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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민족의 원류를 찾아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자. 글/사진: 이종원
"거기 흐르는 강 이름이 뭐여요?" "압록강입니다."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는 압록강이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압록강. 물색이 오리머리 색인 녹색이라고 하여 압록강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백두에서 발원한 물이 고구려 땅을 적시고 이 땅의 산하와 눈물과 한숨마져 안은 채 800km의 긴 항해를 마치고 서해로 빠져나간다.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들은 한강의 강남과 강북을 오가듯 자유롭게 건넜던 강이었다. 강은 50년의 세월동안 유리벽으로 가로 막혔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그 곳. 5천만 동포들이 헤머를 들고 나와 이 벽을 박살내 버렸으면 좋으련만....
압록강 단교 끊어진 다리와 함께 대륙의 꿈도 단절되었다. 경의선을 타고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달려가서 압록강 다리를 건너 심양을 거쳐 시베리아 철로를 바꿔타고 바이칼 호수를 거쳐 모스크바를 지나 유럽까지 내달리는 나의 꿈은 언제 이루어질까?
6.25 전쟁때 B29기의 폭격으로 다리의 반쪽은 사라졌다. 상이용사가 따로 없었다. 미국을 미래의 군사적 맞수로 생각하고 있는 중국은 반미교육의 상징물로 이 다리를 이용하고 있다. 상판은 온데 간데 없는 교각, 찌그러진 다리 흔적, 큼직한 폭탄.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채 다리를 지키고 있었다.
처음 다리가 놓일 때부터 일본의 숨은 계략이 숨어 있었다. 만주지역의 곡물과 산림자원의 수탈을 위해 서둘러 다리를 놓은 것이다. 대륙자원의 수탈에 이어 중공군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참담한 상처를 고스한히 안은 채 다리는 묵묵히 서 있었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압록강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속 깊은 생채기를 간직한 압록강단교 바로 옆에는 '중조우의교'가 서 있었다. 그 다리는 북한에 생필품이 들어가는 숨통이고 목숨을 연장해주는 닝겔 주사였다. 물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수시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다리는 내 비틀린 심성을 말해주고 있다.
'공산당이 싫어요. ' 이승복 어린이를 통해 반공교육을 받았듯이 중국인들은 다리를 통해 '반미, 항미'를 배운다.
압록강단교 끝까지 걸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압록강이란 비가 서 있었다.
'중조우의교.' 2001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 다리를 건너면서 단동의 마천루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중조우의교. 아치가 있는 곳까지 중국이고 아치가 없는 곳부터 북한영역이다.
암록강 단교에서...
한국이나 중국이나 결혼식 장면은 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압록강변에서 야외촬영을 마친 신부...신부 옷이 화려하다.
압록강 유람선 탄다. 압록강 한 가운데 서면 초등학교 시절 반대말을 연습했던 때가 생각난다. "크다. 작다. 배부르다. 배고프다. 많다. 적다. 어둡다. 밝다. " 낮은 건물에 공장 굴뚝만 보이는 신의주와 뉴욕처럼 휘황찬란한 불빛을 가지고 있는 단동은 너무나 달랐다. 강은 그걸 가르고 있었다. 신의주 사람들이 강건너 단동의 마천루와 네온사인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한국인이 유람선에 올라 손 흔들고 환호할 때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단동의 개발구 광장
배가 고프다고 불행하지는 않다. 이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 산책에 나서는 사람도 있고 공놀이 하는 모습도 보인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풍경들이다. 압록강각. 연회장 같은데...텅 비어있는 것 같다. 강변에는 북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잠수를 하는 아이도 있고 물싸움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세계공통어다. 그걸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사각팬티보다 삼각팬티가 더 세련되어 보인다.
그물을 건져 올린다. 담배를 입에 물고 빼곰히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낚시꾼...호기심이 가득한 표정들. 빨간 옷을 입은 아이들이 귀엽다.
아이들이 낚시대를 드리웠다. 낚시대라야 풀숲에 자란 작대기를 꺾어서 만들었다. 고기가 많이 잡혀서 오늘 하루 아이들 뱃속이 편안해지길 바란다.
소년 낚시꾼들.
희죽희죽 웃는 북한 아이들. 귀여운 것.
강변에 정박된 북한배.
아까보다는 세련된 아이들이 앉아 있다. 피부 보호를 위해 우산까지..^^ '목욕금지' 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수영금지도 아니고...이곳 수심이 깊은가 보다.
총을 메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북한 군인이 강변을 거닐고 있다. 그 앞에는 늙은 강태공이 고기를 기다리고 있다.
