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창회에 참석한 게 한 4~5년은 지난 것 같다.
있는 듯 없는 듯이 꽤나 기웃거렸었는데 세월 따라 가는 것이 인연인지라 몇 년을 훌쩍
보낸 뒤에 함께한 자리라 반가움과 어색함이 공존하더라.
칠원사거리에서 홍규, 민영이와 먼저 조우하고 똥가리기사 춘식이가 끌고 온 관광버스를 타니
반가운 눈길들이 나를 반겼다.
도원이, 철규, 경운이, 선욱이, 외자, 순덕이, 현옥이 등등... ...
난생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그 순간에는 기억을 못했는데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서상점이란다. 돈담 살았다는...
눈에 뛰는 대로 인사하고 맨 뒷자리에 몸을 얹었다.
회장 조진석이 포함 29명의 동창들이 새만금을 향하여 출발한 게 9시쯤이었다.
산청휴게소에서 천수가 합류하여 30명이 되었고...
4월 15일...
이미 벚꽃 철은 지난지라 벚꽃나무에는 꽃과 잎이 반반인데 남아있는 꽃들은 작은
바람에도 힘없이 낙화되어 쏟아져 내린다. 그 곁에 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힘껏 피워 부러질 듯 가지를 늘어뜨리며
벚나무를 위로하고, 수양버들의 늘어진 가지에는 연두빛 물감이 뚝뚝 떨어져 내리니 봄의 절정이다.
좀 더 많은 봄을 눈에 담으려고 운전석 옆의 간이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로를 지나면서 보니 차안은 이미 장난이 아니었다.
선욱이가 찬조한 고급 막걸리 국순당이 날으고, 먹음직스런 수육과 생김치가 춤을 춘다.
간간이 시퍼런 소주병도 몇 개 널부러져 구르고...
이윽고 요도 짧은 천수가 차 세우라고 난리다.
막걸리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마침 졸음쉼터가 있어 차를 세우니 천수놈 얼른 내려서 고속도로변에 친절하게 지도를 그려
주는데 지도가 대한민국전도만 하다.
많이 찼던가 보다.
마이산이 보이는 휴게소에서 쉬면서 마이산을 캠코드에 담고 보너스로 순덕이랑 외자, 명옥이의 관광버스춤을 담아서
다시 군산으로 향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경운이가 운전석 옆에 나타난다.
경운:“하~ 막걸리 그거 주는 대로 받아먹은 죄 밖에 없는데 씨...”
춘식:“...”
경운:“춘식아 내 급하다”
춘식:“좀 참아라 자석아. 여기 차 세울 데 없다”
경운:“진짜 급한데...”(계속 뭐라고 떠드는데 얼굴이 똥상이다.ㅋ...)
잠시 뒤에 어쩔 수 없이 그야말로 위험한 갓길에 차를 세운다.
경운이가 얼른 내려 제법 쓸만한 꼬치를 내놓고 또 지도를 그린다.
도원이가 비틀거리며 내리더니 경운이와 같은 자세로 선다.
욜마 둘이 사촌간이라지...
꼬치가 닮았다.
드디어 새만금방조제에 도착하였다.
전장 33.9Km에 진도 10.2의 지진에도 견딘다는 똥가리 기사의 안내 맨트다.
간척이 완공되면 여의도의 140배 크기의 땅이 생긴다나 어쩐다나...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인데
여의도의 140배를 얻어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얻기 위해 파괴된 자연환경의 가치도 얼마 만큼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게 두는 것인데 사람의 욕심 때문에 찢어지고 부러진
자연환경을 두고 가슴이 쓰리다.
방조제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겸한 잠시의 휴식을 취했다.
친구들 얼굴을 하나하나 캠코드에 담고 쓰린 가슴 달래려고 소주한잔 하렸더니
소주가 없다.
차안에서 얼마나 쳐 먹었는지 빈병만 굴러다니고 먹고 버린 소주병에 모기눈물만큼 남은
소주로 혓바닥만 적시고는 새만금기념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스테인레스스틸로 만든 번쩍이는 방조제기념탑과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제법 많은 차량과 꽤나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분주하지만 내 눈길은 머물지를 못한다.
까칠한 내 눈길은 이미 채석강으로 향한다.
채석강(彩石江)...
우선 짙은 해무(海霧)가 먼저 반긴다.
꿈길 같은 백사장을 지나 바닷물에 시달리어 맨들맨들 윤이 나는 바위를 밟고 서니
수 백 만개의 장경판을 옆으로 길게 뉘어서 쌓아 놓은 것 같은 바위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변산반도에 소재한 8경 중 하나라는데 좋은 경치라기보다 차라리 신비롭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글쎄...
전북 부안에 소재한 천년고찰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에 들러 3배로 예불하고
근처에 있는 젓갈로 유명한 곰소라는 곳에서 낙지젓갈 두병을 봉지에 담았다.
주인이 서비스하는 젓갈을 안주삼아 막걸리 파티를 끝으로 동창회 여행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돌아오는 길...
관광버스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터라 대충 상상만 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명옥이, 순덕이, 현옥이에다 인학이, 인순이까지...
병열이, 수호, 도원이에다 홍규, 선욱이까지...
광란의 시간이었다.
가며오며 몇 시간을 끊임없이 흔들고 털었는데도 여전히 펄펄하게 흔든다.
나이는 오십대지만 몸은 육십대고 마음은 칠십대인 내가 보기에
나이는 오십대지만 몸은 사십대고 마음은 삼십대인 친구들이 부럽더라.
진짜로...ㅎㅎ
아침 9시에 출발해서 꼭 12시간 만에 칠원 가는 친구 몇 명을 중리에 떨어뜨려주고 버스는 떠났다.
힘들고 정신없는 여행이었지만 잔잔한 미소가 가슴을 퍼져나간다.
땡큐~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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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따르릉...
캠코드에 담았던 영상 편집하느라 끙끙거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경운이다.
뭐라고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뒤에 하는 말...
꼬치 나온 장면은 빼란다.
여자친구들이 벌떼같이 달려들까 봐서 무섭댄다.
그래서 뺐다.
아깝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