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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들에겐 공통점이 또 하나 있는데, 암만 봐도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죠. 사실 거의 혐오스럽기까지 합니다. 일권은 자신의 매력을 과대평가하는 상습적인 성희롱범이고, 태영은 뒤끝이 길고 집착이 심하며, 성훈은... 다른 둘에 비하면 단점이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그냥 재미가 없습니다. 이들이 여자 하나를 두고 벌이는 짓거리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불쾌한 성격의 한국 지식인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자학 반 변명 반으로 일관하는 영화들은 한국에서 거의 장르화되어 있지요.
[그녀는 예뻤다]가 비슷한 부류의 다른 영화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건 형식입니다. 디지털로 일단 실사영화를 찍은 뒤 로토스코프를 거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지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웨이킹 라이프]와 [스캐너 다클리]를 생각해보세요. 애니메이터들 고생 많았겠습니다. 노가다가 전부인 영화예요.
그러나 링클레이터의 영화들과는 달리 [그녀는 예뻤다]는 애니메이션의 당위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끔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애니메이션 없이도 충분히 표현 가능하거든요. 나머지는 그냥 불쾌한 한국 지식인 남성들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위장한 자학극이니 애니메이션은 거의 불필요하고요. 오히려 로토스코핑한 애니메이션은 드라마를 망쳐버립니다. 흔들리는 애니메이션 화면은 집중이 어렵고 평면화된 그림은 배우들의 연기를 뭉개버리니까요. 단점은 확 눈에 들어오는데 장점은 그렇지 않습니다. 2년 동안 애니메이터들을 구박하며 고생을 시킬 거라면 이보다 더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