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중주일의 마지막 주일이면서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입니다. 이제 다음 주면 전례력으로는 새해인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주간은 신앙인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한 해를 점검하게 하고 지나온 일년을 무엇을 위해 살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시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때때로 부족한 믿음으로 인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만 훌훌 털고 다시 믿음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늘 내 삶의 지향점이 되시는 분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핵심인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세상 종말에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 영광스러운 어좌에서 마치 양과 염소의 무리를 나누듯이 오른편과 왼편으로 모든 민족들을 나눌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민족들을 두 무리로 나눈 종말심판의 기준은 신앙이나 종파가 아닌 ‘자비’입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사람의 아들은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목말랐을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 자비를 베풀었다”고 말씀하시며, 하느님의 축복을 내리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왼편에 있는 악인들에게 같은 형식으로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베풀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면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저주를 내리십니다. 오늘 듣는 이 복음 말씀은 별세미사 때 주로 읽히는 복음으로 사람의 개인적인 종말인 죽음에 대해 묵상하게 하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제1독서에서 예언자는 유다인들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을 목자와 양과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길 잃고 방황하며 상처 입은 양을 지켜주십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사람의 아들(人子)’에 대해서 말할 때 두 가지 측면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는 영광중에 오실 인자의 상입니다. 이는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에서 잘 드러나고 있으며, 다니엘서도 영광중에 오실 인자(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수난 당하실 인자의 상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제자들과는 달리 인자의 수난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에게 수난 당한 인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영광중에 오실 인자를 소개하고 있지만, 영광은 십자가상의 죽음이라는 수난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삶에서 생명과 영광은 죽음과 고통을 전제로 할 때 그 가치를 더 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하고는 합니다.
전례력의 마지막 날을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지내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처음과 끝이 모두 주님께 속하여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죽음과 수난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 예수께 우리 모든 삶의 지향을 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