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는 곡 중간에 조성을 변경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에 반해 이조는 필요에 의해 곡 전체의 조성을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해가 되셨는지?
전조는 나름대로 화성학적인 규칙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딸림조와 같이 원래 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조성으로 옮겨가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전조를 통해 화성의 변화를 줌으로써 주제 간의 대립이라든지 조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전파까지는 그런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졌지만 고전파가 끝나갈 무렵부터 낭만파로 접어드는 시기에는 그것이 상당히 자유로운 형태로 이루어졌죠. 후대에 이르러서는 12음기법이라든지 무조주의까지 등장하게 되구요. 하지만 이러한 화성으로부터의 자유는 화성에 대한 완벽한 이해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의 조합과 그 관계에 대해 배우는 것이 바로 화성학이죠.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네요. 화성악을 공부시키던 선생님이 규칙에서 벗어난 화성진행으로 작곡을 한 학생을 혼냈는데 이 학생이 '베토벤도 이렇게 했는 걸요'라고 불평하자 '베토벤은 해도 되지만 너는 안돼'라고 대답했답니다. 화성에 대한 기초를 튼튼하게 닦지 않으면 그것을 변형하고 창조해내는 일도 할 수 없다는 선생님의 뜻이었겠죠. 베토벤도 청년시절까지는 선배 작곡가들의 작품을 답습하면서 차근차근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조는 일반인들이 깊이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상식적인 수준만 가지고 있어도 음악감상이나 악곡분석에 큰 도움이 되죠.
다음은 이조인데... 이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필요에 따라 곡 전체의 조성을 옮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쓰이는 소프라노 리코더로는 가온다 음 아래의 음은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 연주하려는 곡에 가온다 아래의 시가 나온다면 곡 전체를 한음씩 올리는 이조를 해야죠. 이런 경우 음역을 충분히 커버하면서도 연주가 어렵지 않은 조성을 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코더 연주의 경우 '시'가 나온다면 라장조 정도가 적절하겠죠. '라'나 '솔'까지 나온다면 바장조나 사장조까지 이조해야 하구요. 이렇게 음역 때문에 이조를 행하는 예는 특히 성악에서 많습니다.
실제 오케스트라에서 쓰이는 관악기들 중에는 이조악기라는 것이 많이 있는데 목관악기 중에는 클라리넷이 대표적이며 Bb조나 A조를 가진 것이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금관악기들은 F조, Bb조 등을 갖는 이조악기들입니다. 이조악기란 쉽게 얘기하면 연주자가 '도' 소리를 낼 수 있는 키를 누르고 불면 악기에서는 엉뚱하게도 'b시'나 '라', '파'처럼 다른 소리가 나는 악기를 말합니다. 왜 '도'를 누르면 '도' 소리가 나게 만들지 않고 그렇게 했을까요? (이것을 설명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 내에서는 그렇게 깊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아무튼 이런 이조악기들을 가지고 다른 악기들과 앙상블을 이루려면 이조를 해야할 필요가 생기게 되겠죠. 보통사람들에게는 이 이조가 단순하면서도 골치아픈 작업이지만 숙련된 연주자들은 즉석에서 이조해서 연주를 해내기도 합니다. 오랜동안 악보를 보고 악기를 다루다보면 그런 능력이 생겨나게 되죠. 처음에는 쉬운 동요 같은 것으로 연습을 시작합니다.
이조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브람스가 20살 때 바이올리니스트인 친구 레메니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니던 중 첼레라는 곳에서 연주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리허설을 해보니 피아노가 반음이나 낮게 조율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연주회가 임박하여 조율할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죠. 보통 이런 경우 바이올린이 줄을 조금 풀어 피아노에 맞춰 조율하지만 원곡이 갖는 조성의 느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브람스는 즉석에서 베토벤의 c단조 바이올린 소나타를 반음 높게 이조하여 연주회를 무사히 마칩니다. 화성에 대해 조금 아시는 분이라면 c단조(b 세 개)를 c#단조(# 네 개)로 그자리에서 이조하여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단순히 건반 한 개 더 위를 누르면 되지 않겠냐고 하시는 분이 혹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정리하죠. 이조와 전조의 차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해드렸구요, 이조는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배우는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전조처럼 전문적인 화성학적 지식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많은 연습(혹은 천재성..)을 통해 이조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것,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화성학을 아주 깊이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음악애호가라면 어느정도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다면 이조악기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보시길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