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코끼리
-천주산
나의 아침 출근은 천주산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머리에 상처는 나지 않았는지, 긴 콧등은 활력이 넘치는지, 귀는 부채처럼 활짝 펴져 있는지, 어깨 근육은 부드럽게 풀려 있는지, 앞다리는 피로가 겹쳐 허청거리지는 않는지, 장엄한 등판과 털 빛깔은 계절에 맞는 보호색으로 덮여 있는지, 안개에 싸여 갈 길을 잃고 혹 방황하지는 않는지를 확인해야 내 마음이 놓인다. 천주산은 나의 벗, 내 안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에서 흔히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니 하는 상징적 용어로 나는 그를 대하고 싶지는 않다. 25년여 세월을 천주산의 일부로 살아온 나로서는 나름대로 그에 대한 애칭 하나를 붙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몇 해전 어느 날이었다.
명곡 로터리를 거쳐 도계동 방향으로 출근을 하다가 신호 대기에 걸려 무심코 천주산을 바라보던 나는 아, 숨막히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코끼리, 넓은 귀를 흔들며 코는 슬쩍 치켜든, 조금도 주저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끄덕끄덕 아침의 찬란한 햇살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혼자서 동쪽을 향하여 걸어가는 젊은 코끼리 한 마리를 보게 된 것이다. 그 늠름함이라니. 그렇다. 천주산은 나에게 한 마리 젊은 코끼리였다. 나는 지금 저 코끼리의 신체 부위 중 어디로 가는 셈이 될까. 그의 오른쪽 허리짬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고부터 나는 천주산을 내 안의 코끼리로 키워오고 있었다.
창원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이다. 봉림, 비음, 대암, 불모, 장복, 팔룡산에 안긴 도시가 창원이다. 그런 도시의 숨통을 열어주는 자리에 천주산이 의젓하게 앉아 있다. 무학이 합포만을 쓸고 앉았다면 백월은 굽이치는 낙동강의 물길을 지키고 있다. 제 양 옆구리를 남해고속도에 베어 준 아픔을 겪으면서도 천주산은 끄덕없이 창원을 지키고 있다. 멀리서 보면 그는 완만한 능선으로 하여 인자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인근 소계, 구암, 동정, 소답, 사하, 내감, 외감동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살기 어렵던 시절에는 땔감 공급은 물론 산나물과 푸성귀로 보릿고개를 넘게 해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동정동 비탈과 달천의 안 골짝으로는 진달래꽃을 사월이면 흐드러지게 피워 놓아 소년 이원수와 설창수로 하여금 시심을 키우도록 하지 않았던가. 봉우리에 기기묘묘한 바위를 두어 사람의 접근을 막지도 않고, 어느 한 봉에만 올라도 이 봉에서 저 봉으로 단숨에 뛰어갈 수 있게 억새와 진달래 숲으로 길을 내 놓고 있는 그는 확실히 사람들을 푸근하게 해주는 친화력이 있다.
한 팔을 무학산 쪽으로 뻗어 애기봉을 만들고 그 자락에다 지하수를 무한으로 뿜어내어 맥주공장을 짓게 한 것도 그의 지혜이다. 천주산은 용지봉 중턱까지 물길이 있다. 허미수가 즐겨 찾던 ‘達川洞(달천동)’은 사철 내내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풍류를 잡히기에 넉넉한 곳이다. 달천동 일대를 삼림욕 공원으로 개발한다는 창원시의 계획이 결코 근거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서쪽 구릉을 넘으면 칠원의 산정 마을 앞에다 맑은 호수 하나를 만들어 놓는다. 천주산은 맑고 찬 물을 쉴 새 없이 흘려보내 담수호 하나를 마련해 놓았다. 산이 산다우려면 물 인심이 풍부해야 한다. 천주산은 물 인심이 푸지다. 그는 또 여인의 기도를 좋아한다. 석불암 위쪽 계곡이나 달천동의 깊고 깊은 안 골짝에다 사철 내내 목욕할 맑은 물을 가두어 여인들이 촛불을 밝히고 치성을 드리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임간도로에 묻혀 흔적이 없어진, 한말(韓末) 명성황후의 왕자 생산을 위해 치성을 드렸다는 옥녀탕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비처이기도 하였다.