단동시의 고층건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비슷했다.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 건물을 팔면 강북의 모든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신문보도를 들었다. 신의주와 단동의 빈부격차는 이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김정일이 중국순방 때 단동의 경제성장에 그만 눈이 휘둥그러졌다는 말이 틀린말이 아닐게다
개발구 광장이다. 단동의 상업무역 관광개발구의 광장이다. 널직한 장방형의 광장 주변에는 과감하게 데이트하는 젊은 남녀를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이곳이 사회주의가 맞는지..단동에는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데...그들은 중국사람처럼 요란한 접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방예의지국 출신이니까...
개발구광장에서...
단동 국제호텔이다. 23층 꼭대기에서 회전식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 북한땅이 한 눈에 보인다.
단동시 그리고 이성계의 위화도 그리고 신의주시가 보인다.
시내의 공중화장실이 매점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평양청류관 단동 시내에 있는 '평양청류관' 식당이다. 떡, 오리고기,불고기, 두부...역시 우리 입맛에는 우리 음식이 입에 맞는다.
북한식당은 대개 극장식 식당이다. 식사가 파하면 노래하고 춤추고... 전연화 동무...평양에서 건너와서 그런지 무척이나 세련되었다. 농담도 잘하고....^^ "120원이요? 들쭉술이 너무 비싸요. 그거 마시기에는 돈이 없네요." "남조선 사람들 부자인데 그거이 뭐가 비싸요"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데...여기 올려고 몇 달째 돈을 모아왔어요. " "그래도 이 곳에는 돈이 없으면 못옵네다. 술 사드시라요. 백두산 둘쭉으로 만들었시요." 결국 나는 부자가 되어 독한 둘쭉술 한 병을 마시게 되었다. 북한땅 공기 좋은 곳에서 자란 들쭉 향내를 맡으며...
금강봉에서 선녀가 노니는 그림아래서 북한 여성 동무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반갑습니다. "
호산장성 단동에서 압록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이 누워 있는 듯한 호산이 나타나고 그 위 산등성이에 호산장성이 이어지고 있다. 10여년 쯤 전이었을까. 단동북쪽 호산에 명나라때 장성이 발견된 것이다. 진황도에 위치한 산해관이 만리장성 최동단기점으로 알려졌는데 이 산성이 발견되면서 만리장성으로 편입시켜 버렸다. 만리장성이 더 길어 졌으면 하는 것이 중국사람들의 바램인데 더 늘어 났으니 호들갑을 떨 만하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 가운데에는 이 장성이 고구려산성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압록강 가까이에 두 개의 고구려성에 관한 기록이 전해내려오기 때문이다. 평지에 세워진 '애하첨고성'과 산세를 이용해 만들어진 '박작성'이 그것인데 이미 발굴된 애하첨고성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성이 박작성일 가능성이 무지 높다.
성만 그럴싸하게 복원시켜 놓았지 자세히 보면 영 형편없는 성이다. 시멘트로 덕지덕지 붙여 놓았고 우선 뽄떼가 없다. 만리장성 흉내만 낸 것 같다. 수원화성은 정말 멋진 성이야..
중간에 망루가 놓여 있다.
그래도 경치 하나 만은 끝내준다. 바로 아래 일보화가 보인다. 강 왼쪽은 중국이고 오른쪽은 북한이다. 수해 때문에 옥수수 밭이 물에 잠겨 가슴 아프다.
삼각주 평야는 전부 북한땅이다. 압록강이 하염없이 흘러간다.
북한땅을 바라 볼 수 있는 망원경. 일터에 나온 농군을 볼 수 있다.
비단장수 왕서방과 명월이. 이번 답사는 부부가 온 커플이 하나도 없다. 대신 9월에 결혼이 예정되어 있는 버섶님과 아라님이 참가했다. 결혼전이라 호텔방도 따로 쓴 비운의 커플이다. 백두산 근처 이도백하호텔에서 아라님 룸메이트인 엄지왕님이 방까지 비워 주었건만....바보탱이 버섶은 대흐미 방에서 그냥 잠만 잤다. 백두산의 기상을 받은 아이를 만들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정수도 중국 옷을 입고..
호산장성에서 단체사진 한 장
일보화..중국과 북한 단 한 발자국이면 건널 수 있다고 하여 일보화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마 다리가 무척 긴 거인이 건너갔나보다. 북한땅은 대략 15m정도 떨어져 있었다. 지난 6월에 왔을 때는 보트를 타고 무뚝뚝한 북한군을 만날 수 있었는데...안기부가 어쩌고 저쩌고...가이드가 난색을 표해서 참았다. 북한군은 탈북자 등 뒤에서 총을 겨누는 슬픈 임무를 맡고 있다. 겨울에는 압록강이 꽝꽝 얼어 물을 건너기 더욱 쉬울 것이다. 어쩌면 가장 건너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들일지도 모른다.
