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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대종주
종주르포 산성고개~몰운대 33.1km
억겁의 세월 묵묵히 낙동정맥은 낙동강과 하나였다
새하얀 기암괴석을 산정에 인 상학산을 오른쪽에 두고, 금정봉을 왼쪽에 거느린 낙동정맥은 백양산을 향해 부드럽게 솟구친다. 시가지가 조성된 개금동에서 주춤한 정맥은 엄광산, 구덕산, 시약산, 봉화산, 아미산으로 솟구치고 뻗어나가 몰운대에서 낙동강과 하나되어 대장정을 마친다.
우람하게 솟은 상계봉(638.3m)에 빛이 든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들이 줄줄이 늘어서 산정을 뒤덮고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닭의 볏을 닮은 형상이든, 학의 모양새를 닮았든, 돋보기로 빛을 끌어 모으듯 햇살을 머리에 머금은 그 고고한 빛깔은산성고개에서 몰운대를 향해 정맥을 걷는 취재진의 시선을 사정없이 낚아챈다. 상계봉은 이 부근에서 제일 높이 솟아 있어 가장 먼저 밝아 온다고 한다.
금정산성은 만덕터널을 향해 계속 이어진다. 등산로는 부산시민들이 남녀노소 누구라도 즐겨 찾을 수 있도록 널찍하게 잘 닦아 놓은 시민공원이다. 등산로 곳곳에는 지루 할만하면 바위들이 펼쳐져 있고, 돌로 쌓은 성벽이 나타난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등산객들이 지나온 산들에 비해 많이 오간다. 548봉에 미처 도착하기 전 삼거리에 이정표(휴정암 0.7km, 케이블카 0.8km, 남문 0.3km, 상계봉 1.6km)가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측으로 돌아가요."
지난달에 낙동정맥 종주를 마친 류수기씨가 상세히 정맥 길을 일러준다. 이번 마지막 정맥종주에도 한결같이 손석목, 김부래, 이정아씨가 참가했고 모처럼 류수기씨도 합류했다. 또한 본사의 구경모 기자, 부산 영도 아가씨인 김영애씨가 동참했다.
유유한 낙동강 내려다보이는 금정산 시민공원
갈림길이 유난히 많은 548봉을 내려서니 어린 참나무숲에 들어선다. 곧이어 사거리(임도, 휴정암, 남문, 케이블카 갈림길)에 당도하니, 안내판에 '여기서부터는 금강공원입니다' 라고 적혀 있다. 공원답게 화장실도 갖춰져 있다. 울창한 숲이 이어지며 518봉에 당도한다.
"저기가 병풍사예요. 절을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들이 전부 부처를 닮았죠."
송영애씨가 우측 계곡 건너편 산줄기를 손짓하며 말한다. 독경 소리가 계곡을 휩쓰는 바람에 실려 전해 온다. 소나무숲에 들어서 돌탑을 지나 458봉에 올라선다.
금정봉과 백양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부산 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친숙하게 내려다보인다. 봉우리를 내려서며 샘에서 목을 축인다.
"어! 이제 오네."
"안녕하세요. 또 만났습니다."
만덕고개에서 올라오는 조인례씨를 만났다.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른다. 우측 철조망 너머로 대한예수교 장로회 부전교회 부활동산이 보인다. 만덕고개에 도착하니 산불경방기간이라 산불감시원이 길가에 진을 치고 있다. '향토순례코스'란 비석이 눈에 띈다.
안부에 올라서자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365.9봉 못미처 철탑과 돌탑, 그리고 동래구 산불감시천막, KBS중계탑을 지난다.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들어선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냐?"
김부래씨가 막걸리 파는 좌판이 나오자 금세 자리를 잡는다. 막걸리 한 병에 파전을 내어 후딱 해치우고 길을 나선다.
좌측으로 갈림길(한신아파트 650m)이 있다.
돌탑이 서있는 308봉에서 정맥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며 소로가 나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선을 피해 좌측의 우회길을 택한다.
능선을 따라가면 망향비가 있는 308봉에서 정맥은 좌측으로 90도 돌아 금정봉을 향한다. 금정봉 갈림길 안부에서 우측 아래 능선으로 접어들어 마루금을 따른다. 일명 성지곡고개라 불리는 안부에 다다르면 울창한 소나무숲이 좌측 비탈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등산로가 5~6갈래(어린이대공원 0.6km, 백양산, 만덕 0.3km, 남원 3.6km)로 어지럽게 나 있다.
