 않겠나?
"그렇다고 50대 이상 그룹에서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 이들만 사전 투표를 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내 주변에는 문재인 정권 심판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미리 투표했다는 이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사전 투표 뒤 4~5일 만에 표심이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는 설명이 안 된다."
―선생이 공부해온 통계 이론에 맞지 않는다고 이미 일어난 현실을 부정하려는 것처럼 비친다. 역대 선거에서도 사전 투표 득표율은 민주당이 높게 나오지 않았나?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사전 투표 득표율이 높았지만, 낮게 나온 지역구도 꽤 있었다. 반대로 통합당(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사전 투표에서 더 좋은 성적을 얻은 지역구도 있었다. 당시 양당의 사전 투표 득표율 격차는 5%p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 22%p 격차가 났다. 통계적으로는 이렇게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오종찬 기자
사전 투표 득표율 격차 22%p
―사전 투표 그룹과 당일 투표 그룹이 같은 성향의 투표를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된 게 아닐까?
"전체 유권자를 하나의 모(母)집단으로 볼 때, 사전 투표 그룹과 당일 투표 그룹은 무작위로 나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사전 투표 득표율은 당일 투표보다 평균 10.7%p나 높았다. 반면 통합당은 당일 투표보다 11.1%p 낮았다. 거듭 말하지만 4~5일 간격으로 투표 성향 차이가 10%p 이상 크게 날 수는 없다."
―통계학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유권자의 투표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사회적 변수도 있지 않은가?
"바로 그 점이다. 사전 투표와 당일 투표 사이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그런 정치·사회적 변수가 과연 있었는가."
―통합당 후보들의 '막말 파동'이 사전 투표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었다. 특히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관련 막말은 사전 투표 전날에 터졌는데?
"이러한 막말 파동은 사실상 투표 당일까지 계속됐다. 사전 투표에만 크게 영향을 주고 당일 투표에는 영향을 안 줬다는 주장은 논리적이지 않다. 막말 논란은 민주당에서도 있었던 거다."
―유시민씨의 180석 발언이 나오자, 당일 투표에서는 유권자들의 정권 견제 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은?
"설령 그런 심리가 작용했다 해도, 1000만명 이상의 대(大)표본 집단에서는 이렇게 이질적인 성향이 나타나기가 매우 어렵다."
―보수 유튜버들은 서울·인천·경기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사전 투표 득표율이 똑같이 63:36으로 나온 것을 놓고 '조작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양당 간 상대 득표율에서 소수점을 빼고 동일하게 나온 것은 통계적으로 볼 때 매우 희소한 경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수도권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 흐름이 유사하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 해도 이렇게 동일한 비율이 나올 확률은 매우 낮다."
―이런 비율은 전체 선거구 253곳 중 17곳(6.7%)에서만 그렇다. 몇몇 의심할 만한 사례를 모아놓고 보편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닌가?
"선거구 17곳에서도 63:36으로 나올 확률은 통계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서울·인천·경기의 광역단체에서 똑같이 63:36으로 나올 확률은 아주 낮다."
―이는 두 정당의 득표율만 비교한 것이다. 다른 소수 정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의 득표를 포함해 계산하면 서울 61:35, 인천 59:34, 경기 61:35로 똑같지 않은데?
"양당의 득표율만 비교한 것은 만약 조작이 시도됐다면 오직 통합당 표를 민주당 표로 바꿔치기해 생길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비율 자체를 조작의 증거로 몰아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의심할 만한 근거는 된다."
―인천 연수구을은 민주당, 통합당, 정의당 후보 모두 관외(管外) 사전 득표수가 관내 사전 득표수의 0.39로 나와 조작 의혹이 제기됐는데?
"인천 연수구을은 당별로 관내 득표 수에 상수값 0.39를 곱하면 관외 득표수가 나온다.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국 11개 선거구의 사전 투표에서 관내 득표수와 관외 득표수 간에 이와 같은 관계가 발견된다. 상수값만 약간씩 다를 뿐, 성남시 분당구갑 0.28, 분당구 0.29, 인천 남동구갑 0.30, 서울 송파병 0.31 등이다."
―투표 성향이 비슷해 관외 득표율과 관내 득표율이 이렇게 나올 수 있지 않은가?
"아주 우연히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당(黨)의 관내 득표수에 일정 상수를 곱해 관외 득표수가 나오는 것은 통계적으로는 몹시 이례적이다."
―통계적으로 납득이 안 돼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 특이한 현상이라고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논리 비약이 아닐까?
"어쩌다 우연이 겹쳐 그렇게 됐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통계적으로는 이런 우연이 발생하기 어렵다."
―개표 전 과정은 CCTV에 찍혀 있다. 전자개표기는 외부 통신망과 단절된 컴퓨터다. 개표장에서는 개표사무원·각 당 참관인 등이 이중 삼중 검표한다. 집계된 표수(票數)는 중앙선관위의 전용망을 통해 서버에 입력된다. 폐쇄회로이기 때문에 외부에서의 해킹은 불가능하다. 이런 현장을 이해하면 전자개표기나 서버에 칩을 심거나 프로그램을 조작했다거나, 사전 투표 용지의 QR 코드가 개인 정보를 기록했다는 등의 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데?
"나는 통계 관점에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중앙선관위는 이렇게 확산되는 의혹을 불식해야 할 책임이 있다. 박빙 선거구 3곳을 재검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중앙선관위의 신뢰가 걸린 문제
―중앙선관위는 낙선 후보자가 선거소송 등 법적 절차를 취해야 밝힐 수 있다는 입장인데?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으로서 신뢰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통합당도 선거 불복의 위험이 따르지만 국민적 의혹을 풀어준다는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부정선거를 탐지하는 통계 분석 전문가라는 월터 미베인 미시간대 교수까지 가세했다. '2020년 한국 총선에서의 사기(Frauds)'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사전 투표에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틀 뒤 전국 377개 대학 전·현직 교수들이 소속된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은 선거 부정 의혹을 가려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