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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개요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고 해서 <남이섬> 이라 이름지어진 남이섬. <사나이 스무살에 천하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부끄럽다>는 유명한 시를 남긴 호연지기의 무인도인 남이섬은 70∼80년대에는 대학생들의 엠티 명소 및 강변가요제의 개최지로 알려져 왔습니다.
북한강의 수중섬인 남이섬은 면적 약 14만평, 둘레 약 6km로 1965년부터 수재 민병도 선생이 모래와 땅콩 밭에 불과하던 황무지에 처음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오늘의 자연림과 잔디밭이 가꾸어졌습니다.
청평댐이 생기기전 평상시에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빙하리 육지로 연결되다가 홍수가 나면 섬이 되곤 했지요. 1966년부터 경춘관광개발(주)가 유원지로 관리해 왔으나 2000년부터는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상호를 변경, 유원지에서 관광지로, 소음을 리듬으로, 경치를 운치로 라는 모토 하에 자연생태문화관광복합컨텐츠의 자연섬으로 되돌리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 12월 윤석호 감독이 제작한 <겨울연가>가 성공하면서 아시아의 주요 테마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남이섬은 오늘의 자연을 후손들에게 보다 가치 있는 자원으로 물려주기 위해 오늘도 자연환경 제 모습으로 다듬기와 인간과 동물 그리고 초목이 하나로써 평화를 이어가는 휴양낙원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자료 : 남이섬 홈페이지)
남이섬 가는 길
서울에서 춘천으로 이어지는 46번 국도를 타고 청평을 지나 가평에 이르면 오른 쪽으로 "남이섬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데 이를 따라 조금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 겸 선착장이 관광객을 맞이합니다.
남이섬 나들이
가을 체육의 날 행사를 맞이하여 여행 목적지로 정한 곳이 남이섬입니다. 남이섬이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매우 친근한 곳일 것입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한번 쯤은 들렀을 지도 모릅니다. 금요일 오전 11시경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두가지 점에서 놀랐습니다. 첫번째는 큰 주차장에 수많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만원이라는 점과 두 번째는 배를 타려고 가다리는 매우 긴 줄의 행열이었습니다.
북한강 저편에는 맑은 가을 하늘아래 이름모를 산하가 다소곳이 솟아 있습니다.
배를 기다리는 입구에는 남이나라 공화국(Naminara Repulic) 입국을 위해 입국심사(Immigration)를 받는 문이 세워져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이탈리아안에 위치한 산마리노 공화국을 연상케합니다. 그러나 산마리노 공화국은 독립국가이지만 남이나라공화국은 단지 애교로 붙인 이름일 따름입니다.
선착장에서 먼저 떠나는 배를 부러운 듯 바라봅니다.
배를 오른 지 약 5분도 채 안되어 남이섬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물결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남이섬의 관광안내도입니다.
강원춘천 남이도(江原春川南怡島)라는 현판을 지납니다.
잣나무 숲을 따라 안으로 들어갑니다.
섬향기라는 음식점에 들러 먼저 닭갈비구이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음식점 화단에는 풍접초 처럼 보이는 꽃이 피어 있습니다.
얼른 식사를 마치고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고성 주변에 여러 시설물이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나무로 조각한 큰 물고기도 있습니다.
또 다른 두 마리의 물고기도 보입니다.
식사를 마친 일행과 함께 길을 나서니 장승군락이 반겨줍니다.
고목의 등걸도 좋은 볼거리입니다.
가지런한 은행나무길에는 샛노란 은행나무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습니다.
한켠에는 남이섬을 가꾼 민병도옹의 동상이 보입니다.
오랫만에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단풍을 만났습니다.
은행나무 밑에는 고운 명찰을 가슴에 단 어린이들이 사진을 찍어주려는 선생님 앞에서 까르르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워낙 장난을 치며 움직이고 있어 스냅사진 찍기가 쉽지 않더군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도널드 덕도 보입니다.
강변을 따라 여라가지 형태의 별장이 서 있습니다. 요금표를 보니 장난이 아닙니다. 콘도형 별장의 경우 휴일에는 16만원에서 29만원(금,토, 공휴일 전날), 평일에는 10만원에서 18만원(평일할인요금)입니다.
강물 위로 떠 있는 단풍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줍니다.
