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황 속의 2월 바람은 차가웠다.
걷고 있는 사람들도 어딘지 모르게 추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점점 심각해지는 불황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기만 하는 물가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잔뜩 움츠린 자세로 갈 길을 서두르고 있던 사람들이 성당 앞에 이르자, 일제히 시선을 그곳 앞마당 쪽으로 쏟는 것이었다. 간혹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있었다.
성당 마당에는 마침 결혼식이 끝났는지 예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신랑 신부가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결혼 피로연이 열리는 곳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신부의 모습에는 추운 겨울 바람을 순간적으로 잊게 하고, 마음을 밝게 해 주는 깨끗함이 있었다.
화려한 결혼 의상으로 단장한 신부가 곁에서 시중을 들어 주고 있는 젊은 여자의 손을 가볍게 잡고 다소곳이 서 있었다. 늘씬한 몸매에 세련된 생김새였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찬 눈길은 우선 그 신부에게로 쏠렸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에는 신부에게로 시선이 모이게 마련이었다.
이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게 된 조치상 형사도 이 아름다운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여보게."
그는 낮은 목소리로 뒤따르던 젊은 형사를 돌아보았다.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건의 탐문 조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홀가분한 기분도 있었고, 그보다는 곁에 있는 김만철 형사도 이 가을에는 조치상 형사의 조카딸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봐 두게.'
하는 뜻이 가장 강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나가는 구경꾼과 마찬가지로 신부에게 눈길을 쏟았다.
신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유쾌하고 흐뭇했다. 조치상처럼 마흔 고개에 올라선 처지가 되어도, 아니 어쩌면 그 나이이기 때문에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 마음에 더욱 감미로운 소용돌이가 이는지도 몰랐다. 결혼식을 가을로 잡아 놓은 김만철에게는 더욱 자극적인 광경이겠지, 하고 조치상은 생각했다.
신부는 눈에 띄게 아름다운 용모였다. 짙은 신부 화장은 본바탕인 제 얼굴을 몰라보게 하기가 쉬운 일인데도 이 신부의 흰 살결과 큰 눈은 그 화장 위로 타고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미인을 아내로 맞는 행운아는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하고 조치상은 눈길을 신부에게서 두어 발짝 떨어져 서 있는 신랑에게로 옮겼다.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기억 속에 너무나도 또렷이 새겨져 있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바로 6개월 전 조치상이 범인을 체포하는 데 수훈을 세웠던 이 도시의 은행강도 사건 때, 맨 처음에 골탕을 먹인 바로 그 남자였다. 이름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히 권태경이라는 그 은행의 행원이었다.
'그 사람이 결혼을 하는군.'
조치상에게는 놀라움 대신 다소의 감개가 가슴 속에 있었다.
사건이 조치상의 공로로 범인을 체로하게 되어 일단락이 된 뒤에도, 조치상의 마음 속에 이 권태경이라는 은행원은 뭔가 꺼림칙한 찌꺼기 같은 것을 남기고 있었다. 그것은 다만 그가 어떤 순간 시선을 옆자리의 동료 행원에게 보냈다는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그때 곁에 섰던 김만철이
"어?"
하고 조그맣게 소리를 냈다. 조치상은 반사적으로 김만철을 보았다. 김만철의 시선은 신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김만철은 혼자 중얼거렸다.
"어디서? 언제?"
조치상이 물었을 때, 성당 앞마당에 번쩍번쩍 빛나는 까만 대형 자가용이 두 대 멎었다.
신랑, 신부, 그리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각각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는 성당의 정문을 통과해 거리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갔다.
조치상과 김만철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까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는 것은 신부 쪽인가?"
조치상이 물었다. 무언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네."
김만철은 짤막하게 대답만 했다. 아직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직무상의 일로?"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요. 신부는 짙은 화장을 하니까……. 그래도 그 큰 눈은 분명히 언젠가 본 기억이 있어요."
김만철은 개운치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조카딸의 남편감으로 특별히 골라낸 이 우수한 경찰관도 직무상의 일에는 아직도 미숙하다고 조치상은 생각했다. 형사에게는 직무상 한 번 만났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도 한 가지 중요한 능력이었다.
"아까, 그 신랑 말이야."
