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1장 16~17절, 로마서 12장 15절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표준새번역>
안녕하세요. 주일을 위한 토요일 잘 보내고 계십니까? 생각해보면 '토요일'이란 시간은 정말 주일에 대한 기대가 온전하게 준비되는 날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구약에서의 안식일 개념을 참 좋아합니다. 하나님마저 쉬셨던 날! 현재 우리는 그 안식일을 지키며 살고 있지는 않지만, 십계명 중 제 4계명으로서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이유는 여전히 있습니다. 바로 이 안식일을 통하여 주일이 준비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활의 새벽을 준비하시기 위해 온전히 침묵하신 하루, 십자가를 지셨던 다음날처럼 말입니다. 마음껏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온전하게 준비하는 날, 그날이 '토요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토요일에 어찌보면 가장 많은 유혹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5일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충분히 보상으로 열심히 놀아야 할 날이기도 합니다. 오랫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미뤄둔 여러가지 일들도 해야 하고, 나를 위한 정비가 필요한 날로 보냅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일 교회 가지 말고 이런 시간들을 좀 더 가질까?", "예배는 그 다음주에도 드려도 되는데 내일은 한번 빠질까?" 이런 시험 아닌 시험에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큰 위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곧바로 스스로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이유가 쓸데없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좀 심각하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교회가 싫다! 교회라는 곳에 가기 싫다!" 물론 여기 나오는 교회가 모든 교회를 지칭하는 말은 아닙니다. 보통 자신이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를 향한 말일 때가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님을 알고 계시다면 여기서 교회는 예배나, 목회자, 직분자, 성도 등 모두를 포함한 단어라는 것을 아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대한 회의감, 교회에 대한 불만, 교회에 대한 불신, 교회에 대한 실망감...억누르고 억눌러도 도저히 억눌러지지 않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마도 이런 때를 거쳐보신 분들이 꽤 많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봐야지, 사람보지 말아야지,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니 당연한거야! 내가 아직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거야! 답답하고 힘들어도 집중하자!" 생각해보지만 다시 교회 생각을 하면....후....한숨만 나오는 경험...!
교회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누군가가, 아니 하나님께서 "그럼 가지마!"라고 이야기해주시면 좋으련만 사실 결론도 스스로가 내려야 하기에 더 복잡해 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것인지, 아니면 차선책으로 다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던지 결정해야 합니다. 경험해보신적이 있다면 두가지 다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 거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근래에 저도 교회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아주 슬픈 그런 글귀를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교회란 곳은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는 곳이다." 라는 짧은 글귀입니다. 이게 원래 교회가 아니라 직장이나 다른 곳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교회가 가장 그런 곳이라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글이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먹먹하고 답답해 졌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욕을 먹어도 좋습니다. 인정합니다. 사실 교회답지 못하다고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란 곳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하게 되어버렸다면 정말 뭐라고 기도할 힘도 사라집니다. 이럴 때 정말 교회가기가 싫어집니다.
교회란 곳은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는 곳"이 아니었습니까?
교회란 곳은 "기쁨을 나누면 축제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힐링이 되는 곳"이 아니었습니까?
교회란 곳은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는 가족공동체"가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교회는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되신 교회라면...!
분노지수가 올라가고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다가 이윽고 잠시 생각을 멈추고 나면 결론적으로 늘 내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먼저 보도록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분노도, 흥분도 가장 먼저 나를 향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다른 이의 티를 보느라 애써 외면했던 내 들보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돌처럼 굳고, 깊게 뿌리내려버린 들보를 보면서 깊게 숨을 내쉬어봅니다. "그래, 모든 문제는 바로 나로부터 시작하는거야!" 다시금 교회를 보던 눈을 내 안의 교회로 향합니다. 다시금 사람을 보던 시선을 하나님께로 고정해 봅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서 12장 15절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묵상해 봅니다.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십시오." 이 말씀으로 돌아가보려고 합니다.
교회 가기 싫다!는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인은 역시 '사람'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안가는 대신 선택한 것이 그 사람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 되어버렸을 수 있습니다. "내가 다녀봤는데...교회란 곳은...주 예수를 믿는 곳이 아니라 (주)예수 인 곳이야!", "아..그 교회? 그 목사? 그 성도?참..할 말이 없다!아주 그리스도인들 욕먹이는데 앞장서는 교회, 목사, 성도지 아마!!"
나부터 이런 말을 내뱉기 전에 말씀을 주신대로 내일도,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고 오려고 합니다. 나부터 그 일이 시작된다면, 나부터 말씀을 살아내려고 노력한다면..최소한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교회란 곳이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는 곳'이 아니게 될 것을 기대해봅니다. 그 인식이 조금이라도 흐릿해지는데 노력하고 싶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그렇게 말씀대로 행해간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영역 중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의 견해는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흐릿해지다 못해 사라질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저부터 실천하겠습니다.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함께 울고 웃는 그런 동역자가 되겠습니다. 그런 동역자들로 가득한 주일, 그런 교회 되시길 축복합니다.