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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베레쉬트 “태초에”
창세기 1:1-6:8 | 집중학습 말씀: 창세기 1:1-3:24
+토라 포션 개요
태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엿새 동안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다. 첫째 날, 빛이 어둠을 비춘다. 둘째 날, 하나님은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신다. 셋째 날, 하나님은 물 위로 마른 땅이 드러나게 하시고 생명으로 땅을 채우신다. 넷째 날, 하나님은 태양과 달과 별들을 제자리에 두신다. 다섯째 날에는 물고기와 새를 만드신다. 여섯째 날에는 동물들을 만드시고 자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첫 번째 사람 아담을 만드신다. 일곱째 날에는 영원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며 안식하셨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아담은 특별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직접 숨을 내쉬어 생령을 아담 안에 불어넣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아담 자신의 몸으로부터 짝이 되는 여자를 지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 안에 두시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규칙을 정하신다. 그러나 뱀의 모양으로 위장한 대적자는 하와가 그 계명을 어기도록 꼬드겼고, 아담 역시 하와의 길을 따른다. 인간은 그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고 수치를 느끼며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숨으려고 한다. 인간은 동산에서 추방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
첫 번째 형제인 가인과 아벨이 태어난다. 가인은 땅을 경작했고, 아벨은 양을 쳤다. 둘 다 주님께 제사를 올려드리지만, 하나님은 가인의 마음의 태도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땅을 유랑하게 되었고, 하와는 의로운 셋을 낳는다. 여러 세대 후, 모든 인간들은 타락에 빠진다. 마침내 다가오는 구원의 약속인 노아가 셋의 혈통에서 태어난다.
+이번 주 포션 커넥션
이번 주 영상 강의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아담 창조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는 몇 가지 다른 시각에서 이 질문을 다루어 보고, 몇몇 메시아 적용점도 고려할 것이다. 결국 이번 학습은 인간됨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포커스 섹션
포커스 섹션은 학습내용의 이해를 돕는 본문 중심의 학습 질문들과 보다 깊은 그룹 토론 주제들을 포함한다.
1. 땅에서 바라보니
2. 나를 탐구하라!
3. 유일신 신앙과 엿새 동안의 창조
4. 아담
5. 선과 악
6. 네가 어디 있느냐?
7. 낙원을 잃어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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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요약 소책자
제1과
베레쉬트
“태초에”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1:1 |
창조주 하나님 · 하나님의 형상 · 선택과 책임 · 회복의 소망
제1과 안내
| 과 이름 | 베레쉬트(Bereisheet) - ‘태초에’ |
| 본문 | 창세기 1:1-6:8 |
| 집중학습 말씀 | 창세기 1:1-3:24 |
토라 포션 개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엿새 동안 빛과 궁창, 땅과 식물, 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새, 동물과 사람을 질서 있게 세우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특별한 존재이며, 창조 세계를 돌보고 다스리는 사명을 맡았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창조 사역을 그치시고 그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다. 불순종은 수치와 두려움, 책임 회피와 죽음을 불러왔고, 사람은 동산에서 쫓겨났다. 이후 가인의 살인과 라멕의 보복을 거치며 죄와 폭력은 사회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자의 자손에 관한 약속과 노아를 통해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이번 주 포션 커넥션
이번 과의 중심 질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란 누구인가?’이다.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 자유의지, 도덕적 책임을 살피고, 참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신 메시아 예수 안에서 회복의 소망을 바라본다.
포커스 섹션
· 1. 땅에서 바라보니
· 2. 나를 탐구하라!
· 3. 유일신 신앙과 엿새 동안의 창조
· 4. 아담
· 5. 선과 악
· 6. 네가 어디 있느냐?
· 7. 낙원을 잃어버리다
베레쉬트 - ‘태초에’
토라의 첫 책과 첫 파라샤의 히브리어 이름은 ‘베레쉬트’이며 ‘태초에’라는 뜻이다. ‘창세기’라는 이름은 헬라어 번역에서 유래하며 ‘기원’을 뜻한다. 창세기는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서 시작해 이스라엘의 기원으로 나아간다.
토라의 시작은 단순한 과거 기록이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우리의 기원을 바르게 아는 것은 삶의 목적과 목적지를 발견하는 출발점이 된다.