하고 조치상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 남자는 생각나지 않나? T 상호은행의 강도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강도가 권총을 들이대고 돈뭉치를 빼앗아 갔다고 진술했던 바로 그 사람이야."
"그래요? 큰아버지께서 수훈을 세운 그 사건 말입니까?"
김만철은 해진과의 결혼이 확정된 후로 사적인 자리에서는 조치상을 큰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사건 얘기를 듣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김만철이 조치상이 있는 수사 1과로 전속된 것은 다섯 달 전이었으므로, 이 은행 강도사건 때 그는 동부 파출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수훈이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조치상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아닙니다. 수훈감입니다."
젊은 김만철은 강조하며 말했다.
"큰아버지께서 범인을 체포했으니까 그나마 경찰의 위신이 섰잖아요."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이라 형사 냄새가 아직은 적군, 하고 조치상은 씁쓸한 웃음을 띠었다. 그러나 실제로 수훈은 수훈이었다. 그래서 본부장의 상장도 받았던 것이다.
"자네, 아까 그 신부 본 기억이 있다고 했지?"
"네."
"언제라도 생각이 나거든 잊지 말고 나에게 알려 주게나."
조치상은 언제라도가 아니라 당장 생각해 내라는 투로 말했다.
"네."
김만철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저러나…….'
조치상은 또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권태경의 그 시선에 대한 의혹이 아직 마음 속에 남아 있어 때때로 희지와 상관없이 그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의혹이라지만 권태경이 그 은행강도 사건의 범인과 관계가 있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경찰 수사의 한계를 넘은 문제였었다.
무의식적 행위로 사람이 죽었을 경우 그것은 죄가 되는가, 하는 미묘한 심리적인 문제였다. 전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었지만 결국 내던져 버렸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권태경이 신랑 차림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그 의혹이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꼈다.
2
비번날 밤이었다.
조치상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형사물을 보다가 스위치를 끄고 벌렁 누워 버렸다. 현직 경찰관에게 있어 요즈음 인기를 얻고 있는 형사물은 재미는 없지 않지만 어쩐지 속이 드러나 보였다.
아내는 시집간 큰 딸의 해산을 도우러 병원에 가 있고, 함께 사는 조카딸 해진은 김만철과 함께 음악회에 가서 혼자 집을 보는 중이었다.
약혼 중인 그들의 교제는 순조로운 것 같았다. 데이트를 하고 돌아왔을 때 해진의 표정으로 그것은 알 수 있었다.
"경찰은 싫어요."
하던 조카딸이었는데 김만철과 교제하기 시작한 뒤로 많이 달라졌다. 곁에서 보기에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이것은 조치상으로서도 기쁜 일이었다.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조치상은 김만철이 깜빡 잊고 두고 간 듯한 두 서너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시선의 업무>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이라는 표현에 끌려 조치상은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그저께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부를 본 뒤로 조치상은 <시선>에 자꾸만 마음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저명한 산업심리학자인 T 씨였다.매스컴에서 활약하고 있는 T 씨인 만큼 표현은 매우 알기 쉽게 쓰여져 있었다.
<……옛부터 속담에 '눈은 입만큼의 말을 하고, 여자는 입으로 죽이지 않고 눈으로 죽인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에게 있어 '시선'은 미묘한 것이다. 연극이나 영화에서도 '안기(眼技)'라고 말할 만큼 시선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근대적인 직업에 있어서도 다만 보는 것만이 일이라는 분야도 많아지고 있다.
경찰관의 순찰도 이와 같은 종류라 하겠다. 눈을 활동케 하여 거동이 수상한 사람은 없는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은 없는가, 아무 데에서나 소변을 보는 자는 없는가 하는 것까지 주의력을 활동케 해야만 한다. '시선의 업무'와 관계가 있다.
특히 문화 관계의 일은 그러하다. 신문, 텔레비전, 영화 등, 모두 '시선' 없이는 되지 않는다.
비근한 이야기지만 여관이나 러브호텔(*^^*)의 안내인은 척 보기만 해도 손님의 주머니 사정을 알아낸다고 한다. 이것도 '시선의 업무'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내용이었다.
'딴은' 이렇게 생각하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조치상은 감탄했다. 그런데 이 에세이 가운데<입으로 죽이지 않고 눈으로 죽인다>고 하는 말을 되씹어 생각했을 때 또다시 그 의혹이 되살아 났다.
