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서리풀사진방 원문보기 글쓴이: ys yim
일본 교토 오사카 여행-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09.12.1-12.3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열린 정지용문학 국제심포지움 참가 후 익일부터 이틀간 교토 및 오사카의 주요관광지 및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둘러봤다.
일본 도꾜, 벳부, 규슈 등은 최근에도 종종 다니는 편이지만, 교토,오사카는 30년 전인 1979년 일본에서 몇개월 연수받을 때 다녀오고 정말 오랫만이다. 그때는 필름카메라 시절이라 지금 앨범을 찾아보면 제대로 된 사진도 별로 없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기요미즈데라(淸水寺). 교토 히가시야마의 중앙에 있치해 있는 이 절은 나라 후기인 778년, 한 현인이 꿈속에서 "맑은 샘(淸泉)을 찾아가라"는 계시를 받고 오토와의 폭포 근처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수행중이던 한 선인을 만나 관세음보살의 영험함을 담은 영목(靈木)을 받았는데 이것으로 천수관세음상을 조각하여 선인의 옛 암자에 바친 것이 기원이라 한다.
'일본 속의 백제 구다라'라는 책을 쓴 홍윤기 박사(한국 외국어대 교수)에 의하면, 이절은 고대 일본 정복왕인 백제인 오진왕(應神, 4-5세기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즉, 이사찰을 창건한 사람은 백제인 가문의 무장 사카노우에노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 758-811)인데 다무라마로의 조상은 오진왕 때백제에서 건너간 백제왕족 아치노오미(阿知使主)였다고 한다.
오토와산을 배경으로 한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툇마루에서 교토의 절반을 내려다보고 있다. 특히 맑은 날에는 멀리 오사카까지 바라보이며, 넓이 약 13만평에 이르는 절터는 봄에는 사쿠라, 가을에는 단풍 등으로 사계절의 경관이 훌륭하여 관세음보타낙의 극락정토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사찰은 여러번의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633년 재건된 것이다. 국보인 본당, 중요문화재인 15개의 건물을 중심으로 웅대한 가람을 뽐내고 있다. 본존인 십일면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영험있는 관세음으로서 유명하며, 전국 관음영소 33곳중 제 16번째 예소로서 일본 전국 굴지의 명찰이다.
경내에 있는 오토와의 폭포는 수천만년 동안 오토와의 산중에서 용출하는 샘으로 금색수(金色水) 혹은 연명수(延命水)라고도 불리며, 일본 10대 명수의 필두로 손꼽힌다. 여기에서 '기요미즈데라(淸水寺)'라는 절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오토와의 폭포는 이물을 마시려는 순례객들로 늘 붐비며, 필자의 경우에도 줄을 서서 한참 기다린 후에야 겨우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기요미즈데라에 이르는 산넨자카(三年坂), 니넨자카(二年坂) 등의 길에는 전통적이고 세련된 가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곳은 교토의 풍정을 물씬 느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명소이다.
미미즈카(귀무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우리 선조들의 넋이 서린 귀무덤이다.
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 대신 조선군인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전공품은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이곳에 매장되어 공양의식이 거양되었다고 한다.
귀무덤은 사적 오도이(御土居) 토성 등과 함께 교토에 현존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련 유적 중의 하나이며, 무덤 위에 세워진 오륜석탑은 1643년에 그려진 그림지도에도 이미 그 모습이 나타나 있어 무덤이 축조된지 얼마 지나지않아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귀무덤 바로 위 삼거리에는 임진왜란의 주모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모신 도요쿠니신사(豊國神寺)가 자리하고 있어 역사의 아픔과 아이러니를 더욱 느끼게 한다.
현재의 건물은 1880년에 건축한 것이라 한다. 신사 내에 국보인 '가라몬(唐門)'이 있는데 이는 후시미성의 성문을 옮겨다 세운 것이다. 보물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계있는 유품들이 있다.
헤이안(平安)신궁
헤이안신궁은 1895년 메이지 28년에 교토가 일본의 수도로 지정된지 110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간무천황과 헤이안쿄 사후에 고메이천황을 모시는 사당으로 정문인 응천문을 지나 정면에 녹색녹색의 기와와 주황색의 기둥이 인상적이고, 가운데 넓은 공터는 문무대신이 집무를 보던 12개의 건물터를 재현한 것이다. 매년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며, 봄에는 벗꽃, 여름에는 붓꽃으로 유명하며, 1월 1일 하쓰모우데의 인파가 많이 몰린다.