Focus Section 1. 땅에서 바라보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1:1 |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면 질서와 아름다움 뒤에 계신 창조주를 생각하게 된다. 유대 전승은 아브라함이 빛나는 궁전을 보고 주인을 떠올리듯, 우주를 바라보며 세상을 이끄시는 분이 계심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토라는 물리학 교과서나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왕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찾아가는 책이다.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보여 주며, 메시아 예수께 속한 이방인 제자들도 하나님의 가족 이야기 안으로 초대한다. 그러므로 창조 이야기는 모든 인간의 기원과 사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묵상과 나눔
1. 창조 세계는 창조주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보여 줍니까?
2.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토라가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Focus Section 2. 나를 탐구하라!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1:1 |
라쉬는 창세기 1장 1절을 깊이 탐구하라고 권한다. 히브리어 문장의 뜻은 하나님이 이미 존재하던 시간 안에서 일을 시작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과 모든 실재가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시간에 매이지 않는 영원하신 분, 피조 세계를 넘어 계시는 초월자,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전능자임을 가르친다. 동시에 그 높으신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고 가까이하신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임재는 서로 반대되는 진리가 아니라 함께 붙들어야 할 진리이다.
묵상과 나눔
1. 창세기 1장 1절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세 가지 성품은 무엇입니까?
2.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낮은 자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바꿉니까?
Focus Section 3. 유일신 신앙과 엿새 동안의 창조
|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창세기 1:5 |
고대 다신교 문화는 태양과 달, 비와 땅 같은 자연 현상을 여러 신의 힘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해와 달과 별도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라고 선언한다. 창조주가 한 분이시므로 온 우주는 한 분의 뜻과 질서 아래 놓여 있다.
유일신 신앙은 세상을 일관된 질서 안에서 바라보게 하고, 모든 삶을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운다. 인간은 자연을 신격화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창조주를 예배하며 맡겨진 세계를 책임 있게 돌보아야 한다.
묵상과 나눔
1. 엿새 창조가 선포하는 핵심 신앙은 무엇입니까?
2. 한 분 창조주를 믿는 믿음은 자연과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일곱 층의 하늘
히브리어 ‘샤마임’은 눈에 보이는 하늘과 하나님의 하늘을 함께 가리킨다. 고대 유대 전승은 하늘을 여러 층으로 묘사했고, 바울도 ‘셋째 하늘’과 낙원을 언급했다. 이러한 표현은 보이는 우주 너머의 영적 실재를 말하려는 시도이지만, 하나님을 물리적 공간 안에 가둘 수는 없다.
성경의 강조점은 하늘의 구조를 추측하는 데 있지 않다.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으며, 우리는 감추어진 비밀보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창세기는 하루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순서로 묘사한다. 이 때문에 유대력의 하루는 해 질 때 시작하고, 안식일도 금요일 해 질 때부터 토요일 해 질 때까지 이어진다.
이 시간의 순서는 영적인 소망도 보여 준다. 성경의 관점에서는 어둠 뒤에 빛이 오고, 악은 선에 패하며, 죽음은 생명에 굴복한다. 밤이 깊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아침을 기다릴 수 있다.
안식일
| “하나님은 그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창세기 2:3 |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다는 것은 피곤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창조 사역을 완성하고 멈추셨다는 뜻이다. 히브리어 ‘샤바트’는 멈추다, 쉬다는 뜻이며, 안식일은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분의 완성된 일을 기뻐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주어졌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이방인도 그 복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선포한다. 오늘의 제자들에게 안식일의 원리는 일과 성취를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과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예배와 쉼과 기쁨을 회복하라는 초대가 된다.
Focus Section 4. 아담
|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 창세기 2:7 |
‘아담’(사람)과 ‘아다마’(흙)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다. 인간은 땅의 흙으로 지음 받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생명의 숨 ‘네샤마’를 불어넣으심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생명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적인 창조이며, 그 때문에 존엄과 목적을 가진다.
인간은 흙과 하나님의 숨결, 물질과 영의 두 차원을 함께 지닌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이성과 도덕성,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세상에서 그분을 대표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의 사명은 일상 속에서 신적인 성품을 가꾸고 ‘땅에서 하늘’을 드러내는 것이다.
