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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두리쌤] 전국사회과교과연구회 - [세상을 보는 눈] 원문보기 글쓴이: 두리쌤
세계 제1의 여행지 팔라우의 멜레케오크를 가다
두리쌤
롱비치, 밀키웨이, 해파리 호수, 스노쿨링 때마다 눈 앞을 지나가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 등의 여러 볼거리가 많고 신들의 바다정원이라 불릴 만큼 매혹적인 에메랄드 빛 바다를 가지고 있는 팔라우의 멜레케오크를 다녀왔다.
1. 멜레케오크의 지리
이 도시는 섬나라 팔라우의 수도이며, 인구의 대부분은 코로르에 모여 있다. 위치상 괌, 필리핀 제도, 파푸아뉴기니 사이에 위치해있는 팔라우는 400마일이 넘게 펼쳐져있는 작은 군도 집단으로 이루어진 다도해 국가로 고지대인 바벨다옵(Babeldaob), 코롤(Koror), 펠렐리우(Pelelieu), 앙가우르(Angaur) 섬과 저지대인 카얀겔(Kayangel), 응게루안겔(Ngeruangel)의 작은 산호 환초와 200여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락 아일랜드(Rock Islands)로 구성된다.
상공에서 내려보았을 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버섯모양의 작은 섬들은 대부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이며, 이러한 섬들 주위로 광대한 환초대가 형성되어 있고 그곳에는 산호, 물고기 그리고 다른 바다 생물체들로 가득 차 있어 팔라우는 바다 수중의 경이로움을 맛보고자하는 사람들 에게 있어서 세계 제1의 여행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이러한 수중 레포츠뿐만 아니라 카약, 파라세일링, 스포츠 낚시 등과 같은 수상 레포츠도 점점 활성화 되고 있다.
면적은 28평방 킬로미터 인구는 391명(2000년). 옛 수도인 코로르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어 KB브릿지에서 연결되어 약 25킬로미터의 거리에 있다. 미크로네시아 최대의 담수호인 은가르독 호수(493 헥타르)가 있어 거기에는 악어가 생식 하고 있다.
섬마다 숲이 우거져 있으며, 이상하게도 기암괴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논이나 평야는 더더욱 볼 수가 없고, 섬마다 낮은 야산 형태로 되어 있다.
2. 멜레케오크의 역사
처음에는 독일의 식민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이 패하여 승전의 전리품으로 일본에게 넘어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그 후에, 제2차 세계대전 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미국이 점령했다. 1981년에 자치권을 얻었으며 1994년에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팔라우의 초기 역사는 아직 미스테리 속 베일에 싸여져 있다. 언제, 왜, 어떻게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섬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늘날의 팔라우 인들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인, 뉴기니 멜라네시아인 그리고 폴리네시아인의 먼 친척뻘이 된다고 한다.
위의 사람들이 언제 이땅에 도착한 시점은 록 아일랜드의 계단식 대지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마을 유적지에서 나온 인공유물들의 탄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결과 기원전 1000년 전 쯤에 팔라우에 문명이 시작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외부인의 접촉은 1783년에 일어났는데 영국인 선장 헨리 윌슨의 지휘하에 항해중이던 안텔로프(Antelope) 호가 콜롤 섬과 펠렐리우 섬 사이에 위치한 울롱 섬 인근의 암초에 난파한 사건이었다. 당시 코롤의 대추장이었던 이베둘(Ibedul)의 도움으로 윌슨과 그의 부하들은 그곳에서 그의 배를 다시 만들면서 수개월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많은 외국 탐험가들은 팔라우를 찾게 되었고 팔라우의 섬들에 점점 더 서구의 접촉이 늘어났다.
서구의 팔라우 제도에 대한 통치가 일어난 때는 교황 레오 13세가 1885년에 카롤린 제도에 대한 스페인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부터였다. 그러면서 카푸친 사제들과 두명의 형제들에 의해 운영되는 두개의 교회가 설립됐고 이때부터 로마 알파벳이 도입됐고 팔라우 제도내에서의 부족간 전쟁이 금지되게 되었다. 1899년에 스페인은 카롤린 제도를 독일에 팔아넘겼고 독일은 이 섬나라의 자연 자원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농업·수산업 개발 및 도로· 전기·수도시설을 도입하게 됐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팔라우는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하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통치하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때 일본이 팔라우에 끼친 영향은 막대한 것으로 생존위주의 팔라우 경제를 시장경제체제로 바꾸었고 모계 씨족위주의 공동체 사회에 사유재산제도가 급격하게 번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1922년 코롤은 일본의 남태평양 집권에 있어서의 행정적인 중심도시가 되었다. 코롤 시내에는 공장, 샵, 공중 목욕탕, 레스토랑과 약국 등을 갖춘 대형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1946년부터 칼롤린 제도, 마리아나 제도 그리고 마샬 제도는 미국 행정 관할하의 국제연합 신탁통치지역이 되었고, 미국은 팔라우 및 그밖의 5개 섬나라를 합친 6개의 섬나라를 하나의 단일 정치체제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팔라우 사람들은 1978년 7월 마이크로네시아 연방의 일부분이 되는 찬반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1980년에는 헌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른 대통령, 부통령,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1994년 10월 1일 드디어 팔라우는 미국과 자유연합협정(compact free association)에 서명함으로써 독립을 하게됐고 현재는 직선제 대통령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1994년 12월엔 UN에 가입했다.
