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탐지기
“혹시 이 소문 들어보셨는지요? 저쪽 맛나라만두집의 만두에서 꿈틀거리는 구더기가 나왔다는데요.”
대왕만두집 주인 박 씨는 동네 아줌마들을 상대로 경쟁관계인 맛나라만두집을 비방하는 거짓말을 흘리고 다녔다. 뜨거운 증기로 푹 쪄서 익힌 만두에 꿈틀거리는 구더기가 나올 리 없건마는 듣는 그네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맞아, 맞아. 나도 얼마전에 그 집에서 만두를 사다 먹었는데, 뭔가 꿈틀대는게 있어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아, 글쎄 바퀴벌레의 남은 반쪽 몸뚱아리가 아니었겠어? 어찌나 징그럽던지… 토하고 난리 났었지.”
그네들 중 유독 수다스러운 아줌마 하나는 한 술 더 떠서 더욱 그럴듯한 거짓말로 박 씨의 거짓말에 맞장구까지 쳤다.
최근들어 악화된 자금사정에 의해 부도위기를 겪고 있던 중견사업가 최 씨는 동창회 모임에 갔다가 ‘떼돈을 벌었다’라며 동창들에게 자랑 겸 너스레를 늘어놓던 안 씨를 먼발치에서 발견했다.
그 친구는 1년여 전에 최 씨로부터 돈을 빌려간 뒤 수 차례에 걸쳐 변제기일을 대수롭지 않게 미뤄오더니 나중엔 아예 떼어먹기로 작정한 듯 최 씨를 만나주지도 않을뿐더러 전화통화마저 기피해왔던 아주 뻔뻔스런 사람이었다. 최 씨는 폭발하려는 감정을 간신히 자제하며 안 씨를 구석진 자리로 불러냈다.
“이보게. 자네가 3일 후면 꼭 갚을 수 있다며 내게서 빌려간 3천만 원, 도대체 언제 돌려줄텐가? 차일피일 미루어온게 벌써 1년도 지났잖은가?”
그런데 어렵쇼? 안 씨, 불쾌하다는 듯 눈쌀까지 찌푸리며 되레 큰 소리 아닌가.
“이 친구 참 딱하군 그래. 내가 언제 자네 돈을 빌렸다고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나?”
“뭐? 내가 거짓말을 늘어놓는다고? 그리고 돈을 빌려간 적도 없다고? 이젠 돈조차 빌려간 적이 없다며 잡아떼는 것을 보아하니 자네, 돈을 떼먹겠다는 도둑놈 심뽀까지 지녔구먼.”
최 씨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지고 눈에선 싸늘한 살의마저 내비쳤다. 이에 안 씨, 은근히 겁이 났던지 좀 전의 모르쇠로 일관하던 태도를 180도 바꿔 말하길,
“아… 이제야 생각났다. 맞아, 내가 자네한테서 돈을 빌리긴 빌렸었지. 흠… 3일 후엔 꼭 되돌려주겠네. 물론…,
이자까지 듬뿍 쳐서 말이야.”
원래 거짓말쟁이일수록 약속은 시원스레 잘하는 법이다.
거짓말이란 처음엔 몇몇 악동들이 저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웃어른들로부터의 처벌을 모면하려는 기회주의적인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일부 못난 어른들이 처세의 수단으로서 또는 치부의 수단으로서 남발해 왔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 유행병처럼 번져나가더니 이젠 국민들 사이에 거짓말을 일종의 유머인양, 또는 사교계의 에티켓인양 즐겨 사용하는 바람에 이 거짓말하는 버릇이 남녀노소나 사회 각 계층을 막론하고 널리 자리잡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또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만난 순간부터 거짓말로 시작하여 헤어질 때까지 거짓말을 나누었다. 아이들은 대개 자기 집에 돈이 많다든가, 자신의 아빠가 대단한 지위에 있다는 거짓말을 나누었다.
“우리 아빤 매일 퇴근하여 집에 올 때마다 승용차 트렁크에 돈다발을 그득 싣고 온다.”
“우리 아빤 돈을 너무너무 많이 벌어서 집에 갖고 오기 힘들대. 그래서 매일매일 일억 원도 넘는 돈을 가난한 사람들한테 그냥 막 나눠준대.”
“히…, 우리 아빤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야.”
“그래? 우리 아빤 하나님보다도 더 높다!”
어른 또한 아이들 못잖게 거짓말에 능숙했다. 어른들의 거짓말은 대개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과대포장하는 내용이었다.
“어제는 대통령 각하와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오늘 점심은 누구와 함께 먹는다지?”
“얼마 전 신탁은행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30억 원을 갖다 쓰라했는데, 내가 돈 쓸 일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지.”
사람들은 일상에서의 대화 속에 이 따위의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고, 또 거짓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뭐라 따지려드는 사람들도 없었다.
이 나라 최고 어른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도 공식석상에서든 사석에서든 예사로이 거짓말을 지껄였고, 이제 겨우 말을 배우려드는 갓난아이까지 거짓말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국민이 그 모양이니 국가에서 거짓말쟁이들을 위해 해마다 4월1일을 만우절로 정해 단 하루만 거짓말을 허용했던 것이, 언제부턴가는 아예 1년365일 모든 날을 통째로 만우절로 지정해버린 상황이었다.