'당시 권태경의 시선에 다른 뜻은 없었을까?'
하는 의혹이었고, 그것은 다시
'권태경의 시선에 살의는 없었을까?'
로 깊어지는 의혹이었다.
조치상의 기억은 은행강도 사건으로 급속도로 거슬러 올라갔다.
3
사건은 9월 3일 오후 4시 45분이 조금 지났을 때 일어났다.
T 상호은행 N 지점에서는 오후 4시 30분에 정문의 셔터가 내려졌다.
그러나 음행 안에는 아직도 손님이 서너 명 있었고, 4시 30분 이후에도 들어오는 손님이 있었다.
마감시간이 임박한 예금 손님을 위해, 뒷문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편의를 보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은행에서도 취하고 있는 상업 정책이며 편법이었다.
4시 45분----.
범인은 손님인 체 가장하고 뒷문으로 침입했다. 단독범으로 행내에 들어오자 곧 험상궂은 가면을 쓴 모양이었다.
경비원이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범인은 카운터 앞에 우뚝 서서 눈으로 행원들을 쏘아보면서 권총을 들이대고 있었다. 행원들은 코가 주먹만한 괴물 가면 속에서 번들거리는 범인의 살기 띤 눈에 위축되어 버렸다.
"손 들어!"
범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행원들은 겁먹은 태도로 두 손을 들었다.
"꼼짝 마!"
범인은 또 외쳤다.
카운터 옆에 있던 경비원도 범인이 손에 든 권총의 사정거리 안에 있었다. 범인은 재빨리 카운터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돈뭉치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가는 살피는 눈초리였다.
불행하게도 거기에서 골라잡은 사람이 보통예금을 취급하고 있는 권태경 행원이었다. 4시 30분 바로 전에 타 은행에서 예치한 약 2억 원의 현금뭉치가 권태경의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 있었던 것이다.
범인은 그가 앉아 있는 카운터로 성큼 다가서더니 주머니를 휙 던졌다. 그것은 천으로 만든 쇼핑 가방이었다.
"주머니에 돈 넣어!"
범인은 권태경에게 명령했다.
"빨리 해!"
그리고는 권태경의 얼굴에서 30센티밖에 떨어지지 않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권총을 바싹 들이댔다.
참사는 그 순간 일어났다.
갑자기 범인이 날쌔게 옆으로 훌쩍 2미터쯤 뛰었다.
타앙! 하는 소리가 은행 안을 뒤흔들고, 오른손을 뻗친 자세로 한 행원이 쓰러졌다. 권태경의 옆자리에 있던 이기호였다. 쓰러진 자세로 미루어, 그는 책상 밑에 설치된 비상벨을 누르려고 손을 내밀다가 맞은 것 같았다.
범인은 위협하려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을 끼얹은 듯 피비린내나는 고요가 은행을 덮쳤다.
"빨리!"
범인은 또다시 권태경 앞으로 돌아와 날카롭게 재촉했다.
권태경이 떨리는 손으로 주섬주섬 주머니에 담은 돈뭉치를 나꿔채어 범인은 나는 듯이 뒷문으로 달아나 버렸다. 침입하여 달아나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 다음 때늦은 비상벨이 은행 안에 울려퍼졌다.
물론 가장 가까운 파출소와 경찰서에 직통되어 있는 연락벨로 울렸다.
이상이 지점장 이하 13명의 행원, 손님 3명의 증언에 의해 강도침입 상황을 재현한 것이었다.
사정거리에서 이마를 맞은 이기호 행원은 병원에 옮겨진 직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인구가 겨우 1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이 지방 도시에서는 크나큰 사건이었다.
경찰당국이 활기를 띠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더욱이 피해 금액이 무려 3억 원으로 경찰의 권위를 의심받게 하는 큰 사건이었다.
비상경계망이 쳐지고 수사방침도 재빨리 세워졌다. 맨 처음에 움직인 수사의 큰 초점은
1. 폭력단 관계의 소행.
2.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생각해 낸 범행.
이 두 가지였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1. 권총에 의한 범행은 폭력단 조직원의 소행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더욱이 탄환으로 보아 상당히 정교한 모델을 개조한 권총으로 추측된다.