가까이서 보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함부로 덤볐다가는 낭패를 보는 산이 천주산이기도 하다. 달천으로 들거나, 동정동 뒷고개로 들거나, 창원역 좌측의 지하 통로로 들거나, 소계동으로 들거나 그는 함부로 길을 헤프게 내 놓지 않는다. 일단 그의 품속에 들면 그는 사람을 받아들여 길 위에다 쉴 자리까지 내어놓고 쉬면서 쉬엄쉬엄 오르게 한다. 길의 변화무쌍함을 맛보자면 소계동의 경상고등학교 교문 옆 길이 가장 좋다.
그는 옷섶이 넓다. 정상에 오르면 그는 사방에다 풀어놓았던 장관(壯觀)을 불러들여 눈앞에다 펼쳐 놓는다. 동으로는 주남 저수지와 동면 일대, 광활한 진영벌, 봉림, 비음, 대암, 불모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과 창원 시가지 ― 아득하게 뻗은 창원대로와 공단의 회색지붕, 곳곳마다 쑥쑥 솟은 아파트와 주택들, 무당벌레처럼 기는 자동차의 물결을, 남으로는 팔룡, 장복, 무학산과 마산 시가지, 그 너머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의 합포만까지를, 서쪽으로는 중리, 삼계와 구마고속도로, 칠원의 산정마을을, 북으로는 무릉, 마금, 백월산과 낙동강, 북면 온천을 불러온다. 그뿐만 아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갖가지 의상하며 그의 품에서 섭생하는 푸나무와 새 짐승들은 또 어떠한가. 그 가운데서도 봄의 천주산은 진달래 천지이다. 이글이글 타 오르는 진달래꽃밭이 그의 뒷등을 온통 메우고 있는 장관이라니. 진달래꽃은 그에게 이제 더는 눈물과 향수의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축제요, 환희의 절정이다. 북면 청년회에서는 해마다 이를 기려 ‘천주산진달래축제’를 펴고 있지 않는가.
밤은 밤대로 또한 장관이다. 창원과 마산의 시가지가 뿜어내는 불빛은 어느 하늘의 별밭인들 이같은 모꼬지를 펼치랴. 생동감 넘치는 도시의 숨결을 그는 사양하지 않고 감상한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허허벌판이던 신생의 도시가 이처럼 커질 줄 그는 모르진 않았으리라.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그는 날마다 예감하며 오늘날까지 묵묵히 허리 한 자락을 고속도로로 내어주고도 참아왔으리라. 보잘것없던 석불암이나 천주암이 이제 그의 품에서 제법 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며 이따금 그는 절간의 풍경소리에 귀를 열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동쪽으로 힘차게 걷고 있는 내 안의 젊은 코끼리를 확인하며 출근을 한다. 그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요 사랑이다. 누가 돌탑을 쌓노라 머리에 상처를 내지 않았나, 긴 콧등에다 북면 가는 길을 낸다고 마구 헐어 피나 흘리지 않는지, 천주암 쪽의 귀를 덮은 푸른 숲에 혹 산불이나 나지 않았는지, 앞다리 어깨짬에 진달래꽃이 만발하지는 않았는지, 걸음새는 분명한지, 장엄한 등판의 털빛은 이제 막 밀려온 연록의 물결로 덮이지는 않았는지, 피곤하여 눈물은 흘리지 않는지…….
내 안의 코끼리는 그러나 언제나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서 오라고 한다. 코끼리 허리짬에 있을 내 직장을 향하여 나는 기쁜 마음으로 푸른 신호등을 거쳐 나아간다.
첫댓글 봄이면 천주산 진달래를 꼭 봐야만 직성이 풀렸었는데......천주산님은 참말 부자시네요..그토록 멋진 친구를 마음에 품고계시다니요...
마음 부자는 돈 부자보다 행복하다죠? 코끼리도 이젠 아아,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더이다. 이 일을 어찌할꺼나, 이 일을. 벗겨진 잔등을 볼 때마다 내 등에 피가 나는 아픔을 어이할 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