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독교란 무엇인가?」 를 읽고
부제 : 기독교를 찾기까지 그리고 찾은 후의 삶
기독2 20060524 박 병도
서론 - 글을 쓰면서
「기독교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미 난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이다. 나에게는 이미 기독교,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을 믿는 종교인으로 이 책을 읽기 때문에 한쪽으로 편협 돼있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다소 문제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비난’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판’을 함으로 기독교가 더욱더 발전할 길이 있다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책을 읽었고, 또한 비평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억지스러운 비평을 하진 않겠다. 나는 책의 내용일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서 강점과 약점을 지적해 보는 식으로 글을 전개하려 한다.
본론 - 책 내용 이야기
머리말
편집부(영락교회 선교부)는 이 책은 한경직 목사의 기독교 방송 설교를 원고로 만든 책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부분에서 기독교를 알지 못하는 대상을 위한 책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책을 읽어서 기독교를 알기를 바라고 있다.
본문
과학우월주의 사상이 만발하는 시대에서 종교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을 이 책은 초기 파트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종교와 과학을 비교하면서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책의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필자는 또한 과학으로 발전으로 인한 발전 이면에 있는 약점들을 설명하면서 과학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과학이 외에 종교가 필요함을 설명하고 있다.(p.5) 또한 필자는 사람의 불에 사용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라는 많이 알려진 예화를 들으면서 종교의 필요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과학의 우월성에 있는 미국이나 의식주 제공을 무기로 삼는 공산주의를 부정하면서 사람에게 느끼는 공허감은 종교를 통해서 해결 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p.7) 이러한 인간의 공허함과, 인생에 시작과 종결에 대한 의구심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종교라 설명하면서 기독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기독교의 시작이 복음(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으로 시작됐음 이야기 하면서(p.11) 그 누구에게나 기쁨이 되는 소식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려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부활하시는 소식까지를 말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요 3:16) 이후 저자는 무신론자들에 대한 반박(p.20)으로 증명할 수 없어 존재함, 우주의 창조자의 필요성, 소극적 이론임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존재성(p.25)을 인생에서 느끼는 종교적 본능(p.26)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에 항상 하나님을 찾음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였고, 인간의 도덕성(p.29)에서 양심이라는 것을 주심으로 우리의 도덕성으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임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우주의 원인이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되어 있어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원인의 끝에는 하나님이 계심과, 운동의 시작점을 찾아가 보면 결국 하나님임을 설명하고 있다.(p.33)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인 예수님에 대한 설명(p.41)과 예수님의 하신 가르치심과, 고치심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역(p.44)에 대한 설명과 십자가 사건으로 인한 속죄 깨달음으로 얻는 영생에 관한 이야기(p.49)와 중생자의 변화 된 앞으로 살아가야 될 삶에 대한 이야기(p.53)를 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면서 교회에 나올 것과 성경을 읽기를 요청하고 있다.
결론 - 1. 비평하기
<강점>
아직 기독교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 기독교의 교리를 아직 확실하게 모르고 전도를 할 방법을 아직 모르는 기독교인에게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초기 교회의 전도자들이 헬라문화의 철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고의 약점을 공략하고 기독교가 그 약점을 보완하고 더 우월함을 설명함으로 기독교를 전파 했던 것과 같이 과학주의 사회에서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불안감과 여러 가지 약점을 종교가 보완함으로서 삶을 더욱 좋게 만든 다는 논리의 전도 방식은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 단지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는 것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것을 가지고 와 종교의 필요성을 더욱더 부각시키는 방법의 선택은 아주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의 무한한 공허감과 의심 점 또한 인생의 미래에 대한 인간의 궁금증을 기독교에서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설명의 선택도 잘 됐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이렇게 언급하는 방식으로 하여서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진리를 접하기 쉽게끔 만든 작업에서 글의 전개 방식이 아주 잘 짜여 있다고 생각한다.
<약점>
머리말에서 기독교 방송이라는 것은 이미 기독교인을 상대로 한 설교라는 것에서 독자층이 누구인지 하는 다소 의문점을 느꼈다. 물론 이러한 약점은 글을 읽으면서 또한 머리말에서 ‘영락교회 선교부’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아직 기독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인 내용을 위주로 닮고 있다는 것이 풀리긴 하였다.
책의 편집당시 상황 공산주의국가와의 감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보여주는 표현으로 공산주의를 짐승으로 지적하면서 공격하는 것이 모두를 사랑하라는 관점에서 옳은 표현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무신론의 우매(p.20)에서 갈매기가 존재여부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한다는 저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공룡이 아직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라는 다소 억지 논리가 될 가능성이 있어 설명으로 사용하기 다소 위험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존재(p.25)에서 인간의 도덕성의 설명 부분에서 도덕적 생각 즉 양심을 하나님이 주심으로 설명하면서(성선설) 물을 트는 쪽으로 물이 흐르듯이 도덕적인 것도 도덕성도 그렇다(성무선악설,백지설)의 이중적 관점을 사용함으로 다소 이해를 힘들게 한다. 물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보충한다면 쉽게 설명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인과응보로 본다는 것은 다소 위험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욥기」에서 봤듯이 인과응보의 우리의 잘못된 생각으로 우리는 남을 판단함(욥을 향한 친구들의 말들 - “욥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망했다”)으로 변질된 가능성이 있음을 배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의 시작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맥락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서부터 인류의 타락과 그 타락을 안타까움으로 예수님의 보내심 앞으로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신약만 강조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 가지고 있다.
기존 기독교인들이 글을 읽었을 때 또한 새로 믿는 사람에게 다소 위험한 것이 ‘믿음으로 써 구원 얻는 다’는 기독교의 교리의 변질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믿기만 한다면 죄사함을 얻고 영생을 얻는 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믿지 않는 상황에서 국한 시켜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마무리 부분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결론 - 2.마무리를 하면서 - 현 기독교의 반성(언행불일치)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말 추천 아니 강추를 할 만한 내용으로 잘 구성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4영리」라는 소책자나 이러한 기독교를 소개하는 책들을 봤지만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읽기 쉽게 만든 책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본인이 많은 책을 접해 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기독교를 소개 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앞에서 약점으로 한번 언급한 ‘이신칭의’교리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삶이 많이 변질되는 기독교를 볼 수 있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이러한 책으로 전도를 하면서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과연 기독교인이 될 사람이 있을까? 라는 질문이다. 이것이 이 책이랑 특히 ‘이신칭의’랑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묻는 다면, 앞에서 말했듯이 아직 믿지 않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다는 것을 국한시킴으로 기독교의 이미지(전도전략)이 올라 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신칭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믿은 우리의 삶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기독교의 문제점을 조사하는 가운데서도 가장 큰 문제점으로 나온 것이 ‘언행불일치’이다.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 다는 문자주의적 생각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경에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는 말씀이 있지만 과연 몇 명의 신도들이 이것을 생각하고 살아가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 나또한 그것을 쉽게 지키기 힘듦을 고백한다. 물론 저자가 이러한 것을 몰랐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이 글을 읽은 독자인 우리나 또한 앞으로 이 책을 읽은 비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은 앞으로 꼭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도 설명(p.44)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몸소 직접 병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행함을 보이셨다. 만약 예수님이 가르치시기만 하시고 병자나 어려운 사람을 도우심이 없고, 대속하심이 없이 승천하셨다면 기독교는 나타나지 않았을 거라고 감히 말한다. 우리도 이러한 삶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이렇게 짧은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또한 기쁨이 있었다. 또한 나의 삶이 먼저 변화되어야 믿지 않는 사람에게 기독교를 전하고 이 책을 읽도록 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