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에 100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백제인의 숨결과, 백제인의 성품이 느껴지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은 기존의 목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재로 만들어졌다. 세련되고 정돈된 형식미, 좁고 낮은 단층기단과 각 층 우주에 보이는 배흘림 모양을 하고 있고(샘의 배를 가르키며 이런것도 배흘림이라고 했던 기억이ㅎㅎㅎ) 지붕돌인 옥개석은 부드럽고 완만하다.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백제시대 석탑의 모양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1층 몸체돌(탑신)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그 공적을 새긴 글이 남아있다. 이것은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귀중한 역사적인 자료라 하겠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가져갈뻔도 했다는 우리의 유산 정림사지오층석탑...내가 앞으로 마구마구 사랑해 주리라.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정림사지박물관내에 있습니다. 제목을 이렇게 해서 따로 있는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까봐~~~ 대표 유적이기에 대표로 앞세운것이라는...)
정림사지오층석탑
1층 몸체돌(탑신)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그 공적을 새긴 글이 남아있다. 하지만, 잘 안보인다.
옥개석모서리에 풍경을 달았던 흔적...풍경은 사라지고 구멍만이 남아 있다.
(참고: 내가 찍은 사진은 구멍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서 요 사진만 남의것 가져 왔음)
가끔 답사기 안에 숨어 있는 본인의 모습도 깨알같은 재미^^;;
정림사지는 백제가 부여로 왕도를 천도한 후(538~660) 백제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한때 이 탑 1층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친 연후에 탑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귀를 새겨놓아 ‘평제탑’이라 불리었으나 1942년 일본인이 발굴한 작은 기와한장으로 바뀌게 된다.
훗날 강당터로 밝혀진 곳에서 출토된 기와의 명문 중에는 '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唐草'라는 글귀가 발견됐다.이는 ‘고려 현종 때인 1028년 무진년, 정림사의 대장경을 모신 건물을 올린 기와‘라 는 뜻이다. 즉 백제때 강당터로 사용되던 곳에 고려시대사찰이 들어서면서 대장전을 세웠는데 그 절 이름이 정림사였던것이다.물론 백제때에 절이름이 정림사엿다고 학정지을 순 없지만 동시대에 중국과 일본에 같은이름의 사찰이 있었음이 확인되므로 백제때의 절이름도 정림사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림‘은 ’선정지림‘의 준말로 중국의 정림사에서는 수많은 불경이 수집 ,편찬되었다고 하니 사비도성 한복판에 자리잡고있던 백제의’정림사‘는 선진문물이 가장 먼저 도입되어 활발히 연구되던 백제불교문화의 심장부였을 것이라 상상해본다.발굴조사에서 나타난 정림사의 건물배치는 일탑식 가람배치로, 이러한 일탑식 가람배치는 일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정림사지박물관
정림사지박물관은 백제 사비시기 불교와 그 중심에 있었던 정림사를 주제로 백제 불교문화를 재조명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고취시키고자 건립되었다. 박물관의 형태는 불교의 상징인 불자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정림사지 복원도 및 이렇게 복원하고 있는 모습
석불좌상(보물제108호)
탑 바로 뒤에 보이는 건물안에 하도 못생겨서 맷돌을 얼굴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는 이 불상이 있는데 만든 얘기가 아니라 진짜같기도 하다. 그럴법한 것이... 백제 멸망 이후 방치되었던 불상이라서... 발견당시 몸통, 받침 등이 다 따로 굴러다니던 것을 조합해서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얼굴이 어딘가 없어져서 맷돌로 얼굴을 만들어 세웠다는.....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 암튼,, 못생겼던 말던 그는 700년의 미소를 간직하고 있다.
백제의 불심 바다를 넘어(정림사는 절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 관한 자료가 많습니다.)
정림사지는 1탑 1금당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을 축조하고 있는 모습
의자왕의 바둑판과 바둑돌
(이번 답사 숙제로 백제 알아오기 중 난 계백장군을 선택했고, 계백장군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은 의자왕...여기서 의자왕의 흔적을 보다니 그건 과히 기적이었다.)
예산 화전리 사면 석불
남쪽에 보주형의 본존불, 나머지면에 여래입상이 3m길이의 자연석 바위 네면에 새겨진 사면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면불이기도 하다. 불상만져보기라고 써져 있어서 낼름, 냉큼 만져보았다.
백제인의 의복(사진이 좀 안나왔음)
정림사지 모형
정작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출토유물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