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에서 망청개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주덕읍 소재지에서 서울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500m 떨어진 도로변에 위치한 신중리 신촌을 흔히 ‘망청개’라고 한다. 청일전쟁 때 일본군과 청나라군이 이곳에서 싸워 청군이 일본군에게 패한 곳으로, 청나라가 망했다는 의미에서 신촌을 망청개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1982년에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수록되어 있으며, 1981년 중원군에서 발행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와 2002년 충주시에서 발간한 『충주의 구비문학』에도 각각 실려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 때 청군은 성환, 안성, 직산 등에 주둔하며 일부 초색병을 충주까지 설치하고 있었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 마쓰사끼 부대에게 청군이 패하자, 충주에 있던 청군이 안성으로 향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 마쓰사끼 부대는 청군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직산을 떠나 충주로 향했다. 결국 충주를 떠나 안성으로 향하던 청군과 직산을 떠나 충주로 향하던 일본군이 신촌에서 마주쳐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밤새도록 치른 싸움은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 전투에서 청군들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였다. 청군의 시체가 들을 덮다시피 하였다. 일본군이 마을 사람들을 이용해 청군의 시체를 운반하는데, 검은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었다. 이것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땋은 머리가 깎은 머리한테 망했다”고 했다. 후일에 이곳 일대를 ‘청나라 땋은 머리 군대가 망했다’는 뜻에서 ‘망청개’라 불러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망청개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시신의 머리를 끌어서 운반’이다. 청나라 병정들은 앞머리를 배코치고 뒷머리를 길게 따 내렸는데, 이런 것을 ‘개’라고 했다. 전투에서 진 청군의 시체를 옮기려고 이 개를 잡아끌어서 운반했다고 한다. 「망청개의 유래」는 ‘청나라 땋은 머리 군대가 망했다’는 뜻에서 ‘망청개’라 불렀다고 하는 지명유래담이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아산만에 상륙한 청군이 충주를 떠나 안성을 향하고, 인천에 상륙하여 직산을 떠나 충주로 들어가려는 일본군은 해질 무렵에 석양을 등에 업고 요도천변 대미들(지금의 망청개)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 청군이 거의 전멸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지명화한 「망청개의 유래」는 전형적인 형태의 지명유래담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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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잘했다^^ 근데 넘ㅁ 많은 것 같아 ㅎㅎ 그래두 잘했다 ㅎㅎ
헐!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