284봉을 지나면 편맥나무가 사방을 뒤덮고 있는 만남의 광장이다.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쉰다.
금정산 구간은 순수한 산이라기 보다 하나의 시민공원이다. 빼곡이 밀집된 도시생활에서 주말에 한번씩 찾으면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 같다.
방화선을 따라 백양산(641.7m)을 오른다. 돌탑과 산불감시초소를 지난다. 멀리 뿌연 연무 속에 부드럽게 솟은 봉우리가 보인다. 백양산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런 봉우리 두 개를 더 넘어야만 비로소 백양산에 올라설 수 있다.
백양산을 향한 부드러운 방화선 융단길
방화선은 계속 이어졌다. 611봉에도 돌탑이 있다. 능선이 참으로 멋지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눈 한 점 구경할 수 없는 곳이지만 잔잔한 능선길 곳곳에는 억새밭이 있다. 다른 어느 지역의 산보다 울창한 숲과 하나 되기를 간절히 빈다. 저편에 흐르는 낙동강을 굽어보며 맘껏 창공의 기를 들이킨다.
611봉을 내려선 안부에 옛길이 하나 지난다. 혹시 불태령일까 추측해본다. 일행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그 재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포근한 풀밭에 둘러앉아 조인례씨가 푸짐하게 준비해온 점심으로 배를 채운다.
재를 지나서도 방화선은 내내 융단길을 형성하고 있다. 순하디 순한 길을 따라 산불조심 깃발 세 개가 펄럭이는 봉우리를 넘어간다.
백양텅\널로 내려서는 옛길을 지나니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가 노닐고 있는 백양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거대한 돌탑이 세워져 있고 감시초소가 20여m 아래 있다.
"여기서부터는 넘어가는 능선이 참 아름답죠."
백양산(642m) 아래에 사는 조인례씨가 말을 건넨다. 백양산은 동쪽 기슭에 성지곡을 끼고 있다. 그 일대는 어린이대공원으로 개발되어 있다. 남쪽 기슭 산허리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선암사가 있다.
부산은 이미 산에 접할 수 있는 한계 지점까지 시가지가 들어섰다. 산들은 최후의 방어선을 치고 있다. 종주길은 내내 깔끔한 등산로를 따라 부산 시가지와 낙동강을 좌우에 끼고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간다.
듬성듬성 소나무가 올라선 능선을 따라 안부에 내려서니 헬기장을 닦아 놓은 뒤편에 둥그런 봉우리를 만들고 그 가운데 비석을 새워 놓았다. <부산진 사랑 구민 한마음 동산>을 조성하여 '애진봉' 이라 이름 붙였다.
애진봉 우측으로 등산로를 따르며 조인례씨와 작별을 고한다. 산줄기는 하향곡선을 그으며 떨어지다 몇 개의 자그마한 봉우리를 솟구쳤다. 봉우리에는 차례로 돌탑, 철탑, 물개바위가 놓여있다. 패인 등산로와 함께 그 모든 줄기가 억새 너머로 저 멀리 내려다보인다.
두어 개의 바위가 입을 뾰족이 내민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물개바위에 당도한다. 이곳에는 사상산악회에서 세운 삼각봉(454m)이란 돌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개금고개를 향하는 내리막길은 정맥 산줄기가 길게 늘어지며 이어진다. 모양새가 삿갓처럼 생겼다 하여 일명 갓봉이라 불리는 봉우리를 지나며 정맥은 좌측으로 틀어진다.
헬기장을 넘어 철탑을 지나자 봉우리를 앞에 두고 우회로가 나 있다. 일행과 헤어져 혼자서 오른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가시덤불이 지천이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떨어지다 임도와 만난다. 일행은 아무도 없다. 정맥을 잇기 위해 우측 능선
으로 접어들었다. 예비군훈련장에서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육교를 건너고 지하도를 통해 정맥을 잇고
주택가 뒷산의 텃밭을 지나 특별고압전선로 설비시설을 우측에 두고 내려선다. 낙동정맥은 LG아파트 213동으로 이어졌지만 배추밭 사이를 지나 개화초등학교 우측으로 길을 따른다.
개금3동 동사무소와 파출소가 위치한 귀퉁이를 돌아 낙동강 하구언과 부산진구를 동서로 이어주는 고개인 동서고가도로 위를 육교로 건넌다.