2. 범인은 은행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의 완구점에서 범행 30분 전에 코가 큰 괴물 가면을 사들였다. 이것은 비계획성이 엿보이는 범행이다.
이 작고 평화로운 도시에도 대개의 경우와 다름없이 폭력단은 있었다. 인해전술로 폭력단 관계에 대한 침투수사가 진행된 것도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 다른 도시에서 들어온 폭력단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범인은 자동차로 도주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려운 사건이 될 것이다. 긴장 속에 한 줄기 불안감을 가지면서 수사진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빠르게 해결되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베테랑인 조치상 형사의 수훈이었다. 그리고 운도 좋았다고 하겠다.
이런 사건에서는 의의로 목격자의 증언이 엉터리인 경우가 많다. 갑작스러운 공포로 당사자는 범인의 인상착의, 행동 따위를 분명하게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 때 비교적 냉정하게 관찰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은행원이 아니라, 그 날 예금하러 왔던 임준기라는 야채가게 주인이었다. 그는 범인의 뒤에 비스듬히 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권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은행원들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범인의 옷차림은 검은 가죽 잠바에 작업복 바지였습니다."
하고 임준기는 증언했다. 그리고 다음의 한 마디가 범인을 색출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게다가 범인의 오른쪽 귀 뒤에 백 원짜리 동전만한 점이 있었습니다."
4
"대강 짐작이 갑니다. 강남수입니다."
수사본부 석상에서 조치상 형사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폭력단인 소장파에서 쫓겨난 스무 살 난 똘마니입니다. 최근에는 돈이 궁했을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고 눈독을 들이던 참이었습니다……."
본부의 전원이 조치상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녀석의 오른쪽 귀 밑에는 백 원짜리 동전만한 점이 있습니다."
이 조치상의 말이 지명수배를 결행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강남수가 평소에 잘 가는 K 시에 있는 내연의 처의 집에서 잠복했던 조치상 형사에게 붙잡힌 것은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암흑가에서 일어나는 일에 환히 통해 있던 조치상 형사의 완전무결한 개가였다.
해결하고 보니 단순한 사건이었다.
강남수는 중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술장사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나쁜 길로 빠져서 열다섯 살 때부터 폭력단 소장파에서 심부름을 해 왔다.
몸집만 클 뿐이지 머리가 좋지 않아 범행에 있어서는 계획성 없는 엉성한 방법이 결정적으로 그를 옭아 넣게 한 것이다.
폭력단 우두머리의 첩이라던가 하는 여자에게 손을 댔다가 쫓겨나서 생계가 궁해지자, 가지고 있언 모형총을 권총으로 개조할 것을 생각해 내고 에라 이것으로 은행강도라도, 하고 생각했다니 허술하기 짝이 없는 범행이었다.
체포한 뒤의 취조는 조치상이 맡았다. 이상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강남수는 너무나도 정직했다.
마구 날뛰고 고함치고 떠들어대기는 했지만 범행은 술술 거침없이 자백했다. 앞뒤가 모순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한 가지가 조치상의 마음에 꺼림칙하게 걸려 있게 된 것이다.
범인의 자백서는 조치상이 직접 받았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시점에서는 범인이 아니라 피의자이다. 범인이라는 이름은 형이 확정된 뒤에 부르는 이름이다.
조서를 누가 작성하는가 하는 것은 각 시나, 도, 군의 경찰서에 따라 각각 다르다. 취조부장이라는 전문적인 담당원을 두고 있는 지방도 있다. 이 사건의 경우 경위를 상세히 알고 있는 조치상 형사에게 맡기라는 명령이 있었다. 마땅한 인선이었다.
강남수는 조치상 형사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에 그는 올바른 사람이 되겠다고 하며 조치상 형사에게 울며 매달렸다. 그때 정말 어버이처럼 친형제처럼 그가 갱생하도록 여러모로 도와 주었으나 역시 범죄에서 손을 끊지 못했다. 그리하여 강남수는 그때의 일을 은혜로 생각했었던지 조치상이 묻는 대로 막히지 않고 대답했다.
대체로 지금의 소송법에서는 경찰관이 작성한 서류는 이른바 3호 서류여서 증거 서류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물적 증거이다. 강남수 사건의 경우에도 권총, 구입한 쇼핑 가방, 코가 큰 괴물 가면 등이 오히려 증거로서의 효력은 더 크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것이기에 조치상은 서류를 신중하고도 정확하게 작성했다.