3. 멜레케오크의 정치
이 나라는 대통령제 국가이며 총리가 없다. 장관 6명에 상원의원, 하원의원으로 정부가 구성되어 있다. 대통령은 존슨 토리비옹이고 부통령은 케라이 마리우르이다.
4. 멜레케오크의 경제
인당 GDP는 7,600달러이며 실질 경제성장률은 5.5%(2005년 추산)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필리핀의 2배나 되며 미크로네시아의 여러 도서국가들보다 경제 활동이 활발하다. 산업별 GDP 구성비율은 농어업 6.2%, 광공업 12%, 서비스업 81.8% (2003년)이다. 농업은 주로 코코넛, 코프라, 카사바, 고구마 등을 생산하고 근해 어업 외에 조개, 나무, 진주 등의 공예산업이 비교적 발달하였다.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일본, 대만, 필리핀, 미국 등의 참치어선단이 200해리 경제 수역 내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 관광객이 지난 몇년간 연 18% 가량 성장하여 주된 수입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태평양에서의 비행항로의 증설이나 앞서가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번영 등에 힘입어 관광분야의 장기 전망이 밝다. 관광객은 연 7만 5000명 수준이며 국가별 관광객 수는 일본, 타이완, 미국, 한국 순이다. 공항은 3개소(2007년), 도로는 61km(포장도로 36Km)이며 코로르(Koror)항이 여객부두이다.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므로 인력의 60%를 정부에서 고용하게 되며, 주로 미국의 경제적 지원에 의지하고 있다. 팔라우는 경제의 약 90%를 외부의 수입원에 의존한다. 미국 외에 국제기구나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 소액의 원조를 받고 있다. 팔라우의 공식 통화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1993년 미국과 체결한 자유연합협정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15년간 약 5억 달러의 원조를 받고 있다. 2004년 수출은 588만 달러, 수입은 1억 73만 달러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직접 들어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고, 여행사에서 띄우는 전세기만 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려면 필리핀, 사이판 등을 경유해야만 한다.
5. 멜레케오크의 문화
팔라우인은 지난 몇십 년간 외부의 정치·경제 변화에 잘 적응하여 살아왔지만 아직도 삶의 많은 부분이 그들의 전통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탄생의식, 집을 지으면 친구나 인척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 퍼스트하우스(First-House) 의식, 장례의식 등 몇몇 전통행사들이 아직도 널리 행해지며, 조상들이 받아들였던 신념과 예법 등을 현재까지도 존중하고 있다.
해양에 입지하므로 팔라우인의 문화적 특징은 바다와 불가분 관계를 맺는다 전통적으로 그들은 바다에 나아가 물고기를 잡고 이웃 부족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의무였으며 바다가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바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자들은 대개 바다에 나가 일하기보다는 섬이나 섬 주변의 얕은 암초 지대에 남아서 가족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해왔다. 여자들은 주로 가정을 돌보고 타로 토란을 키우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추장들의 평의회가 마을 통치기구이며, 과거 모계사회 전통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어 추장의 부인도 평의회를 동등하게 열어 조언해주고 토지와 금전을 관리한다. 그들에게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전통과 역사면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세대를 통해 구두로 전해져 내려왔다. 팔라우에는 고유의 민속노래가 많은데 악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나뭇잎으로 만든 바구니 공예가 매우 유명하다
6. 멜레케오크의 종교
주된 종교는 크리스트교로 인구의 과반수가 믿고 있다. 팔라우의 토착 종교인 모뎅게이교가 소수 존재한다
7. 멜레케오크의 대한관계
멜레케오크는 한국과 1995년 3월 22일 정식 수교를 맺었다. 북한과는 미수교 상태이다. 팔라우는 과거 일본계 대통령 쿠니오 나카무라가 취임했으며, 일부 자치 단체에서 일본어가 공용어로 채택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고, 일본과 우호를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또한, 팔라우에는 일본계 이외의 국민도 일본인풍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정부와 민간이 모두 일본과 매우 친밀하다. 팔라우는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어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외교를 맺지 않고 있다.