압록강물로 세수를 하고 싶었다.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그대로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굽고 있다.
압록강 참게. 천원이면 통통한 게를 3개나 먹을 수 있다. 섬진강 참게가 얼마나 ㅂ싼데...
압록강 상류를 따라서 압록강을 따라가는 길은 우리 민족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는것이다. 압록강 지류인 비류수에는 동명성왕의 졸본성이 있고 태평댐과 수풍댐을 지나 창성,벽동, 초산 ,위원을 지나면 북한 만포가 나오고 그 강건너가 바로 고구려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나온다. 자성, 중강진을 돌아 삼수를 거쳐 혜산 보천보를 지나면 단군 신화의 발상지 백두산이 나온다. 그 신비로운 곳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가슴떨리는 여로다. 기사가 길을 몰라 수풍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행운까지 얻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압록상 상류쪽으로 올라가는 데 숨어 있는 산수화가 펼쳐졌다. 수풍댐. 해방전에는 반도의 전력을 거의 담당했던 최대의 발전호가 아닌가?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은 전력공급을 막아 남한은 암흑천지가 되어 버렸다. 그런 수평발전소는 이젠 낡아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퇴역군인처럼 압록강을 지키고 있었다. 5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남한에서 북한 개성에 전력공급을 하겠다는 기사를 읽고 '전력무상'이란 말이 떠 오른다.
큼직한 호수가 되기도 하고 좁은 협곡이 되면서도 압록강은 흐르고 있었다. 북녘의 산하가 압록강을 비추고 있다. 조선땅 강건너에는 중국에서 만들어 놓은 조선족 민속촌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족들이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애타게 보고 싶었다. 강변엔 단오날 썼을 듯한 그네가 보이고 기와집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꼭 일정에 넣고 싶은 곳이다.
유람선인지 아니면 마을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인지 배가 사람들을 나르고 있었다. 저 건너가 북한땅인데...한숨만 풀풀 난다.
노을지는 압록강가에 어부가 그물을 드리우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삶의 체온의 전해진다. 압록강에는 일본인들이 수풍발전소 건설 당시 방류한 빙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빙어를 ‘기름고기’라 부른다고 한다. 고기에 기름이 많기 때문이다.일본인들이 빙어를 방류한 이유는 발전기 수차(水車) 프로펠러의 부식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빙어가 프로펠러에 걸려 죽으면 ‘천연 기름칠’을 해주기 때문이라는데, 과학적 타당성은 분명치않다. 여하튼 그 빙어가 많이 번식해 압록강 주변 주민들의 즐겨 잡아먹고 있다. 중국지역과 북한지역에 비가 많이 오면 수풍댐 물이 넘쳐난다. 그러면 수문(水門)을 열어 수량을 조절하는데, 물이 불어나는 정도에 따라 한 개, 또는 몇 개를 여는 방법으로 조절한다. 1994년의 경우에는 전체 수문을 모두 열어 물을 방출한 적이 있다. 댐의 낙차는 약 106m. 이 높이에서 떨어진 물고기들이 기절해서 기슭으로 밀려나온다. 이때를 기다렸다가 주민들은 죽어 내려오는 물고기를 뜰채로 건져다 먹는다고 한다. (데일리엔케이 8/11자
기사)
비포장 산길을 넘었다.바로 앞에 공장지대가 펼쳐진다. 나는 이곳이 선조가 몽진했던 의주로만 알았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중국지도와 북한지도를 면밀히 검토해보니 수풍댐 바로 밑의 청수라는 동네다. '靑水' 이름만큼이나 예쁜 곳이지만 강 건너에느 화학공장이 가득하다. 1945년까지는 소규모로 카바이드만을 생산하다가 한국전쟁 후 카바이드와 석회질소 생산공장으로 전환하였다. 74년 대대적으로 시설을 확장하여 연간 20만 t의 카바이드·인산비료 외에 석회질소비료와 약간의 원소비료를 생산한다고 한다.(동아백과사전에서 퍼옴)
북한과 중국을 잇는 철로.
단동에서 집안가는 길에 과수원이 참 많다. 복숭아. 자두등을 사서 우물우물 씹었다. 당도는 높지 않지만 압록강 물을 먹고 자란 과일을 애타게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동항에서 바라본 서해일몰. 바닷물이 빠져서 수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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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ie D'Ete/여름비 |
첫댓글 울먹물먹...그리운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아버지는 고향땅도 못 밟아 보시고....명절이 닥아오니..더욱...'21세기의태양 김정일장군??? 뭔넘의 태양이 달(月)에게 조차 자리를 안내주는겨?? 달도차면 기우나니....ㅠㅠ 잘 읽고,,떠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