홍윤기 박사는 앞에서 언급한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라는 책에서, 헤이안신궁에서 모시고 있는 '간무천황'은 지금의 아키히토 일왕의 제 50대 직계조상으로, 아키히토 일왕이 2001년 12월 23일 68번째의 생일을 맞으면서 기자회견 석상에서 "내 몸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며 일본 천황가는 백제 계열이라고 직접 밝혔듯이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화신립 황태후의 몸에서 태어난 인물이라 한다.
킨카꾸지(金閣寺)
킨카꾸지는 교토의 로쿠온지(鹿苑寺)안에 위치한 누각으로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정문을 지나 정원길을 들어서면 연못 건너로 화려한 황금빛 누각이 나타나는데 이 건물이 바로 킨카꾸지이다. 킨카꾸지는 3층 구조의 누각으로 1층은 헤이안 시대의 귀족주의 건축 양식, 2층은 무사들의 취향의 양식, 3층은 선실처럼 비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붕 위에는 중국의 전설상의 새 봉황이 빛나고 있다. 1층에는 요시미츠공의 좌상과 보관 석가여래상이, 2층에는 이와야 관음좌상과 사천왕상이, 3층에는 불사리가 각각 안치되어 있다. 절 이름인 로쿠온지보다 킨카꾸지로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통치권을 넘기고 1397년부터 10년에 걸쳐 세운 것으로 1950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였다고 한다. 1987년에 금박이 보수되어 옛날의 아름다움을 되찾았으며, 지금도 1년에 한번씩 금박을 보수하여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시마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는 이 킨카꾸지를 소재로 하여 동명의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젊은 스님이 킨카꾸지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큰 불을 지른다는 내용으로, 주인공의 이상심리와 행동을 묘사한 유명한 작품이다.
'교토와 한국 교류의 역사'라고 하는 일본어 책자(한국민단 교토부 본부 간)에 의하면, 킨카꾸지 는 원래 헤이안 시대 무렵부터 '키타야마테이(北山第)'라고 부르는 귀족의 별장이 있었는데 후에 이를 인수한 아시카가가 요시미츠 장군이 자기의 별장으로 하면서 중국이나 조선으로부터의 사신을 이곳에서 영접하였다고 한다.
킨카꾸지 주위에 조성되어 있는 멋진 일본식 정원 또한 볼거리이다. 연못주위로 조성된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킨카꾸지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 끝 언덕에는 아담한 일본 전통집이 서 있는데 이 건물은 셋카테이(夕佳亭)이라고 불리워지며, 천황 등 통치자들이 킨카꾸지를 바라보면서 쉬는 다실(茶室) 역할을 한 곳이라 한다.
셋카테이 옆에 위치한 후도도(不動堂)의 본존 이시후도묘오(石不動明王)은 고보 대사의 작품이라 전해지고 있다.
킨카꾸지에서 1킬로미터도 안되는 거리에는 백제 26대 성왕(聖王)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 히라노신사(平野神社)가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곳을 들르지못해 아쉬웠다.
'일본속의 백제' 연구전문가인 홍윤기 박사는 그의 시 '일본 교토에 가시거든'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아십니까. 일본 교토에
백제 26대 성왕(聖王) 신주(神主) 모신
사당 히라노신사(平野神社)를
일본 교토에 가시거던
금각사(金閣寺) 구경도 좋으시나
히라노신사로 참배하러 가시지요
금각사에서 1킬로미터도 안되는
도로변의 히라노황대신(平野皇大神) 터전
거룩한 우리의 성왕께서 쓸쓸하시대요
아십니까. 찾아주는 한국인들 없으니
성왕 신주 금목신(今木神) 위패 모신
히라노신사는 일본왕실의 왕립사당
아십니까. 누가 성왕사당 오늘의 교토땅 된
왕도(王都) 헤이안경(平安京)에 세웠는지
그 분은 일본 제50대 간무(桓武)왕
간무왕 생모는 백제 여성 화신립(和新笠) 황태후
간무왕 생부도 백제인의 고닝(光仁)왕이지요
아십니까. 화신립 황태후는
백제 25대 무령왕 직계 후손임을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정토신앙의 본산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건립되었다.
히가시혼산지는 교토시내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로 1602년에 건립되었으나 여러번의 화재로 소실된 후 1895년에 재건되었다. 이 절은 역대 법왕들의 은신처였던 쇼세이엔과 지천회유식 정원으로 유명하다.
기온거리
기온거리는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교토 전통거리이다.
