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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의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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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대로 스크랩 백설에 덮인 파사성(婆娑城)
양효성 추천 0 조회 42 13.01.19 14: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백설에 덮인 파사성(婆娑城)

 

남한강이 두물머리에 닿기 전, 새로 생긴 이포보에 잇닿아 사적 제251호 파사성은 있다.

 

신라의 제5대 왕(AD80~112 재위)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다음 백과에는 파사왕을 대략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유리이사금의 둘째 아들인데 유리이사금의 동생인 내로- 또는 나로(奈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왕비는 허루 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 김씨(史省夫人金氏)라는데 許라는 접두사가 혹 가야와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4대임금인 탈해이사금이 죽은 뒤 태자 일성(逸聖)보다 뛰어나 왕위에 올라, 검소하고 경비를 아껴 백성을 사랑했다. 밖으로 눈을 돌려 주변 소국[이것을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들을 정복하며, 가야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유지했다. 94년(파사이사금 15)에 가야가 마두성(馬頭城)을 포위했을 때 아찬 길원(吉元)을 보내어 기병 1,000명으로 물리쳤고, 96년에 가야가 다시 남쪽 변경을 침범하매 가소성주(加召城主) 장세(長世)가 이를 막다가 전사하자 왕이 직접 군사 5,000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크게 이겼다. 다음해에 가야를 치려 하다가 가야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여 중지했다. 102년에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실직곡국(悉直谷國) 사이에 경계다툼이 일어나 중재를 요청해오자, 가야 수로왕(首露王)에게 자문을 구하여 문제의 땅을 음즙벌국에 귀속시켰는데 얼마 후 신라육부(新羅六部) 내부의 알력에 개입하자 쳐서 병합했다. 그러자 실직국·압독국(押督國) 두 나라가 잇달아 귀순했다. 104년에 실직국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내어 토벌하고 남은 무리를 남쪽으로 이주시켰다. 복속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106년에는 압독국에 행차했고 마두성주를 시켜 가야를 치기도 했다. 108년에는 군사를 보내 비지국(比只國)·다벌국(多伐國)·초팔국(草八國)을 쳐서 합병했다. 112년에 죽자 사릉원(蛇陵園:지금의 경북 경주 오릉)에 장사지냈다.

 

이 이야기로는 파사왕이 남한강에 성을 쌓고 그 일대를 영토로 삼았다는 근거가 미약하다. 아무튼 성은 필요에 따라 修築되고 또 허물어지고 세월이 흘러 스러지기도 하고 또 복구되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이 자리가 경제적 요지인 이 일대를 조망하기에 더 없는 장소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임진란을 즈음해 승려 의암이 승군을 모아 다시 쌓고 또 허물어져 지금 보존하기 위해 고쳐 쌓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둘레가 약 1800미터라는 이 산성은 오르기 좋고 둘러보기에 알맞고 또 내려오며 천서리에서 막국수를 요기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나의 옛길탐사일기’를 다시 펴보니 서울에서 걷기 시작해 여드레 만인 2005년10월18일 화요일에 나는 이 자리에 있었다. 양평과 여주의 경계인 이곳에 다시 올라보니 그 사이 여주보가 생기고 차도엔 둑이 쌓여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었는데 옛 情趣가 덜하다. 아파트만 빼면 흡사 한강의 주변을 보는 느낌이다. KS라는 말이 한국표준의 질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외형을 모두 한강르네상스로 Korea Seoul의 KS로 보인다. 서울은 서울이고 시골은 시골인 것이 진정한 KS-Korea Standard아닐까? 올레길이 유행하면서 온 나라의 옛길이 올레 스탠다드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방부목으로 계단 놓고 갈색 우레탄으로 자전거길을 만드는...

 

그래도 눈에 덮인 파사성은 아름다웠다. 미끄러웠지만 오르고 보니 흩날리는 눈발속에서 벌거벗은 산성의 저편에 반가운 마애불이 더욱 또렷이 보였다. 산성을 한 바퀴 돌아본다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그때도 그랬듯이 봉진막국수에 들러 막걸리에 수육 그리고 국수를 말아먹고 길카페에서 군밤을 사먹었다. 북경에서 먹어본 따끈한 회올밤은 옛날을 생각게 했다. 커피도 한 잔! 봉진막국수는 좀 맵고 그 아래 3대째 한다는 흥원막국수는 별관까지 있는데 다음에는 이집에 들러보아야겠다. 이포대교를 건너 46번인가 고속도로가 생겨 북여주인터체인지를 통해 쉽게 집으로 돌아왔다. <*>

 

 

성벽의 눈위에 무수한 발자국이 보인다

거의 정상에 올라

두루 보이는 전망으로 남한강이 시원하다

성의 둘레는 약 1800미터

 

그 건물 터에 정자도 지어짐즉하다

돌아나오는 길도 성벽을 따라...왼쪽에 흘러내린 성돌과 경사를 어림잡게 한다. 그 옛날에... 

육수가 매운집인데...

전신주  길건너에 파사산성이 보인다.

단밤을 까서 먹는 길카페...주막의등불을 떠올리게 하는데...

바로 흥원막국수 주차장에 있다

길따라 신호등 건너 남한강의 이포대교-46번 고속도로로 가는 길이다. 왼쪽은 여주-오른쪽은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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