거짓말이라 하여 무조건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으니 남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려하거나 행복하게 해주려하는 거짓말, 병상의 환자들에게 삶의 의욕을 고취시켜주려는 거짓말, 또 어떤 힘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보다 능률적이게끔 유도하기 위한 거짓말 등은 선의의 거짓말, 또는 좋은 거짓말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거짓말 자체가 남을 속이려드는 기만행위이다 보니 남의 금품을 갈취하려는 욕심에서, 또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 남을 모함에 빠뜨리기 위해 악의적인 거짓말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국민들 간에 신용이나 믿음이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로인한 폐해가 말로서는 표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러한 상황을 바로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누가 더 그럴듯한 거짓말을 잘 하는지를 겨루는 거짓말대회가 전국적으로 독버섯처럼 생겨났고, 모든 국가시험에도 거짓말겨루기 항목이 포함될 지경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5천년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이 거짓말로서 서로를 불신하다 보면, 결국 나라 꼴이 뭐가 되겠나. 세계 1등 거짓말국가밖엔 더 되겠나’
생명공학을 전공해온 김의영 박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김 박사는 전자공학을 전공해온 절친한 친구 조영철 박사를 만나 사태의 심각성을 얘기했다.
“하도 거짓말만 지껄이는 풍조라 이젠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 병신으로 놀림 당할 판이다. 이래가지고 이 나라가 앞으로 어찌 되겠나?”
“그러게…. 세상이 뒤죽박죽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애.”
“얼마전엔 정부에서 국제행사를 유치해놓고 빵꾸까지 내지 않았던가. ‘이런 무례한 법이 어디 있느냐’라며 항의하던 미국대표에게 담당국장 얘기가 뭐? ‘거짓말인줄 몰랐냐?’라고 그러더래. 기가 막히잖아.”
“이미 만연해있는 거짓말버릇을 어찌 고치겠나. 누구 말을 듣는 국민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는 없잖은가. 우리가 힘을 합쳐 거짓말탐지기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나?”
“이미 여러 종류의 거짓말탐지기가 나와 있잖은가. 사용을 잘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건 기존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래. 거짓말을 잔뜩 늘어놓고도 그를 탐지한 거짓말탐지기가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불신하려드는데 어찌하겠나. 그래서 우리가 정확도 100%인 거짓말탐지기를 발명하자는 얘기지.”
김 박사와 조 박사는 2년여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정확도가 100%인 거짓말탐지기 ‘휴먼브레인이미지리사이클링시스템(Human Brain Image Recycling System : 약칭 HBIRS)’을 발명하는데 성공을 했다. 인간의 생각을 읽는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생명공학과 전자공학이 어우러진 산물이었다.
HBIRS는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푹신한 의자와 등받이 위로 오토바이 헬멧처럼 머리에 덮어쓰게 되어있는 브레인 캡, 그리고 캡의 회로에 연결되어 있는 멀티플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HBIRS기술의 핵심은 브레인 캡이다. 캡은 인공두뇌와 초감각센서, 음영상 재생센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공두뇌엔 인간두뇌의 뉴런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8천억 개의 마이크로세서 뉴런이 내장된 칩이 사용되어 인간두뇌의 피질에 분포되어 있는 뉴런 수를 훨씬 능가했다.
그리고 초감각센서는 인간두뇌의 뉴런에서 방사되는 극히 미세한 뇌파조차 감지할 수 있게 고안된 센서로 그렇게 감지된 센서를 인공두뇌의 마이크로세서 뉴런으로 보내어 재생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이다. 그리고 음영상 재생센서는 마이크로세서 뉴런에 재생된 음과 영상을 멀티플레이어로 구현할 수 있게 신호로 보내는 장치이다. 이로써 그 누구든지 HBIRS를 이용하면 그가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영상이나 생각 따위를 숨길 수가 없게 된다.
거짓으로 꾸며서 얘기하기란 실제의 상황을 떠올리며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몇 곱절 더 어렵기 마련이다. 거짓말이란 실제의 상황을 뒤집어엎고 거짓된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럴듯하게 재창조해야하는 만큼 에너지가 더 소비되는 것이다. HBIRS를 이용하면 그런 과정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거짓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HBIRS는 상용화단계부터 난항을 겪게 되었다. HBIRS 때문에 정치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정치인들이 날로 늘어갔고, 또 사업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업가들도 점차 늘어났다. 그뿐 아니라 각처의 공무원들이나 각 기업 노조 등에서도 일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만의 소리가 높아갔다. 나중엔 각계각층을 막론하고 HBIRS의 실효성에 이의제기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HBIRS를 어떻게 믿으라고요? HBIRS조차 거짓말하고 있는지 어찌 압니까?”
마침내 거짓말을 족집게처럼 밝혀내는 HBIRS조차 ‘믿을 수 없노라’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결국 HBIRS의 상용화에 대한 대대적인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그러자 찬성표는 불과 4%에도 못 미치고,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사용해선 안 된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 이유란,
“솔직히 말해서, 거짓말을 못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냐?”
따라서 HBIRS는 등장 7개월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국민들은 비로소 마음 놓고 거짓말을 다시 주절거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