미래의 화가를 꿈꾸는 미술학도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원시인들이 살았음직한 움막집도 있습니다.
남쪽끝을 돌아 동쪽길을 가노라니 수양버들이 휘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시들었지만 가을의 전령인 억새도 마지막 흰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배드민턴 운동장 옆은 해뜨는 마을입니다.
몽골식 주택이 있습니다.
이곳에도 단풍나무 한 그루가 독야청청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을 바라보니 더욱 붉어보입니다.
금년은 가을가뭄으로 인하여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나뭇잎이 말라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고 하는데도 가끔 이렇게 돌연변이처럼 제 모습을 뽑내는 놈이 있어 눈을 즐겁게 합니다.
곳곳에 화판을 걸어놓고 그림을 그리는 미술학도가 보입니다. 이 친구는 아예 서서 스케치를 하고 있네요.
은행나무길 옆 잔디광장에는 고운 유니폼으로 단장을 한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무슨 놀이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언제 무슨 건물을 이전했는지 논란이 되고 있는 정관루 현판의 글씨가 명필입니다.
이웃 미술관에는 슬로바키아 그림책 삽화전이 열리고 있지만 관람객은 필자 혼자뿐입니다.
전시된 작품을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번 휙 하고 둘러보며 몇 점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림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작가의 깊은 뜻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은행나무길과 메티세콰이아길로 나뉘는 사거리에 왔습니다. 겨울연가의 촬영지답게 그 포스터가 보입니다. 포스터는 욘사마 배용준과 여배우 최지우가 메타세콰이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눈내리는 풍경을 연출한 "소원의 문"입니다.
겨울 풍경을 묘사했지만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소품입니다
분수를 내 뿜고 있는 이슬정원입니다.
시원한 느낌이 드는 메타세콰이아 숲길입니다.
남이연가상(南怡戀歌像)은 배용준과 최지우를 모델로 만든 상입니다. 남성들은 최지우에게, 여성들은 배용준에게 뽀뽀를 하는 시늉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지나가는 길목에는 세 마리의 타조가 사람들의 말벗이 되어줍니다.
이제 선착장으로 향합니다. 샛노랗게 핀 은향나무 한 그루가 사람들이 사진찍는 모델이 되어 주느라고 매우 바쁜 모습입니다. 남이섬은 필자가 지금부터 꼭 26년전 아내와 연애할 때 왔던 곳입니다. 그 당시 잔디광장에서 함께 앉아 쉬다가 웃옷을 벗어놓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아내는 내 옷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확인했다고 나중에 털어 놓았습니다. 혹시 거짓말을 할 지도 몰라 호기심에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차라리 듣지 않은 것만도 못한 추억입니다.
입구에 위치한 남이장군의 묘소입니다. 우리가 말로만 듣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남이장군이 어떤 인물인지 아래에 살펴보겠습니다. 훌륭한 인재를 없애려는 사악한 무리때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야기입니다.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필자는 대오를 이탈해 오른쪽으로 들어갑니다. 남아섬 안내도 뒤로 분재전시장이 있습니다.
재배자의 정성이 깃든 분재를 보는 보는 큰 즐거움이지만 언제 배가 도착할 지 몰라 마라톤 하듯 한바퀴 돕니다.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 후 제자리에 들어와 조금 기다려 배에 오릅니다.
에필로그
남이섬은 겨울연가 이후 중국과 일본인의 대표적인 관광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오늘 단체관광객들도 일어와 중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곳은 무엇보다도 자동차의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개인용 및 가족용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으며, 모타보트를 즐길 수도 있는 곳입니다. 시끄러운 도심을 벗어나 하루 정도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26년전 처음 방문했을 당시와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시장터를 방물케하고, 곳곳에 쓰레기를 두고 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으며, 놀이기구가 많아 고즈넉한 섬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금요일에 찾아와도 이러할진데 주말이면 아마도 사람들과의 전쟁을 치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남이섬 관광안내소에 들러 우리말과 영어로 된 안내지도를 한 장 구해 보았는데 글씨크기가 너무 작고 흐릿하여 식별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다시찾고 싶은 명소 그리고 남에게 추천하고픈 명소를 만들려면 섬의 안내지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구비해 놓기를 권합니다(2006.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