메시아 예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신 참사람이다. 제자는 예수를 바라보고 따름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간다.
묵상과 나눔
1. 흙과 하나님의 숨결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게 합니까?
2.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에덴
‘에덴’은 기쁨을 뜻한다. 에덴동산은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받던 낙원이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가능성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순종과 불순종 사이의 실제적인 선택을 보여 준다.
인간은 날마다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 사이에서 선택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생명의 길이며, 자유는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능력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할 책임과 결합되어 있다.
좋지 않으니
창조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좋지 않다’고 선언된 것은 사람이 혼자 있는 상태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관계적 존재로 지으시고, 서로 마주 보며 돕는 짝과 공동체를 주셨다. ‘돕는 배필’은 열등한 조력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꼭 맞는 동반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고립된 개인보다 사랑하고 책임지는 관계 속에서 더 온전히 드러난다. 결혼과 가족, 믿음의 공동체는 자기중심성을 넘어 섬김과 연합을 배우는 자리이다.
한 몸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룬다는 말씀은 단순한 육체적 결합을 넘어 언약적 연합과 상호 헌신을 가리킨다. 두 사람은 서로의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삶을 이루도록 부름받는다.
유대 전승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하나님의 이름이 머물 때 가정에 거룩함이 있고, 하나님을 배제하면 관계를 태우는 불만 남는다고 설명한다. 건강한 연합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말하는 뱀이라고?
창세기의 뱀은 단순한 동물 이상의 존재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대적자의 도구로 나타난다. 유혹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하고, 피조물이 창조주와 같이 스스로 선악의 기준이 되려는 데 있다.
유혹에 맞서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기억하고, 과장하거나 줄이지 않으며, 욕망이 판단을 지배하기 전에 순종을 선택해야 한다.
Focus Section 5. 선과 악
하나님이 금지된 나무를 두신 것은 인간의 타락을 부추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자유와 선택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선택할 수 없다면 순종과 사랑도 의미를 잃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을 지는 인격으로 창조하셨다.
자유가 있는 세상에는 악을 선택할 가능성과 고통의 현실도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 가능성 속에서 선과 충성, 사랑과 순종이 참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과 죽음을 두시고 생명을 선택하라고 부르신다.
묵상과 나눔
1. 자유의지와 책임은 왜 함께 가야 합니까?
2.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게 만드는 내면의 경향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명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죄
|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세기 3:6 |
금지된 열매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핵심이 아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행한 불순종이다. 성경에서 죄는 개인의 취향이나 사회의 유행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정의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권위보다 뱀의 말을 따름으로 죄의 종이 되었다. 죄는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을 지배하며 죽음으로 끌고 간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로 돌아가는 결단이다.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열매를 먹은 뒤 두 사람의 눈은 밝아졌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수치와 죄책감, 두려움과 단절이었다. 이전에 순수했던 관계와 욕망도 자기중심성과 악한 충동에 의해 왜곡되었다.
죄는 사람을 더 지혜롭고 자유롭게 만들겠다고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종으로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참된 자유와 의로 이끈다.
Focus Section 6. 네가 어디 있느냐?
|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물으셨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창세기 3:9 |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아오셨다. 이야기의 중심 질문은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디에 있는가?’이다. 하나님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수치와 반역 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피한 것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정죄만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회개와 관계 회복으로 부르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숨어 있는 사람을 찾으시며, 우리는 숨김없이 자신의 영적 위치를 인정하고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묵상과 나눔
1. 나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피하거나 숨으려 합니까?
2. 오늘 하나님의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책임 떠넘기기
아담은 하와를, 하와는 뱀을 탓했다. 죄인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정한 변화와 치유는 시작될 수 없다.
회개는 변명을 멈추고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티보다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는 정직함이 회복의 문을 연다.
사탄과 자손
|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세기 3:15 |
뱀은 하나님과 인간의 대적자인 사탄을 가리킨다. ‘사탄’은 고소자라는 뜻이며, 그는 인간을 미혹하고 고발하며 창조 세계에 파괴와 죽음을 퍼뜨린다. 인간은 대적자의 말을 따름으로 하나님께 받은 통치 권위를 잃었다.
