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 뮤직넷에서 오빠들 소개하는 글들을 퍼왔슴다..^^
서태지와 아이들, 잼 , 듀스등과 함께 1990년대 초반 랩댄스뮤직 돌풍을 몰고 온 남성 4인조 그룹 '노이즈'는 리더 홍종구,천성일,한상일,김학규로 구성.
1992년 12월, 데뷔곡 '너에게 원한 건'을 발표, 짧은 시간에 팬들을 확보하면서 당시 최고의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공백기를 가지던 1993년 상반기 최고의 인기그룹으로 부상했다.
노이즈는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와 같은 강렬한 미국적 랩댄스음악이 아닌 경쾌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바탕이 되는 유럽풍 댄스를 추구. 이같이 차별화된 전략덕분에 수퍼스타급 댄스그룹과 경쟁을 할 수 있었다.
1993년은 그들에겐 악재의 연속이었다. 그들의 히트를 시기라도 하듯 리더인 홍종구는 교통사고를 3번이나 당하고 사소한 시비끝에 카메라맨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1994년에 발표한 2집 타이틀곡 '내가 널 닮아갈 때'는 '베이비 힙합'이라고 명명한 유럽식 깔끔한 분위기의 재즈힙합곡으로 아기처럼 귀여운 댄스와 간결한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1집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상승되었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2집활동이 끝나고 3집을 준비할 무렵 막내인 김학규의 군입대로 새 멤버 홍종호를 영입, 1995년 4월에 발표한 3집중 '상상속의 너' 는 이제껏 노이즈의 음악적 색채에 강하고 빠른 리듬을 가미하여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 것으로, 2집의 부진을 만회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KBS 가요톱10 차트 1위를 석권하고 앨범판매량 70만장을 훌쩍 넘기며 그들을 명실공히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해 8월부터 10월까지 첫 전국 투어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고 '95 서울 가요 대상과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이같은 3집의 여세를 몰아 같은 해 11월 , 4집을 발표. 실험성과 대중성이 반반씩 어우러진 이 앨범은 한때 유행했던 레게 리듬이 많이 가미되었고 이 중 딥 하우스 뮤직 '이젠'과 트랜스 뮤직 '홀로서기'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트랜스는 정글뮤직이 발전된 형태로 언뜻 들으면 정글이나 레이브와 별 차이가 없지만 BPM 140 - 180에 이르는 등 엄청나게 속도가 빠른 첨단 댄스 뮤직)
4집 활동을 마치고 멤버 홍종호가 전문 댄싱팀을 구성하기 위해 전격 탈퇴하는 아픔을 겪게되고 팀 구성에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 결과 결국 3인조로 활동을 시작.
1996년 노이즈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로 사회고발의 메시지를 무겁지 않게 다룬 5집을 발표했다. 타이틀곡 '성형미인'은 펑키를 가미한 하우스 댄스곡으로 성형수술로 겉모습만 예쁘게 꾸민 여자들을 신랄하게 비꼬는 내용이다.
1998년, 2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노이즈. 그들은 'ANTI - NOISE'. 그동안 소속되었던 라인음향에서 독립해 '예전의 노이즈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이들은 홍종구,천성일 두명의 멤버가 6집을 발표했다. 그동안 대중적인 음악을 추구해 오던 이들은 6집에서 '중견가수로서 뭔가 의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사회비판적인 메시지와 수준 높은 음악들을 담아냈다. 강렬한 테크노 'PIG MAN'으로 잠시 활동을 재개했으나 이미 너무 빠르게 변화한 가요계에서 그리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룹의 리더였던 홍종구는 지난 1998년에 음반 기획사 '메이저'를 설립했으며 이어서 ㈜스티커즈 를 설립, 사업가로 변신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룹내에서 항상 곡 작업을 맡아왔던 천성일은 음반프로듀서및 작곡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안무를 맡았던 한상일은 새로운 댄스그룹을 결성해 활동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