말한 그대로를 기록했다. 강남수가 '훔쳤다'고 했을 때 '절취했다'고는 쓰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중에 수사본부의 형사부장으로부터 '실감 있게 되었다', '조서의 모범'이라는 칭찬까지 들었다.
그러나 조치상이 나중까지도 오래오래 마음에 걸렸던 것은 다음 대목이었다.
<문> 어째서 쏘았지?
<답> 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 은행원이 책상 밑에 손을 넣어 비상벨을 누르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문> 어떻게 벨을 누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어?
<답> 내 앞에 서 있던 은행원, 그 왜 있잖아요? 주머니에 돈뭉치를 넣게 했던 그 호리호리하게 키가 큰 남자요, 그 은행원이 깜짝 놀란 것처럼 벨을 누르려는 남자의 손을 보았기 때문에 저도 덩달아 보았어요.
<문> 그럼 그때 그 은행원이 비상벨을 누르려고 했단 말이지?
<답> 그렇습니다. 그것을 누르는 날에는 전 꼼짝못하고 죽어요. 나는 정신없이 카운터로 뛰었어요. 하기야 뭐 바로 옆자리였지만요……. 그래도 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정신을 퍼뜩 차렸을 때는 이미 방아쇠를 당긴 뒤였어요.
<문> 정말로 돈뭉치를 넣던 남자가 시선을 옆자리 동료에게로 돌렸단 말인가?
<답> 그렇대두요. 그런 게 뭐라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 대목을 처음 기록했을 때 조치상은 그다지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고, 또 깨끗이 정서하거나 하는 동안에, 이 점이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그 순간 권태경이 이기호의 손에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면 당연히 이기호는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권태경이 고의적으로 이기호의 손을 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의식이었다손 치더라도…….'
하는 마음이 조치상에게는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범인은 권총을 빼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위협은 무엇보다도 비상벨 연락이 두려워서 취한 행동이 아니겠는가. 설사 옆자리의 동료가 비상벨을 누르려고 하는 것을 낌새로 알 수 있었다 할지라도, 모른체하는 것이 상식이 아니겠는가?
'비록 무의식이었다도…….'
하고, 조치상은 생각했다. 이 시선이 이기호를 죽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의식의 살인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렇지 않아.'
조치상 속의 또 하나의 목소리가 말했다.
범인은 물론 총을 쏜 강남수이다. 이기호가 총을 맞고 죽은 원인은 비상벨에 손을 뻗친 행위에 있다.
더욱이 그것은 용감하고 훌륭한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에서는 이기호의 행위에 은행장으로 보답을 했고, 내규에 정해져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금액의 조의금을 지급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하고 조치상은 또 생각한다.
'만약 고의였다면?'
어떤 일로 권태경이 이기호를 원망했다고 치자. 이기호에게 시선을 보내는 일이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권태경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나…….'
여기까지 생각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조치상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조치상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만약 권태경이 이기호의 손에 시선을 보내지 않고 모른 체했을 경우 이기호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니 비상벨이 울려퍼지는 것을 듣고 강남수는 달아났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조치상은 혼자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 이튿날 완성된 진술 조사서를 상사인 수사과장에게 제출했을 때, 조치상은 넌지시 과장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여기 이 대목 말인데요, 강남수의 진술로는 권태경이 시선을 그리로 보냈기 때문에 이기호의 행위를 알아차렸다는 겁니다. 과장님 이 점에 대해 권태경으로부터 참고인 조서를 받을 필요는 없을까요?
"어디, 어느 대목 말인가?"
과장은 조서를 차근차근 읽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이마에 주름을 잔뜩 모으고 있었다.
과장 또한 자기와 똑같은 사고 경로를 더듬고 있다는 것을 조치상은 느꼈다. 명문대학 출신인 두뇌가 명석한 과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정말로 오랜 시간이었다. 15분쯤 지났을까? 겨우 과장이 입을 열었다.
"필요 없겠어. 굳이 권태경으로부터 이 점에 대한 사정을 청취할 필요는 없어."
상당히 단정적인 어조였다.
"강남수의 범행은 확정적이야. 경찰로서는 그 사실을 입증하는 데 본무가 있어. 그 이외의 방증적인 사실에까지 범위를 확대할 필요는 없는 것이야."
