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사는 고려시대 창건된 유서깊은 절 괘불탱, 혜소국사비등 국보와 보물 칠장산은 금북정맥의 산 |
사진:안성의 한적한 산지에 있는 유서깊은 절 칠장사
칠장산은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산이다. 산은 높지 않지만 산자락에 칠장사란 고찰이 있어 유명해진 산이다. 국보와 보물이 있는 한적한 고찰 칠장사를 둘러보고 숲이 울창한 칠장산에 올라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나서 내려와 칠장사 혜소국사비 아래쪽 골짜기 약수터에서 냉수 한잔을 먹고나면 칠장산과 칠장산 순례는 끝이 나는데 이 약수맛이 보통 시원한게 아니다.
칠장사는 서울에서 다녀오기에 부담이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선 용인을 惻?양지에 와서 진천으로 가는 17번도로를 탄다. 백암을 지나고 죽산리에 오면 장호원-안성을 연결하는 38번 도로(이 길은 최근 확포장되어 6차선도로가 되었다)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6차선도로를 타고 2킬로쯤 달린 뒤 인터체인지가 보이면 표지판지시대로 진천방향을 목표로 큰 도로를 내려와야 한다. 2차선 도로로 다시 들어와 7킬로쯤 남쪽으로 달리면 안성 컨트리 클럽 입구가 나오고 입구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곧 칠장사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가 오른쪽으로 나온다.
작은 골짜기를 넘어가면 칠장사로 들어가는 길이 꼬불꼬불 이어질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데 이 도로는 차2대가 교행하기 힘든 도로임을 감안 저속주행해야 한다.
칠장산군(덕성산-칠현산-칠장산)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가지쳐나온 정맥인 금북정맥에 속한 산이다. 높이는 500미터내외로 높지않지만 산의 폭이 크고 숲이 울창하여 그 일부는 안성시와 진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칠장산 동남방향에 위치한 칠장사는 고려초기에 창건된 절인 듯하다. 이 절 출신인 혜소국사비가 세워진 것을 고려11대왕인 문종 13년으로 잡는다면 혜소국사가 활동한 시기는 그 이전일 것이기 때문이다. 혜소국사는 칠장사출신이다. 10세에 입문하여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는 기록을 참고로 하면 그가 국사의 시호를 받았던 문종시절 이 절은 가장 융성하던때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조말에 중창한 것으로 조선조말에 세워진 중소규모의 절의 대웅전이 갖는 일반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유형문화재 설명문인 대웅전 설명문에 기록되어있다.
규모는 아담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건물이다.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건물은 근세의 것이지만 배흘림이 느껴지는 기둥은 전부 같은 것이 아니고 원래의 전각에 쓰였던 원주중에는 600년전 것으로 보이는 기둥이 있다는 것이다. 원통전쪽 기둥 몇개를 그 실례로 보여주는데 연륜과 원주의 나무결과의 사이에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주 부석사나 조사당이며 각지의 고찰들을 머리속에 떠올려도 이만치 오래된 기둥은 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사진:칠장사 대웅전옆의 석불입상. 보물983호이다.
그만치 오래된 절 칠장사는 부도밭의 부도가 45기에 이르는등 전통깊은 사찰로서의 내력을 엿볼 수 있는 물증은 적지않으나 사적기등이 제대로 전해오지 않아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대웅전은 단청이 벗겨져 있고 풍상이 끌질을 하고 지나간 흔적이 랄 수 있는 목질의 무늬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고풍함과 깨끗한 가난함이 밴 해맑은 인상을 보여준다.
기단은 장대석을 5단으로 쌓고 원형 초석위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웠다. 마당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소맷돌의 운형문(구름모양무늬)이 조촐하다. 소맷돌중에 없어진 것도 있는데 그 자리엔 미끈하게 다듬은 현대판소맷돌이 볼품없이 끼여 있다. 요즈음 들어 개를 키우는 절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소맷돌이랑, 부도 받침돌마저도 가져가는 간큰 도둑들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변산의 어느 절에서 '맹견주의'라고 써부친 팻말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칠장사 스님 한분은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영 짖지를 않아 문제라고 했다.