12세기 무렵 야사카신사와 주변 사찰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찻집 거리로 출발한 것을 시초로 현재는 옛모습을 간직한 기념품점, 골동품점, 음식점 등이 즐비해 교토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기온거리 입구에는 야사카신사(八坂神寺)가 위치해 있다. 스사노오노미코토,구시이나다히메노미코토 및 야하시라노미코가미를 제신으로 하는 신사로, 일반적으로 '기온상' 또는 '야사카상'으로 친숙해져 있다. 사전에 따르면, 헤안 천도이전인 656년에 이 부근으로 스사노오노미코토를 모신 것이 이절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교토 3대 축제의 하나인 기온축제는 야사카신사의 제례이다. 12월 31일 밤부터 1월 1일에 걸쳐 약초인 '삽주'를 섞어서 불을 피우는 '삽주불'을 받거나, 신년의 무병식재를 기원하는 '삽주 참배'가 실시되어 그때는 특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또한 1월 3일에는 옛날 여관들의 정장을 입은 여성에 의한 '카루타 하지매'라는 것이 행해진다. 붉은 색 건물이 특히 신비로움과 황홀함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교토와 한국 교류의 역사' 일본어 책자에 의하면, 기온축제에서 모시는 여러 제신(祭神)은 조선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의 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저녁 때는 오사카로 내려 와 시내 번화가인 '도돈보리(道頓堀)'거리에서 '회전수시'로 저녁식사를 했다.
'류우구 테이'라고 하는 회전수시집 입구에는 '시간제한없이 남성 1,575엔, 여성 1,260엔'이라는 선전문구가 걸려 있다. 아무래도 여성이 적게 먹으니 값도 싸게 하는 모양이다. 맥주 등 음료를 마실 경우에는 별도로 내야 한다.
도돈보리는 도돈보리강을 끼고 남쪽으로 있는 지역으로 오사카의 유흥과 오락의 중심지이다. '먹거리의 천국'으로 불리울 만큼 다양한 음식들이 있다.
그런데 홍윤기박사의 책을 보면, 도돈보리라는 지명은 고대 백제 지도자중 한사람이었던 '도돈(道頓)'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즉, 일본인 사학자 무라다 다카시에 의하면, 백제왕족 사카노우에 다무라마로(758-811)의 후손 7명가(家)들 중 한 가문은 나리야스가(成安家)인데 이 가문에서 유명한 나리야스 도돈(成安道頓)이 이지역 최고행정관(원님)으로서 1615년에 도돈보리운하를 완성하였으며, 이 지역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주오구 번화가로서 규다로마치 바로 윗쪽으로 '고라이바시(高麗橋) 1-4가'가 있는데 고라이바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백제 핏줄인 '고구려 다리'라는 지명이고, 실제로 '고라이바시'라는 큰 다리도 1가에 있다. 고대에 이 지역에는 고구려에서 건너 간 주민들이 백제인들과 이웃하여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가계로 유명한 게요리전문점 '가니도라쿠' 본점도 보이고, 관광안내원이 소개하는 길가 노점의 '문어풀빵가게'도 보인다.
또한 화려한 네온싸인광고들도 번화가임을 실감나게 한다.
도돈보리의 상징이 된 식품회사 '글리코' 네온싸인은 1935년에 처음 등장하였다고 한다. 글리코의 마라토너가 오사카 돔, 가이유칸, 쓰덴카쿠, 오사카성을 돌아 마침내 도돈보리로 골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사카에서는 시갈 덴포 잔 오사카호텔에 머물렀다.
호텔 12층 침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사카만의 야경이 매우 아름답다. 서서히 동이 트면서 밝아지는 오사카만, 바다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않은 듯 잔잔하기만 하다. 붉게 익은 여명 속에 누워있는 배들의 숨소리만 들리는듯 하다.
아침식사 후 오사카 성 관광에 나섰다.
오사카성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3년의 공사를 거쳐 완성한 성으로 그 당시 그의 권력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오사카의 역사와 문화, 관광의 상징이며 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오사카성은 1931년에 재건되어 1997년 봄에 새롭게 정비되었다고 한다.
성의 정문을 들어서면 성인의 키를 헐씬 넘는 거대한 바위로 성벽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거석은 무게 130톤, 크기 60평방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오사카성의 중심인 덴슈가꾸(天壽閣)는 5층8단의 누각으로 야츠지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상을 비롯해서, 무구, 의상, 병풍 등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철근건물로 높이는 46미터이며 5단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다.
맨 최상층인 8층에올라가면 오사카공원이 한눈에 보이며, 오사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