권태경이 시선을 보냈다는 것은 과연(*^^*) 방증적일까. 그 때문에 사람이 하나 죽지 않았는가.
과장은 조치상의 얼굴을 보고 또 입을 열었다. 아마도 조치상의 표정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는 것을 알아 본 모양이었다.
"여보게, 그렇다면 말야. 권태경이 만일 이렇게 말한다면 자네는 어찌할 텐가? '이기호 씨가 비상벨에 손을 뻗친 낌새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도가 이미 이기호 씨를 보고 있더군요'라고 말야. 어떤가? 이렇게 되면 범인인 강남수의 말이 옳은가, 권태경의 말이 옳은가, 둘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네. 그리고 이런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선의 문제를 깊
이 파고 들어 생각하는 것은 경찰 업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야. 알겠나? 어떤가? 그리고 또 하나."
하고 과장은 말했다.
"만약 권태경에게 '당신은 시선을 이기호에게로 보내지 않았는가'하고 묻는다는 것은 '당신은 이기호를 간접적으로 죽인 것이 아니겠는가'와 동의어일세. 그런 사실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것은 별도로 치고, 그런 잔혹한 질문을 권태경에게 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평생을 두고 권태경은 그 일로 괴로워할 걸세. 의심을 받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괴로워할 걸세.
여보게 이것은 인도적인 문제야. 그리고 시선은 증거로서 남지 않는 현상이야 알겠나?"
하고 과장은 다짐을 두었다.
"네."
조치상은 대답했다. 과장의 설득은 지당하고 일리도 있었다.
"알았으면 됐네. 그리고 누누이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그 문제를 깊이 파고든다는 것은 경찰 업무 외의 일일세."
과장은 강하게 말했다. 조치상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다. 이것으로 문제는 결말이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더욱더 이 시선에 대한 근원적인 의혹이 조치상을 끈질기게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5
조카딸 해진과 후배 김만철이 음악회에서 돌아왔다.
"아주 즐거웠어요."
해진은 무척 좋아했다. 음악회가 즐거웠다는 말인지 김만철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는 말인지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밝은 목소리였다.
"저어, 만철 씨, 밤참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드릴게요. 잡수시고 가세요."
그녀는 요리 학원에 1년 동안 다니고 있다. 요리 솜씨도 제법 늘어 곧잘 칭찬을 듣고 있었다. 김만철의 하숙집이 여기서 백 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거리여서 돌아가는 시간이 늦는다 해도 곤란할 것은 없었다.
"좋지요.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픈데요. 해진 씨 요리 솜씨는 또 기가 막히지요. 하하하."
"어머, 그런 말씀하신다고 제가 우쭐할 것 같아요? …… 큰아버지도 드실 거죠?"
"20분도 걸리지 않아요. 기다리세요."
그녀는 부엌으로 쪼르르 나갔다.
"저어, 그 여자가 생각났습니다."
"그 여자라니?"
조치상은 무심하게 물었다.
"그 왜, 엊그저께 결혼식에서 본 신부 말입니다."
"그래?"
조치상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위로 내밀었다.
"그게 말입니다. 오늘 음악회가 공원 안에 있는 노천극장에서 있었는데 제가 그 여자를 만났던 것도 바로 그 공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났습니다."
노천극장은 넓은 공원 안에 지어져 있었다.
"이제 모두 생각이 났습니다. 정확한 날짜까지요. 그렇게 예쁜 여자를 금방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은 우스운 일이었지만, 엊그저께는 화려한 드레스에다 화장까지 진하게 한 모습이었고, 그리고 제가 만났던 것은 조촐한 스웨터 차림인데다가 매우 서글픈 분위기였거든요. 그래서 좀처럼 생각을 못 해낸 거에요.
작년 여름, 그 공원에 악질적인 치한이 설치고 다녀서, 동부 경찰서에서 총동원해서 사흘밤 계속 검문 작전을 폈습니다. 7월 15일부터였어요."