개금지하철 2번 출구로 들어선 다음 3번 출구로 나오니 부산고려병원이 서 있다. 산을 향해 도로변을 따라 그대로 직진하다 백병원을 우측에 두고 올라선다. 고원아파트가 좌측에, 대동아파트가 정면에 보인다. 곧장 올라서면 어린이놀이터에 당도한다. 정맥은 이곳에서 우측에 계곡을 두고 좌측 산줄기로 이어진다.
"옛날에 개금동 개천이 복개되기 전부터 이쪽 계곡 물은 낙동강으로 흘렀어요."
산기슭에서 농사를 짓고 내려오는 원주민이 물줄기의 흐름을 짚어줬다. 오후 5시를 넘어서고 있다. 바삐 걸음을 재촉한다.
"저렇게 노을이 멋진데..."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이정아씨가 엄광산(504m) 정상에 서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산기슭을 벗어나자 5부 능선쯤에 임도가 가로지른다. 곧장 올라서 정상에 다다르자 돌탑이 정맥에서 벗어난 좌측 봉우리에 솟아 있는 것이 흐릿하게 보인다. 정상을 향해 가니 작은 돌탑을 지나 엄광산에 당도한다.
엄광산은 일제 때부터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의 고원견산으로 불렸다. 1995년에 옛 이름 찾기 운동의 일환의로 엄광산의 이름을 되찾았다. 엄광산은 주위의 다른 산보다 고도가 높다. 그런 까닭에 항구에 접한 부산시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가득 차 번뜩이는 모습이, 미 장갑차에 짓밟힌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 행렬이 부산 시가지를 뒤덮은 듯 강렬하게 자극한다. 구덕령을 향해 내려서는 가파른 경사 길은 나무토막을 써서 비탈에 계단에 만들었다. 계곡풍을 동반한 울창한 숲이 위압감으로 다가온다.
다음날인 12월 1일 일요일 새벽 구덕령에 올랐다. 선거철인 탓에 이 산곡대기 꽃마을에는 새벽부터 선거운동으로 시끌벅적하다. 이 일대는 원예수와 꽃이 재배되고 시민들의 산책로로도 많이 이용된다. 이 마을의 별미인 시락국으로 해장을 한 다음 새로 동참한 유흥률씨와 함게 구덕산으로 향한다.
구덕산의 유래는 원레 순수 우리말인 구덩이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가파른 경사와 비탈 뿐 아니아 산 아래에 움푹하게 패인 구덩이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구덕터널이 지나는 그 위의 '구덕령'을 '구덩이재'라 일컬었다고 한다.
도로를 따르다 사회복지법인 아나원 어린이집 좌측 울타리를 따라 산으로 들어선다. 정맥은 이곳에서도 제대로 이을 수 없다. 구덕산 정상에 부산 항공무선표지소가 들어선 탓이다.
산줄기를 따르다 콘크리트 축대를 오른 후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산을 완전히 돌아간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쉼터에 다다른다. 구덕산,시약산 일주등산로 안내도(구덕민속 수목원 0.04km, 시약산 정상 1.9km)가 설치돼 있다. 저만치 낙동강을 향해 비상할 듯 뻗어간 승학산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승학산에 오르면 일몰이 환상적이겠어요."
발 아래 넘실대는 남해에 옷자락 적셔
신준식 기자가 어제 엄광산에서 놓쳐버린 일몰이 못내 아쉬웠던지 승학산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고도를 높인다.
구덕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은 부산항공무선표지소란 이유로 차단되어 있다. 시약산 역시 부산기상레이더관측소가 들어차 있어 마루금을 이을 수 없다.
두 봉우리 사이로 난 도로를 내려가면 정맥에서 좌측으로 뻗어나간 줄기가 바위절벽을 이루고, 시약정이 세워져 있다. 그 뒤편으로 영도 앞 바다에 붉게 타오르는 빛이 수백 척의 어선들 위를 밝히며 황홀한 광경을 연출한다.
시약정에 올라 한참 저마다 폼을 잡고 부산 시가지와 남해를 내려다본다. 중앙부두를 비롯하여 송도 앞바다, 감천항부두, 영도 등 부산의 항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이는 모든 것을 삼키려는 듯 누구 하나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늘은 기필코 일몰 직전에 몰운대에 닿아 기념촬영을 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면 마냥 늦어졌을 것이다.
아쉽지만 자리를 박찬다.
시약산 기상관측소의 하얀 건물이 들어선 좌측의 정상 산비탈 아래로 임도가 이어진다. 여전히 망망대해, 남해가 눈에 잡힌다.