칠장사는 대웅전과 그 앞의 응향각, 안쪽의 요사채, 바깥쪽의 명부전이 둘러싸며 이루어놓은 공간에 푸른 잔디밭이 가꾸어져 있어 정돈되고 편안하며 정갈한 느낌이 우러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과다한 방문객 탓인지, 아니면 사찰측의 소홀함 때문인지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날리는 살벌한 분위기임을 감안하면 칠장사의 안마당은 돋보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웅전 뒤로는 높은 언덕이 감싸듯 대웅전위로 적당히 솟아 그 높이와 울창한 숲으로 칠장사전부를 푸른 옷소매(숲의 푸르른 나무와 가지들)로 감싸안으려는 것처럼 보여 아늑한 느낌이 더해진다.
칠장사 대웅전 안 마당에는 괘불대가 3대나 있다. 괘불대는 괘불을 달 때 탱화걸이 나무를 부지하기위한 버팀돌기둥이다. 사월초파일이 되면 엄청나게 큰 괘불을 걸어 불심을 앙양함은 물론 석가탄일의 축제적 분위기도 맛보게한다. 옛날부터 석가탄일 무렵은 봄이 절정을 이룰 때여서 인근의 고을 주민들 중 신도는 물론 신도 아닌 사람들도 구경삼아 절로 모여든다. 칠장사에는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국보 괘불탱이 있다. 보존문제상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대웅전옆에는 석불입상이 숲을 뒤에 두고 서 있다. 안성 봉업사 석불입상으로 보물 제983호이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번창했던 절인 죽산 봉업사에 있던 것으로 원래는 죽산중학교 있었으나 칠장사로 옮겨왔다. 전체적인 조각이 수준이상의 솜씨를 보여주는 이 석불입상은 보존상의 잘못으로 얼굴의 마모가 심하여 그 인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 결점이다. 중학교 창고에 있었는지 교정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런 문화재를 중학생들에게 맡겨 두었던 셈이니 한심하다.
대웅전 옆 원통전 왼쪽으로 그늘이 짙은 숲속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면 이절의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던 고려조의 국사 혜소의 비가 있다. 고려문종때 혜소국사를 기념하기위해 세운비이다. 비신 높이는 3.15미터, 폭은 1.42미터이다. 현재 비석, 귀부, 이수등이 한 전각안에 세조각으로 보존되고 있다. 귀부는 경기도 여주 고달사지의 귀부처럼 대형이다. 귀부나 이수의 조각은 수작에 속한다고 할 수 없으나 비신 측면에 조각된 쌍룡은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비의 조성연대가 고려불교문화의 최융성기에 속한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깔끔한 조삭이 드러내는 용은 만지면 용린(비늘)이 감촉될 것만 같다. 이 비석을 보고자 한다면 그 측면의 쌍룡을 보아야한다. 보통솜씨가 아니다. 혜소국사비는 보물 488호이다.
혜소국사비전각 왼쪽인 계곡 안쪽에 나한전이 있다. 사방 2미터정도 밖에 안돼보이는 방인데 엄연히 한채의 집이다. 지붕이 무거워보이는데 그 위에 600년묵은 노송이 가지를 뻗고 있어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노송은 노송이로되 600년 묵었다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지름이 2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소나무가 600년간 생명을 유지해왔다면 지름 2미터정도로 삶의 영역이 제한될 수가 있을까하는 상식선에서의 의문 때문이다. 소나무아래엔 소나무의 품격이 도나무(경기도나무)이며 수령이 600년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이 소나무는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심었다고 한다.
칠장사 혜소국사비 옆에 있는 나한전. 인형의 집같이 작지만 엄연한 한칸 건물이다.