조치상에게도 기억이 있었다. 원래 그 공원은 아베크족이 많아 경찰로서는 풍기문란으로 주의를 요하는 지대였다. 그것만이라면 또 좋겠지만 돈을 강요하기도 하고, 남자를 위협하여 먼저 돌려보내고 여자에게 폭행하는 등, 악질적인 치한에 의한 피해가 7월 이후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저도 파출소에서 동원되어 나갔었습니다. 아직 독신인 데다가 이런 검문에는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혼났지요. 다른 동료와 함께 간 것도 아니고 혼자 행동하게 되었지요. 남자들이 둘씩 짝은 지어 다니면 치한이 경계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혼자 간 것입니다. 참 난처하더군요. 오히려 제가 치한으로 잘못 보일 것 같아서요……. 얼마 안 가 한 커플을 발견했습니다. 그 호리병 모
양의 연못 옆의 등나무 밑에서 말입니다 ……."
그때 해진이 맥주를 가져왔기 때문에 김만철은 이야기를 중단했다.
"해진이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그녀가 문을 닫고 부엌으로 나갔을 때 조치상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치한 사냥인 걸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퍽 자상하게 약혼자를 생각하는구나 하고 조치상은 생각했다. 그러한 마음은 대화의 화제도 여러 모로 고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김만철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는 등나무 밑 가까이까지 발소리를 죽여 다가갔습니다. 수상한 녀석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때까지 은밀한 행동을 취하라는 명령이었으니까요.
어두워서 밤눈으로는 똑똑히 알 수 없었지만, 희미한 모습과 목소리로 서른 살쯤 된 남자와 스물두서너 살 가량의 여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위가 조용하니까 주고받는 대화도 잘 들리더군요."
김만철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는 잠시 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망설이지 말고 용기를 내 주었으면 좋겠어."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서로 이렇게 사랑하잖아. 뭘 망설일 일이 있어? 나는 정식으로 청혼하고 싶어. 지금이라도 가서 부모님을 직접 만나겠어."
"글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
가련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 그리고 약혼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파혼할 수도 있는 거라구. 지금 녀석과는 단지 약혼 중이라는 이유밖에는 없잖아? 그보다도 나와 그 녀석을 지금도 저울질하는 건가?"
"어머, 무슨 그런 심한 말씀을 ……. 전 당신을 사랑해요."
"그렇다면 장애물은 없는 것 아니겠어?"
"하지만 말이에요. 아버지나 어머니는 지금의 약혼은 아주 잘된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면 깜짝 놀랄 거에요."
"몇 번이나 말해도 못 알아듣는군. 그러니까 조리 있게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다시 정식으로 청혼하겠다고 하는 것 아니겠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 제가 아버지와 어머니께 잘 말씀드려서 그이와의 약혼을 취소해 달라고 할 테니까요 ……."
"정말이지?"
"네."
"언제?"
"결심했어요. 일 주일 이내에 ……."
"이런 대화였습니다. 이들이 성실한 남녀라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입니다, 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그들 앞에 나갔습니다.
선량한 시민, 그것도 고민하고 있는 연인끼리인데 폭력적인 치한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큰 일이니까요.
두 사람은 놀란 것 같았지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이 부근은 요즈음 소란스럽습니다'하는 제 설득을 알아듣고 돌아갔습니다. 그 때의 여자가 바로 그 신부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얼굴을 용케 보았군."
"아닙니다. 회중전 등을 비쳤었으니까요 ……. 무섭고 겁에 질려 큰 눈을 휘둥그렇게 뜬 여자 얼굴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그 남자가 엊그저께의 그 신랑이었나?"
"아닙니다. 신랑은 다르더군요. 결국 그 두 사람의 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인생이란 잘 모르는 거니까, 어느 쪽이 행복인지는 알 수 없지요. 그리고 엊그저께 그 신랑이 약혼을 취소했던 그 상대인지 어쩐지도 모르겠습니다 ……."
"한마디 묻겠는데 …… 그 남자 얼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
"그럼요. 드라마 같은 연인들의 이야기였으니까, 남자 얼굴도 지금까지도 아주 선명합니다."
"그럼 말야. 이를테면 사진을 내보이면 알 것 같은가?"
"네? 어떻게요?"
"내가."
"원 농담하지 마십시오. 어쩌다가 한 번 만났던 남자의 사진을 큰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설마하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조치상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밤 등나무 밑의 그 남자가 은행강도 사건으로 권태경의 시선 때문에 살해된 남자,
이기호인지 아닌지를-----.
