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이자 동료 배우로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영화배우 이문식의 부인 최혜원씨. -변영욱기자 영화 ‘황산벌’ ‘달마야 놀자’ ‘오! 브라더스’ 등에서 ‘주역보다 잘나가는’ 조역이었던 배우 이문식(38)과 부인 최혜원씨(34). 이들 부부와 갓 100일을 넘긴 아들 재경군을 보자 ‘황산벌’의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작품의 엔딩에서 ‘거시기’(이문식)는 ‘엄니’를 외치며 고향에 있는 어머니를 만난다. 만약 영화의 후일담이 있었다면 모자 상봉 뒤 ‘거시기’는 이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리지 않았을까.
“결혼 전 TV 출연 문제로 크게 다툰 일이 있었어요. 내가 출연을 반대했더니 ‘형’이 어느 날 술에 취해 홀어머니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효도 한번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슴이 찡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러섰죠.”
최씨가 TV 출연을 반대한 것은 두 사람이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후배로 연기자의 꿈을 키우면서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정말 배우가 되자”고 다짐했기 때문. 그러나 전북 전주시에 사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배우가 됐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TV에 출연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문식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MBC 드라마 ‘죽도록 사랑해’에 출연했다.
두 사람은 1992년 학교에서 처음 만나 가까운 선후배로 지내다 2000년 연극 ‘라이어’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이문식은 주인공 스미스의 친구로, 최씨는 스미스의 부인 바버라로 출연했다. 연극만 끝나면 최씨에게 ‘연극 속의 남편’은 뒷전이었다.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던지 매일 얘기로 밤을 새웠죠. 데이트 하면 연상되는 로맨틱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어요. 연극 얘기와 술 먹은 기억밖에 없어요.”
연극판 분위기도 있었지만 그들의 주머니 사정으로 다른 연인들처럼 데이트 코스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은 남편이 조역으로 억대 개런티를 받지만 당시 1년 수입은 고작 300만원. 연극이 시작되면 무대가 있고 돈 주지 밥 주지 재워 주지,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늦춰 지난해 3월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하고 난 뒤에도 연기를 계속하려면 아이를 낳지 말자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절박한 약속이었다.
“‘형’이 작품을 선택하면 둘이서 작품과 연기를 분석하는 게 오랜 습관입니다. ‘베갯머리 연기 공부’인 셈이죠.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무대를 떠나서 그런지 내 작품처럼 더 꼼꼼하고 치열하게 분석하게 됩니다. 아내이자 ‘거시기’형의 비공식 매니저인 셈이죠(웃음). 언젠가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요.”
● 이문식이 말하는 ‘나의 아내’
“연기 전공자답게 프로의 눈으로 쓴소리”
“제가 연극한다고 하지만 혜원이 아니면 어떻게 결혼이란 걸 했겠습니까. 11대 종손에 연봉 300만원, 키 작고, 인물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이문식의 첫 마디였다.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을 안고 있는 그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다. ‘달마야 놀자’의 속편격인 ‘달마야 서울 가자’를 찍느라 부산에 자주 내려가는데 현재 살고 있는 경기 과천시와 부산이 이렇게 멀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문식은 부인을 자신이 고른 최고의 ‘인생 매니저’라고 자랑했다.
“연기를 공부한 아내의 눈은 다릅니다. 애정이 있지만 프로의 눈으로 작품의 캐릭터를 분석하거든요.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나비’ 때는 작품 분위기에 맞춰 6kg쯤 체중을 줄였는데 ‘형은 살 안 빼는 게 좋겠다. 말라 보이는 게 아니라 늙어 보인다’고 하는 겁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