방화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돌담이 쌓인 밀성박씨 묘지가 안부에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방화선은 대티고개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길은 때때로 가파르지만 부드럽다. 군데군데 묘지가 있다.
마을 뒤편에 있는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배추밭을 가로질러 대밭 3길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온다. 왕복 2차선 도로가 난 대티고개를 횡단보로도 가로질러 동양할인마트 좌측의 대티마을 4길 골목길로 들어선다.
잠깐 사이 김부래씨와 손석목씨는 자취를 감췄다. 야산을 넘어 곧 까치고개에 다다른다. 주차장과 삼안그린빌라 사잇길로 접어드니 어느새 손석목씨가 당도해 배를 어루만지며 말을 건넨다.
"우동 먹으며 '이 물이 어데갑니까' 하고 물으니, '낙동강 가요' 하던데, 정보를 좀 수집해 왔지."
양지녘의 야트막한 능선을 탄다. 공동묘지에 봉긋봉긋 솟은 묘지들이 정겹다. 능선이 가늘어지며 듬성듬성 그 숫자가 줄어든다.
4m 정도 높이로 돌을 쌓아올린 우정탑을 좌측으로 돌아나간다. 소나무숲 지나 괴정고개로 내려서는 도중 부영벽산 106동이 눈앞에 나타난다.
괴정삼경맨션 아파트 방향으로 도로를 따르면 왕복 4차선 도로와 만난다.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 육교를 건너 골목길로 접어든 다음 두번째 골목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해동고 후문이 곧 나온다.
야산을 오른다. 예비군 교장의 '철조망 통과' 지점을 지나 '전술종합훈련장'에 당도한다. 철탑이 '지뢰지대' 나 '돌격선' 너머에 새워져 있다. 헬기장을 거쳐 정맥 위에 들어선 부대 철조망을 따라 산줄기를 비껴간다.
대동중,고교로 인해 가로막힌 정맥을 버리고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니 구평자유아파트 놀이터에 다다른다. 도로변의 거대산업 건물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SK주유소에서 좌측으로 산을 끼고 돌면 산으로 오를 수 있는 작은 소로를 만난다. 주릉에 올라서면 장림동 봉화산 동네체육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정아씨가 땅에 떨어진 훌라후프를 돌리며 날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이제 남해가 발아래 넘실거린다. 바다는 한시도 활동을 멈추는 법이 없다. 그 짙푸른 물결을 일렁이며 산소를 뿜어내는 나무들처럼 생명력을 과시한다.
부산 앞바다는 어디든지 전체가 천혜의 비경이다. 또한 곳곳에 역사의 자취가 담겨있다. 부산항의 보조항으로 이용되고 있는 감천만에 어선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다이빙이라도 할 듯 봉화산을 내려선다. 이번에는 구평농장 가구대단지가 정맥을 꿰차고 있다. 역시나 불가피하게 마루금을 정확히 따를 수 없다. 공장 건물이 빼곡이 들어찬 가구단지 골목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문구는 상호명으로 뒤범벅된다. 부산에서 외곽지역이던 이곳은 이제 부산시내 최대 규모의 가구생산, 도매단지가 자리하여 가구유통단지가 활성화되어 있다.
부평산마트가구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다 김은희 우리옷연구실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간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는 사라지고 콘크리트길을 따라 내려가면 삼환아파트 102동 옆에 난 계단을 따라 길에 내려설 수 있다. 신다대아파트 105동 앞에 놓인 횡단보도를 건너 한전 다대변전소를 향해 나아간다.
낙동정맥과 낙동강의 마지막 용틀임
'산불경방대장군'과 '여장군'이 산 들머리에 서있다. 가파르게 선 너덜지대 비탈은 오르기 쉽게 갈지자로 길이 나 있다. 주변의 나무에는 연등이 걸려있다. 태고종인 지장암 대웅전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다도해가 펼쳐진다. 좌우에 커다란 돌무더기로 쌓은 성황단 사거리 안부를 지나서 응봉봉수대에 이른다. 원형의 터에 자갈을 깐 다음 중앙에 봉화대라고 복원해 놓은 것을 보고 김부래 기자가 한 마디 한다.
"저런게 어떻게 봉수대야. 복원하려면 옛 모형을 제대로 설치해야지."
낙동정맥 종주 중에 거의 원형 그대로의 봉화대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김 기자는 응봉봉수대가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 듯하다.