나한전 안에는 7인의 나한이 안치되어 있다. 채색된 작은 석상들이다. 이들은 혜소국사가 교화하여 일곱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칠장산과 칠현산의 내력을 증언하는 7인의 나한좌상이다. 한칸밖에 안되는 전각을 받치는 네 기둥을 보면 좀이 쏠고 세월에 깎이어 나무살은 떨어져나가고 결만 남아있는데도 굳굳이 무거운 지붕을 받치고 있다. 이 전각을 그림처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노송 못지않게 전각의 왼쪽 추녀끝에 붙인 작은 깨알같이 그득하게 채워진 글들이 씌어진 미니애처 편액이다. 이 작은 건물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편액엔 탄명스님이 이 전각을 지어 노천에서 풍상을 맞고 있는 나한을안에 모신다는 글귀가 들어있다. 전국의 풍광이 아름다운 지역에 지어진 정자의 안쪽에는 으례 정자가 지어진 내력이나 건축에 도움을 준 인사들의 방명이 적혀있다. 이 작은 전각도 그런 전통을 따르고 있으되 규모가 작아 더욱 사랑스러운 느낌을 준다.
천왕문의 사천왕상중 한 조상은 마치 여느사람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목을 받는 천왕상이나 조금 견강부회의 느낌을 준다.
천왕문에서 주차장을 내려오니 오른쪽에 하늘을 찌르고 있는 철당간이 보인다. 옆에 사적비도 있다. 부근에 여흥민씨(민비의 친정가문)의 산소자리가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법희등 의식을 할 때 당을 달기위해 세우는 돌, 쇠등의 재료로 된 기둥이다. 칠장사 당간은 현재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당간 중의 하나이다. 당은 일종의 깃발이다.
칠장사와 떨어진 죽산리에는 5층석탑이 있다.
칠장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혜소국사비전각과 나한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된다. 길은 곧 급경사로 바뀌고 숲은 울창해지는데 숲 바닥은 산죽밭이다. 산죽밭은 꽤 오래 이어져있다. 산죽밭을 지나면 경사가 완만해지고 노송이 많아 더욱 그늘이 시원한 주능선이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칠현산, 왼쪽길로 빠지면 칠장산이다. 칠장산으로 가는 길은 활엽수림속에 노송이 진한 그늘을 이룬 기분 좋은 산길이다. 평탄하게 가다가 급경사를 올라가면 능선봉이다. 봉우리위는 헬기장이다. 왼쪽, 오른쪽으로 내려다보면 골프장이 보이는데 북으로 보아 오른쪽이 안성 컨트리 클럽이지만, 왼쪽은 무슨 골프장인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이 골프장은 남쪽 산등성이를 밀어붙여 골프장을 확장하고 있다. '지키라,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수호하라'는 워즈워드의 싯귀가 생각나 기분이 엉망이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이 골프장이라니. 정상은 숲에 가려져 잘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는 건너편 봉우리는 정상이 아니다. 정상은 헬기장에서 3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엔 삼각점이 있다. 전망을 틔우기 위해 나무를 친 흔적이 있지만 그사이 풀과 나무가 자라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남으로는 칠현산이 보인다.
칠장산을 내려와 혜소국사비 아래 골짜기 바위아래서 샘솟는 약수를 마시면 어떤 더위도 그 자리에서 식어버릴 듯하다. 칠장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칠장산을 둘러오는 길은 두시간도 채 안걸리므로, 제대로 된 산행을 즐기고자 한다면 칠현산까지 연장하여 산행한 뒤 칠현산에서 명적암을 지난 큰길로 내려오는 것도 하나의 코스로 생각할 수 있다.
칠장사와 임꺽정의 관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꺽정이 이절의 주지였던 병해스님을 몇 번 만나러 왔다는 사실이 소설'임꺽정'의 내용 가운데 나오고 있다.
민박집:0344-72-0698 식당:(산채비빔밥)74-8717 가게: 할매상회:72-6273
http://www.kormt.co.k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