주요인사 교류로는 1995년 9월 대사 이장춘이 독립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였고, 1996년 5월과 1997년 6월에 대통령 나카무라가 비공식으로 방한하였다. 2002년 2월, 2005년 두차례에 걸쳐 대통령 토미 레멩게사우(Tommy Remengesau)가 한국을 비공식으로 방문,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1995년 3월 대통령 특사 김정원이 팔라우를 방문하여 수교의정서에 서명하였다. 1997년 1월 의원 김도언이 나카무라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였고, 1997년 5월 대사 이장춘이 무상공여 차량 1대를 인도하였다. 1998년 7월 대사 박동순이 미크로네시아 게임 개막식 참석 및 차량 1대를 인도하였다.
팔라우의 한국 교민수는 120여 명으로 규모는 적으나 팔라우 내에서 활발한 교민사회로 평가받고 있다. 팔라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강제징용 및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와 숨진 한국인을 위한 위령비가 K-B 다리 밑에 건립되어 있다. 2003년 대한(對韓) 수출은 16만9천달러, 수입은 649만달러이다. 70여명에 이르는 팔라우교민은 건설, 요식업, 관광업 등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8. 멜레케오크의 자연
주(主)섬 바벨투아프(Babelthuap)를 비롯하여 커다란 암초 울타리로 둘러싸인 산호섬에 이르기까지 지형이 다양하다. 해안선은 1,519km에 달한다. 팔라우의 기후는 열대해양성기후로서 고온 다습하며 5월부터 11월까지는 우기이다. 6월에서 12월 사이에는 태풍도 찾아온다. 연평균기온은 27.2℃, 연평균강우량은 3,728㎜이다. 지하자원으로는 목재, 금, 해산물, 해저광물 등이 있다. 전체 국토면적중에서 경작가능지은 8.7%, 농경지는 4.35%, 기타 86.95%(2005년)이다.
9. 멜레케오크와 함께 팔라우의 자랑거리
팔라우의 봄은 각종 페스티벌이 많이 열린다. 따라서 가장 방문하기 좋은 시기다. 2월, 3월이 팔라우의 건기인 반면, 7월, 8월은 폭풍이 많이 치는 시기다.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타이푼(태풍)이 오면 바로 7, 8월에 팔라우를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팔라우의 바닷물은 일년내내 섭씨 20℃다이버들에게는 최적의 온도라고 할 수 있다.
팔라우를 돈을 아껴가며 배낭여행 형태로 여행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팔라우에서는 너무 돈을 아끼지 말고 투어에 참가하거나 바다밑으로 스쿠버다이빙을 해보는 것이 훨씬 더 값어치있는 일이 될거다.
팔라우 관광의 백미는 코롤 섬을 기준으로 서남쪽에 위치한 록 아일랜드(Rock Islands) 일주다. 경비행기를 타거나 호텔 앞 정박장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고 환경보호 섬들을 누비는 이 관광은 팔라우 관광 소개책자나매체 등에 자주 등장하는 팔라우 소개 사진이나 영상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곳이다. 기초적인 약 외에는 의사의 처방 없이 약품을 구입할 수 없으므로 별도 복용하는 약이 있다면 미리 준비해 가도록 한다.
10. 멜레케오크의 음식
과일이 풍부하지 않다. 20여 년 전에 대만에서 과일재배법을 전수하여 만든 농장이 유일하며 요즘은 관광코스가 되어 있다. 이곳 농장에서는 여러 가지 과일을 재배하고 있었는데, 과일에 모두 봉지를 씌우고 그물망을 치고 있어 우리나라 어느 과수원에 온 느낌이다. 특히 용처럼 생겼다하는 드래곤 과일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가격이 비싼 편이다. 이곳에서 나는 과일은 우리나라 과일처럼 당도가 높지 않지만 단백하여 많이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수수한 맛이다.
원주민들의 주식은 과일을 먹는 박쥐, 바다에 사는 거북이 그리고 감자 등이다. 주로 고기와 전분을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보아 체형이 비만인 것도 음식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의 피부를 보면 피부가 거친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기름진 음식에 코코넛 기름으로 마사지를 하기 때문에 피부가 아주 탄력이 있고 건강하다. 더욱이 이곳 사람들은 성격이 선천적으로 태평하여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