이튿날, 서에서 조치상은 이기호의 사진을 김만철에게 보여 주었다. 물론 살해된 현장의 사진이 아니라 말쑥하게 신사복을 입은 깔끔해 보이는 이기호의 사진을 ……. 신문에 실렸던 사진과는 달리 똑똑하게 찍혀 있었다.
"틀림없습니다. 이 남자예요."
김만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이 사진을 …… 그리고 이 사람을 어떻게 아십니까?"
6
조치상은 궁금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조치상 형사가 T 상호은행 N 지점의 경비원인 박필광을 근무가 끝난 다음 찻집으로 불러낸 것은 그 이튿날이었다. 박 경비원은 강도 사건으로 조치상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이 사건이 해결을 보지 못했다면 경비원인 박필광에게도 책임이 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관으로서가 아니라, 극히 사적인 입장에서 묻고 싶은데 ……."
"네. 뭐든지 물으십시오 ……. 제가 아는 일이라면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은 그 권태경 씨 말인데, 이번에 결혼했지요?"
"네."
"약혼 기간이 길었던 게 아닌가?"
"네, 상대는 상무님 따님이고 ……, 그러니까 적어도 계장이 될 때까지는, 하는 상대편의 주문도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한 2년 가량의 약혼 기간이 있었지요. 그 사이에 1년쯤 그 아가씨도 이 지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으음. 좀 이상한 것을 묻는 것 같은데, 도중에 약혼을 파혼한다던가 그런 일은 없었나요?"
"잠깐 귀에 들어온 일은 있습니다. 작년 8월이었던가요?"
"강도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이었네요?"
"그렇지만 하찮은 소문이었습니다."
"어째서?"
"왜냐하면 그로부터 6개월 뒤에 아주 경사롭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니까요. 상무님의 따님과의 결혼이라니까, 공연히 곁에서 질투하는 사람들이 꾸며낸 헛소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그런 소문이 났었지요?"
"네."
"그 아가씨의 이름은 뭐였나요?"
"장민지였습니다."
"또 한 번 우스운 것을 묻겠는데, 그 장민지 씨와 죽은 이기호 씨와의 소문은?"
"아아, 그러고 보면 …… 네. 하지만 장민지 씨나 …… 이기호 씨나 모든 동료들 평판이 아주 좋아서 무슨 일이고 소문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의심하면 할수록 그 권태경의 시선에 고의성의 혐의는 짙어졌다.
권태경은 그 강도사건이 있기 한 달쯤 전에 여자의 집안으로부터 약혼 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 사정은 권태경으로선 직감적으로 곧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권태경은 이기호에게 증오의 감정을 품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때 돌발적으로 그 사건이 일어났다. 마음대로 상상한다면 이기호는 용감한 사나이였다.
강도가 총을 겨누고 있는 앞에서 비상벨에 손을 내밀려고 한 행동으로도 알 수 있고 장민지에게 권태경과의 약혼을 취소하라고 한 언동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권태경은 이기호의 용감한 행동을 낌새로 알았다. 시선을 그리로 보내면 강도는 틀림없이 이기호를 덮칠 것이다. 그것은 순간적으로도 머리에 떠오를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권태경은 이기호에게 시선을 보냈다.
요란한 총소리 한 발----. 이기호는 죽었다.
…….
조치상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추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
또 조치상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
"마음에 걸리는데요. 큰아버지."
김만철이 말했다.
"그 사건에 대한 진상은 대체 어떤 것입니까?"
"아무것도 아니었어."
조치상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경관직을 진심으로 믿고 오로지 이 길로 나가려고 하는 김만철에게, 경찰관으로서도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일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약혼녀인 조카딸 해진을 굳게 믿고 있는 김만철에게 여자의 마음이 어이없이 가볍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구태여 알릴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기호가 죽은 지 6개월 만에 다시 전의 약혼자에게로 돌아간 장민지의 변절을 나무라거나 책망할 생각도 조치상에게는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의도, 즉 형태로 나타난 경우의 '시선'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 두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고 조치상은 생각했다.
선의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
"그런 것은 어찌 되었거나 여름에 있을 시험은 어떤가? 자신이 있겠지?"
하고 조치상은 김만철에게 물었다.
"자신 있습니다. 염려 없어요."
김만철은 뜨거운 시선을 해진에게 쏟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