그러나 타락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자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창조의 권위를 하나님께 돌려드릴 메시아를 바라보게 한다.
Focus Section 7. 낙원을 잃어버리다
| “주 하나님은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다.” 창세기 3:23 |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나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모든 인류는 고통과 죄와 죽음의 지배 아래 놓였다. 한 사람의 불순종이 많은 사람에게 정죄와 죽음을 가져왔다.
메시아 예수는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아담의 범죄와 달리 예수의 의로운 순종은 은혜와 의롭다 하심과 생명의 길을 열었다. 예수를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다.
구원은 잃어버린 에덴을 향한 회복의 여정이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자기 길을 버리며,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메시아 안에서 새 생명을 살아간다.
묵상과 나눔
1. 첫 아담의 불순종과 메시아 예수의 순종은 어떤 대조를 이룹니까?
2.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오늘의 삶에서 어떤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까?
가인과 아벨
|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창세기 4:7 |
가인과 아벨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가인은 질투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동생을 죽였다. 예배와 종교적 열심도 사랑이 없으면 경쟁과 증오,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가르치셨다. 제자의 표지는 작은 질투와 보복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친절과 온유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데 있다.
라멕의 가족
라멕의 아들들은 목축과 음악, 금속 기술을 발전시키며 인간의 창조성과 문명 발전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의 표현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기술과 성공은 참된 진보가 아니다. 재능을 자기 영광과 폭력의 도구로 사용할 때 문명은 발전해도 인간성은 타락한다. 모든 은사는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일흔일곱 갑절
|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창세기 4:24 |
라멕은 작은 상처에도 과도한 보복을 자랑했고, 그의 방식은 사회를 폭력의 악순환으로 몰아갔다. 상처받은 자존심과 원한을 붙들면 개인의 분노가 공동체 전체를 파괴한다.
예수께서는 라멕의 보복 공식을 뒤집어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반복되는 용서는 폭력과 원한의 고리를 끊는 하나님 나라의 해독제이다.
사람의 마음
|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셨다.” 창세기 6:5 |
아담의 불순종에서 시작된 죄는 가인의 살인과 라멕의 보복을 거쳐 온 사회의 폭력과 탐욕으로 자라났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정직하게 진단한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 하나님은 무감각한 재판관이 아니라 피조물을 사랑하시기에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다. 홍수 심판을 결정하시면서도 하나님은 의로운 노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목적은 창조의 회복과 구원이다.
핵심 단어와 용어
| 용어 | 뜻 |
| 베레쉬트 | 태초에; 창세기의 첫 단어이며 첫 번째 파라샤의 제목 |
| 토라 | 가르침, 지시;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책 |
| 파라샤 | 정해진 주기에 따라 읽고 공부하는 토라의 한 부분 |
| 아담 | 사람; 흙을 뜻하는 ‘아다마’와 연결되는 말 |
| 네샤마 | 숨결, 생기, 영혼을 가리키는 말 |
| 샤마임 | 하늘; 보이는 하늘과 하나님의 하늘을 함께 가리킴 |
| 샤바트 | 멈추다, 쉬다; 일곱째 날 안식일 |
| 에덴 | 기쁨; 하나님과 교제하던 동산, 낙원 |
| 이쉬 / 이샤 | 남자 / 여자, 아내 |
| 사탄 | 고소자, 대적자 |
| 예슈아 | 예수 |
제1과 핵심 정리
·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영원하고 초월적이며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 인간은 흙으로 지음 받았지만 하나님의 숨결과 형상을 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할 책임이 있다.
· 자유의지는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능력이다.
·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불순종이며, 수치와 단절과 죽음과 폭력의 확산을 낳는다.
· 하나님은 숨은 인간을 찾으시고 회개와 책임 있는 응답을 요구하신다.
· 메시아 예수는 두 번째 아담으로서 순종을 통해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생명과 회복의 길을 여셨다.
·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보복 대신 용서, 경쟁 대신 사랑, 자기 영광 대신 섬김을 선택한다.
마무리 나눔
1. 이번 과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2. 내 삶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더 분명히 드러내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3. 숨거나 책임을 미루던 일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4. 이번 주에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용서를 실천할 한 가지 행동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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