외적의 침입 시에 부산 밤하늘에 봉화를 밝혀 서울로 연락을 취했을 이곳의 봉수대는 1530년(중종 25년)에 설치됐다
는 기록은 있으나 처음 사용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봉수대가 설치된 곳인 만큼, 이곳에서는 1300리를 달려 온 낙동강의 마지막으로 용틀임하는 모습 뿐만 아니라 다도해, 남해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한시름 놨다. 아직 태양은 서녘 높이 솟아 있다. 앞으로 1시간, 저 태양이 대해를 향해 곤두박질할 때쯤이면 다대포에 도착하리라. 모처럼 10여분 여유롭게 휴식을 취해본다.
좌측 도로만 포장된 홍치고개를 넘어서서 임도를 따라 봉우리 하나를 우회한다. 초입에 다다르자 철대문 앞에는 '다대동방아파트 부지 조성공사'라 쓰인 안내판이 붙어있다. 착공이 98년이고 준공예정일이 2001년 8월인데, '환경파괴'라는 직격탄을 맞아 공사가 중지된 상태다.
"어이! 강하고 바다가 키스한다."
김부래씨가 은밀한 현장을 발견한 듯 놀라며 일행을 부른다.
'낙동강하구 표지판'이 설치된 축대 위에 다다르면 낙동강의 넓은 하구 지역이 지척에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을숙도에서 멀리 가덕도로 이어지는 광활한 갯벌과 모래톱이 어우러지는 풍광을 볼 수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경상도 지방을 두루 훑으며 장장 1300리를 내달려온 낙동강은 수많은 강과 내를 합하고 어우러져 이제 이곳에 이르러 남해바다와 만나고 있다.
몰운대 아파트를 나와 500여m의 모래사장으로 된 다대포해수욕장에 당도한다. 일몰을 기다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백사장을 거닐고 있다. 남은 짬을 이용해 준비해 온 하얀 바탕에 '축 낙동정맥 대종주.낙동강 천삼백리 대탐사 완주'라 쓴 현수막을 펼쳤다.
때마침 취재진 뒤편으로 태양이 고요히 붉은 빛깔로 하늘을 적시며 떨어진다. 낙동강 하구로 번지는 황홀한 노을을 바라보며 몰운대로 향한다.
해가 졌다며 초소에서 출입을 막지만 6시까지 나올 것이라 다짐하고 서두른다. 낙동정맥 맨 끝은 군 시설로 인해 출입금지구역이다. 취재진은 몰운대 비석을 지나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바다와 맞닿은 자갈마당, 맨 끄트머리 초소 앞에 섰다.
13개월 동안 흘렸던 땀방울이 강렬한 바람과 파도 소리에 날려간다. 못내 서운함과 해방감이 교차한다.
취재진은 몰운대 산신님께 마지막 재를 올린다. 초소 앞의 묘지를 둘러싸고 제창하는 에국가가 바닷바람에 휩쓸려 점점이 흩어진다. 취재진은 어둠 속에 아득히 펼쳐지는 짙푸른 바다, 그 청정한 바다 내음 포근한 몰운대에 안긴다. <사람과산> 낙동정맥 종주는 이 대에서 막을 내린다(人山之洛東正脈縱走沒此臺).
*바로잡습니다
낙동정맥은 노상산을 거치지 않는다
지난 11월호에 소개한 지경고개~정족산 구간에서 노상산을 낙동정맥에 포함시킨 것은 잘못된 것임을 밝힙니다. 재답사 결과 통도컨트리클럽을 지나는 정맥은 지경고개에서 N14번 홀로 들어선 다음 그대로 직진하여 N14번 홀과 N16번 홀을 거쳐 컨트리클럽 진입로를 지난다.
이후 S4번, S5번, S6번, S7번 홀을 가로지르고 S14번, S13번, S12번 홀을 좌측에 끼고 돌다 S11번과 S16번 사이의 능선에서 골프장을 벗어나 342.7봉과 406.6봉 사이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11월호에 N13번 홀 위쪽 N17번 홀을 지나 노상산으로 이어진다고 소개한 능선은 답곡리 계곡에 터널을 만들고 무려 30여m나 흙을 덮어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판명됐다. 따라서 답곡리에서 흐르는 물은 N17번 홀과 N13번 홀 밑을 관통하여 조일리로 내려가 태화강으로 흘러간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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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어지러. 깨알 이야 깨알...
하나도 안뵌다.
간다는기요~~?
누군가가 간다는 것 같아서 참고하라구요. 이구간은 간다는 분이 있으면 따라 붙을 수는 있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